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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30일(월)
* 시작 기도
(갈 6:15, 17)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주님...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님을 천명하셨습니다.
그 무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의 흔적 곧 십자가와 생명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생명으로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봅니다.
여기에서 나의 대답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겸손을 가장한 위선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그런 이 죄인은 주의 공의로 심판받아 죽기에만 합당한 자입니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부어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고자 합니다.
여기에도 오직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할례나 무할례와 같은 율법 곧 계명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삶에 자족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느 13:23-31
제목 :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23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5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6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27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30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 나의 묵상
본문은 주전 432년 이후에 있었던 느헤미야의 일련의 개혁 조치를 기록하고 있는 13:4-31절 가운데 그 마지막 내용으로써 이스라엘의 이방인들과의 통혼 문제를 처리하는 느헤미야의 개혁과 결론적 기도를 이야기 하고 있다.
23, 24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스돗과 암몬 그리고 모압 여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는가 하면, 그 사이에서 난 자녀들의 절반 이상이 이방인의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은 하지 못하는 등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방인과의 통혼 실태에 대하여 적시하고 있다.
25-27절은 백성들이 이방인과 통혼한 데 대하여 느헤미야가 통혼한 자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가운데 두어 사람을 때리고 머리털을 뽑는 등의 형벌을 가한다.
그런 후에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인과 통혼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시키면서 옛적에 솔로몬이 이방 여인을 취하여 범죄한 일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이방 여인을 취한 그들의 죄를 묵과할 수 없다고 선언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다음 28절은 이스라엘의 원수인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과 결혼한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를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축출하여 이방인과의 통혼에 대한 경계로 삼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29-31절은 자신의 일련의 개혁 조치와 관련해서 느헤미야의 결론적 기도를 기록한다.
이방인들과의 통혼 문제는 에스라가 귀환하였을 때에도 있었다.
특히 그때에는 이방인과의 통혼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그래서 에스라는 기가 막혀 하며 상심한 채로 주저앉아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백성들이 에스라의 중보하며 회개하는 기도를 듣고 스스로 이방인 아내와 그 자식들을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내어 보내기로 결단하고 이를 시행함으로써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스 9-10장).
그런데 그런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가 느헤미야 때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즉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잠시 돌아갔다가 온 사이, 영적 침체에 빠진 이스라엘 자손들은 신앙적으로 해이해지는 것은 물론 이방 여인들과 통혼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특히 이방인과의 통혼은 거룩하게 보존해야 할 선민의 순수한 혈통을 더럽히는 것은 물론 이방의 우상 종교의 유입으로 인하여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아주 심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딸과 결혼한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을 쫓아내고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한 몇몇 사람에게 형벌을 가해 본보기로 삼는가 하면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인과는 절대 통혼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게 한 것이다.
26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범죄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솔로몬을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느헤미야가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솔로몬을 예로 들고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평안 할 때 방심하면 신앙의 거목이라고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솔로몬이 누구인가?
솔로몬은 서열상으로만 놓고 보면 도저히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는 결국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았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가 다윗의 왕권을 이어받는 후계자가 된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오직 하나 하나님의 은혜였다.
솔로몬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래서 성전을 지어서 봉헌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헌신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권을 더욱 공고히 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랬던 그의 나라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는가?
계속해서 나라가 공고해지기는커녕 르호보암 시대에는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비극과 함께 온 나라가 이방 우상 숭배로 물들어갔다.
이것은 이미 솔로몬 시대부터 나라가 망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을 의미한다.
물론 솔로몬 당대에 나라가 쪼개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이미 금이 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해지자 그만 방심하고 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이다.
여인들로 말미암아 그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범해서는 안 되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했던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다름 아니라 비록 신앙의 거목이며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도 영적으로 방심하는 순간 너무나 쉽게, 그리고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이 무너지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느헤미야 당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자들인가?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것이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사실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그들은 돌아온 후에 비록 솔로몬 성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성전이지만, 일명 스룹바벨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드리기도 하고 또한 성벽도 건축하였다.
게다가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느헤미야를 필두로 하여 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성전 제사 제도를 정비하는 등 신앙의 모습도 아름답게 정비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괴롭히는 대적들을 무기력하게 해 주시기도 하였다.
이제 그들의 삶은 완전한 평안의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평안의 상태가 결코 오래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평안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면서도 그들은 순간순간 영적인 긴장감을 놓쳐버리고 이방인들과 통혼이나 안식일을 범하는 등 방심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느헤미야가 분노를 발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들의 신앙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신앙이 무너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로 견고하게 쌓아주신 삶의 기반마저 무너질 위기에 처하고 만 것이다.
이는 평안할 때 방심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잘 보여준다.
나는 현재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평안을 누리고 있다.
목사로서의 연륜도 그렇고 비록 베트남 이민 교회이지만 교회나 목회적으로도 별 문제가 없다.
이런 상태로 쭉 가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평안을 깨트리는 영적 갈등이 가시처럼 찌르며 들어온다.
이러한 현상들을 모르면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내적 갈등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것을 이겨낼 것이다.
나의 생각과 그 뒤에 숨어있는 동기까지 아시는 주님께서 나를 심판하시고 주님의 의를 회복하여 다시금 평강 가운데 거하도록 하실 줄 믿는다.
나는 하루라도 주의 심판이 없이는 온전한 길을 걸어갈 수 없다.
나의 생각과 정욕 그리고 탐심이 순간순간 나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그것에 끌려가서 종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의 품에 안겨 그 안에서 평강을 누릴 것이다.
완전하신 나의 주님의 온전한 평강을 오늘도 바라보며 주님께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사람은 얼마나 완악한지, 조금만 틈이 있으면 내 뜻대로 살고 내 생각대로 행하며 정욕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곤 하나이다.
그것의 중심에 지금 내가 있나이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나도 나를 제어하지 못하고 어찌하지 못하오니 주의 강권적인 힘과 능력으로 나를 붙드사 온전히 주님께로 나아가 주의 품에 거하게 하소서.
생각이 치우치지 않으며, 판단이 기울지 않고 오직 주의 뜻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자 되게 하소서.
나의 몸이 수욕을 당하오나 영은 한없이 주를 앙망하게 하소서.
이처럼 나는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연약한 자입니다.
하여 언제라도 지옥에 던져 넣어도 할 말이 없는 자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그저 주님의 은혜를 바랄 뿐입니다.
주의 나라와 그 영광을 오늘도 바라보며 주님을 소망하는 주의 종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솔로몬에서 보듯 신앙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네요.
나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자,
전능하신 아버지가 붙드시기에 오늘도 은혜로 살수 있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