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
사도 6,8-15; 요한 6,226-29 / 부활 제3주간 월요일; 2026.4.20.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부활 시기의 전례에서 독서로 듣는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사도로 부활되어서 교회를 창립한 이야기를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유일한 역사서인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창조하신 이야기를 전하는 교회의 창세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저자로 알려진 루카는 루카 복음서와 함께 같은 관점에서 이어지는 줄거리로 사도행전을 썼습니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복음이 주제였다면,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들에 의해 선포되는 교회의 복음이 주제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다."는 복음이 교회를 통해 힘차게 퍼져 나가는 구조로 소개됩니다. 즉,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다와 사마리아로 퍼져 나가고 나중에는 당시 땅끝으로 알려진 로마에까지 선포되는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복음선포의 과정이 1장부터 12장까지는 베드로 중심으로 전개되고, 13장부터 28장까지는 바오로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은 단지 초대교회의 역사를 일어난 일들을 연대순으로 무미건조하게 들려주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뚜렷한 주제 즉 성령의 활동, 교회의 탄생과 성장, 유다인에서 이방인으로 확장되는 구원, 복음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복음서입니다.
사도들은, 생전의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치유와 구마의 기적을 일으키셨듯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기적을 일으키며 이들에게 예수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에서 예수 부활의 복음으로, 복음의 내용이 인격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더욱 구체화된 것입니다.
사도들의 이러한 모습은,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으며 숱한 기적을 목격하던 제자 시절에 믿음이 굼뜨고 의심과 불신마저 품었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믿음을 북돋아주시고 부활 신앙을 확고하게 심어주신 덕분이었고 무엇보다도 오순절 날에 성령을 보내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 선포의 장이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는데, 이것이 갈릴래아에서 주로 활동하시던 예수님께서 당신 생애의 마지막 일주일을 예루살렘에서 보내시며 십자가 수난과 죽임을 자처하신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사도들과 함께 성령을 받은 신자들도 이에 감화되어 의심과 불신을 떨쳐 버렸음은 물론 이기심까지도 버리고 거룩하게 변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성령에 의한 통공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모두 같이 지내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며 가난한 이들과 가진 것을 나누었습니다.(사도 2,42-47; 4,32-37)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 그토록 애타게 바라시던 ‘하느님 나라‘가 바야흐로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이룩된 이 공동 생활이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이라고 복음사가 요한은 묵시록에서 증언하였습니다.
드디어 다가온 하느님 나라의 사회적 실체인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반으로 사도들은 용기 백배하여 복음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는데,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오로 이외에도 부제 스테파노가 돋보입니다. 이 세 인물의 활약상은 나머지 열한 사도들과 여섯 부제들의 선교 활동까지도 대표하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스테파노의 치명 장면을 보여주면서, 그를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사람’이었으며 백성들 앞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고 소개합니다.(사도 6,8) 이 대목은, 그가 맡았던 직무 즉 공동체 내부의 약자들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돌보는 일뿐만 아니라 공동체 외부의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던 예수님의 노선을 견지하고자 노력했던 바를 보여주는 진술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위에서 내려오는 은총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예수 추종’의 직무와, 자신의 능력을 최선을 다해 발휘해야 하는 ‘성령 순종’의 직무에 있어서 얼마나 치열하고 열정적인 활약을 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입니다.
또한 그가 교회의 첫 순교자로서 치명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때 주목해야 할 대목은 사도행전 7장입니다. 이 장은 이 최고 의회 법정에서 스테파노 부제가 행한 긴 연설을 장중하게 들려줍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즉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설교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깊이 들여다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기성 사도들과는 물론이고 빌라도 앞에서 침묵하셨던 예수님보다도 훨씬 더 용감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스테파노의 결기어린 모습은 최고 의회 의원들을 포함한 유다인들의 적대감을 불러 일으켜 재판이나 선고도 없이 돌로 쳐서 죽이는 사태로 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스테파노는 애초에 초대교회 내부의 더 가난한 이들을 배려하라고 신설된 부제 직무에 선출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도단이 마치 유다교의 신흥 교단처럼 보이게 하는 소극적인 처신을 하던 것과는(사도 3,1) 아주 대조적으로 예수님의 노선을 정통적으로 계승하는 용감한 처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성 유다교단과의 마찰이나 충돌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교회 역사상 첫 순교자가 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사도 7,60)
부활 시기 동안 요한 복음과 특히 사도행전을 선포하는 교회의 전례적 취지를 길잡이로 삼아온 맥락에서 보자면, 스테파노가 맡은 부제 직무는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한 특별한 책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명제는 예수님께서 당신 메시아 사명의 최우선적 사명으로 삼으셨던 노선이었고 스테파노는 바로 이 점을 설교에서 입증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사도들의 활약상을 미리 내다보신 듯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이때의 상황은 빵의 기적으로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께서 억지로라도 당신을 임금으로 모시려고 쫓아오던 군중을 피해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가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는데, 군중은 그곳까지 쫓아왔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 사건에 담긴 의미를 간추려서 촉구하셨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그러자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3)하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는 물론 부제 스테파노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전하느라 노심초사하였고, 스테파노는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모두 예수를 추종하고 성령께 순종하는 삶이었고, 바로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이 바탕에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이룩한 공동 생활,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핵심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사도행전이 기록하고 있듯이,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부제로서도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습니다. 신자들의 공동 생활에서 입증된 바,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한 은총과 능력을 발휘했다는 뜻입니다. 교회 역사상 천8백년 만에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 노선을 회복시킨 레오 13세와 비오 11세가 반포한 회칙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직무는 주교와 신부 등 온 성직자와 온 신자들이 더불어 힘을 합쳐서 해내야 할 메시아 백성의 사명입니다. ‘추종’과 ‘순종’으로 예수님의 영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회와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위해 무척 소중하고 바람직한 직무 영성입니다. 이 영성으로 스테파노는 박해 속에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신앙을 증거한 초대교회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 땅의 초대교회에서도 스테파노처럼 불꽃같은 치열한 삶을 살다간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광암 이벽 세례자 요한입니다. 세례받은 이후 한 해 동안 한양 선비 천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고 문중박해를 받아 조선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가 된 그는 조선 천주교회를 세운 사도요 예언자였습니다. 그도 역시 한국 천주교회의 아이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