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느 새 9월이 지나갑니다.
빠른 세월 속에 사명을 감당하며 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0월도 종종걸음을 치겠지만,
제 마음은 주님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나날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을 향한 치열한 삶을 보여주었던 느헤미야서를 마무리합니다.
오늘도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를 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23.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5.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6.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27.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30.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본문 주해)
느헤미야가 자신이 부재한 사이에 발생한 문제들을 처리한다.
먼저 성전에 방을 차지하고 있던 암몬 사람 도비야를 축출하고, 안식일에 장사하는 일을 금지시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문을 닫고 보초를 세운다. 그리고 오늘 유대인들의 잡혼 문제에 대해 단호한 해결을 한다.
23~27절 : 유대인 자녀들이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느헤미야가 발견한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엄마가 다 이방인 여자였던 것이다.
약 25년 전에 에스라 때에 금지했던(에스라9~10장) 이방인과의 통혼이 다시금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느헤미야가 이방인과 통혼한 자들을 나무라고,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야단을 치고, 그들 가운데 몇몇을 때리기도 하였으며, 머리털을 뽑기까지 하였다.
느헤미야는 마치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폭력을 행사한다. 이런 과격한 행위는 느헤미야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두고서 맹세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방 여인들을 마구 취함으로 하나님 앞에 큰 악을 저지른 솔로몬의 범죄, 그로 인해 나라가 멸망하게 된 것을 예로 든다.
28~29절 :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아들인 요야다의 한 아들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다. 제사장이 이방인의 사위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를 쫓아냄으로 제사장의 일을 못하게 한다.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으니 주께서 기억하여 달라고 한다.
“나의 하느님이여, 저들을 잊지 마십시오. 사제직을 더럽힌 것들입니다. 사제와 레위인의 약속을 저버린 것들입니다.”(29절, 공동번역)
그러면서 자신이 행한 일도 기억하셔서 복을 달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자신의 선행에 따라 복을 달라고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서 기억하여 달라고 하는 간청은 하나님께서 선악 간에 심판을 하시는 분이심을 백성들에게 알리며 동시에 이런 말씀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30~31절 : “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묻은 이방 사람의 부정을 모두 씻게 한 뒤에, 임무를 맡겨 저마다 맡은 일을 하게 하였다.
또 사람들에게 때를 정하여 주어서, 제단에서 쓸 장작과 처음 거둔 소산을 바치게 하였다.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십시오."”(새번역)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잡혼하지 못하도록 느헤미야가 단호하게 행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방인과 통혼하지 말 것은 이미 모세의 율법서에 명시되었었다.
그런데도 유대 백성들은 이를 계속 어겼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왕인 솔로몬이다.
역사 속에서 이 잡혼 문제는 계속 대두된다. 그들이 죄를 저지르고, 회개하고, 또 잡혼하고....를 되풀이 하기 때문이다.
약 25년 전에 에스라 때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대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두려워하며 떨었던 적이 있었다.(스10:9~12)
하지만 또다시 느헤미야가 광분해야 할 만큼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이방인과의 잡혼은 유대 백성들의 정체성을 흐리게 만든다.
과연 그러한 것이, 엄마가 이방인인 아이들이 유대말은 모르고, 엄마의 말(이방인의 말, 아스돗 방언 등 각 족속의 말)을 배워 따라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를 다녀도 하늘의 언어를 모르니, 땅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자들이 바로 그들-선민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나는 하늘의 언어를 도통 알아듣지 못한 자였다.
처음 복음을 접했을 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야?....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라니......이게 정상이겠어?’ 하고 반발했다. 그때는 나름 한 열심을 했으니,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성경 말씀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들을 알아듣지 못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말씀들이 다 성경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요3:30~31)
나는 ‘위’, ‘만물 위’, ‘땅에 속한 것’,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 것’ 등을 알아듣지 못했다.
2015년, 마다가스카르에서 처음 복음 생명 캠프에 참여했을 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씀을 하시는 서목사님을 이상하게 보았고, ‘참 어려운 말들을 하시는구나....내가 못 알아듣는데 누가 알아들을 수 있으랴....’ 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6:60.....66절)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어렵다고 궁시렁대는 자 중의 한 사람이 나였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을 떠났지만, 나는 떠나지 않고 붙어 있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셨다.
그것은 그 이상한 말씀들이 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너무너무 놀랐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모르고, 스스로 다 안다고 생각한 나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께서 찾아와 주셔서 복음으로 이끌어 가시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10년째,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하늘의 언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이 세상 속에 이방인과 섞여 살기에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나의 언어는 점점 하늘의 언어가 되어가니 참 기쁘고 행복하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세상의 언어밖에 쓸 줄 모르는 자들이 너무 많다.
세상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가득한 그들을 볼 때 가슴이 답답하고, 어디서부터 대화를 풀어나갈지 막막함을 느낄 때가 많아 그저 애매한 표정으로 들어주기만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들은 나름대로 다 알고 있다고 하면서 너무도 자신만만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처럼......
해마다 10월 초 연휴 때가 되면 1년에 한 번 대구에서 복음 생명캠프가 열린다.
복음을 통하여 생명의 삶으로 나아가는 은혜를 받는 시간이요, 하늘의 언어를 집중적으로 배우는 시간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 지내는 모든 이들에게 이 생명의 말씀 잔치에 오라고 초청을 한다.
주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가 어떠함을 알기에, 나는 이 복생캠프 초청을 ‘예레미야의 불붙는 심정’이 되어 권하고 또 권한다.
하늘의 언어를 알아듣게 된 자, 그 은혜를 맛본 자는 해마다 더 깊은 은혜를 주시는 주님이심을 알기에 스스로 찾아온다. 나는 남들을 권면만 하는 자가 아니라, 나 자신 또한 새롭게 듣고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함을 알고 있다. 복음은 듣고 또 들어야 하기 때문이요, 강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은혜 또한 해마다 깊어지기 때문이다.
이방인과의 통혼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세상의 언어를 그치는 것이다.
이방인과 통혼함으로 가지게 되는 그 세상 즐거움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십자가로 정결케 된 내게 성령께서 하늘의 언어를 배우고 말하게 하시고, 하늘의 노래를 부르게 하신다.
늘 표현하듯이 그렇게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묵상 기도)
주님,
하늘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 멀뚱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하늘의 언어인지 뭔지, 그런 따분한 말보다 세상의 즐거운 말, 자랑하는 말로 깔깔대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때 저는 제 믿음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하늘의 언어는 하나도 모르면서 그저 종교적이고 습관적인 표현이 전부인 줄 알았던 때입니다.
이제 복음을 알고, 하늘의 언어를 배워가니 참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됩니다.
제게 베푸신 주님의 은혜-예수님 이야기, 십자가 이야기, 말씀 묵상 이야기 등-를 나누는 것이 제일 행복합니다.
주님,
제게 베푸신 그 은혜를 이번 캠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들이 하늘의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주님과 교제하고, 지체들과 교제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세상의 언어로 소란한 시대,
하늘의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를 누리는 은혜가
이번 대구캠프에 임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