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9일(주)
* 시작 기도
(갈 5:3-4)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주님...
주의 말씀처럼 율법과 할례는 구약의 전형처럼 유대인들이 지켜 행하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자들도 지켜 행하려 할 때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일갈합니다.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율법 전체를 지켜 행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며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율법 자체에 흠이 있는 것이나 죄가 아니라 오히려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합니다.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다만 그 선한 것 곧 율법을 통하여 죄가 드러나게 한 것입니다.
(롬 7: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이 종 역시 계명이 없었다면 죄를 죄로 알지 않고 마음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이라는 계명을 통하여 우리가 죄에 거하지 않고 더욱 주님의 품으로 나아갈 담대함을 얻게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옵소서.
계명을 통하여 나의 죄인 됨을 더 깊이 확인하며 주님 안에서 신실한 자로 서기 원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더하여 주소서.
내 입술에 예수의 향기가 진하게 묻은 복음이 드러나게 하시고 복음 외에는 어떤 것이라도 전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느 13:15-22
제목 : 성문을 지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너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 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 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나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 나의 묵상
느헤미야는 개혁조치의 일환으로 성전 정화와 함께 십일조 제도를 회복시킨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안식일 준수에 대한 조치를 확립한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돌아간 사이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타락은 그들의 삶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그들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물론 안식일의 규례도 범하여 노동과 매매를 하였다.
이런 실상을 알게 된 느헤미야는 우선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강력하게 책망하였다.
그리고 안식일 준수를 위한 조치를 취한다.
즉 안식일이 이르기 전에 예루살렘 성문에 그림자만 드리워져도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끝나기까지 성문 출입을 금지시켰다.
이를 위해서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을 성문에 세웠다.
한편 느헤미야는 성전 정화와 십일조 제도를 다시 회복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자신이 안식을 위하여 한 일을 기억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다.
십계명 중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질 무렵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이다.
그런데 이 안식일이 주일의 개념으로 바뀐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안식 후 첫날(일요일)에 부활하심으로 그 부활의 날을 주일 곧 안식일로 정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안식일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시기 전이었으므로 구약적 안식일 개념으로 통용되던 때이다.
느헤미야는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엄히 명하였다.
그것은 두로 곧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이방나라 상인들이 물건을 가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와 자유롭게 물건을 팔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상인들이 가게 문을 모두 닫았기 때문에 이방 상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어쩌면 황금 시장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방 상인들이 안식일에 물건을 팔지라도 유대인들이 그 물건을 사지 않으면 될 터이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 그렇게 되던가?
나는 물건을 팔지 않을지라도 다른 이들이 물건을 파는 것을 보면 그것을 사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이방 상인들이 파는 물건을 구입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유다의 귀인들 곧 지도자들이 그 일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런 유다의 귀인들을 향하여 왜 안식일을 범하느냐고 꾸짖었다.
그가 귀인들을 향하여 주장하는 것은 곧 우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재앙을 우리와 우리 성읍에 내리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런 악을 계속 행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심하게 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안식일을 잘 지켜야 한다면서 그에 대한 조치를 강구하였다.
안식일 전에 어둠이 드리울 때 성문을 닫고 안식일에는 그 성문을 절대 열지 말 것이다.
그리고 성 문지기들을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 중 제4계명을 확인해 보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모두 ‘하라, 하지마라’는 계명이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들마다 나름대로의 계명이 있다.
그 계명들 역시 모두 ‘하라, 하지마라’의 계명이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가 이런 ‘하라, 하지마라’의 계명에 목숨을 건다면 세상의 여타 종교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아무리 기독교는 종교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라 주장한다 할지라도 이런 계명을 지키는 것에 목숨을 건다면, 그렇게 해서 내가 완벽하게 잘 지켜서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면 기독교도 세상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종교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그 계명을 지키지 말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절대 율법인 계명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종교가 아니다.
이런 것은 바로 유대교이다.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서 구원에 이르려 하는 유대교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만홀히 여기지는 않는다.
우리가 할 수만 있으면 그 계명을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 하지마라’는 계명을 주신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것을 잘 지키라는 의미가 아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것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또 쓴다 할지라도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의 눈앞에 에덴동산 한 가운데 선악과 나무를 심어놓으셨다.
그리고 이 과일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 선악과가 얼마나 탐스러운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다(창 3:6).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말씀, 곧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법이요 계명이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너무나 먹음직스럽게 만들어 놓으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네 눈으로 그것을 보고 어디 안 먹고 배길 수 있는지 한 번 보자는 것이다.
이 말은 네가 그것을 안 먹고, 내 계명을 잘 지켜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너의 약함으로 인해서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를 구원하는 것은 너의 계명 지킴이 아니라 다른 구원의 방법을 내가 마련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창 3:15절과 21절에 나오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 메시야로서 행하시는 구속사건으로 인함이다.
그렇게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보내셨다.
(갈 4:4-6)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나는 구약의 사람들처럼 율법 곧 계명을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하려고 열심을 내면 낼수록 내 안에서는 그에 대한 반발심이 솟구쳤다.
무엇보다 계명을 어길 때마다 나를 사로잡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이는 마치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내가 구원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에게 복음을 알게 하셨고 그 복음은 나를 죄에서 자유케 하는 놀라운 비밀이 되었다.
나는 죄인이다.
그것도 죄인 중에 괴수임이 분명하다.
이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죄가 되어 죽으셨음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죄를 먹고 마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주님 앞에서 믿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나의 불완전한 행위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덮으시는 주님의 은혜의 옷자락이다.
창세전에 나를 택하시고 나를 예정하시고 또한 나를 부르셨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야곱은 택하셔서 그를 사랑하셨고, 에서는 미워하셔서 그를 버리셨다(롬 9:10-13).
이렇게 하신 하나님이 불의하실 수 없다(롬 9:14).
심지어 애굽의 바로조차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 그를 세워 사용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어떤 이는 완악하게 하기도 하시기 때문이다(잠 16:4).
따라서 오늘 이 시간, 나는 죽기에 합당한 자임에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선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악한 것을 생각하고 더러운 죄를 지었지만 그것이 나를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그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우리 주님의 은혜 때문이다.
그런 주님의 은혜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행위로는 아무리 발버둥 치며 애를 쓴다할지라도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선한 행위를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행한 선이 내 안에서 의로 드러나려 할 때 그것이 자기주장 의지인 죄임을 알기에 이 하루도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풀어 주소서.
룻이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으로 여종을 덮어달라고 했던 것처럼 이 종 역시 주님의 옷자락으로 덮임을 받기 원합니다.
이미 주님께서 이 종을 덮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시간에도 주님의 덮으심의 은혜를 구하오니 나를 덮으소서.
내가 계명을 지켜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악한 의를 행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 앞에서 더 납작 엎드려 낮아지게 하시고 내 손으로 잡았던 것들은 내려놓게 하소서.
나는 답이 없습니다.
오직 나의 답은 주님께만 있사오니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