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향(影響)받은 외국작가(外國作家)-김사량
분야: 어문 > 수필 > 중수필/평론
저작자: 김사량
원문 제공: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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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흐스키]
자기가 좋아하던 작가와 자기 글에 영향을 받은 것과는 좀 거리가 있는 말이겠으나 내가 문학을 친히하게 되며 부터 비교적 자기 감성이나 내면생활에 동감을 가지고 가까이 하기는 도스토엡흐스키와 志賀直哉[지하직재]의 글이다.
지금 내 가난한 서가에 있어 유일한 재산으로 자처하는 것이 1921년 판의 동경 도스토엡흐스키─전집간행회 발행인 전집 열다섯 권이지만 이것을 얻기 전에도 20전후 때 동대문 외에 살든 먼촌 누님의 집엘 갔다가 우연히 옹의 전기를 읽게 되고 마음에 움직임을 받아 그의 작품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그때 그 누님은 7남매 어린아이들을 거느린 몸으로 집을 팔아 조고만 가게를 내고 자기가 나가 앉아 보았다. 나는 그의 일을 돌보아 주는 겸 밥을 먹으려 인왕산 밑에서 동대문밖까지 터덜터덜 걸어가고 했다. 그 집 안방 웃장 밑에 그런 것을 읽을 사람은 없는데 겉장 떠러진 책 한 권이 먼지를 쓰고 있었다. 그것을 나는 어깨에 매달리는 어린아이들 틈에서 한 장 한 장 넘기어 감에 따라 어쩐지 자기 얼골 모습과 비젓한 점이 있는 듯한 옹의 찌푸린 상과 생애를 자기의 운명과 공통한 무엇이 있기나 한 것처럼 느끼며 감격했다.
그 병적으로 넓은 이마와 모래를 씹는 듯한 옴팍눈과 입술, 그리고 자기 앞에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도록 비퉁그러진 성미와는 딴판으로 도스토엡흐스키는 기실 「白痴[백치]」의 주인공 무이쉬킨의 성격과 같아서 어린아이처럼 선량하고 천진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어떠한 곤란한 경우에서든 자기의 기쁨을 만들 수 있어 ‘언제든 살어 나갈 준비’를 하는 거기가 또 좋았다.
그가 시베리아로 정배(定配)를 가며 자기 형에게 한 편지를 보아도 그 비참한 내용보다는 그런 비참한 경우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맑은 심혼을 가저 유로(流露)하는 진정이 읽는 사람으로 눈물을 자아냈다. 그리고 또 진정하기 때문으로 자기대로의 생의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는 제게 생기를 주었고, 그리고 흔히 생활상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생기는 그런 인상의 강렬함은 제게 용기를 주어 얼마큼 마음을 안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내가는 페테르부르그 자미있게 보았읍니다. 집집에는 명절날 같이 등불이 켜있었습니다. 저는 그 한집 한집에 하직하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발에는 십봉도(十封度)의 철사슬을 차고 영하 40도를 내려가는 추위에 울없는 썰매를 타고 갔다.
‘─우랄령을 넘기가 큰 욕이였습니다. 눈보라는 미처 휘모라치고 말도 썰매도 그속에 파무치였습니다. 한밤중이였으나 썰매에서 나려 그걸 끄러내기까지 기대리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우리들의 주위에는 눈과 폭풍과 구주의 국경이 있었읍니다. 우리들의 앞에는 시베리아와 미래의 신비가 있고 우리들의 뒤에는 과거 전체가 있었습니다.
‘저는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그 당면(當面)을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신비를 앞에 두고 우는 울음인듯 싶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많은 동정과 연민에 싸여 오히려 행복했읍니다’하였다. 그리고 역촌에 다어 더운 차를 얻어 마시며 ‘8개월의 금고(禁錮)와 60베르스트를 달린 까닭에 대단한 구미가 났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금까지도 유쾌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무척 기꺼웁니다’ 그는 타고난 낙천주의자인듯 싶다. 그처럼 현실을 밑바닥으로 밑바닥으로 파가면서도 허무에 이르지 않은 것도 그 낙천주의에 위함이 아니든가. 나는 그 낙천주의가 또 좋았다. 당시 나는 생활과 감정의 막다른 길에 들어선듯이 막막한 때여서 도스토엡흐스키를 알게 된 것으로 하나의 광명을 얻은 듯이 감동해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해서는 무슨 항거하지 못할 힘에 이끌려 외부생활과는 별다른 내면적 심연에서 움즉이는듯 싶은, 그러면서 무시로 자기당착한 행동을 하는 인물들에 휘둘리고 말었다. 마침 심한 신경쇠약으로 무엇 하나를 똑똑히 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둘씩 셋씩 보여지고 어떤 생각 하나를 아니할려고 하면 도리여 강박적으로 그 생각이 머릿속에 달러붙고 하는 반대성에 고생하든 때라 작중인물의 그 자가당착한 행동이 곧 자기 자신에게 옮기여질 것같어 스스로 무서워졌다.
「죄와 벌」을 보아도 라스콜리니콥흐의 성격은 벌서 머리로 비범인을 꾸미기는 하되 그것은 행동화 하지 못하는 공상가이다. 자기 손으로 고리대금하는 노파를 살해하기에는 너무나 선약한 청년이다. 그것을 자신도 잘알고 또 그런 자신에게 번민하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것이 번민으로만 끝이지 않고만 것은 실로 이 자가당착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라스콜리니콥흐는 일을 저즐러 놓고는 비로소 자기가 한 일에 뜻밖인 것같이 아연하든 것이다. 나는 자기도 어떠하다 라스콜리니콥흐처럼 의외의 짓을 저즐를 것같어 겁이 나고 했다.
상점같은데 들어가 물건 앞에 서게 될 때는 손을 뒤로 돌려 단단히 뒷짐을 젔다.
어떻게 의지에 반해 손이 나가 앞에 놓인 물건을 집지 않을가 겁이 났다. 도끼나 그런 것을 보고는 끔직한 연상을 하고 그것이 곧 행동화 될것 같어 무서워지고 했다.
그 후 차차 신경쇠약이 나어지며 그런 강박관념도 사라지고 그리고 소설도 이 사람 저 사람의 작품을 난독하는 사이 도스토엡흐스키의 작품에서 받은 인상도 멀어 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생활환경이나 심리변동이 생길 때마다 도스토엡흐스키의 작품을 친히 했다.
[志賀直哉(지하직재)]
글을 내가 문학수업을 해보겠다고 생각하며 부터 읽기 시작했다. 도스토엡흐스키의 세계가 독자로서 감수할 때와는 또 달러 하나의 자기 세계를 꾸미려 할때는 그의 엄청난 재능 앞에 문학하려는 염두를 내지 못했다. 말하면 생활환경이나 취급하는 현실이 쉬웁게 자기화할 수 있을 것같어 志賀直哉[지하직재]의 글을 본받으려 했든 것이나 결코 그도 그렇게 쉬웁게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니였다.
그의 「焚火[분화]」나 「和解[화해]」같은 작품을 읽어보아도 거기는 극히 평범한 일상생활이 과장없이 그리여 있는 것이나 그 표현에 있어서는 끔직이 선택이 엄숙하고 조고만치의 타협성이 없이 현실을 대하는 결백한 태도는 능히 범재로서 가까이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시야가 좁고 바산바산한 고담(枯淡)한 세계에도 물리고 말어 변변한 습작 하나 얻지 못했다.
자기는 이 두 작가에게 얼마나한 영향을 받었는지 모르겠으나 할수만 있으면 志賀直哉[지하직재]의 그 대상의 핵심을 파고드는 엄숙한 태도를, 그리고 도스토엡흐스키에게서는 작중인물에 자기를 몰입식혀 일상성의 한계를 넘어 가능의 세계로 끝까지 추박(追迫)해 나가 다양적으로 행동화 시키는 태도를 배우고 싶으나 그러나 자기에게 여기 감당할 얼마나한 재능과 소질이 있는지 전혀 자신을 못갖겠다.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