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구간별 여행일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콜로라도까지(1일부터 6일)>
1차 목표는 캐리에서 이틀 만에 덴버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먼 거리이지만 여름철이라 해가 길고, 또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표준시가 바뀔 때마다 한 시간씩 벌게 되므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돌아올 땐 반대니까 유의하셔야겠지요). 첫날 스모키마운틴을 넘어 테네시, 켄터키, 일리노이를 거쳐 미주리 초입의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했습니다. 풍경의 변화가 다양해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스모키의 산들은 우리나라와 닮아서 언제나 정답고, 도로변에 단층이 드러나 있는 테네시 계곡의 풍경도 특색이 있습니다. 테네시를 지나면 점차 평야지대로 바뀌면서 옥수수밭, 밀밭 지대가 나오지만 아직 나무들도 많습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말로만 듣던 미시시피강을 처음 보았습니다.
미국 전체로 보면 지리적으로 한참 동쪽인데도 세인트루이스는 미국이 제퍼슨 대통령 때 프랑스로부터 구입한 루이지애나 지역의 초입이기 때문에 문화, 역사적으로는 미국 서부의 출발점입니다. 만 하루 걸려 드디어 스타트라인에 선 느낌이 듭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세인트루이스 시내 미시시피강변에 도착해서 게이트웨이 아치를 보고 시내 산책을 하였습니다. 첫날 숙소는 웨스트 세인트루이스 지역에 잡았는데, 이튿날 아침 애들이 어제 표가 매진되어 타지 못했던 게이트웨이 아치 트램투어(아치 내부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장거리 여행의 가이드 입장에서는 도저히 안 될 일임에도 세인트루이스 시내로 다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200미터 높이의 아치에서 미시시피강과 세인트루이스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발길을 돌려 평야 지대를 끝없이 질주하여 덴버로 향합니다. 미주리, 캔자스를 거쳐 콜로라도에 이르는 여정입니다. 이른바 그레이트 프레리 지역을 지나는 것이지요. 끝없는 평원이 펼쳐지고, 중간에 수많은 풍력발전기, 방목하는 소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기 위해 이 자동차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좀 지나 옥수수밭이 완전히 사라지고 목초지가 나타나고, 꽤 보이던 나무들이 키가 작아지다가 수효조차 드물어지면 이제 거의 다 온 것입니다. 드넓은 대초원은 차안에서 보면 낭만적이지만 차에서 내려서 보면 벌레도 많고, 가축 냄새 때문에 흥이 좀 깨게 됩니다.
덴버 도착한 다음날(3일째) 록키마운틴 국립공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서부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틀 만에 덴버에 온 것이기 때문에 비행기로 덴버에 와서 여행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해도 불과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록키마운틴 국립공원(에스테스 파크)은 꽤 쌀쌀하고(긴팔옷과 점퍼가 꼭 필요합니다) 높은 곳에는 눈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주위 풍경도 멋지고, 한여름에 눈밭에서 뒹구는 재미도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적당히 올라가다 말겠지 했는데 거의 산꼭대기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공원 동쪽 입구로 들어간 다음 능선 따라 이어진 드라이브길은 전망이 예술입니다. 서쪽으로 계속 가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면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습니다. 공원 한 복판의 베어레이크 트레일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거리가 짧아 걸을 수만 있으면 아주 어린 애들한테도 적당합니다. 공원을 나와서 덴버 남쪽 오로라 코리안 마켓(2751 south parker road, Aurora)에서 장을 보고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도착했습니다.
4일째 프로그램은 긴급편성된 것입니다. 계획에는 없었는데 한여름이라 이번 여행에는 가지 않을 사막을 대신하여 그레이트 샌드듄 국립공원을 가기로 한 것입니다. 아우터뱅크스에 있는 Jocky's ridge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거대한 모래언덕에서 사막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그 옆 개울에서 물장난도 할 수 있습니다. 사슴도 꽤 많습니다. 곰도 나온다는데 우리는 보지 못했고요. 다만 이곳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도 남쪽으로 꽤 이동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를 거쳐 뉴멕시코의 산타페 쪽으로 가는 경로를 취한다면 자연스럽게 들를 만합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돌아오는 길에 눈처럼 쌓인 한여름 우박 때문에 조심조심 운전해야 했고, 그 뒤에는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 혼이 났습니다. 서부 황야에서 비바람이 칠 때가 의외로 많은데 강도는 상당히 셉니다. 하지만 금방 지나가니까 안전한 곳에서 잠깐 기다렸다 가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서부에서도 항상 날씨예보를 챙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음날(5일째) 아침에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가까운 신들의 정원을 산책하였습니다. 붉은 사암으로 된 기암들이 인상적이고, 어느 부자가 공원을 기증하면서 입장료를 받지 말라고 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이어서 인접해 있는 Pike's peak를 자동차로 올라갔습니다. 14,110피트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파이크스 피크는 기차로도 오를 수 있는데 인기가 높아 예매를 미리 해야 한다는군요. 이곳은 국립공원이 아니라 별도 입장료가 있습니다. 한쪽에 깎아지른 벼랑을 끼고 한없이 올라가는 길이 무척 스릴이 있습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이고, 가족들이 다른 곳에서 높은 데를 잘 안 올라가려고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침 이날이 제 생일이었는데, 생일날 별 일 있겠느냐고 하면서 끝까지 밀어붙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워낙 지대가 높아 정상에서는 고산병 증세로 머리가 약간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정상 부근에는 역시 눈이 남아 있고, 아래쪽은 숲이 좋습니다. 하산길에는 브레이크 과열을 막기 위해 쉬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마이닝 체험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시내에 있는 공군사관학교를 들러보시면 좋습니다. 신분증 검사하는 입구에서 비지터 센터까지 무려 5마일 가량 떨어져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씩씩한 사관생도들과 특이하게 생긴 채플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