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르지 않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인가 '불이(不二)'인가?

[호도수졸]

양산 통도사 불이문/은채씨 블로그

1 얼마 전 도보여행차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양산 통도사에 들렀다. 무풍한송(舞風寒松)이 늘어진 길을 따라 일주문(一柱門)과 천왕문(天王門)에 이어 불이문(不二門)에 이르렀을 때 문득 묘한 상념에 젖어들었다.

불국토에 들어선다는 불이문은 법계와 속계가 다르지 않고, 해탈과 번뇌가 다르지 않고,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라는데, 알듯 모를듯, 잡힐듯 말듯, 혼란스러웠다.

통도사 대웅전/aleijarse 블로그

2 나름대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염원하는 별도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숱한 관념과 현상들 - 참과 거짓, 선과 악, 미와 추, 나아가 색과 공 - 을 초월하여 함께 어우러짐을 받아들여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지인데, 부처님이 설파하신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의 강을 넘어야 영원불멸이나 참된 자아, 즐거움의 의미를 더할 것 같기는 하다.

다르지 않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상대적인 가치를 빈 공간에 내려놓고 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정의롭든 정의롭지 못하든, 지배하든 지배받든, 부귀하든 빈천하든, 편히 놀든 개고생하든, 결국은 받아들이는 마음에 좌우되는 것이라 짐작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통도사 금강계단/정혜 블로그

3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인간의 태생자체가 우연이라는데 실망, 니체의 초인사상(위버멘쉬)이나 알베르 카뮈의 저항정신에 이끌려 유교적 처세논리인 '화이부동(和而不同)' 에 공감하였지만, 이제 돌아와 거울앞에 서 보니 그보다는 '불이(不二)' 가 가지는 절대평등에 더 관심이 간다.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그의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이성에 기반한 법과 제도 도덕 종교 등 사회시스템이 오히려 인간을 타락시킨다면서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무소유의 법정스님도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 평등, 정의를 떠들거나 신의 존재와 실존의 의미를 찾는 등의 거창한 이념에서 벗어나 일상의 사고와 방식을 서로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 '다름'을 소화해내는 길이기도 할 법 같다.

미륵불이 있는 용화전, 그 앞에 발우모양의 봉발탑이 있다

4 하지만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탈옥 직전 절친했던 감방 동료 레드에게 한 말이 머리를 맴돈다.

"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바쁘게 살거나, 아님 바쁘게 죽어가거나"

탈옥을 암시하는 이 대사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인가 아니면 불이(不二)의 경지인가? 여전히 알송달송하다.

통도사 입구에 있는 무풍한송로

5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 침대에 누워 고 최희준씨의 노래 "하숙생'을 듣고 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

자연스레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 1376)의 누님이 지었다고 알려진 ‘부운(浮雲)’이란 게송이 떠오른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네 (空手來空手去是人生)
삶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죽음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
삶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인데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
뜬구름 자체는 실체가 없듯 삶과 죽음, 오고 감 또한 그러하네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
오직 한 물건이 항상 홀로 있어 담연이 생사를 따르지 않는구나 (獨有一物常獨露 澹然不隨於生死).”

글쎄, 저 역시 그냥 삽니다. Just live!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기에~
ㅎㅎ


(금년 5월 여행 명상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