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다운사이징 흐름에 따라 커다란 SUV도 4기통 엔진을 얹고 있다. 그런데 정말 4기통도 괜찮을까? 답답하거나 아쉽진 않을까?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4기통 에코부스트 포드 익스플로러 리미티드
‘에코부스트(EcoBoost)’라는 이름을 보며 포드의 작명 실력에 감탄한 적이 있다. 환경과 생태를 나타내는 ‘에코’에 뭔가를 끌어올리고 증가시킨다는 의미의 ‘부스트’를 붙여 친환경의 의미를 강조했다. 여기에 부스트는 터보차저도 떠오르게 한다. 과급기가 실린더 안으로 힘껏 불어넣는 흡기를 부스트라고 부르니 말이다. 그렇다. 에코부스트 엔진은 터보 엔진이다. 2085kg이나 나가는 육중한 덩치에 단 네 개뿐인 실린더로 이뤄진 2.3ℓ 휘발유 엔진을 믿고 넣을 수 있었던 건 단연 터보차저 때문이다.
에코부스트 엔진은 올해로 론칭 11주년을 맞았다. 물론 포드가 터보 엔진을 다룬 건 그보다 훨씬 오래됐지만, 친환경과 고성능을 함께 아우르고자 한 노력이 담뿍 담긴 에코부스트 엔진도 이제 무르익을 만큼 무르익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신형 익스플로러에 들어간 직렬 4기통 2.3ℓ 에코부스트 트윈스크롤 터보 엔진은 5세대에 비해 최고출력이 30마력 높아진 304마력, 최대토크는 1.4kg·m 강해진 42.9kg·m를 내뿜는다. 자연흡기 엔진과 비교하면 3.5ℓ급 이상은 돼야 넘볼 수 있는 수치다. 실제 쉐보레 트래버스는 V6 3.6ℓ 자연흡기 엔진으로 최고출력 314마력, 최대토크 36.8kg·m를 발휘하고, 현대 팰리세이드는 그보다 큰 V6 3.8ℓ 자연흡기 엔진으로 최고출력 295마력, 최대토크 36.2kg·m를 낸다. 비교하자면 익스플로러의 최고출력은 중간, 최대토크는 제일 높다. 차이도 꽤 크고. 이 정도면 4기통 엔진이 이 큰 덩치에 맞기는 하느냐는 의문을 굳이 가져야 하나 싶다.
신형 익스플로러는 연비도 전 세대보다 복합 기준으로 1.0km/ℓ 좋아진 8.9km/ℓ다. 여기엔 110kg이나 감량한 덕도 있고, 6단에서 10단으로 바뀐 신형 변속기의 공도 있다. 비결이 꼭 엔진만은 아니란 얘기지만 힘과 연비를 함께 끌어올린 건 분명 인정할 만한 발전이다. 참고로 복합 연비를 비교하자면 익스플로러보다 135kg 가벼운 팰리세이드는 8.9km/ℓ로 동일하고, 5kg 무거운 트래버스는 8.3km/ℓ다.
‘4기통 엔진을 품은 대형 SUV’ 익스플로러이지만 반응은 초반부터 거침없다. 가만히 서 있는 익스플로러의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으면 거세게 박차고 튀어나간다. 트윈스크롤 터보차저는 터보 지체 현상을 크게 느낄 수 없게 하는 동시에 엔진회전수가 올라가도 당찬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게 한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짓이기면 최대토크가 뿜어지는 3500rpm을 넘어 최고출력을 토해내는 5500rpm까지 기세가 내내 등등하다. 레드존은 6500rpm이지만 변속은 보통 최고출력이 나오는 5500rpm을 넘어가면서 이뤄진다. 그리고 다음 단은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3500rpm 부근에서 탁탁 받아낸다. 최대토크와 최고출력 구간을 최대한 활용해 묵직한 익스플로러의 걸음을 가능한 한 가볍게 하는 똑똑한 세팅이다.
2톤이 넘는 익스플로러가 경쾌하게 느껴지는 건 단지 ‘느낌적인 느낌’만은 아니다. 미국판 <모터트렌드>의 테스트에 따르면 익스플로러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97km에 도달하는 시간은 6.8초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같은 기준으로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 P300이나 메르세데스 벤츠 GLE 350 4매틱보다 빠르다.
익스플로러는 스포츠 모드나 가속하는 상황에서 높은 엔진회전수를 꽤 적극적으로 쓴다. 잠시 가속페달을 놓아도 회전수를 유지하고, 웬만하면 3000rpm 위로 붙잡아둔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언제든 부리나케 뛰어나가도록 준비하는 거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대형 SUV 특유의 높은 시야와 상호작용을 일으켜 가속감이 호쾌하고 후련하다. 굳이 더 큰 엔진이 필요할까 싶을 만큼 빠르게 달려간다.
6세대 익스플로러는 뒷바퀴굴림 플랫폼으로 바꾸면서 휠베이스가 길어졌고 서스펜션 세팅도 보다 단단하게 조였다. 때문에 조향 반응이 좀 더 예리해졌고 주행감도 훨씬 스포티해졌다. 고속에서도 상당히 안정적이다. 미국산 대형 SUV 특유의 유연한 감각을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코너에서는 무게중심을 순식간에 무너뜨리지 않고 기대보다 빠르게 돌아나간다. 익스플로러는 사실 5세대부터 꽤 젊고 괜찮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젊은 층에도 구매욕을 불러일으켰고, 2017년과 2018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수입 SUV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주행감은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다.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니 줏대도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 사상 가장 젊은 감각의 익스플로러가 등장했다. 외모와 주행감각이 드디어 조화를 이뤘다.
‘젊은 대형 SUV’ 익스플로러의 보닛 아래는 4기통 심장이 뛴다. “남자는 V6지!”라는 과시적인 관용구를 낡아빠진 치기로 치부해도 좋을 만큼 강력하고 치밀한 직렬 4기통 엔진이 고동친다. 누군가 저렴한 말투로 “쩜삼인데 괜찮아?”라고 물어보면 익스플로러를 보여주며 한마디 건네련다. “응. 뭐, 이 정도?”
글_고정식
최고의 4기통 디젤 엔진을 품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GLE 300 d 4매틱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이어진 엔진 다운사이징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휘발유 엔진에 쏠리기는 했지만 디젤 엔진도 흐름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오늘 모인 넉 대의 중형급 SUV 가운데 유일하게 디젤 엔진을 얹은 메르세데스 벤츠 GLE 300 d 4매틱이 좋은 예다. 어쩌다 보니 함께 나온 차들 가운데 디젤 엔진 다운사이징을 상징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GLE는 이전 세대 모델에도 4기통 디젤 엔진이 올라갔다. GLE 250 d에 얹힌 2.1ℓ OM651 엔진은 최고출력 204마력에 최대토크 51.0kg·m의 성능을 냈다. 그러나 지금의 GLE 300 d에 쓰인 OM654 엔진은 배기량이 2.0ℓ 작아졌는데도 최고출력은 245마력으로 높아졌고, 최대토크도 낮아지지 않았다.
신형 GLE에 올라가는 디젤 엔진은 직렬 4기통 2.0ℓ OM654(GLE 300 d)와 직렬 6기통 2.9ℓ OM656(GLE 350 d, GLE 400 d) 두 가지인데, 국내에는 4기통 엔진만 들어온다. 유럽 기준으로 OM656 직렬 6기통 엔진이 유로 6d 기준을 통과한 것과 달리, 4기통 엔진 버전은 유로 6d-TEMP 기준을 충족한다. 같은 엔진을 쓰는 C 300 d가 유로 6d 기준을 충족한 것을 보면, GLE가 더 크고 무거운 때문인 듯하다.
GLE가 크고 무거운 건 사실이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도 높이만 낮아졌을 뿐 길이와 너비는 무척 커졌다. GLE의 전신인 ML 클래스를 돌아보면 1세대와 2세대는 중형 SUV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 세대와 지금의 GLE는 한두 세대 전 대형 SUV가 부럽지 않을 만큼 덩치가 커졌다. 그리고 커진 덩치만큼은 아니어도 체중도 늘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차들의 전통이라 할 여유와 부드러움은 출력이 가장 낮은 엔진을 얹은 모델에서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가치다. 이번 세대 기본 모델이 250 d가 아닌 300 d가 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토크 특성이 좋은 디젤 엔진이라고 해도, 배기량 작은 4기통 엔진으로 이렇게 큰 덩치를 감당할 수 있을까?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비실비실한’ 차를 만들 리 없기 때문이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엔진 특성보다 먼저 느껴지는 건 정숙성이다. GLE 300 d는 실내가 무척 조용하다. 전반적인 소음 억제와 방음처리 수준이 높아 시속 50km로 달릴 때나 시속 100km로 달릴 때나 소음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4기통 엔진이 올라간 만큼 기통 수가 더 많은 엔진과 비교하면 공회전 때나 빠르게 가속할 때 조금 투박한 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운전하는 사람 귀에 들리는 소리는 충분히 잘 걸러져 회전수 변화 정도만 알 수 있을 정도다.
차분한 실내 분위기가 익숙해지면 그제야 엔진 특성이 와닿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덩치에 비해 배기량이 작은 편인데도 힘을 쥐어 짜내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GLE 300 d의 가속 느낌에는 단순히 디젤 엔진 고유의 특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넉넉함이 있다. 이건 실내로 아주 가늘게 전달되는 엔진 진동과 부드럽고 매끄러운 작동감 덕분이기도 하다. 흔한 표현을 쓰자면 엔진 회전질감이 아주 좋다. 4기통 엔진 고유의 특성이 여러 면에서 또렷하게 자극을 주지 않는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할 때의 부드러움은 예상 밖으로 훌륭하다. 요즘 SUV들은 대부분 오프로드용 저속 기어를 연결하는 부변속기를 폭넓은 기어비 구성으로 대체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출발할 때 지나치게 더디게 가속하다가 변속이 이뤄지면서 가속감이 갑자기 빨라지는 특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GLE 300 d는 가속감의 변화가 훨씬 더 자연스럽다. 9G-트로닉 플러스 9단 자동변속기의 기어비를 잘 조율한 덕분이다. 게다가 시속 100km로 달릴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변속기는 이미 9단에 들어가 있어 엔진 회전수가 1400rpm 정도로 낮게 유지된다.
물론 힘이 넘친다고 하기는 어렵다. 시원스레 가속하는 느낌을 원하면 더 큰 힘을 내는 엔진이 아쉽게 느껴질 만하다. 그러나 알맞은 힘을 낸다는 건 그만큼 연료를 낭비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기모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엔진 힘만으로 움직이면서 공차중량이 2.3톤에 이르는 차의 공인 복합연비가 10.6km/ℓ에 이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214km 구간을 시승하는 동안 트립 컴퓨터가 기록한 평균연비는 12.2km/ℓ였다. 가속 특성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늘어나는 탑승자와 짐에 따른 연료소비량 차이는 힘 좋은 차들보다 더 크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뛰어난 연비를 기대할 수 있다.
요철을 조금 빠른 속도로 지날 때에는 차체 전체가 살짝 들썩이면서 몇 번에 걸쳐 위아래 움직임을 줄여 나간다. 하지만 에어매틱 서스펜션은 출렁임이 지나치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게 움직임을 억제한다. 전반적인 승차감이 부드럽고 너그러운 편인데도 스티어링 반응은 예상보다 둔하지 않다. 다만 속도를 줄일 때 브레이크 반응이 고르기는 해도 덩치 큰 차를 몰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어, 페달을 좀 더 큰 힘으로 지그시 누르듯 밟아야 한다.
엔진과 주행 특성에 큰 불만이 없다 보니 다른 쪽을 살펴볼 여유가 생긴다. 눈에 보이는 부분의 고급스러움은 메르세데스 벤츠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딱히 흠잡을 곳이 없다. 다만 눈에 보이는 고급스러움에 비하면 편의장비나 첨단 주행보조 안전기술은 기대에 못 미친다. 대시보드 아래 센터콘솔에 있는 스마트폰 무선충전장치나 뒷자리에 있는 USB-C 포트 등 당장 쓰기 좋은 편의장비가 아쉬움을 조금 덜기는 한다. 실내와 적재공간도 중형 SUV로서는 충분해서 가족용 차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값이다. GLE 300 d의 기본값은 9030만원이다. 2016년에 GLE 250 d가 8000만원대 중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높아진 성능을 고려해도 만만찮게 올랐다. 게다가 동급 다른 차들이 대부분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등 준자율주행 기능도 기본사양에서 빠져 있다. 4기통 엔진 자체는 물론 체감 성능도 불만거리는 아니지만 소비자들은 4기통 디젤 엔진 차에 붙은 세 꼭지 별 엠블럼의 프리미엄이 꽤 세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