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경쟁률 86.2 대 1. 올해 3월 치러진 서울시 7·9급 공무원 공채시험 경쟁률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렇게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우수한 인재들이 공직에 임용되지만, 정부조직은 ‘무능’과 ‘안일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 문제를 묻기 위해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을 찾았다. 그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지냈고, 얼마 전 정부부처 인사 관리의 문제점을 다룬 ‘대한민국에 인사는 없다’는 책을 출간해 관심을 끌었다. 이 전 처장은 공무원 공채시험 경쟁에 대해 “국가를 운영하는 세금을 낸 국민은 정작 외면당하는 경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조직은 기득권이 만연하고, 시스템이 없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삼성그룹에서 30년 넘게 인사 업무를 맡다가 정부조직 인사를 전담하게 된 이 전 처장이 현장에서 겪은 공무원 조직은 불합리투성이였다. 이 전 처장을 서울 강남구 선릉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 출간한 책에서 정부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인가.
“기득권 세력이 강고하고, 인사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 근본적 문제다. 기득권이 공고한 것을 넘어서서 강고하다고 표현했다. 학연, 지연, 과거 함께 근무했던 사람 등 아는 사람끼리 서로 끌어주는 주먹구구식 인사가 만연해 있다. 그러다 보니 인사 체계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 40년 전엔 기업 총무과 아래 인사계가 있었다. 정부의 인사 전담 조직이 지금 딱 그 수준이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 기업들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며 정보화 시대에 진입했지만 정부조직은 산업화 초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지식이 공유되는 시대가 왔다. 지금까지는 대학교와 대학원 졸업장에 따라 노동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졌다면, 이제는 아니다. 지식은 스마트폰을 열면 널려 있다. 지식과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인간에 달려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재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요즘 글로벌 기업에서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인사책임자(CHO)의 연봉이 비슷한 수준이다.”
기업도 조직이 커지면 비슷한 문제를 겪지 않나.
“기업은 다르다. 기업은 생존이 달려 있다. 한국은 매출 1000억원이 안 되는 중소기업도 해외 수출을 고민한다. 주먹구구식으로 인사 관리를 했다가는 세계 시장에서 참패하고 만다. 물론 국가적으로 인재 양성을 잘하는 곳도 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다. 그 선수의 미래와 한국의 순위가 달려 있기 때문에 최고의 선수를 뽑는다. (정부조직과 달리) 국가대표 운동선수는 순서가 됐다고 돌아가면서 뽑지 않는다.”
순환보직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인가.
“순환보직제는 무책임을 만든다. 정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민간기관이 푸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발주자와 결정권자가 달라서 진행이 느리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미루고, 어느 순간 담당자가 바뀌어서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순환보직제는 인재 양성도 막는다. 삼성을 비롯한 민간기업에서는 리더, 전문가 투트랙으로 직원의 경력을 개발한다. 리더가 될 사람은 다양한 부서를 거쳐 고른 경험을 하도록 하고, 전문가로 양성할 사람은 한자리에 오래 둔다. 내가 삼성에 있을 때 인사 총괄만 12년을 했다. 하지만 공무원 조직은 어떤가. 전문 분야라는 것이 없고, 해당 직무에 우수성을 보여도 진급하거나 순서가 되면 그 부서를 떠나야 한다. 결국 조직 전체의 하향평준화가 이뤄진다. 그러고는 하향평준화를 ‘화학적 통합’이라고 포장한다. 전체 공무원 100만명 가운데 장⋅차관으로 키울 사람은 500명이면 충분하다.”
개방형 직위제는 효과가 있나.
“개방형 직위는 민간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쉽게 말하면 경력직 채용이라고 보면 된다. 순혈주의가 만연한 공무원 사회에 혼혈주의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재 전체 공무원에서 개방형 직위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개방형 직위제 공무원이 쉽게 늘지 않는 것은 부처별 정원제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개방형 직군이 늘어나면 자신의 자리가 빼앗긴다고 생각해 일단 배척하고 본다. 정원 규제를 없애야 배척하는 문화가 사라진다. 또 개방형 직위를 지속적으로 채용해 이 비중을 10%까지 늘려야 한다. 그래야 조직간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진정한 개방형이라면 공무원도 민간기업으로 보내야 한다. (안 되는 이유로) 정경유착 등을 드는데, 이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격이다.”
인재 발탁도 중요하지만 관리도 중요하다. 공무원 조직은 어떤가.
“기본적으로 한국 공무원의 자질은 우수하다. 문제는 ‘관리의 부재’다. 정상적인 인재관리 시스템에서는 우수한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상대적으로 뒤처진 사람은 다른 분야에서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부조직을 보면 우수한 사람을 승진시키면 시기와 질투로 업무 진행이 안 되고, 뒤처진 사람은 도태된다. 아무리 많은 공을 세운 사람이라도 실수 한 번에 자리를 떠나야 한다. 더욱이 한국 정부조직은 감시와 견제가 심하다. 아래로의 권한 위임도 하지 않는다. 사고가 터지면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기 바쁘다. 책임지울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감시와 처벌이 무서워서 그 누구도 스스로 일하지 않는다.”
납득할 수 있는 보상체계는 어떻게 만드나.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보상체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승복하는 보상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정확한 기준을 적용해서 공개하면 된다. 싱가포르 공무원 급여는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이뤄지는데, 성과급 비중이 큰 것으로 안다. 명확하고 투명한 보상체계와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만도 없다. 싱가포르의 예가 나왔으니 말인데, 한국 공무원 조직의 인사 시스템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단적인 예를 들겠다. 인사혁신처에 부임해 공무원 인사카드를 개편했다. 개별 공무원들의 과거 평가를 보기 위해 인사카드를 꺼내들었는데 이 사람이 거쳐온 부서만 나열돼 있을 뿐 해당 업무에 대한 평가란 자체가 없었다. 돌아가면서 순서대로 승진하는 구조이다 보니 ‘평가’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공무원 인사 평가체계가 없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지난해 공무원 윤리헌장을 개정했다. 1980년 제정된 후 35년 만에 처음이다. 그 정도로 아무도 공무원 조직의 윤리는 물론 업무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던 셈이다.”
차기 정부의 조직 개편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나.
“차기 정부는 100만명 공무원 조직 운영의 철학을 세워야 한다. 한국은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다. 결국 유능한 인력이 국가를 이끌어가야 한다. 인적 자원 관리는 교육이나 노동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인재원을 만들어서 10년 이상 장기 계획을 세웠으면 한다. 정부조직과 관련해서는 ‘작은 정부’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김대중 정부 이후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명목으로 부처를 통합해 왔다. 그리고 편법으로 위원회를 만들어냈다. 지금 금융위원회와 원자력위원회 같은 위원회들이 넘쳐난다. 자리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장관 수가 늘면 왜 안 되나.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담당 부처가 늘어나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을 법률로 규정한 것도 넌센스다. 조직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니 시행령으로 하면 된다. 필요한 부처는 태스크포스(TF)로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