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기준은? 계속 말씀하고 계신 그 기준
열왕기하 15.1-38
시 작 기 도
무엇보다 먼저 주님께서 영원에서부터 부르시는 ‘아버지의 노래’를 불러 주소서. 거기에 화답하는 마음과 노래로 주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 다윗의 주님을 향한 마음과 그의 예배를 가르쳐 주소서.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예수의 주님을 향한 참 사랑과 참 예배를 가르쳐 주소서. 이스라엘 열왕에게 요구한 것이 그것 아니었습니까? 내 삶이 주님을 향한 예배가 되게 하소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이신 아버지를 향한 노래와 예배처럼.
본 문 요 약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2세 때 유다의 아마샤 왕 아사랴(=웃시야)가 왕이 되어52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주님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고 백성들은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는 나병에 걸려 격리되었고 왕자 요담이 나라를 관리하였습니다.
유다의 아사랴왕 때 지나간 이스라엘 왕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6개월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여로바암1세의 죄에서 떠나지 않아서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주님이 예후와 그 자손에게 왕좌를 약속하신 4대가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살룸이 역모를 꾀하여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개월간 다스렸습니다. 살룸은 앗시리아의 유브라테스 강 유역의 딥사를 공격하여 잔인하게 대하였습니다. 그 뒤에 므나헴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10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여로보암1세의 죄에서 떠나지 않아서 일생동안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앗시리아왕 디글랏빌레셀이 침공하자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많은 세금을 할당하여 은 천 달란트를 바쳐서 물러가게 하고 앗시리아의 도움을 받아서 왕국의 통치권을 굳게 하려하였습니다. 므나헴 왕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어 2년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여로보암1세의 죄에서 떠나지 않아서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의 부관 베가가 반란을 일으켜 그를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1세의 죄에서 떠나지 않아서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베가 왕 시대에 앗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이 이스라엘의 북쪽 북동쪽 지역을 많이 점령하고 주민들을 앗시리아로 잡아갔습니다. 호세아가 베가에게 반역하여 살해하고 왕이 되었습니다.
유다왕 아사랴(웃시야)의 아들 요람이 유다의 왕이 되어 16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주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으나 산당을 제거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는 주님으 성전의 윗 대문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주님께서 시리아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베가 왕을 보내서 유다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본 문 의 뜻
유다의 아사랴 왕(웃시야)가 52년을 다스리는 동안에 주님이 약속한 예후의 왕위가 끝나고 이스라엘은 외적인 영화도 쇠하고 과거의 불안정한 나라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다의 다윗 왕조도 4대 중에 3명의 왕이 살해를 당하였고 한 명은 나병에 걸려서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이렇게 남북 왕조가 다시 주님 앞세 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예후가 바알신앙을 척결하여 돌이키는 것 같았지만 4대가 지나면서 바알신앙만 없어졌지 주님 앞에 우상숭배와 악행은 계속이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유다도 북이스라엘의 바알 신앙에서 벗어나고 언약을 갱신하고 신앙의 개혁으로 다시 시작했으나, 다윗왕과 같은 신앙을 유지하지 못하고 산당을 방치하여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이스라엘 반짝 영화회복이 이어지는 마지막 쇠퇴를 보고 잇습니다. 그리고 남유다의 있던 신앙과 외부적 국력의 쇠퇴를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은 혼합신앙으로 백성에게 우상숭배하게 한 여로보암1세의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남유다에는 다윗왕의 예루살렘 성전의 신앙을 유지하지 않고 각각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쇠퇴기를 맞은 북이스라엘은 주님 밖에서 나라를 세워보려고 노력하지만 되지 않고 있습니다. 살룸 왕은 앗시리아를 잔인하여 공격해서 힘을 떨쳐봅니다. 므나헴왕은 앗시리아의 공격과 앗시리아를 이용해 통치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어 엄청난 은을 바칩니다. 그러나 훗날 앗시리아에게 침략당해 땅과 주민을 빼앗깁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시기에 왕들은 이스라엘 멸망과 회복의 예언사역을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하였을 뿐 아니라, 52년을 다스린 아사랴왕(웃시야)에 호세야1.1, 아모스1.1에서 보듯이 예언을 경험하고 요담 왕은 미가1.1에서 그 사역을 경험합니다. 이스라엘 여로보암2세때는 요나 선지자 등이 있습니다.
바알 우상숭배를 척결하고 다시 기회를 주시고 심판이 유예된 이 시기에 주님의 예언자들이 회개와 회복의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선한 일들을 하기도하고 바알 신앙을 버렸다고 해서 주님의 법을 순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남북왕국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상숭배자들임을 몰랐습니다. 주님의 법의 기준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법은 다윗 왕의 마음으로 드렸던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우상숭배자인 것입니다. 무척 힘든 것 같지만 다윗은 그 마음으로 진정한 예배를 드렸고 그것을 세우고 가르치고 제도화하고 친히 시행하여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나라를 굳건하게 세우고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여 아들이 짓게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이스라엘은 다윗 왕을 따라가지 않은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과 예배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을 못들은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과 다윗 왕국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나라들이 하듯이 하면서 하나님만 겉으로 모시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에게 끝까지 예언자를 보내셔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변국들의 공격을 통해서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회를 주시고 회개의 시간을 주시기 위해서 심판이 계속 유보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는지 지켜보면서 우리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준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같은 정결한 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마음과 삶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그 예배를 완성하셨습니다. 깊이 생각해 봅시다.
나 의 묵 상
(비참함) 주님의 법을 오해하고 그 기준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처럼 주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지 않고 괜찮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의 십자가처럼 완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서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삶에 닥쳐왔던 수많은 어려움과 채찍과 그리고 수 없이 들려주신 회개와 회복의 메시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법과 기준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 주님을 떠난 방법으로 주님의 주신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만을 더 쌓았습니다.
(구원)그러나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주님의 기준과 법을 다 알려 주셨습니다. 알려주신 것 뿐만 아니라 그 법과 기준을 다 만족시키고 이루시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거기에 동참시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갈망 그리고 복종과 헌신의 예배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예배에 나를 정확히 동참시키셨습니다. 내가 거기에 동참한 것을 온 마음으로 믿습니다. 이제 나는 회개하고 회복되었습니다.
(아버지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보이신 사랑으로 나는 회복되어서 아버지 품에 거합니다. 주님의 마음과 예배를 주님 안에서 품고 드리고 그 품에 거합니다.
기 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주님의 법과 기준을 이룬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나의 것이었음을 보게 하소서. 믿음으로 그 마음과 예배를 받게 하소서. 삶에서 그 마음과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같이 드릴 사람을 만나게 하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이 영적 상태를 보게 하소서. 십자가의 주님께로 나아가 기준과 법을 보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예배를 온전히 전달하게 보내소서.
마지막때가 가까이 왔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러나 전쟁과 기근과 염병과 기후변화 속에서도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거두지 마소서.
생 명 일 기 (9월 28-29일 토일)
일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가을의 풍경과 하늘을 보며 ‘아버지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영원으로부터 주님이 나를 향해 부르신 노래가 있어 그 노래가 내 마음에 들려오고 있습니다. 천상의 멜로디, 하늘의 신비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 노래를 들어야 하고 그 노래에 화답하여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아버지의 노래를 듣지 못하고 잊고 있었습니다.
예배시간에 가까워서 대표기도를 부탁받았습니다.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게 하신 이유를 주님께 물었는데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래서 대표기도에 우리에게 ‘아버지의 노래’를 들려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그 노래에 화답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노래를 부르시고 그 노래를 가르칠 분은 성경역사에서 다윗 왕 밖에 없었고, 지금은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예수 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선포하고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참 마음과 참 예배를 갈망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누구가 있어 이 노래를 불러주며, 그 누구가 있어 이 노래를 가르쳐 함께 부를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일단은 나부터가 그런 사람이 못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버지의 노래를 부르는 예배와 기도,
우리를 예정하사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고(엡 1̀:20)
그의 영광을 찬송케하시니 감사합니다(엡 1:22).
아멘~
모두가 한 마음으로 찬송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