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DJ대통령만들기’나선 최형우고문 동생 최형호씨
최형우 신한국당 고문의 친동생인 최형호씨는 이번 대선에서 국민회의 부산지역 선대위원장으로 부산에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선다.
최형호씨는 최고문이 이끌던 민주산악회 방계조직인 라이프산악회 회장으로, 지난 30년간 최고문을 도와온 동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국민회의 참여에 혹시 최고문의 뜻이 담긴 것은 아닌가 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형호씨에게 투병중인 최고문의 근황과 ‘김대중 지지’로 돌아선 이유를 들었다.
글·이혜련 기자/ 사진·박해윤 기자
최형호씨(57)는 최고문의 바로 아랫동생. 최고문의 동기는 모두 5남4녀인데 최고문은 남자형제 가운데 둘째이고 최형호씨는 셋째다. 한눈에 형제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최형우 고문과 닮았다. 부산에서 아연, 철판 판매사업을 하고 있는 최형호씨는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정치하는 형을 직접적으로 도와왔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최형우라는 큰 나무를 키우기 위해 물을 주고 북돋우며 뒷바라지를 했다는 것.
그의 주된 역할은 최고문이 일일이 신경쓰지 못하는 부산 경남지역의 사조직을 챙기는 것이었다. 그 일을 최고문이 6선의원이 될 때까지 30여년간 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고문이 민주화 운동하며 박해받을 때 고생도 많이 했다고 말한다.
“72년 10월에는 유신 반대 투쟁을 하다가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김상현 의원과 구치소 생활을 함께 했죠.”
“형님과 상관없이 소신에 따라 결정”
그가 회장으로 있는 부산 영남지역 라이프 산악회는 3만5천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다. 라이프 산악회는 최형우 고문이 실질적인 관장자인 여권의 최대 사조직 민주산악회의 방계조직. 하지만 최형호씨는 라이프 산악회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아니라고 말한다.
워낙 산을 좋아해서 매주 산행을 하다보니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자신이 최고문의 동생이라는 점 때문에 자연발생적으로 최고문을 지지하는 모임이 되었다는 것.
최고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라이프 산악회 회원들은 산행을 하며 매주 최고문의 쾌유를 비는 산신제를 지내는 등 최고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최형호씨가 지난 10월25일 라이프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국민회의에 입당하니 혹시 최고문의 뜻이 담긴 것은 아닌가 하는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국민회의는 그동안 신한국당 민주계를 영입하기 위한 손짓을 계속해왔다. 특히 지난 9월에는 국민회의 박상규 부총재가 중국에서 치료 중인 최형우 고문을 찾아가 김대중 총재의 친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박부총재는 최고문과 동국대 동문으로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사이. 박부총재의 방문을 받은 최고문은 박부총재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을 뿐 아니라 병상에서 1시간 이상 함께 고스톱을 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번에 최형호씨의 입당을 주선한 사람도 박부총재다.
또 김대중 총재는 지난 11월6일 라이프산악회 대구 경북지역 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중국에서 투병중인 최형우 동지가 쾌유하면 그분이 활동할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형호씨는 자신의 국민회의 입당은 소신에 의한 것일 뿐 최고문의 뜻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월14일부터 18일까지 북경을 방문해 중일우호의원에 입원 치료중인 최고문을 만나고 왔다. 그는 최고문의 병세가 많이 호전돼 이제는 주위의 도움없이 혼자 걸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언어기능의 회복이 느려 말을 몇마디씩 할 수는 있지만 문장을 연결해서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최고문은 11월 말경 귀국할 예정인데, 귀국 후 어떤 입장을 표명할지 관심의 대상이다.
“투병에 전념하고 있는 형님에게 정치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하면 누가 될 뿐입니다. 그분이 아직도 신한국당 상임고문인데 어떻게 국민회의를 지지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정치 도의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저는 최형우라는 큰 나무가 대선이라는 중대 결단(대선 출마)을 앞두고 쓰러지셨으니 이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다른 분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김대중 총재는 함께 최루탄을 마시고 박해를 받았던 분입니다. 또 남북이 갈라져 있는 마당에 영호남까지 갈라져 있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침 영남권 후보가 없는 이번 대선이야말로 영호남의 골을 없앨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국민회의 입당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특히 최형우 고문의 부인 원영일씨가 크게 반대해 여러차례 언쟁도 있었다고 한다. 최형호씨는 원씨가 “형님이 어려운 이때 정치 참여는 좋지 않으니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만류했다고 말한다.
또 신한국당쪽에서 “배신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비난 전화도 많이 와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가장 배신자 취급하는 신한국당 민주계의 비난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대중 총재와 민주계는 뿌리가 같습니다. 함께 민주화 투쟁하던 김영삼, 김대중, 최형우, 김상현, 조윤형, 고 김동영, 이 분들 중에 이번 대선후보는 김대중 총재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날 따라와야지 어떻게 욕을 합니까?”
“적어도 성씨를 욕되게 하진 않겠다”
최형호씨는 국민회의 입당 후 부산지역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11월15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국민회의 ‘부산지역 필승전진대회’에서 그는 “김총재의 당선을 위해 앞장서서 뛰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대통령의 텃밭인 부산에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데 만감이 교차한 듯했다.
국민회의는 부산지역에 뿌리가 깊은 최형호씨를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함으로써 김대중 총재의 취약지인 부산을 공략할 태세를 갖추었다. 최형호씨는 라이프 산악회원 가운데 80%는 자신을 따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최소한 인심을 잃지는 않고 살았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형님 대신 지역관리를 해왔지만 형님이 장관 됐을 때도 한번도 장관실에 간 적이 없습니다. 동생이 설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지구당 사무실에도 안갔어요. YS 집권 후 형님을 만난 게 몇 번 안됩니다. 이른바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에게 술 한잔 얻어먹은 적 없고 골프 한번 친 적이 없습니다.”
이번 선거에 공을 세우면 국민회의에서 한자리 얻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며 대선이 끝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할아버지가 한학자셨습니다. 형님이 야당생활하며 제일 어려울 때 돌아가셨는데, 어떤 일이 있어도 성씨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적어도 성씨를 욕되게 하는 일은 안할 겁니다.”
첫댓글 92년 대선을 앞두고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이미지가 좋지 않았는데, 97년에는 YS의 좌장인 최형우씨 동생이 국민회의에 입당, 부산에서 김대중후보의 선거운동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별로 없을 것 같아 당시 기사를 올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