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진실된 것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만 확실하고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의 존재성을 발견한다.
발명이 아니라 상상력이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예술의 장인인 것이다.
- 조지프 콘래드 -

내 청춘의 음률, 빙빙빙
'빙빙빙'.
팽이가 도는 모습을 그린 대학가요제 수상곡의 제목이다.
'채찍 맞으며 아픔을 참으며
눈물도 흘리지 않고
그냥 빙빙 말없이 돌아가는 동그란 팽이...'
그 당시 정치상황을 풍자하듯
광주사태가 연상되고 권력에 무력감을 느껴
그저 알고도 모른척 세상을 마음으로만 아파하며
빙빙빙 아픈 내색 없이 말없이 돌아가는 팽이의 모습은
군사정권에 대한 젊은이들의 번뇌를 대변했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 이 노래에 흠뻑 취했다.
기타를 칠 때면 언제나 단골노래였고,
라이브카페에 가서도 자주 기타를 빌려 두들기기도 했다.
기타를 두들긴다는 표현이 적절하다싶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내 감정에 스스로 빠져들어 노래했다.
군에 입대해서 고참들이 노래를 시켰을 때도
이 노래가 단골메뉴로 올랐다.
광주 전일가요제 그랑프리곡이었기에
전라도 학생들이 눈치 보며 애창했던 노래였는데
경상도 출신이 그런 노래를 애창한다고 해서
전라도 고참에게도 환대를 받았던 추억들.
그 때 악단을 맡고 있던 고참이 부르더니 기타를 주며 쳐보란다.
곧 짝대기 두 개 졸병시절에
소주악단 기타리스트가 되었고
졸병주제에 시간만 나면 음악연습실을 찾을 수 있었다.
이후로 '빙빙빙'은 가사 때문에 정치적인 눈치를 보며
거의 사라지는 음악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내게는 언제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었고 나의 카타르시스기도 했다.
회사에 입사해서도 신고식을 이 노래로 치렀다.
월포해수욕장 직원 수련회에서
처녀총각 사원들만 백사장에 모여 밤 새워 기타 치며 노래할 때에도
늘 고음을 틔우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임무는 '빙빙빙'이 맡았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대전으로 파견 근무를 떠나면서
기타를 손놓게 되었고 바쁜 일상으로 노래할 여유도 가지질 못했다.
이후 15년을 잊고 있었는데 어느 비오는 겨울,
문득 생각이 나서 음악을 검색해 보니 어렵사리 하나가 나왔다.
몇 주간의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드는 이 시간에 볼륨을 크게 키워본다.
울컥하고 잃어버린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내 뺨을 타고 흐른다.
2006. 4. 28.
<빙빙빙 / 하성관>

추운줄도 잊어버리고
팽이놀이하는
동네의 골목에서 노니는
아이들 소리
채찍 맞으며 아픔을 참으며
눈물도 흘리지 않고
그냥 빙빙 말없이 돌아가는 동그란 팽이
돌고 돌아가는 세상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팽이놀이 해볼까
돌고 돌아가는 세상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팽이놀이 해볼까
빙빙빙 돌아라 내 팽이야
빨강 노랑 파랑 줄무늬에
오색의 내 팽이야
빙빙빙 돌아라 세상이 어지럽게
빙빙빙 돌아서 네 자릴 잡아라
돌고 도는 세상처럼 팽이는 돌아간다
얘들아 쉬지말고 그 팽이를 쳐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