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석청 김재교
올 2021년 구정(舊正)은 씁쓸하고 외롭게 넘겼다. 코로나19라는 지구상에서 없던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하여 전 세계가 꼼작 달싹 못 하게 묶이었다. 개인 거리두기 2 m. 5인 이상 합석(合席)을 못하며 마스크 쓰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보이지 않는 거미줄로 묶어 놓고 어기면 죽음으로 가고 죽기 싫으면 준수를 하여야 되는 세상(世上)이 되었다. 절기(節氣)는 벌서 입춘(立春)절기 지나고 둘째 절기 속에 우수다. 옛 어른들께서 우수(雨水)가 지나면 대동강도 풀리고 깊은 산 개구리가 운다고 했다. 구정이 지나고 나니 잔디마당에 풀들이 파란 싹을 띠우고 토방에는 수선화가 무거운 흙덩이를 한쪽만 이고 햇빛을 당기고 밤에는 서리 옷 입고 별구경도하고 있다. 영하9도가 되는데도 푸른색이다. 대단한 힘이다.
이제 대추나무 가지치기 절기가 돌아 왔다. 어릴 적에 심은 대추나무에 대한 글을 적어 본다. 우리고장은 만경강 상류지역에 속해 있다. 토질이 사토다. 그래서 물 빠짐이 좋아 과일나무가 잘 자란다. 대추, 감은 전국에서 품질이 최고다. 특히 우리 한 민족은 예의를 존중하고 가문마다 옛 법을 가추고 아름다운 풍토가 있다. 나라에 충성하고 전쟁이 나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며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이웃 간에는 서로 우애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온 민족이기에 5000년 역사 속에서 살고 있는 민족이다.
그 중에서도 조상을 섬기는 예법은 전 인류 중 우리 민족이 최고 일 것이다. 제사를 올리는데 제상에 과일 중에 대추가 으뜸으로 오른다. 대추는 우리나라 과일 중에 가장 늦게 7월에 꽃이 피고 삼복(三伏)에 열매가 열리며 추석절기에 과일을 먹는다. 지금은 계절이 없이 과일이 4 계절 생산 되지만 옛적에는 계절 따라 생산되는 것만 맛보고 살았다.
우리 마을은 큰 동래와 지금 살고 있는 가릅재, 작은 마을로 되어 있다. 어릴때 추석이 되면 큰 동래 사서정(思書亭) 정자 옆에 큰집 대추나무가 있었는데 명절 때 제사를 모시는 집은 그곳에서 대추를 받아 잘 건조해서 제사 때 올리고 약용으로 사용했다. 그 시절에는 사방 십 여리에선 이 대추나무 밖에 없었으니 대추 따는 날은 다들 모여 주어주고 주는 대로 가져갔다. 나는 어려서 바람이 많이 불면 새벽에 떨어진 대추를 주으려 간다고 하면 어머님이 절대 따지는 말라고 하셨다. 달려가면 동무들이 몇이 줍고 있었다. 무척이나 부러웠다. 수년이 지나 말미산 절에서 어린대추나무 몇 주 얻어 밭에 심으며 나도 언젠가는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심정이었다. 심은지 3년이 지나서 부터는 대추가 많이 열려 나눔도 하였지만 우리가정은 사는데 도움도 되었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 부족한 것이 많아 절약하고 아끼는 것이 몸에 익숙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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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큰집 서당에서 책도 없이 등 넘어 듣고 마당에 쓰고 연습을 하였다. 지금도 많이 그 시절을 생각 한다. 저녁이면 어머님하고 나란히 누어 어머님은 천자문을 외우시면 따라 외웠다. 일년이 지났다. 나도 천자문을 다 외우게 되였다. 어머님은 홀로 돌아 누어 흐느끼며 우신다. 나는 어머니 걱정 마세요. 하고 위로 하였다. 사자소학, 명심보감, 소학, 대학, 영어, 모든 공부는 전주 헌 서림들과 근처 헌책방에서 독학으로 익혀야 하는 길 뿐이고 모든 삶의 진리도 홀로 터득 하는 것 밖에 없었다. 무(無)에서 유(有)도, 홀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한 서린 사연을 간직한 대추! 잘 건조해서 여유 있는 것은 지인들과 서울, 경기, 전남에 살고 있는 일가친척 여러 가정과 함께 하고 있다.2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