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렇게 떨어진 이유가 뭡니까. 이젠 돈을 빼야 하나요?", "고위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쓸데없는 얘기를 해서 (증시를) 이렇게 망쳐놔도 됩니까?"
한국 증시가 급락한 16일 증권사 객장은 물론이고 점심식사 자리에서도 증시 폭락 이야기로 술렁거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위기를 받아들이는 개인투자자 마음가짐이 확연히 갈리는 모습이다. 단기 매매를 위주로 하는 개별종목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주식형 펀드에 맡긴 개인들의 투자자금은 오히려 16일 하루 동안 더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펀드에 1년 이상 장기로 자금을 묻어두려는 사람들은 주식형 펀드에 자금을 더 투자한 셈이다. 까닭없이 증시가 폭락했지만 `기회`인지 `위기`인지를 보는 시각은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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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하락폭을 기록한 16일 목동에 있는 한 증권사 객장에서 노년의 증권 투자자가 침울한 표정으로 종목 시세판을 지나가고 있다. <김호영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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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형 펀드 자금은 더 들어왔다 =
삼성투신운용에 따르면 이날 오전부터 오후 3시 20분까지 이 운용사에 고객들이 맡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294억원가량 순증했다.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13일까지 일평균 150억원가량 순증한 것에 비하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정성환 삼성투신 팀장은 "지난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주가가 큰 폭으로 빠졌을 때도 주식형 펀드에 하루 동안 200억원, 360억원의 자금이 몰렸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측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하루 평균 500억~600억원가량 증가하던 주식형펀드 순증 규모가 16일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규모는 약 800억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펀드 판매사들도 차분한 분위기다. 고원종 하나대투증권 대치역지점 팀장은 "향후 주식시장 불안감에 대해 묻는 고객들은 있지만 펀드 환매를 문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 객장은 불안감 확산 =
16일 오전부터 증권사 객장에는 불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작부터 1700대를 끊었지만 누구도 그 `원인`에 대해 속시원히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중 1800을 넘었던 주가가 1600대로 떨어지자 1700은 어디 갔냐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한 중년 여성은 이날 오후 1시 20분 코스닥시장이 10% 이상 급락하면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하자 가슴이 답답하다며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이홍만
대신증권 마포지점장은 "오늘은 직접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폭락 이유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가 많이 오고 있고, 투매에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의가 많았다"고 말했다.
근래 보기 드문 지수 폭락에 일반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나온 여의도 증권사 직원들은 밥 먹을 때가 아니라 시황을 더 봐야 한다는 혼잣말들을 늘어놓았다.
오진승
대신증권 여의도 영업부 차장은 "아침부터 문의전화가 계속 왔고 매도해야 하지 않냐는 질문도 많았다"면서 "일단 관망하라고 권하지만 불안하면 절반 정도 매도하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 정부에 대한 투자자들의 맹비난 =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해 잇달아 경고음을 낸 정부 관계자에 대해 비난 화살도 던져졌다.
최남철 GNG파트너스 대표는 "오늘 패닉 사태를 유발한 데에는 권오규 부총리(엔캐리 본격 대비), 김석동 재경부 차관(금리 인하 없다) 등의 발언이 한몫했다고 본다"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얘기해야 시장에 충격이 덜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모 증권사 영업담당자는 "정부가 시장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한 발언이므로 큰 무리는 없다고 본다"며 "그러나 유동성 축소를 시사하는 발언을 지나치게 시장에 남발해 주식시장의 투자심리를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조익재
CJ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앞으로의 유동성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지켜봐야 할 변수로 미국의 실물경기와 원자재시장 흐름을 지목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 실물경제가 악화돼 실업률이 늘어나고 임금이 하락하면 미국 금리는 인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뉴스를 지켜보라는 얘기다.
■용어 해설
◆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s) : 주식거래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제도를 말한다. 주가가 폭락하는 경우 거래를 정지시켜 시장을 진정시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87년 10월 이른바 `블랙먼데이(Black Monday)`의 증시 폭락 이후 최초로 도입됐다.
한국에는 유가증권시장(옛 거래소)에 98년 12월 7일부터 국내주식 가격 제한폭이 상하 15%로 확대되면서 도입됐다. 코스닥시장은 2001년 10월 도입됐다.
현물시장에서는 주가지수가 전일보다 10% 넘게 하락한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되는 경우 모든 주식거래를 20분간 중단시킨다. 선물ㆍ옵션시장에서는 선물가격이 상하 5%, 괴리율이 상하 3%인 상태가 1분간 지속되면 5분간 매매를 중단하고, 10분간 호가를 접수해 단일가격으로 처리한다.
◆ 사이드카(Sidecar) : 선물시장이 급변할 경우 현물시장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해 현물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도입한 프로그램 매매호가 관리제도다.
선물가격이 전일 종가 대비 5%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해 1분간 지속될 때 발동하며, 일단 발동되면 발동시부터 주식시장 프로그램 매매호가의 효력이 5분간 정지된다. 그러나 5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해제돼 매매 체결이 재개되고, 주식시장 후장 매매 종료 40분 전(14시 20분) 이후에는 발동할 수 없으며, 또 1일 1회에 한해서만 발동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신현규 기자 / 박준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