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780
신심명-008
동봉
제3칙
제1장 지도至道
제1절
지극하고 오묘한도 어렵지않지
애오라지 선택함을 꺼릴뿐이다
미워하고 사랑함을 두지않으면
분명하고 시원스레 드러나리라
지도무난至道無難
유혐간택唯嫌揀擇
단막증애但莫憎愛
통연명백洞然明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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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정말 열심히 읽은 명언집에
명심보감明心寶鑑이 있다
그 책 성심편 상省心篇上
곧 마음을 살피는 묶음1에
사뿐히 생각을 잡아두는 말이 있다
거기에 토시까지 달면
의인막용疑人莫用하고
용인물의用人勿疑하라로
의심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사람을 쓰거든 의심치 말라는 뜻이다
이 명언이 뜻하는 게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믿음이다
의심이 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일단 사람을 고용했을 때
직접 두 눈으로 본 게 아니라면
남의 말만 듣고 의심해서는 안 된다
사람亻말言은 믿어信야 하고
사람으로서 뱉은 말이라면
반드시 남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선시집 신심명 첫 묶음이 뭘까
다름 아닌 지도至道다
지도라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지至 자를 동사로 보느냐
부사, 형용사로 보느냐
도道 자를 목적어로 보느냐
명사로 보느냐에 따라
번역이 완벽하게 달라진다
동사와 명사 부사와 형용사
목적어까지 들먹이면 딱딱한 글이 된다
보통 '지至'는 형용사로
지극하다 오묘하다 따위로 쓰고
'도道는' 대체로 명사로 쓴다
거기에는 도덕, 도리, 가르침
진리 따위가 폭넓게 담겨져 있다
오묘한 진리, 지극한 가르침
인륜의 도리란 뜻이다
그래서 이렇게 번역하곤 한다
'지극하고 오묘한 도 어렵지 않지'다
한데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는 편이다
사사오송四四五頌으로 엮다 보니
'지극하고 오묘한도 어렵지않지'처럼
넉 자 넉 자 다섯 자로 옮긴다
한시漢詩는 다섯 자씩 된
오언절구五言絶句가 있고
역시 다섯 자로 된 대구를 모아
추구推句라는 한시의
또 다른 장르를 이루고 있다
또는 일곱 자씩 된 대표적 한시
칠언절구는 어디서나 쉬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 넉 자씩 된 한시가 있다
넉 자씩 두 줄로 대구를 삼고
이를 넉 줄 열여섯 자가
기본적으로 시의 한 연이 되고
여덟 줄 서른두 자는 으레 두 연이다
이렇게 넉 자씩 된 한시 장르를
시문학에서 명銘이라 한다
따라서 이 썽찬대사의 신심명은
명銘이 주제 뒤로 붙듯이
넉 자로 된 명시銘詩가 맞다
우리가 한문을 익히며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인 교재로
잘 알려진 천자문千字文이 있다
천자문은 넉 자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두 줄 이상으로
넉 줄이 기본이긴 하나
여섯 줄, 여덟 줄로
연聯을 이루기도 한다
하여 천자문은 천자명銘이 맞다
본디 문文의 뜻은 폭이 넓기에
모든 문체에 두루 쓰인다
하지만 세부적 시의 분류로는
형태로 보아 분명 명銘이며
따라서 천자명千字銘이 맞다
어떤 학자들은 신심명을 강의하면서
사람亻말言을 믿음이 신信이요
그처럼 믿는 마음이 심心이며
쇠붙이釒쪼가리에 이름名하였기에
새길 명銘이라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새길 명銘의 뜻보다는
한시 문학의 한 장르로 보는 게 맞다
거듭 강조하여 말하지만
신심명은 한시 분류의 명銘이지
새길 명銘자로서의 명銘이 아니다
명銘을 가장 많이 쓰는 게 비碑다
비문을 쓸 때는 위에 가로로
비문에 기록되는 인물 이름을 쓰고
그 이름 끝에 비명碑銘과 아울러
서문序文을 붙인다고 한다
이어 주인공의 삶과 공덕을
산문형태로 길게 써 내려 간 뒤
끝으로 넉 자씩의 비명碑銘을 쓴다
이를테면 용성조사 비명碑銘에서
'용성조사비명병서'라 할 때
한자로는 '龍城祖師碑銘幷序'다
이는 끄트머리에 새기는 비명과 함께
앞에 서문을 곁들인다는 뜻이다
서문 말고 비명의 글자 수는
한결같이 넉 자씩이다
문장 형태가 명銘을 따랐으니까
명銘 다음에 붙는 내용이 있다
서열에 따른 가문 관계와 이름이다
소위 명銘이란 그렇게 해서
짧게는 두 줄(대구)
또는 넉 줄(1연)이 되고
열여섯 줄(4연)과 함께
서른두 줄(8연)은 기본이다
한시는 이처럼 고정定된 틀型에 따라
평측平仄과 압운押韻을 챙긴다
말하자면 한시의 정형인
얼리터레이션alliteration과
라임rhyme을 고집한다고 하겠다
문체의 장르 몇 가지를 보자
01) 표表/예 출사표
02) 사辭/예 어부사
03) 부賦/예 적벽부
04) 문文/예 권학문
05) 명銘/예 신심명
06) 율시律詩
07) 절구絶句
08) 추구推句
09) 주련柱聯
10) 편액扁額
모두 문체의 형식을 가리킨다
가령 한시가 정형을 따라
넉 자, 다섯 자, 일곱 자씩을
매우 강하게 밀어붙임으로써
한시의 문예 세계를 이끌어왔다면
우리 시조의 기본 형식이 이에 해당한다
첫째, 보통 3장, 6구, 45자 내외다
둘째, 3/4 혹은 4/4 음수율과
4음보 음보율을 따른다
셋째 종장의 첫 어절은
반드시 3음절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늘 강하게 주창하고 있다
한시를 우리말로 옮길 때도
정형의 틀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시조가 졍형을 갖고 있다면
칠언절구 율시를 번역할 때는
사언절 곧 4-4-4-4 법칙이 필요하고
추구를 비롯하여 오언절구 등과
넉 자로 된 명銘을 옮길 때는
사사오송 곧 4-4-5 법칙이 좋다고
나는 이 원칙을 당당히 고수한다
용수보살약찬게
의상조사법성게
순치황제출가시 등 나의 번역은
모두 4-4-4-4, 사언절 역이다
천자문, 사자소학을 비롯하여
신심명은 사사오송 역이다
따라서 이들 번역문 띄어쓰기는
국어문법에 따르지 않는다
마음에 이 점을 미리 깔고
나의 신심명을 가까이한다면
나름대로 읽는 맛이 있을 것이다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 선생의
시조 한 수 올린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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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눈 부신 까닭은?/사진 꾸밈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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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2019
종로 대각사 봉환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