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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은 100개가 조금 넘는 단편적인 어록을 통해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중 이 사람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있는 30여개의 구절들을 주제별로 묶어서 정리해 봤습니다.
수수께끼같은 말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완전히 이해가 불가능한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만물유전설과 변증법, 로고스 세 부분으로 나눠서 대강이나마 그 뜻을 더듬어보려 합니다.(여기 제시된 해석은 추측일 뿐이니 그냥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 만물유전설, 변증법, 로고스
만물유전설: 모든 것은 흐른다
1. 너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늘 새로운 강물이 너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
→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사물을 고정된 것으로 바라보는 상식적 관점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고 가사적인 것[영원하지 않은 것]을 고정된 상태에서 두 번 접촉할 수도 없다. 그것은 변화의 급격함과 빠름에 의해서 흩어졌다 또다시 모이고(아니 '다시'도 '나중'도 아니며, 차라리 '동시에') 합쳐졌다 떨어지며, 다가왔다 멀어진다.
→ 강에 국한되었던 내용을 가사적인 모든 것(사물, 생명)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흩어졌다 또다시 모이고, 합쳐졌다 떨어지며, 다가왔다 멀어진다"는 말은... 인식, 기억이 앞뒤로 순환하면서 점차 변해가는 모습(기억이 외부로 투사되면, 펼쳐진 그 기억을 토대로 내면에서 새로운 기억이 솟아나 저장되는 식으로. 자세한 내용은 '전변' 개념 참조.)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아래 문장과 함께 묶어서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3. 모든 것은 불[혼, 또는 식]의 교환물이고 불은 모든 것의 교환물이다. 마치 물건들이 금의 교환물이고, 금은 물건들의 교환물이듯이.
4.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담그면서 발을 담그지 못한다. 우리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
→ 강뿐만 아니라 강에 발을 담그는 사람도 끊임없는 흐름이라는 사실을 나타낸 것 같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설은 대략 이상의 네 구절(또는 세 구절)로 간추릴 수 있을 듯합니다. 불교적 색채가 짙은 내용인데, 서양에도 이런 관점이 완전히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컨대, 플라톤의 「향연」에 등장하는 디오티마라는 여성은 생명체의 자기보존 방식을 대략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어떤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도, 비록 동일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기는 하더라도 사실은 그 동일한 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존재가 되고, 언제나 없어지고 새로 생기는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 그의 육신만이 아니고 그의 영혼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격이나 습관이나 의견이나 욕망이나 쾌락이나 고통이나 두려움이 변하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것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낡은 것은 사라집니다. (...)
출처: pixabay
망각이란 지식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말하고, 상기란 그 지식이 사라져버린 자리에 새로운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그 지식을 보존하는 것이고, 그래서 마치 중단 없이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모든 가사적인 것이 보존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을 새로 얻어 낡아서 없어진 것을 보충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보존되는 것입니다.
→ 소용돌이나 회오리바람 처럼 외관은 동일해 보여도 속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다음 구절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5. 같은 사람들을 위해 힘들게 일하고 지배받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또는 "같은 일을 위해 힘들게 일하고 계속 새로이 시작하는 것은 피곤하다.")
→ 의미가 분명치 않지만, 제게는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로 읽혔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절대자의 상징인 '태양'으로까지 확장됩니다.
6. 태양은 날마다 새로워진다.
→ '날마다 새로워지면서도 변함없이 머문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이 구절을 "움직이면서도 쉰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과 연관지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변증법: 대립과 조화의 원리
1. 신은 낮이며 밤이고, 겨울이며 여름이고, 전쟁이며 평화이고, 포만이며 굶주림이다. 불이 향료들과 함께 섞일 때 각각의 향에 따라 이름 붙여지듯이, 신은 그렇게 변화한다.
→ 대극을 이루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동시에 넘어서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두번째 문장은 대략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취한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2. 그것이 어떻게 자신과 불화하면서도 그 자신과 일치하는지를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활과 뤼라(현악기)의 경우처럼 반대로 당기는 조화이다.
→ '불화하는 모든 것을 한데 아우르면서도 '하나'로 머무는 그 존재 방식이 신비스럽다'는 말로 해석하면 될 듯합니다. 조화로운 하나 속에 대극의 긴장이 내재되어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3. 대립하는 것은 한곳에 모이고, 불화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은 투쟁에 의해 생겨난다.
→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말들이 훗날 변증법(정·반·합)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변증법을 설명하기 위해 흔히들 '있음', '없음', '생성'을 예로 듭니다. "있어"와 아니야 "없어"의 대립이 "생성", 또는 "끊임없는 생멸"로 통합된다는 것이지요.
합에 해당되는 "생성", 또는 "생멸"이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면, 정립과 반정립에 해당되는 "있다"와 "없다"는 완전히 옳지도 완전히 그르지도 않은 불완전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 반, 합의 자리에 원, 삼각형, 원뿔 같은 것을 대응시켜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있다"와 "없다"가 한차원 높은 "생성"으로 통합되듯이, 제한적 관점을 나타내는 두 도형의 대립을 조화시키려면, 마찬가지로 축 하나를 더해야 할 것입니다.(원과 삼각형이 대극 관계는 아니라는 점이 한계인 듯.)
4. 쌍을 이루는 사물은 온전하면서 온전하지 않고, 함께 모이면서 떨어지며, 조화로우면서 조화되지 않는다.
→ 대립물 간의 긴장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상반된 성질을 지닌 두 대상이 애초에 한 곳으로 모여든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5. 대립물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다.
→ 대립물이 좋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당사자를 한 차원 높은 '합'의 지점으로 밀어올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출처: pixabay
6. 보이지 않는 조화가 보이는 것보다 더 강하다.
→ 배후에 내재된 조화는 잘 보이지도 않고 목소리도 크지 않지만, 드러난 것들 보다 더 강하다고 합니다.
7. 병은 건강을 달콤하고 좋은 것으로 만든다. 굶주림은 포만을, 피로는 휴식을 그렇게 만든다.
→ 일상적 사례를 예로들어 양 극(정과 반)이 서로를 발생시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정과 반에서 합으로 고양되기도 하지만, 합에서 정과 반으로 갈라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8. 만일 이것들[부정의한 행동들]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디케[정의의 여신]의 이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 위 구절과 같은 내용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충신이 생겨난다"는 도덕경의 구절과 비교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9. 선과 악은 하나다.
→ 길고 짧음처럼 서로에 기대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홀로는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한 것 같습니다. 아마 다음 구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10.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똑같은 길이다.
로고스의 탐구
1. 이 세계는 모두에게 동일한데, 어떤 신이나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어왔고 있고 있을 것이며, 영원히 살아있는 불로서 적절한 만큼 타고[또는 불붙고] 적절한 만큼 꺼진다.
→ '영원히 살아있는 불'인 세상의 지배 원리를 묘사한 구절인 것 같습니다. 「향연」에 등장하는 디오테마도 순례의 종착점인 '신기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이 아름다움은 우선 영원한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적절한 만큼 타고 적절한 만큼 꺼진다"라는 표현이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는다"는 말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 스스로를 자라게 하는 로고스가 혼에 속한다.
→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을 지배하는 원리나 법칙을 '로고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로고스는 어디 동떨어져 있는게 아니라 모든 사물과 생명체에 내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자라게 한다"는 건 아마도 '생명체 내부에 머물며 점점 더 스스로를 드러내 보인다'는 말일 것입니다.
3. 그대는 가면서 모든 길을 다 밟아보아도 혼의 한계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도 깊은 로고스를 가지고 있다.
→ 내면에 잠재된 로고스는 본질상 무한하다고 합니다.
4. 자기를 아는 것과 사려하는 것이 모든 인간들에게 부여되어 있다.
→ 로고스와 접촉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을 묘사한 구절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5. 사려하는 것은 가장 큰 덕이다. 참을 말하는 것과 본성에 귀기울여가며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지혜이다.
→ 외부 자극이나 개인적인 의견에 끌려다니지 말고 내면의 로고스에 귀를 기울이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아래 세 구절도 같이 묶어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출처: pixabay
6. 이 때문에 '공통의 것'을 따라야만 한다. 그런데 로고스는 공통의 것이거늘, 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만의 생각을 지니고 있는 듯이 살아간다.
7. 그들은 가장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 즉 전체를 다스리는 로고스와 갈라선다.
8. 대부분의 신적인 것들이 불신 때문에 알려지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9. 도대체 어떻게 어떤 이가 저물지 않는 것의 눈을 피할 수 있는가?
→ 헤라클레이토스도 순리에 맞게 세상을 다스리는 어떤 원리나 법칙의 존재를 가정했던 것 같습니다. 로고스의 일면인 양심의 작용을 암시한 구절인 것 같기도 합니다.
10.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 '만물은 하나이다'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
→ 만물은 흐르는데, 동시에 하나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11. 지혜로운 것은 하나인데, 모든 것들을 통해서 모든 것들을 조종하는 예지를 숙지하는 것이다.
12. 나는 나 자신을 탐구했다.
13. 본성은 스스로를 감추곤 한다.
→ '자신을 탐구해서 숨겨져있는 본성을 찾아내라'는 말 같습니다.("너 자신을 알라")
14.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실로 많은 것들을 탐구하는 사람들이어야만 한다.
→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양한 현상들 속에 내재된 공통의 것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것들에 대한 탐구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것'을 파악하는 수단일 것입니다.
15. 금을 찾는 사람들은 많은 땅을 파내고 적은 것을 발견한다.
16. 박식이 지성을 갖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 '금'으로 정제되지 못하고 산만하게 축적된 지식을 비판하는 말일 것입니다.
17. 가장 중요한 것들에 관해서 경솔하게 추측하지 말자.
→ 해설을 덧붙이면서 경솔하게 추측한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내용만 받아들이시길.
18. 인생은 장기를 두면서 노는 아이. 왕국은 아이의 것이니.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 중 하나입니다. 괴팍함과 현명함을 동시에 지닌 아주 독특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접』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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