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피아노 학원은 제자에게 물려 주고
나는 이삿짐 트럭을 불러 미리 짐을 가득 싣고 수유3동 파출소 앞에 차를 세워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마지막 밤을 학원에서 자고 다음날 1988년 1월 9일 새벽 5시 30분에 밖으로 나오자
이미 운전사가 와 있습니다.
동네 부인들 3명이 나와서 나와의 작별을 슬퍼하는데, 그동안 그들은 혼자사는 나에게
친절을 다 해 주었고 자녀들을 모두 피아노를 배우도록 해 주었습니다.
차가 떠나자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차가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을 흔듭니다.
차는 한남동을 지나 한남대교를 지나는데, 너무 이른 새벽이라서 그런지 강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한강아 잘 있거라 내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마치 내가 무슨 예언자나 되듯이 그런 생각을 하다니 !
차가 태백에 이르자 눈발이날리기 시작하고 통리에 이르자 아예 폭설로 변합니다.
운전사가 차를 세우고 뒷바퀴에 체인을 감습니다.
그리고 99비의 통리재를 넘는데
운전사가 이런 눈오는 비탈길이 처음인듯 겁을내며 천천히 내려 갑니다.
간신히 밑에까지 내려오자
"휴우"
하고 땅이 꺼지듯 한숨을 토해 냅니다.
우리는 꼬불고불한 산길을 달려 간신히 풍곡에 이르렀는데
발목까지 눈에 푹푹 빠지자
"더는 못 갑니다"
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제부터는 비포장 산길로 수십리를 헤매다가 갑작이 넓어진 덕풍계곡의 하천 바닥에 짐을 내려놓고
1km떨어진 우리집까지 지게로 져 날라야 하는 어려움이 남아 있는데 이를 어쩌란 말인가?
내가 오도가도 못하고 쩔쩔 맵니다.
`하느님 도와주소서`
(계속)
첫댓글 태백 강원도 가셨나 봅니다
도시가 사람 살기는 낫다하여 시골에서는
도시로 돌아 오는데 꺼꾸로 시골로 내려
가셨나 봅니다.
어쨌던 자신이 좋으면 되겠지요
글 잘 보고 갑니다
차마두님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하던 수유리의 피아노 학원에 남쪽 지방의 젊은이들이
너무 예의없이 굴어 그만 서울 포기했답니다.
봉화에서 한달 살고 부산에 왔습니다
농촌에 적응하며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우여곡절 많은 애환이
그들에게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눈을뜨면 일터로 나가서 가꾸어 놓은
농작물 관리하시랴
(때에맞는 손질을 해야하기에)
집안일은 엄두도 못내고 농번기의 하루하루가 어찌그리도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는지,,,
1차 산업인 농산물이
우리에게 공급 되기까지의 과정이 농부의 일손과 정성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형광등님 의 삶이
많이 궁굼하기도 합니다
잘적응하시고
행복하셨으면 하는
저의 바램입니다
다음편을 기대하며~~
어서오세요 바다같은사랑님 감사합니다.
봉화에서 부산으로요? 무얼 하시는데요?
저는 농사를 지으려 합니다
@형광등등 저는 본래 부산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농촌체험 해보려고
잠시 다녀왔습니다 ㅎ
1km 를 이고 지고 나르는일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지금 까지도 건강하심이
그때 체력단련이 보탬이된듯합니다
감사 합니다.
어서오세요 워킹맨님 감사합니다.
6.25 후 혼자되어 살아오면서 많은 죄절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만 ,제가 워낙 많이 부족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