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신명은 하늘의 신(天神)과 땅의 신(地神)의 한 쌍이다. 이들은 옥황천존과 함께 인간의 문제를 풀어 준다고 하는 무의 신령이다.
다른 해석
천지신명은 하늘과 땅에 내린 신의 증명이다. 다시 말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신과 창조의 증거물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천지란 뜻이다.
■ 명복(冥福)
명복은 불교에서 사후의 세계로 일컫는 명부(冥府)에서 지옥에 떨어지는 심판을 받지 말고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말
유교
1) <기도>
{논어}를 보면 공자가 병이 들자 자로가 기도를 드릴 것을 청했다. 공자가 “그런 경우가 있는가?”라고 묻자, 자로는 “천지신명께 기도드린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공자는 “그런 기도라면 나의 기도는 이미 오래 되었다!”라고 말하였다.
공자의 기도는 “천지신명에 부끄럽지 않고”,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일일 따름이다. “스스로 자기 내면의 참된 목소리(양심)를 속이지 않는다” 맥락에 있다. “예에 맞게 행하며” “천명(천지신명의 뜻)을 따르는 것”이 기도이다.
(2) <천명(天命)>
공자는 천명을 두려워했고(畏天命) 천명을 따랐다(順天命). 그렇다면 무엇이 천명인가? 하늘에 대한 공자의 발언을 통해, “하늘이 공자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인 “천명”의 내용을 엿볼 수 있다. 공자가 “하늘이 내게 덕을 주셨다” “하늘은 내 몸 안의 문물제도를 없애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을 때의 ‘덕’과 ‘문물제도’는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공자가 노력하여 얻은 성과물임을 상기하면, 공자의 천명은 “스스로 찾은 자신의 사명(使命)”이었던 것이다.
(3) <귀신>
공자는 귀신을 공경하라고 말하였지만 그가 생각한 귀신은 항상 이성의 범위 내에 있다.
(4) <내세의 문제와 사람답게 사는 길>
요컨대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내세)을 알랴”라는 공자의 말은, 우리가 내세를 운운하기에는 현세에서 우리가 지고 있는 책임과 과실이 너무 큰 만큼, 인간은 그 과실을 줄이고 책임을 다하려고 우선 노력하는 데에 여념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본성(性)을 따르는 삶이다.
(5) <예를 따르는 일과 종교적인 성찰>
공자에 따르면 기도는 “천지신명에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하고”, “자신의 도리를 다하려는” 다짐이다. “예에 맞게 행하는 노력” 속에 기도가 들어있다. 오늘 할 일을 찾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자세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예”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생각하는 “예”의 실천에는 더 나은 세상을 이룩하려는 간절한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 예뿐만이 아니다. 하루하루의 생각과 말과 행동거지 그 모든 것들에 이와 같은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 공자의 모든 사상은 바로 이러한 염원의 표출이었다. 공자는 자신의 염원에 대하여 늘 하늘 내지 천지신명과 대화하였다. 그런데 천지신명과의 대화란 결국은 자신의 진실한 내면세계와의 대화인 만큼 공자의 생각 그 자체가 곧 하나의 간절한 기도였던 셈이다.
(6) <신독>
또 공자의 종교적인 성찰을 반영하고 있는 개념이 중용의 “신독”이다. 자신이 행한 일 가운데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나쁜지는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내 사생활(남이 안 보는)에 대해 신은 관대히 봐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신은 봐주지 않을 것임을 이미 자신이 잘 알기에 이는 곧 자신을 기만하는 짓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