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와서 맞는 첫 주말입니다.
비가 오네요.
미리 좌석까지 확보하면서 기대했던 비행은 옆자리에 앉은 개념 없는 흑인의 시종일관한 발떨기와 자신의 덩치에 대한 관념 없는 무자비한 신문 펼치기 신공에 1시간 만에 다른 좌석으로 옮기며 끝이 나고 말았네요.
옮겨 앉은 옆자리에는 짜증으로 꽉 찬 일본 녀석이 앉아 있었고, 서로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한, 아니 서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신경전으로 피곤한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ㅜ,.ㅜ
한국에 들어와 6시간의 시차가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도 다녀오고, 만날 사람들도 만나고,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의 이장까지 마치고 나니 아이들이 감기기운이 도네요. 그것도 지독한...
결국 학교에서 등교하지 날라는 통보가 왔기에 분기탱천, 오늘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플루 음성 판정을 받아들고 학교에 전화를 했지요.
월요일부터는 등교해도 무방하다는 통보를 다시 얻어낸 후 아이들에게 쉬고 있으라 하고는 졸린 눈을 이쑤시개로 고정시키고 컴 앞에 앉아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 마자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쉬는 것이 더 바쁜 듯 합니다.
연로하신 아버님께서는 제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들으시자 마자 모든 대소사를 제가 한국에 있을 듯한 기간으로 조정을 해 놓으셨더군요.
이제는 직접 챙기실 엄두가 나지 않으신 것이지요.
아버님과 1살 차이 나시는 어머님의 건강도 그리 좋지는 않아 보이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생각 같아서는 더이상 해외에 나가지 말고 옆에서 챙겨드리고 싶지만, 배운 도둑질이라고, 아는 것은 그저 물건너 산 너머 가설랑 목소리 가다듬고 쌈닭 노릇하는 것 뿐이니 이도 참 딱한 노릇입니다.
해외에서 일을 하면서 현지인이나 한국인 말고도 많은 외국인 근로자와 얽히며 일을 했었습니다.
함께 일을 하면서 겪어보니 국적별로 특징이 보이더군요.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필리핀인
해외에서, 특히 중동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면 필리핀인 중간 관리자 없이는 거의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적당히 교육을 받았고, 어느 정도의 현장 경험도 있으며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 치고 필리핀인처럼 임금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별로 없으니까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임금 수준이 그정도인 것은 100% 필리핀 정부의 잘못이지요.
필리핀의 투자 정책은 국내 투자 위주인 것으로 보입니다.
피리핀에서 학부를 졸업한 엔지니어들은 일단 필리핀 회사에 입사하여 국내 경력을 2~3년 쌓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인력 송출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하지요.
이들 인력 송출회사는 필리핀인 지권을 원하는 외국 회사와 이들을 연결시켜 줍니다.
이렇게 외국 회사와 연결된 이들은 외국의 프로젝트에 나오게 됩니다.
이러게 나오게 되면 급여가 700USD ~ 2500 USD 정도가 되지요.
물론 경력에 따라 차이가 많습니다.
그래도 자국에서 300 ~400USD를 받던 이들의입장에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 것이지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귀국하여 또다시 인력 송출회사에 등록하거나 기존에 일하던 회사에서 인정 받아 다른프로젝트로 직접 넘어갑니다.
이렇게 이들의 경력은 계속 쌓여가고 급여 수준도 계속 높아져 갑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필리핀 국내의 인력은 여성 인력이거나 경험이 별로 없는 미숙련 엔지니어들이 대부분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필리핀에 출장갔을 때 본 바에 의하면 그 회사 직원의 99%는 여성이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현지 시간으로 밤 12시가 넘어서 도착한 우리를 마닐라 공항까지 마중나왔던 직원들도 모두 젊은 여직원들이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밤 12시가 넘어서 우리를 마중나온 젊은 여직원들 때문에 적잖이 당황하고 불편했었지만, 다음날 그 회사에 가 보고는 모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100% 여성 직원들 뿐인 회사였지요.
필리핀에서 가장 크다는 인력 송출회사였습니다.
이렇게 인력 송출회사를 통해 숙련직원들을 개인 자격으로 외국으로 송출하다 보니 이들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나라 회사의 본사에서 직원을 채용하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중요한 분야의 정규직에 필리핀인 직원을 채용할까요?
당연히 외국의 프로젝트에서 당장 활용할 경력 계약직 직원을 뽑아서 한국인 직원 아래의 위치에 놓고 적당히 써먹고 말겠지요.
지난 70년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능직 근로자로 중동에 나갔을 때, 우리나라 회사들은 미국이나 유럽 회사들의 하청을 맡는 상황이었고, 우리나라 회사들을 통제하던 사람들은 원청 회사에 소속된 필리핀인 엔지니어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고용한 필리핀인 엔지니어들의 역활과 같은 역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 필리핀인 엔지니어들이 우리 회사에 고용되어 자신들이 마구 통제하던 한국인 엔지니어들의 철저한 통제를 받으며 다른 나라 업체 직원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필리핀인들과 한국인의 관계가 뒤바뀐 것이지요.
필리핀인들의 위치가 하락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의 위치가 올라간 때문입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이들은 인력 송출회사를 통해 개인적으로 송출되었고, 개인의 능력만으로 모든 상황을 개척해 나오다 보니 현재의 위치가 상승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인력 자체에 대한 투자를 한 것이 아니라 기업 자체에 투자를 하여 기업이 해외에 진출했습니다.
따라서 기업의 성장에 따라 필연적으로 중동의 발주처와 직접 계약하여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당연히 필리핀인 근로자를 고용하게 되었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의 결과로 필리핀인들은 자신들이 통제하던 사람들의 통제 아래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정부의 투자 우선정책의 차이가 30년 후에 빚어낸 결과입니다.
개인적으로 해외에 나가서 외화를 직접 벌어올 수 있는 점에만 착안하여 인력 송출회사 영역에만 투자한 결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거의 모든 국가는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일 때, 반드시 자국인의 아래에 자리매김을 합니다.
아주 특별한 예외는 물론 있겠지만 자국인 근로자보다 많은 임금을 주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들여올 정신나간 경영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해외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이지요.
한가지 사족을 달자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어 연수를 위해 필리핀으로 가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필리핀인들이 영어를 잘한다 하지만, 이들의 영어는 그닥 정확한 영어도 아닐 뿐더러 그 발음은 스페인어 억양이 매우 강합니다.
단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영어를 잘한다 해서 무턱대고 필리핀으로 영어를 배우러 간다면 스페인어 억양이 가득한 약간 부정확한 영어를 배워 돌아올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너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필리핀을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필리핀 현지에서 보고 느낀 것과, 중동에서 직접 데리고 있었거나 경험했던, 여러 위치에 있던 수많은 필리핀인들을 보고 느낀 내용입니다.
한 나라의 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이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으로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정책을 시행했을 때 벌어지는 결과 중 하나를 실제로 접한 것이지요.
필리핀과 관련한 이야기만 썼는데도 너무 길어졌네요.
일단 여기서 줄이고, 다음 편에는 또 다른 나라에 관해서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한국에 있는 동안 현지에서 미처 올리지 못했던 몇가지 이야기들을 추가로 올릴까 합니다. 사막에서 쓰는 편지는 아니겠지만 '사막에서 느낀 이야기를 안방에서 쓰는 편지' 쯤 되겠지요. ^^
민이님이 카타르에서 마지막 편을 끝내고 귀국하였을때 저는 민이님이 작성한 사우디및 카타르에서의 근무 및 생활 이야기를 다 읽었습니다. 이후 민이님의 팬이기도 합니다.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여서 다행입니다. 또다른 어떤 업무가 민이님을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만 잘 해내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작성하신 필리핀 관련한 근무직원, 어학교육등은 저는 민이님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4년동안 주재원 생활도 하였는데 시간이 되면 차차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것 같습니다. 아무튼 한국에서 시차 및 날씨 적응을 잘하시기 바랍니다.
필리핀 고급 노동력에 여성이 많은 것은 미국 식민지인가, 스페인 식민지인가 그 시절에 성 구별 없이 교육을 하게 되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위주로 교육이 시행되고, 남성 교육을 하게 되면 독립운동이 강화될 것을 우려한 식민지 정부가 여성 중심으로 고등 교육을 진행하였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국주의의 흔적이지요. 결국 얼마 안 되는 남성 노동자들은 외국으로 나가고, 결국 국내에는 여성 노동자가 많이 남은 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