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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위식意識이 깨어나야 국민의식도 바뀐다.
2014년 4월30일 박근혜 대통령은 쌓이고 쌓여온 적폐(積弊)를 집권 초에 못잡은게 恨"이란 말로 '세월호'분향소를 찾아 고개
숙인 다음 날인 5월2일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데 국민의 큰 희생이 있어 대통령으로써 마음의 상태가 참으로
참담한 "심경心境 이라는 말로 가족을 잃은 아픔이 어떤지 잘 알고 저도 부모님을 흉탄에 잃어 희망과"삶"을 다 포기할 정도로
밑 바닥까지 내렸갔었다"며'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정을 종교지도자들에게 밝혔다.
그러면서'세월호'사고 수습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유언비어가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퍼짐으로써 국민과 실종자 가족들의 아픈
마음에 상처를 주고 사회 혼란이 일어난 것은 더 가슴 아픈 일이라며 "정부가 더 신뢰(信賴)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그러면서 가족을 잃은 아픈 마음을 겪어 보아서 잘 알고 있고 국민의 큰 희생이 있어 참으로 참담한 마음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우리가 겪은 "삶"은 고통과 아픔이 쌓이고 쌓인 잊을수 없는 고통(苦痛)의 역사다.
1945년 8월15일은 일본이 항복한 날이며 36년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난 1948년 8월15일이 대한민국 건국 탄생일이다.
남북이 갈라진 1945년~1948년 사이에 한반도는 외세에 의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립한"적화" 야욕은 김일성의 작품이다.
비극적인"삶"을 타고난 비운의 국민들인 우리들,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고통스런 "삶이" 대물림 된 것이다.
결코 잊어서도 않돼는 자유를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지켜 내야 할 책임(責任)과 의무(義務)를 타고난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1950년 6월25일 "잊을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의 주범인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 이후 1960년 발췌개헌에 의한 종신 대통령제
가 문제가 된 4.19 혁명으로 수 많은 젊은 학생들이 희생된 "피"로 지킨 대한민국 민주주의 가치인 자유를 오남용 해선 않된다.
전쟁에 지친 우리들 삶에 보리고개의 궁픽과 맛물린 정치불안 및 사회적 병고, 모든 것이 어수선하고 쇠약해진 시기였다.
1961년 5.16 군사혁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희망을 노래했고, 우리들 삶에 온기가 돌면서 고달픈 병고가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배고픈 설음의 "한"풀이였다.
1964~1973년까지 8년간의 자유월남 전쟁파병 같은 "피"의 대가로 다져진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와 자유를 방종(放縱 )했다.
다시말해 제멋대로 행동하며 꺼리낌 없는 정치권력 편에 서서 이간질로 윤리(倫理)원칙과 윤리적 행위를 훼손시킨 것이다.
사람이 이익만을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미래에 피해를 주지 않게 하는 것과 인간의 "삶"을 받쳐주는 사상 도덕규범이 깨졌다.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주의 와 자본주의 그리고 자유를 선택한 국민인데 "편(編)가르는 이익 추구로 "恨"만 쌓여 간 것이다.
북한 김일성의 야욕(野慾)에 사람들은 "삶"이 극명(克明)하게 갈라져 통한의 "恨"이 쌓이고 쌓여 원수로 변한 현실에 부딪치자
달래도 보고 퍼주기도 하면서 화회(和會)를 모색(摸索)해 보았지만 상대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억지(抑止)주장을 펴 깨졌다.
전쟁에 실패한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은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그렇듯 한 우리끼리 한 민족을 내 세워 무장공비 남파에서
납치·테러·협박·폭침·공갈·포격도 모자라 "핵"무장을 한 인간 말종 집단의 세습 독제자가 만든 恨'은 대한민국 국민의"恨'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이던 소련이 1991년에 망하고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받아 들이며 개혁개방 정책을 펴 발전하고 북한의 세습
정권은 사이비 종교 독제자를 위해 북한 사람들의"삶을 픽박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에 위해를 가하며 편법 갈취에 혈안이 됐다.
1968년 8월23일 통일혁명당 사건도 북한 간첩들이 밀입국 시켜 대한민국 엘리트들을 돈으로 매수해 "쇠뇌" 시키고 1968년 11월
2일 강원도 평창에 잠수정을 침투시킨 120명의 무장공비가 울진 삼척에 침투해 민간 복장을 한 이들은 주민들을 모아 놓고 북한
선전책자를 나누어 주며 인민유격대 가입을 종용하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외치던 이승복(10세)어린이를 살해하고 도주
하던 무장공비들 중 7명을 생포하고 2개월의 소탕작전 끝에 113명 전원을 사살하고 아군 피해는 군인·경찰·민간인 포함 20명이다.
계속된 도발은 1969년 3월16일 주문진 어선 통제소에 난입해 "우리는 인민유격대"라며 강순경을 살해하고 1969년 6월8일 삼척군
북평항 해안가 괴선박 출몰로 교전 중 북한제 82미리 무반동포에 민간인 이대진씨 일가족 5명이 포탄에 맞아 전원 사망했다.
동년 12월11일 위장 고정간첩들이 강릉 자혜 병원장 채헌덕·조창희 와 부 조종사 최석만 등이 대한항공 YS-11기 납치해 66일 만에
승객 39명은 판문점을 통해 송환 했지만 승무원 11명을 억류 하면서 승무원들이 월북 했다며 거부해 남북 적십자 예비 접촉이 이루
어져 1970년 쌍방 고위급 인사 비밀접촉 후 71년 8월12일 초안에 합의 72년 7월4일 남북 고위급 인사가 서명한 남·북 공동합의서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된 남북이 합의한 약속이였다.
1972년 남북한이 7개항의 합의문에 남쪽의 이후락 중앙정보 부장 북쪽은 조직 지도부장 김영주가 서명한 남북공동 합의문이다.
남북 쌍방 간 긴장 상태 완화,중상 비방 중지,무장도발 중지, 교류실시,적십자 회담 협조,직통 전화개설,합의 사항도 약속했다.
그러나 1973년 8월28일 제4차 회의를 앞두고 북한이 일방적인 대화중단을 선언 하면서 이 회의는 더 이상 진전 없이 깨졌다.
1974년 8월15일 광복절 29주년 기념식장에서 북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총탄이 빗나가 육영수
여사 머리를 관통했고 유탄에 합창단 여학생이 숨지고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74년 5월에 대일 공작선 만경봉 호에서 지령받고
권총은 일본 경찰서에서 훔치고 일본인이 여권을 위조한 사실이 밝혀져 한·일 관계가 냉각된 과거사와 겹친 한국인의"한"이다.
1974년 11월15일 군사분계선 남측지역을 순찰한던 구중섭 중사가 지표의 수증기를 발견하고 조사하자 북측 초소에서 3백여발의
기관총 사격을 가해와 1시간 15분 동안 교전이 벌어졌고 북한의 음흉한 땅굴 야욕이 만천하에 폭로 됐고 국민들도 공포에 떨었다.
1975년 3월19일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초병이 땅속의 폭음 소리에 발견한 제2 땅굴도 남침 야욕 땅굴이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 내 유엔군 초소 부근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 미군장교 2명이 북한군 도끼에 살해됐다.
이 사건으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까지 치닫자 북한 김일성은 유엔군 측에'각서'형태의 사과를 미국이 받아 들이면서 끝났다.
북한 김일성의 남침 야욕을 꺽고 북한 인민들을 고통의 "삶"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철호의 기회였는데 시원 섭섭함이 남았다.
아쉬움이 쌓이고 쌓인 통한의 "한"으로 기록하고 싶다.!
1976년 9월16일 강원도 대포동 해안에 좌초된 북한 소형 잠수함을 택시기사 이진규씨의 신고로 무장간첩들이 쾌방산으로 도주
하던 4명 중 3명을 사살, 1명 생포, 나머지 함장을 포함한 11명은 잠수함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 부 함장도 도주하다 사살 당하
고 생포된 공비 이광수는 조사를 받으면서 간첩 5명 승무원이 15명 이라고 진술하면서 증언과 같이 사건을 종결한 것이다.
1977년 8월1일~1978년 1월14일 연예인 납치도 김정일의 지시에 1986년 서방세계로 탈출한 최은희씨 부부가 납치전모를 밝혔다.
1978년 10월17일 북한이 파들어 온 판문점 비무장 지대 남쪽 4km 지점에서 발견된 회량용 제3 땅굴도 수도권을 노린 땅굴이다.
김일성의 남침 야욕의 병색이 깊어 그 아들 김정일까지 전염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탄생시켜 권력싸움에 희생됐다.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궁정동 안가에서 경호실장(김재규)와 권력 다툼을 벌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으로 시해
하면서 사형직전 까지 민주회복 국민혁명을 주장해 우리사회는 태풍의 회오리 속에 휘말리며 최규화 국무총리를 통일주체 국민회의
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헌법 계정(啓程)절차을 거친 새 헌법에 따라 1년 안에 선거를 실시 한다는 정치스케줄을 밝혔다.
1980년 5월18일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학생들의 가두시위가 확산되자 국가비상대책 위원회가 탄생하고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전남대 학생시위는 시민들이 합세해 이를 막는 군경의 미숙한 진압 방법과 충돌해 사태가 악화되자 8월16일 최규화 대통령의 하야
에 따라 전두환 대통령의 제5공화국은 뒤쪽의 정치상황에 따른 사회개혁 운동을 펼치며 사회악 제거와 서민생활에 치중했다.
이렇게 시작된 80년 대는 통금해제로 심야의 거리풍속도에 활기가 있었고 82년의 반미감정 촉발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일본
교과서에 "한국침략(侵略)"을 진출(進出)로 표시한 규탄시위는 독립기념관 건립 모금운동으로 이어져 충남 옥천면에 세워진 것이다.
1982년 9월1일 공산권 소련 전투기가 대한항공 점보 여객기를 영해침범 이유로 무고한 승객 269명을 미사일로 공격해 전원사망했다.
1983년 2월25일 북한 최신 전투기 미그19기 조종사 이웅평(29)대위가 로케트 포 사격훈련 편대를 이탈하여 대한민국에 귀순했다.
1983년 6웡30일 KBS-TV가 기획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은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했고 8월12일에 관·민·은행 합작 비리가
적발되 29명이 구속되자 대구의 광명 그룹이 561억의 은행 빚을 지고 도산하면서 지역경제와 정치권 먹이 사슬이 밝혀지기도 했다.
1983년 10월9일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 순방의 일환(一環)인 버마 방문 길에 버마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어지는 "아웅산 묘소"에
북한 특수요원이 묘소 지붕위에 폭탄을 설치해 대통령을 기다리던 한국각료 17인이 순직하고 수행원 14명이 부상당하고 순직했다.
이 사건으로 북한은 국제사회로 부터 비난과 냉대가 이어지자 북한은 날조와"자작극"이라며 부인할 때 북한의 살인행위를 저지하는
보복조치로 우리군부의 움직임이 있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책임을 지닌 전두환 대통령이 인내심(忍耐心)을 갖고 참고 참은
사실도 밝혀 졌고 버마정부가 범인을 생포하고 재판과정에서 범인들의 자백과 증거물 들로 입증(立證)시켜 UN은 대북제재 결의안
을 통과시키면서 압박 결과로 북한은 국제사회인 공존공영(共存共榮)대상에서 기피(忌避)하는 국제미아(彌阿)가 되는 길을 택했다.
1983년 12월3일 부산 다대포 근해에서 남파간첩을 내려 놓고 귀환하던 반 잠수정을 격침시켰다.1985년 10월20일 부산 청사포 바다
에 침투한 반 잠수정을 격침시켜 북한 잠수복 3벌을 수거하였고, 2년 후에 우리 해군은 150m 해저에서 반정수정을 인양해 전시했다.
1986년 제10회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은 대한민국을 한단계 도약시킨 성공적인 아시안 게임에 힘입은 대한민국 경제는 흑자
시대로 3저 현상(저유가·저금리·달러약세)덕분에 국내경기 불항 탈출로 실질 경제성장 률12.2%에 달한 고도성장(高度成長)을 달성
하면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아시아의"용"이란 호칭으로 이름표를 붙인 수입된 문화와 정치권 욕구는 국민의식구조를 바꾸게 했다.
1987년 6월29일 정치권의 직선제 투쟁과 맞물린 개헌헌법 담임제가 이행되면서 제13대 노태우 대통령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실현된 것이다. 장기집권의 폐단을 막은 쾌거는 분열(分裂)로 양분(養分)된 보수(保守)진보(進步)로 갈라진 마음
은 북한의 야욕을 의식한 변화를 반대하며 지키자는 옹호(擁護)론과 어느 정도의 희생이 따르지만 합리적인 변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우리국민의식은 민생을 위한 정치권이 한 마음의 강력한 정치을"원했지만 정치관행(慣行)에 매달린 물태우란 별명으로 비아냥 댔다.
한편 북한 독제자들의 관심 야욕은 변하지 않았고 호시탐탐(虎視眈眈) 남침을 위한 도발(挑發)과 테러에 몰두하고 있었다.
1987년 11월29일 대한항공 KAL858편 보잉707 기가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방콕을 경유해 귀항 중 공중폭발했다.
중동권 바레인 당국의 조사로 밝혀진 신이치와 마유미로 위장한 일본인이 북한 공작원 김승일(70)김현희(26)로 아랍 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서 탑승해 바레인에서 술로 위장한 시한폭탄을 기내에 두고 바레인에서 요르단 행 환승 구역에 머물다 KAL기
가 공중폭발하자 탑승객 조사로 마유미(김현희)신병과 신이치(김승일 자살)시체·암호문·독약켑슬의 증거물로 밝혀진 테러다.
압송된 김현희 조사에서 밝혀진 끔찍한 살인행위는 북한독제자 김정일 지시에 의한 테러로 전 세계에 충격과 분노을 일으켰다.
이 사건도 김일성의 권력을 승계한 아들이 과시한 김정일의 테러로 파괴적 충동을 참지 못한 시기심(猜忌心)을 보여준 환자였다.
1991년 9월17일 남북한이 제46차 유엔총회에서 옵서버 국가의 설음에서 벗어나 정 회원국으로 승인받고 73년 8월에 깨진 남북한
불가침 합의서가 분단 46년 만에 공식문서로 타결돼 전쟁공포심도 사라진 거리는 활기로 넘친 동년12월13일 공산권 소련이 모락
하면서 75년을 휘날리던 낫과 망치가 사라진 소련에서 러시아로 국명이 바뀌자 뒤 따르던 세계 공산권이 자본주의로 돌아섰다.
진귀(珍貴)하게도 북한은 자본주의가 무서워서 굿세게 빗장을 걸어 잠근 유일한 독제국가로 남아 고립과 기아를 자초 한 것이다.
1992년 12월18일 집권(민자)당 후보인 김영삼 제14대 대통령은 "신한국 창조"을 위한 부정 부폐척결·경제활성화·국가기강 확립을
내세운 개혁칼날은 정치권 먹이사슬은 눈 감고 지난 정부 실정에 치중하면서 아들이 개입한 특헤 대출비리 여파로 IMF가 닥처와
한국 경재는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하고 실업 대란은 가정 파탄을 일으켜 눈물 없이 볼수없는 '눈물의 비디오'가 한국을 대변했다.
1994년 7월8일 피폐해진 북한 경제를 살리고 내부 결속을 위한 "천리마 운동'이 빚을 내지 못한 김일성은 남침 야욕도 불발되자
화병(火病)을 이기지 못하고 7월25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망하자 뒤를 이은 김정일도 "고난의 행군"이란 구호로 인민들의
희생을 강요한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살며 싸워 나가자며 독려(督勵)했으나 국제적 고립과 기아(飢餓)로 조폭집단 두목이 됐다.
1996년 초에 북한 외교관 김경호씨 일가족 17명이 망명한 것을 시발로 54명의 북한 주민들이 체제불만과 기아로 탈북해 정착했다.
1997년 4월20일 북한 주체사상을 체계화 시킨 황장엽(72)비서가 부인(박승옥씨)와 2남1여를 두고 측근인 김덕흥씨와 망명했다.
황씨가 남한에 납치 됐다고 주장한 북한은 남아 있던 친인척 100여 명을 숙청하고 '변절자여 갈 테면 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1998년 2월25일 제15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 전반의 개혁으로 경재난 극복·국민화합 실현·법과 질서 수호 등의 국가적
과제와 남북 화해 협력 교류 활성화를 제시하고 외환 위기를 넘기고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 정상회담 등의 화해협력 진전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조성 등 정당 출신 최규선 비리는 대통령의 아들 김흥걸씨와 각종 이권에 개입한 케이트 및
법조인 비리,옷 로비 사건,씨랜드 청소년 화재,호프집 참사,대한항공 활주로 이탈 사고,용산 미군기지 독극물 방류 사건은 사법부
의 무시 행위로 반미 감정을 고조시키고 북한 달래기의 퍼 주기식 포용정책은 무력 도발과"핵"실험은 막지 못해 안보가 흔들렸다.
1998년 6월22일 북한 유고급 잠수정이 강원도 속초시 동쪽 해상에 어민들이 설치한 꽁치잡이 어망에 걸려 공비 9명이 자살했다.
동년 7월 동해안 무장공비침투,11월 강화도 해안 간첩선 침투,12월 여수 앞바다 반잠수정 침투사건 등은 긴장조성 목적을 갖고
체제위기 극복을 위해 인민들 사상이완 상태를 결속시켜 한반도에 긴장을 통한 협상력을 높히려는 전술이란 전문가의 분석이다.
1999년 6월15일 북한 경비정 2척이 어뢰정 3척의 호위를 받으며 북방한계선(NLL)침범해 우리 해군의 밀어 내기식 충돌에 북한
경비정의 발포로 교전이 일어나 아군의 76mm포탄에 북한 어뢰정 1척이 침몰하고 나머지 어뢰정도 파손, 아군 피해는 없었다.
2002년 3월14일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 25명이 베이징 스패인 대사관에 진입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으로의 망명이 줄을 이었다.
2002년 6월29일 경기도 의정부 여중생 2명 신효순(14세)심미선양이 작전 중인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자,지위협정( SOFAO)개정
촟불시위로 열기가 고조된 가운데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해군 고속정 1척이 침몰, 30명이 전사했다.
2003년 2월25일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일성(一聲)은 권위주의 타파· 집단 이기주의·사회적 갈등·분열 등을 해소해고 막상
전쟁이 나면 국군 지휘권도 한국 대통령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 전작권 논란은 보수와 진보 싸음으로 번지면서 국민들도 편이
갈리었고 "젊은이 들이 군대가서 썩고"있다는 발언, 여야를 상대로 한 대선 불법자금의 단초(端初)를 제공해 한나라 당은"차"떼기
당 노 대통령의 측근들 줄줄이 구속, 민주당이 분열, 열린 우리당 창당 후 대북 송금 사건이 불거진 DJ정부는 단돈 1달러도 북한
에 주지 않았다고 호원(呼寃)한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지원씨의 장담(壯談 )은 "새 빨간 거짓말"로 드러나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
비자금 제공 진술후 투신해'햇볕정책'은 순수성을 잃었고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발언에 국회의 탄핵정국은 난타(亂打)전이 됐다.
정치권의 편가르기 싸움에 가세한 음해(陰害)는 국적(國籍)과 국위(國威)도 실종(失踪)된 음모(陰謀)론에 국민들은 쉽게 빠졌다.
원칙(原則)인 행동과 이론(理論)의 일관성(一貫性)이 지켜지지 않아 기본적인 도덕(道德)과 윤리적(倫理的) 행위가 깨진 것이다.
2004년 4월22일 북한 신의주 용천역에서 석유와 LPG가스를 싫은 열차가 충돌해 수천 명이 죽고 엄청난 재산피해로 국제사회와
대한민국은 물론 복구 지원에 동참한 국제사회의 구호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동체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지 못했다.
2008년 12월19일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탄생한 정국은 보수와 진보싸움에서 보수가 승리한 표심의 심판(審判)결과였다.
패배한 진보와 좌파 인사들은 승복(承服)하지 않고 음흉(陰凶)한 방법을 동원해 전정부가 추진한 수입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자
가세한 공영방송은 괴담을 만들어 부풀린 "촞불시위"는 반정부(反政府)타도(打倒)로 변질된 시위는 국가존폐(存廢)를 흔들었다.
진보와 좌파가 주장한 '정의'가 패배한 역사'가 아니라 자유민주의와 시장경제·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위에 대한민국을 세워
민주화·산업화를 모두 성취한 "성공의 역사"로 자리 매김 하자는 지식인들의 주장에 좌·편향적 고교 교과서가 문제로 지적됐다.
자유(自由)의 오남용에 규제적(規制的)이고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일정한 윤리 원칙과 도덕적 윤리 행위(行爲)가 요구된 것이다.
2009년 4월27일 현대사에 굵은 자취를 남긴 김수환 추기경이 "고맙습니다"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선종하고 검찰수사
를 받던 노무현(5.23)전·대통령이 스스로 절벽을 뛰어 내려 목숨을 끊고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격랑이 일어난
뒤를 이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노환(老患)으로 운명 하면서 애도(哀悼)의 마음을 담은 가운데 우리사회는 평온(平穩)을 회복했다.
2009년 7월11일 "햇볕정책'의 부산물로 남북이 공존(共存)하자고 만든 금강산 관광에 박왕자(여53)씨가 북한군 총에 맞아 숨지자
통일부는 진상(眞相 )규명(糾明)이 될때까지 금강산 관광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자,賊反荷杖(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북한은 오히려
불필요한 남쪽 인원을 추방(追放)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8월11일 금강산 내 관광 면회소 인원이 모두 철수했고, 북한 장성택은
개성공단 폐쇠조치를 통보해 11월28일 개성공단 남측 인원 500명이 철수해 남북의 신경전은 팽팽히 맞서 냉각기류를 맞이했다.
잘못을 저지른 쪽은 북한인데 사과는 못할 망정 성내며 화를 내는 저질 집단인 조폭들이나 깡패들의 행동과 너무나 닮은 북한이다.
2010년 3월26일 대한민국 천안함(초계함PCC-772)이 훈련중 어뢰에 피격돼 승선장병 104명 중 58명 구조,실종사망 46명,젊은장병들
이 국가에 충성하고 조국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다 참변을 당해 정부는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간 합동 조사단 오스트레일리아,미국,
스웨덴,영국 등 5개국 전문가 24 명이 조사해 천안함은 북한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정조사 한다는 국회의원은 국방장관 표정을 보니 생존자를 구출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하면서 구조 잠수는 48명인대 46명은
물위에 있고 2명만 들어 가느냐고 호통치는 야당의원, 유가족 위로 한다'며 사진찍다 "선거운동 하러 왔느냐 "핀잔 듣고" 쪽겨나고'
나서야 할 때와 말할 순서와 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악의적인 선전 선동도 구분 못한 사실을 왜곡시킨 북한과 너무나 닮았다.
이에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로 절단되어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정치권의 발목 잡기에 이단아 들이 가세해 국가 안보가 풍랑에 휩쓸리면서 김태영 국방장관이 해임 됐다.
북한은 "특대형 모략극"이며 천안함은 좌초(坐礁)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주장한 좌초는 반잠수정 등을 이용해 백령도 근해로 침투해 사전에 기뢰를 매설해 두었는데 천안함이 이를 모르고 지나가다
기뢰가 작동해서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다.특대형 모략극이며 좌초했다고 주장한 거짓말이 틀통난 북한의 짖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런데도 국회의원의 국정조사는 악의적인 선동 유언비어에 현혹되어 천안함은 한미합동 군사 훈련중 오폭으로 침몰했다는 것이다.
근거도 없이 할 말 못할 말도 구분 못한 정보 접근에 특권을 갖인 의원들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비공개 정보를 듣기가 무섭게 다투어
한미간에 공유된 정보와 군의 송수신자 정보.시간정보가 포함된 교신내용을 어떤 형태로 든 노출한 행위는 북한을 이롭게 할 뿐이다.
우방국에 불신(不信)을 심어주고 국민의 생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 인식(認識)이 부족하면 북한의 도발과 테러에 束手無策이 된다.
북한은 해커 전문부대를 운영하며 남한 주요 사이트 및 여론조작 심리전을 벌이며 심지어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까지 마비시켰다.
이명박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고, 또 북한이었고,북한은 사과하고 관련자
들을 처벌하라고 하고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염원 때문에 참고 참아 왔으며 이제 달라 질 것이며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고 남북한
해운 합의서에 의해 허용된 북한 선박도 우리해역의 교통로도 이용할 수 없고,남북한 교역과 교류도 중단되며 우리국민의 모숨을
빼앗고 우리재산까지 몰수한 이상 교류 협력은 무의미 하고 앞으로 우리의 영해 영토를 무력 침범하면 자위권을 발동 하겠다 햇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 내지 끊임 없는 분열 획책에 흔들리지 않는 국가 안보를 강조하고,이제는 북한도 변해야 한다'며 변화를 촉구
하는 메시지를 보내자 탈북자들과 보수 인사들은 김정일을 거론하지 않아 불만스런 반응에 대북 조치로 심각한 타격을 전망했다.
이런 혼란(混亂) 중에 우리내부의 일부 정치인과 좌파인사 일부 언론 일부학자 들이 퍼트린 충돌설에 0.001%도 믿을수 없다는 강의
에 환호하고 박수치고 열광하는 모습에 대한민국의 안위가 흔들려 미래를 책임질 젊은 장병의 죽음이 아른 거려 참기조차 힘들었다.
전·뉴욕신문 도널드 커크 기자는 평화통일 자문회의 강연에서 천안함 침몰은 미국의 9·11테러 이후 미국인들이 그랬듯이 한국인들
도 일치 단결해서 침몰의 원인을 찾아 내서 대응책을 마련 해야 한다는 강연에 귀를 열고 주의 깊게 색여 들어야 할때가 된 것이다.
북한 조선통신 첫 공식반응은 남한당국은 외부 폭발이 틀림 없이 어뢰에 의해 일어 났으며 그 어뢰는 우리 북한 잠수정이나 반잠수
정에 의해 발사 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북 관련설을 날조해 유포 시키고 있다고 북한 TV가 인민들에게 남측이 허황하기 짝이 없는
북 관련설의 도수를 점점 더 높이면서 그 무슨 응징과 단호한 행동 국제사회를 통한 제재까지 모의하고 있다"면서 최악의 통치위기
에서 벗어나려는 속내이자 북남 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온 책임에서 벗어 나려는 어리석은 기도라고 주장한 아나운서는 이렇다
할 근거를 찾지 못한 상태라고 공언하고 의도적으로 북 관련설을 내돌리고 있는 역적패당의 가소로운 처사를 두고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었다,며 침묵한 이유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오폭설,피로 파괴설 등이 난무 하던 사건 초기엔 남남 갈등을 조장하다 빠져 나갈 구멍이 잇겠다고
생각 하다가 점차 북한의 소행임을 뒷 받침하는 정황들이 나오자 계속 침묵하다 간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판단 한것 같다고
말하고 북한 공식 기구가 나섰다면 도둑이 제발 저리다 는 인상을 풍긴 것이고, 2009년 11월 대청 해전의 패전 보복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담화문에 대한 북한은 스스로 잠수정 어뢰 폭발을 자백하고 북한의 통치위기 입장을 애둘러 댄 거짓말이다.
이런 술수에 말려들어 북한을 옹호하는 동조자들은 반드시 후회하고 통곡할 것이며 우리도 당하는데 지치고 인내심도 바닥났다.
북한식 불바다 남한도 할수 있다는 정치권의 용기에 국민들도 환호하고 찬사를 보내는 담합된 모습 만이 북한의 만행을 걲을수 있다.
무분별한 선동과 이기심인 나만 아니면 내 가족은 무사하기 때문에 조국의 장병들 생명을 담보로 한 특권을 쥔 정치인 퇴출 대상이다.
반대하는 야당도 있어야 하고 감시하는 국회를 부정하는 국민은 없지만 인명과 재산 피해를 당한 국민을 두고 북한을 옹호 두둔한
일부 야당 정치인 들은"햇볕 정책"의 시행착오가 천안함 사태로 나타난 사실을 국민은 알고 있고 말할 곳이 없어 침묵할 뿐이다.
무분별한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인들의 흉내를 낸 참여연대 간부 이태호,야당 추천 조사위원 신상철 등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된 UN
안보 문제를 논의 하던 안보리에 황당한 서한 때문에 외교 무대가 술렁 거렸다는 보도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해 파 김치가 됐다.
서한 내용은 한국 정부가 조사한 천안함 사건은 의혹 투성이며 이명박 정부의 정치 외교적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과 논쟁을
벌인 물 기둥에 대한 설득력이 없고 생존자나 부상자의 부상 정도도 어뢰 폭발에 의한 확실 하지 않으며 가스 터빈 실에 대한 조사
결과가 없는 발표를 서두를 이유가 있는가? 등 그동안 지겹도록 제기되고 해명된 내용 리포트 영문 번역 20 페이지의 분량이 란다.
북한과 가까운 베트남 및 비 이사국을 상대로 팩스로 보냈다고 한다.
눈도 감고 귀도 닫으면 어쩌란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82명이 승선하고 46명이 수장 당한 천안함을 외국 전문가들과 합동으로 내린 결론을 부인한 이들은 어떤 전문가 들인지 묻고 싶다.
북한의 정신병에 고막이 터지고 몸안의 납탄,폭약에 의한 화상, 어떤지 직접적인 경험을 한 고통은 사람을 절망 속에 밀어 넣었다.
목숨이 붙어 있어 연명할 뿐,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북한의 만행에 할말이 없다,김정일을 저주하는 악담에 옹호하면 지탄 받는다.
북한의 정신병이 또 발작 증세를 보였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천안함 폭침 8개월 만에 연평도를 포격한 것은 단절된 대화 국면을 노린 포격이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햇볕 정책 꿀맛"과 미아 신세로 체제 유지가 힘들자 강온 양면 전술로 위기를 벗어 나려는 도발에 우리군의 반격이 있자 약 1시간
만에 긑나면서 해병대원 2명 민간인 2명이 사망하고 해병대원 16명과 민간인 3명이 중경상을 입고 가옥 수십체가 불타고 대파됐다.
해병대 K-9 자주포가 불을 품었고 KF-16 전투기 2대가 출격하고 뒤를 이은 전투기 6대가 출격하자 공격이 없어 타격은 긑났다.
북한의 피해상황은 공식 발표가 없었고 떠도는 풍문에 의하면 북한 포사격 진지 뒤 막사가 대파 됐다는 풍문 뿐이다.
이제 더 이상의 도발과 테러는 용서가 않된다.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感情)이 받아 줄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K15 최신예 전투기 회항은 아쉬웠다. 우리를 시험하며 도발 수위를 높혀 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북한 미그23 전투기가 떴지만 F15기의 상대가 못된다고 전문가 들이 항상 말해 왔다.
공중전이 벌어져 北이 지면 도발엔 대가가 있다는 것을 김정일에게 보여 줄수 있었다.
전면전과 전쟁확전을 우려한 군수뇌부의 태만은 확전을 막을수 없고 계속 이대로 당하고 살아야 하고 군인은 군인 다워야 하고
전쟁을 겁내는 군인은 패장일 뿐이며 이런 군은 필요 없어 정부와 군은 국민들로 부터 냉대 당하고 비난 대상이 된다.
참을 많큼 참았고 "恨"이 쌓이고 쌓여서 격분(激忿)을 뛰어 넘어 외상 후 장애(障碍)를 격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19일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달리는 열차 안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 했다고 발표했다. 죄의 대가 였다.
북한은 기정일의 3남 김정은(29세)을 노동당 중앙 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위대한 영도자'혁명 위협의 계승'자로 추켜
세우며 3대 세습 왕조국 출범을 공식화 해 급사한 아버지가 못다한 기와집에 쌀밥에 고깃국,계승자인 김정은이 질머져야 한다.
결국 조폭집단을 계승한 마피아 집단의 두목이 된 것이다. 도발,테러,납치,폭침,포격,살인까지 계승된 김정은을 경계해야 한다.
2012년 12웡 12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미국 본토를 사거리로 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2013년 2월25일 보수파와 진보자파 양자 대결로 치러진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을 국정기조를 내걸고 출발하면서 야당의 반대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불투명 한
상태에서 내각이 온전하게 구성되지 않은 상태로 출법하면서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48%의 국민통합의 숙제을 떠 않았다.
2013년 12월 12일 북한의 실질적 2인자로 군림했던 김정은 고모부 장성택(2009.7.11.개성공단 폐쇠조치 명령)노동당 행정부장이
반노동당·반혁명 배신자로 낙인찍어 처형시켰다.
북한은 김정은 유일체제 확립에 걸림돌이 될수 있는 고모부를 제거하는 공포정치의 극치를 보여줘 내부 불안도 한층 고조됐다.
2014년 3월29일 북한군이 북방한계선(NLL)을 향해 포 사격훈련이라며 우리군에 통보하자 마자 500여발 포사격을 실시했다.
우리영해인 NLL에 100여발의 포탄이 떨어지자 우리해병대가 NLL북방을 향해 K9 자주포 300여발을 발사하면서 F15, F16 전투기
를 각각 2대씩 출격시키며 북한군 해안포 기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합동탄(JDAM)을 장착시키자 북한 MIG 29기 2대 등 4대를
발진시켜 남북 간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공중전 위기가 북한의 포 사격이 멈추면서 회향(廻向) 하기도 했다.
북한의 도발도 심상치 않은 가운데 북한의 정탐 중 추락된 무인기를 연달아 발견, 방공망이 뚫여 허점이 노출되 대책이 시급했다.
2014년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가 승객 476명과 과적화물로 인해 진도군 해상에서 치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구조된 인원 174명을 제외한 사망자는 269명으로 실종자 35명은 확인 중인 가운데 업친데 덮친 인재사고는 대한민국을 온통
슬픔속에 내몰고 곳곳에서 벌어진 촞불집회는 정부타도를 외치는 가운데 좌파 연대는 노골적인 망발을 해대면 집회를 주도했다.
북한 도발에 한올 한올 쌓인 외침(外侵)에 민란(民亂)을 겪었던 내치(內治)는 안보강화에 '힘이 몰리고 빨리 빨리 조급증은 선진화
에 쪽기면서 부실공사에 성수대교(1994년)붕괴사고, 안전무시 풍조, 대구 지하철 공사 LPG가스 폭발, 설마가 사람잡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에 익숙해진 안전(安全)불감증을 소홀히 한 원인도 시도 때도 없는 북한의 도발 문제에 해결책을 찾다 소홀히
했다.
"탓"할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총체적(總體的 )난관(難關)에 직면(直面)한 문제다.
얼키고 설킨 실타래을 풀듯 쌓이고 쌓여온 恨을 가슴에 품지 말고 다 같이 풀어야 한다.
우리시대에 겪은 우리들의 진솔(眞率)한 "삶"의 모습을 기록해 후대들에 참고가 되길 바라면서 안녕.....
첫댓글 짧게 요약하여 써줬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