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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 유다의 왕 아사랴 제오십년에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간 다스리며
15:24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5:25 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 명과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
15:26 브가히야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5:27 유다의 왕 아사랴 제오십이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 년간 다스리며
15:28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15:30 웃시야의 아들 요담 제이십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5:31 베가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니라
15:32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이년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15:33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15:34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15:35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15:36 요담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5:37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
15:38 요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주해
1. 예후의 증손자 여로보암 2세 때 전성기를 지낸 북이스라엘은 예후의 4대손 스가랴가 왕이 된지, 6개월 만에 살룸에 의해 죽임 당한다.
1) 이 모든 일은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은 예후에게 하신 말씀의 성취다.
2) 하나님은 예후 가문에 햇불언약 때문에 은혜를 베푸셨으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4대째가 되어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2. 살룸은 스가랴를 죽이고 왕이 되나 한 달 만에 므나헴에 의해 살해당한다.
1) 므나헴은 잔악한 행위로 왕이 되어 1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린다.
2) 앗수르가 공격해 오자, 부자들에게 은을 강탈하여 은 천 달란트를 주어 위기를 모면한다.
3. 하나님은 여로보암이 다윗의 길로 행하면, 그의 후손의 왕위를 견고히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왕상 11:38).
1) 그러나 여로보암은 다윗의 길을 가지 않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로 섬기게 한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운명이 기울고 있다.
2) 초대 왕이 된 여로보암이 유사신앙을 제정하여 자신의 왕국을 강화하려는 인간적인 시도는 이해가 되지만, 그는 이 죄가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 그 후손들에게까지 얼마나 큰 올무가 되고, 범죄하게 하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3) 북이스라엘은 반역으로 인하여 왕조들이 계속 바뀐다. 예후 왕조는 4대손 스가랴까지 이어진다.
4) 그러나 그 이후에 반역으로 왕이 된 이들은 ‘왕조’를 이루지 못하고, 임시 왕처럼 잠시 왕노릇 하다가 반역으로 죽임을 당한다.
4. 예후 왕조에 반역을 일으킨 살룸은 1달 만에 살해당하고, 므나헴은 10년, 그의 아들 브기히야는 2년간 여로보암의 죄를 짓다가, 베가에 의해 살해당한다.
1) 베가도 20년간 다스리며,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2) 베가 통치 때,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그 땅을 침략하여 여러 성읍을 빼앗는다.
- 곧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가 점령당했고 그 땅의 거민들이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간다.
3) 즉 북부 갈릴리의 많은 땅과 요단 동편의 길르앗을 빼앗긴다.
5.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죄를 짓는 예후에게 요단 동편 땅을 잘라냈다가,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를 짓는 여로보암 2세에게 다윗과 솔로몬 때의 땅을 차지하게 했으나, 왕들이 계속해서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자, 다시 이스라엘의 땅을 잘라 앗수르에게 주신다.
1) 북이스라엘은 결국 앗수르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한다.
2) 그러므로 므나헴 때 앗수르가 침략하여 은 천 달란트를 받고 물러났다가 베가 때 다시 앗수르가 침략하여 넓은 땅을 빼앗긴 것은 최후의 경고와 같다.
3) 마치 남유다의 멸망 직전에 바벨론을 통하여 징계를 받게 하신 시기, 예레미야의 활동시기와 같은 상황이다.
6. 북이스라엘이 멸망해 가는 시기에 북이스라엘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1) 그들은 평소에 그들이 행하던 악을 행한다.
2) 그 하나는 초대 왕 여로보암부터 행하여 오던 유사신앙,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를 여호와로 섬기는 죄를 계속해서 행한다.
3) 그리고 서로 돕고 연합하여도 앗수르에 의하여 압제를 당하고, 땅을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서도 지금까지 계속했던 반역, 즉 신하가 자신의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는 일을 계속한다.
7. 북이스라엘에서 신하였던 자가 왕을 죽이고 왕이 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1) 그런데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 20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베가를 살해하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은 특별하다.
2) 왜냐하면 반역으로 왕이 된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되기 때문이다(왕하 17:6).
8. 북이스라엘 왕들의 죄는 마치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1) 200년간 지속된 것이지만, 어떤 왕조, 어떤 왕, 어떤 외교적 상황에 놓이던지 상관없이 그들은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았다.
2) 악을 행한 왕이나, 그 왕을 죽이고 다시 왕이 되는 신하나 구별이 없다. 굳이 왕을 죽이과 왕이 되었으면 이전의 왕과 다른 통치, 다른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전의 왕이 지은 길을 그대로 답습한다.
9. 하나님과 백성의 입장에서는 그럴 거면 왜 왕을 죽이고 새로운 왕이 되었는지 모른다.
1) 왕을 죽이고 새 왕이 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을 당하겠는가?
2) 그렇게 피비린내 나는 댓가를 지불하고, 많은 사람이 좌천되거나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면 ‘이전 왕보다 더 나은 개혁’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더 나은 통치를 하려는 시도라도 있어야 한다.
3) 그러나 그들이 반역한 목적은 오직 ‘하나님 노릇, 왕 노릇’ 한 번 하고 싶은 인간의 죄성의 실현이다.
4) 반역을 성공시켜 왕이 되는 탁월한 자이지만, 왕노릇은 헛되고, 헛됨을 넘어 악하다.
10. 그래서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왕조를 멸망시키기로 하신다.
1) 그러나 항상 그러하셨듯이, 마지막으로 앗수르를 통하여 징계하심으로 돌이킬 기회를 주신다.
2) 그러나 그들은 잠시의 회개, 잠시의 고민도 없이 계속하여 반복된 악을 행하다 멸망한다.
3)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이렇게까지 멸시하였으니, 진노는 피할 수 없다.
롬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11. 북이스라엘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을 때,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된다.
왕하 15:34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15:35 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을 건축하니라
1) 요담이 산당을 제거하지는 않지만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여호와의 성전의 윗문도 건축한다.
12. 그런데,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를 보내어 그를 치신다.
1)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여 하나님이 강성하게 한 요담을 하나님이 치시는 것은 의외다.
2) 역대하에도 하나님이 요담을 치신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역대하가 말하는 요담의 신앙은 독특하다.
대하 27:2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27:6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13. 이런 신앙은 하나님을 위한 일에 헌신적이지만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는 신앙이다.
1) 요담이 행한 정책과 결정과 일들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고, 바른 길이었다. 그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고 실행했던 왕일 것이다.
2)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고, 성전 짓기를 그렇게 원했던 것과 달리,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과 개인적인 사귐을 갖지 않는다.
- 자신이 하나님과 사귐이 없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이끌지 못한다.
14. 그는 마치 너무나 헌신적이고 성경적인 결정을 하는 목회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길을 감으로 대형교회를 이루었으나,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생명의 교제가 없고, 성도들은 여전히 세속적인 신앙 생활을 하게 하는 목회자와 비슷하다.
1)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기뻐하여 강성하게 하시나, 그를 치심으로 사역도 좋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로 나아오라고 하신다.
2) 요담과 같은 신앙은 오늘날 헌신된 성도와 사역자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 나의 묵상
판박이 같은 북이스라엘의 왕들, 그들은 왜 반역해서 굳이 왕이 되고, 또 반역을 당해 죽임을 당하는 것일까? 이전과 똑같은 왕이 되려면 왜 굳이 왕이 되었을까? 고위 관직으로 풍요와 안락을 누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런 질문은 나를 향한다. 전자 회사에 취업하려던 시기에 IMF가 터졌고, 취업이 쉽지 않게 된 시기에, 주님께 진로를 물었고, 하나님은 뜻밖의 방법들로 목회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 때는 신학생 지원자가 넘치던 시기였다. 장신대 신대원은 약 1000명이 떨어지고 4-6수도 한다 길래, 저렇게 목회 지원생이 많은데, 저분들만 해도 목회자는 넘친다는데, 왠 목회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고 또 목회를 해서는 않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왜 신학교를 가야하는지를 질문했다. 주님은 단순하게 ‘생명으로 섬기는 자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주님의 뜻을 다 알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수의 목회자가 생명으로 섬기지 않는다고 여긴 것 같았고, 나에게 ‘생명으로 목회하라고 부른다’고 여겨졌다.
하나님이 필요하시다면 당연히 순종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이전의 목회자들과 좀 다른 길, 생명으로 섬기는 길을 가야겠다며 신대원을 갔다. 반역을 해서 담임목사가 된 것은 아니지만, 다시 질문한다. 왜 그 많은 목회 지원자 사이에 내가 있어야 했을까? 북이스라엘 왕들이 선대 왕들을 답습하듯이, 나도 선대 목회자들의 길을 답습하고 있다. 마음은 주님이 기뻐하는 생명으로 섬기는 자가 되려고 했고, 그 길을 가려고 무던 애를 썻지만, 돌이켜 보면 선대 목회자들과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 주변의 목사님들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없다. 좀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인하여 교만하고, 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시기한다.
그 한심한 북이스라엘 왕들의 테두리 안에 내가 있다. 그러기에 그들을 비난할 수 없는 자다. 다만, 하나님이 앗수르를 통하여 징계해도 나병환자처럼 무감각하다가 멸망한 길만은 가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징계, 하나님의 말씀으로 씨름한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게 설지라도, 적어도 노력은 했다고, 시도는 했다고, 고민은 했다고 정도는 말해야 한다.
한편 요담의 이야기도 아프다. 다수의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요담처럼 지나치게 헌신하였으나 하늘 성소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 헌신과 희생과 열정을 보면 감동이 되지만, 하늘 성전, 하늘 아버지 품, 복음을 통하여 생명 얻는 일에는 무지한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결단해도, 나도 그랬으니, 그렇지 않은 목회자는 건강이 무너질 정도로 헌신하지만 아버지 집에 거하지 못한다. 그들을 비난해야 할까? 목회자니까, 무지하니 않으니 비난받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 불쌍하다. 여호와의 성전에 살면서,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지 못한다. 탕자에게 송아지를 잡아준 아버지에게 삐친 맏아들처럼 늘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의 일에 헌신하나 정작 아버지와의 사귐은 없다. 비난받아 마땅하면서 동시에 가장 불쌍하고 긍휼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헌신했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아들 안에 거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목회였다. 심판받아 마땅하나, 주의 긍휼을 구한다. 주님은 한편으로는 나를 강성하게 하셨고, 한편으로 나를 치셨고, 한편으로는 나를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내가 요담처럼 행한 자임을 안다. 요담처럼 잠들기 전에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 아버지 집에서, 탕자로 나아간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귐과 교제다. 그러기에 염치없어도 십자가 사랑을 의지하여, 탕자처럼 아버지 집으로 향한다.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용납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사랑을 받아 먹는다. 아버지의 기쁨으로 인하여 기뻐한다.
◈ 묵상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북이스라엘 왕들이 그 왕국에는 탁월한 자들인데 하나님 앞에서 지독히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게 하옵소서. 저를 목회자로 부르신 그 부르심 앞에 서도록, 동일한 죄와 약함과 교만을 가진 자이오니, 복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사, 생명으로 섬기도록 도와 주십시오. 요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헌신을 하나, 아들 안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것에 무지합니다. 바른 목회를 넘어 아버지 집에 거하는 자, 아들이 있는 곳에 함께 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헌신하나 아들 안에 거하지 못하는 성도들과 목회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생명의 문을 열어 주시고, 마음 문도 열어 주십시오.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9월도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많은 후회 속에서도 주님을 알고 섬긴 것이 은혜요 감사입니다. 10월 월삭새벽예배에 함께하여 주시고,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를 맛보아 누리고, 그 은혜로 인하여 마음이 가난해지고, 겸손하여져서 아버지 집에 항상 거하게 하옵소서. 레바논의 전쟁과 선교사들과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송은영 권사님의 영육간의 건강과 성령의 임재와 사랑으로 함께하여 주시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