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는 것이 잘 되는 것일까요?
열왕기하 14.17-29
시 작 기 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예배하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하소서. 주님을 멀리하려는 내 육신의 ‘나’의 죽음을 크게 감사하게 하소서. 믿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부활의 생명을 받은 것을 더 풍성하게 하사 열매 맺기까지 인도 하소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끝까지 기다리며 기도하고 주님 발 앞에 계속 머무르게 하소서. 내 삶이 주님께 드려진 산 제사가 되게 하소서.
본 문 요 약
남유다의 요아스 왕의 아들 아마샤는 반란이 일어나서 라기스로 피신하였으나 사람들이 거기에서 그를 죽였고 그의 아들 아사랴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엘랏을 재건하여 유다에 귀속시켰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여호아스 왕의 아들 여로보암(2세)가 왕이 되어 40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여로보암(1세)의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경을 하맛어귀로부터 아라바 바다(사해 북쪽)까지 회복하였습니다. 이것은 요나 예언자에게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이 고통이 심하고 돕는 자가 없는 것을 보셨고,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하늘 아래서 지워 없애겠다고 하시지 않았기에 여로보암을 시켜서 구원하여주신 것입니다.
본 문 의 뜻
유다의 아먀샤 왕이 이스라엘의 여호아스 왕에게 싸움을 걸어 패배한 이후로 여호아스왕과 그 아들 여로보암 2세의 북이스라엘이 남유다의 실제적 통치자처럼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여호보암 2세에 이르러서는 솔로몬의 시대의 영토를 거의 다 회복하였습니다.(왕상8.65 하맛어귀~이집트 접경). 거기다가 유다의 아마샤는 저 멀리 남쪽의 홍해입구 엘랏을 장악하여 아라비아와 더 넓은 세상과의 무역로의 초입이었던 곳을 복속시킴으로써 과거의 영화를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앗시리아가 강대해 지면서 시리아가 상대적으로 힘을 못쓰는 사이 영토가 회복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쪽과 북쪽에서 솔로몬시대의 영화를 회복한 것은 남북 왕국 이스라엘이 주님 보시기에 좋아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25-27절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늘 아래에서 지워져 없어져 버리는 것을 보시고 요나 예언자를 통해서 회복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즉 오히려 심판의 메시지이지만 주님의 긍휼로 유보되어 잠시 회복된 것 뿐입니다. 26절‘매인 사람이나 자유로운 사람’의 표현은, 여로보암 1세(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 혼합신앙을 만들어 이스라엘을 죄악으로 인도한 왕)의 자손들의 멸망을 도울 자가 하나도 없다는 표현을 위해서 쓴 구절입니다. 실제로 그 가문이 멸망당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왕위를 이을자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주님의 약속과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혼합신앙의 여로보암왕의 가문이 무너지는 것을 도울 종이나 신하가 없을 것이다라는 의미에서 쓴 구절입니다.
남북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여로보암1세의 상태와 동일하여서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심판받아야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이 집행유예가 되고 오히려 예언자를 통해서 영토를 회복하시는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남유다에서는 비교적 주님 앞에 선한 일을 하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고 있어서 다윗과 같은 만큼의 신앙을 보이지 않음으로 참 신앙을 이어오지 못하였고, 북이스라엘에서는 혼합신앙과 우상숭배가 쭉 이어왔으나 예후의 바알척결로 신앙의 회복의 길로 들어섰지만 여호보암1세의 우상숭배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정도 힘을 떨치는 것은 예후 가문의 4대까지 지켜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체 이스라엘의 외적인 영토와 영화의 회복이 그들의 주님과의 온전한 신앙의 회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심판 받아야할 영적 상태이지만 주님의 자비로 외부적인 회복이 이루어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신앙의 회복으로 돌이켜야만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상숭배가 완전히 없어졌는가? 다윗왕의 신앙과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과 교회와 나라의 영적 상태가 현재 어떠한지 반드시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 축복과 보호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영적으로 좋은 상태가 아님도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우상을 다 제거하고 예수님처럼 한 마음으로 주님을 경외하고 복종하고 있는가? 입니다. 한 마디로 내 마음이 예수님과 같은가?입니다.
다윗은 평생 주님만을 예배하는 정결한 마음으로 살아오다가 그가 왕이 되어서 모든 백성들을 이끌어 주님의 임재에서 예배하도록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 분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 사랑과 복종을 보이시며 영원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예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마음과 예배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주셨습니다.
나 의 묵 상
(비참함) 주님을 떠나 우상숭배자로 살아왔지만 때로는 평안하고 때로는 보호를 받고 잘 지냈습니다. 그것이 심판을 유보하시고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자비인 줄은 모르고 그렇게 별 탈없이 지나가니 그래도 되는 것인줄 알았습니다. 내 신앙의 목표를 잘못 설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영적인 상태를 잘 몰랐습니다. 나는 우상을 버리지 못했고 예수님처럼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내 신앙의 상태요, 목표입니다. 거기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고 외부적인 축복과 보호와 오래참으시는 자비를 오해하였습니다.
(구원)그러나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주님이 보이신 정결한 한 마음, 그리고 온 몸과 마음을 바치는 예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나를 함께 하게 하시어서 그 마음과 예배를 나에게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나는 주님과 함께 달려 죽고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면서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나는 주님과 하나되어 주님의 마음, 주님의 예배가 나의 것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받습니다.
(아버지품)나는 예수님 안에 있어 정결한 마음과 참 예배로 아버지 품을 달려갑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기 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받게 하소서. 거기서 주님의 아버지를 향한 정결한 한 마음을 받고, 주님이 아버지를 향한 영원한 예배를 받게 하소서. 내 눈을 열어 주시고 나에게 믿음을 주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이 외부적 부흥과 확장 그리고 보호하심과 축복에 헷갈리지 말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게 하소서. 십자가의 주님께로 나아가 주님의 마음과 예배를 받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예배를 온전히 전달하게 하소서.
마지막때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러나 전쟁과 기근과 염병과 기후변화 속에서도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거두지 마소서.
생 명 일 기 (9월 27일 금)
오랜만에 대체 휴일을 맞아서 하루 종일 말씀 묵상하려고 시도하였고 밤에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원래는 묵상을 빨리 끝내고 하루 종일 다른 방식으로 주님을 찾고 구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을 찾고 구하는 일을 내 육신과 악마와 그를 따르는 영들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내 육신에 주님을 멀리하고자하는 마음의 경향성이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것을 새삼 보게 된 하루였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런 육신의 ‘나’와 함께 죽지 않으셨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이렇게 겨우 오늘의 본문을 묵상한 것도 은혜입니다. 유다의 열왕들을 보면서 그들이 다윗왕의 혈통을 잇는 자로서 온전히 성공한 사람이 없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나는 오늘 하루도 이렇게 힘들게 주님 앞에 섰는 데, 자기와 온 나라를 평생 주님 앞에 온전히 세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희미하게 보는 그들에게는 큰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필요하고 그 믿음으로 살아갈 생명이 필요함을 느끼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