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코끼리 발자국
1 사위성의 사노소인 바라문은 어느 날, 흰 천막을 덮어씌운 마차를 타고, 오백 제자를 데리고 들 밖에 나갔다가, 도중에 유행자 필로티카를 만나서 물었다.
"오늘 어디로 가오?"
"사문 구담을 찾아가오."
"그는 지혜 있는 현자인가요?"
"내가 어떻게 구담의 지혜와 현명을 알 수 있겠소? 다만 그분과 동등한 사람만이 비로소 그 지혜와 현명을 알 것이오."
"당신은 너무 구담을 지나치게 찬미하는 것 아니오?"
"천만에, 내가 어떻게 사문 구담의 덕을 찬미할 수가 있겠소. 그분은 인천人天 중에서 가장 거룩하신 분이신데!"
"사문 구담의 어디가 그처럼 거룩하게 보이던가요?"
"코끼리가 놀던 숲에 들어간 사냥꾼이, 큰 코끼리의 발자국을 보고 '아, 그 코끼리는 확실히 크다'고 하는 것과 같이, 사문 구담의 네 가지 발자국을 보고 '아! 그는 정각자이다. 그 설법은 매우 훌륭할 것이며, 그 제자는 올바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라고 알 수가 있소. 네 가지 발자국이라 함은, 현명하고 변론을 잘 하는 크샤트리아 족들이 사문 구담의 이론을 깨뜨리고자 가지가지로 재주를 부렸으나, 그를 만나 그 설교를 듣고는 곧 제자가 되니 그것이 첫째 발자국이요, 또 말 잘하는 현명한 바라문들이 그와 대결해 보겠다고 벼르다가, 그 교를 듣고는 그만 기꺼이 제자가 되는 것이 그 둘째 발자국이며, 또 이론을 잘하는 어떤 학파의 스승들이 저것을 깨뜨리고자 벼르다가도, 그를 만나면 그 설교에 감복하여 제자가 되니 이것이 셋째 발자국이요, 또 털끝도 쪼갤 정도로 영리한 사문들이, 내가 꼭 사문 구담의 학설을 깨뜨리겠다고 여러 가지로 머리를 쓰다가 드디어 그 교에 끌려 들어가 제자가 되어, 옛날에는 사문도 아니면서 사문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이제는 참으로 사문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형편이니 이것이 그 넷째 발자국이오. 나는 이 네 가지 발자국을 보고 부처님은 실로 정각자며, 그 설법은 참으로 훌륭하고, 그 제자들은 올바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소."
이때 사노소인은 마차에서 내려, 한쪽 어깨에 옷을 벗어 메고, 부처님이 계신 쪽을 항해 합장하고
"저 거룩하신 부처님, 정각자에 귀명합니다."
라고 세 번 외쳤다. 그리고 '거룩하신 부처님을 만나 뵙고 그 설법을 듣자'고 마음으로 다짐하고, 그는 곧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예배한 뒤에, 유행자 필로티카가 하던 말을 여쭈었다.
2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이 코끼리의 발자국의 비유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내가 비유를 들 것이니 들어 보라. 코끼리의 숲에 들어가 넓고 큰 발자국을 보고, 만일 익숙한 코끼리 사냥꾼이라면, 바로 '이것은 큰 코끼리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마니카라는 암코끼리는, 키는 아주 작아도 발만은 큰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나아가, 큰 발자국이 있고 그 옆에 높은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어도, 이것은 큰 코끼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키가 높고 발자국이 큰 가리리카라고 하는 코끼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나아가, 큰 발자국을 보고 그 옆에 높은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고 나무 등걸에 어금니의 흔적이 있어도 또한 큰 코끼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 가네루카라고 하는 큰 암코끼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큰 발자국과 부러진 나뭇가지와 이빨 자국이 난 나무 등걸과 그리고 공지에 갔다가 돌아왔거나 또는 누워 있는 큰 코끼리를 보고야 '이것은 큰 코끼리다'라고, 비로소 판정할 수 있는 것이다.
3 바라문이여, 이 비유와 같이, 여래가 세상에 나타나서 법을 설하여, 좋은 집 자제들이 믿음을 얻어 출가하여 깨끗한 행을 닦아, 마치 나는 새가 다만 날개만 몸에 가지고 나는 것과 같이, 욕심을 여의어 족한 줄 알며, 계를 갖추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연마하여, 오개를 제하고 제일선에 들어가나니, 바라문이여, 이것이 여래의 발자국으로서, 코끼리 어금니의 흔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이것만 보고 '부처님은 정각자이시다. 부처님은 좋은 법을 설하시고, 부처님의 제자는 올바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다'고 결론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이 제자는 점차로 도를 닦아, 제이선ㆍ제삼선ㆍ제사선에 들어 숙명통ㆍ타심통ㆍ누진통 을 얻는다. 바라문이여, 이것도 다 여래의 발자국에 코끼리의 어금니 흔적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자들은 이것만 보고 '부처님은 정각자이시다!'라고 판정하지는 않는다.
그와 같이 나아가, 모든 욕심과 번뇌와 근본무명에서 벗어나 큰 지혜를 얻어, 생사의 근본이 다 없어지고 청정한 행을 성취하여, 할 일을 다해 마쳐 생 뒤에는 다시 미몽의 생이 없는데 이르게 되나니, 바라문이여, 이것은 여래의 발자국, 여래의 어금니 흔적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제자는 비로소 '부처님은 정각자이시다!'라고 판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노소인은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어둠에서 광명을 얻은 듯, 덮였던 것이 훌쩍 벗겨진 듯 기뻐하며, 일생에 우바새가 되기를 서약했다.
4 어느 날 바사닉왕은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깨달음을 증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대왕이여, 만일 이 세상에 정각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일 것이요, 나는 정각자요."
"그런데, 세상에는 부처님과 같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교를 펴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많은 사문과 바라문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각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나이 젊고 새로 출가한 분으로서, 그처럼 힘차게 말씀하십니까?"
"대왕이여, 나이 적다는 이유로써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이 네 가지가 있으니, 왕자와 뱀과 불과 비구가 그것이오. 이 네 가지는 어리다고 해서 업신여길 수 없소."
왕은 부처님의 권위와 지혜에 눌려서 감복하며, 그날도 즐거운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갔다.
5 부처님이 대숲절에서 교화를 펴고 계실 때에, 이웃 나라인 비사리국에서 흉년이 들고 겸하여 염병이 크게 유행하여, 죽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더구나 나라 정사에 참여한 귀족들은 당시에 이름 높은 육사외도를 초빙하여, 이 염병을 퇴치하려 했으나 효력이 없었다. 그래서 국왕과 대신은 서로 의논하고, 마가다 국 반바사라 왕과 부처님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비참한 상태를 호소하고, 부처님께서 행차하기를 빌었다. 부처님은 이것을 허락하셨다. 빈바사라 왕은 항가 하수 언덕까지 길을 닦고 부처님을 전송했다. 부처님이 항가 하수를 건너 한 삼십 리 가시어 비사리 땅을 밟으시자, 모든 염병의 독기는 맑아지며, 병의 기운은 문득 힘을 잃기 시작했다.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대로 [보경]을 외우면서 성벽을 돌아 맑은 물을 뿌릴 때에, 모든 악기惡氣는 스스로 쫓겨 가고 염병은 그치게 되었다. 부처님은 두 달 동안 비사리에 머물며 법을 설하셨다. 이때에 비사리 국왕과 신민은 거의 부처님과 그 교법을 신봉하게 되었다. 유명한 대림정사도 건립되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시 대숲절로 돌아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