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連理枝)로 나타나는 “사랑나무”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한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다. 알기 쉽게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다. 연리목은 가끔 만날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닿을 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 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땅속의 뿌리는 우리가 잘 볼 수 없어서 그렇지 이런 연리현상이 땅위의 줄기나 가지보다 훨씬 더 흔하게 일어난다. 좁은 공간에 서로 뒤엉켜 살다보니 맞닿을 기회가 많아서 이다. 연리근(連理根)이라고 불러야 하나 쓰지 않는 말이다. 베어버리고 남아있는 나무 등걸이 몇 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는 경우를 흔히 본다. 잘려지지 않은 옆의 나무와 뿌리가 연결되어 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주변은 너무 빨리 변해 가고 있다. 자고 나면 업그레이드를 생각해야하는 정보화의 세상은 그렇다 치고, 가장 전통적이고 우리다워야 할 사랑의 방식도 가치관도 오늘에서 어제를 몰라볼 만큼 달라지고 있다. 몇 년 전 이런 노래가 유행하였다.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사랑을 쓰다가 틀리면/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
그참! 사랑이 그렇게 연필로 썼다 지웠다할 만큼 가벼운 놀이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던 ‘쉰 세대’들은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점포맘보》라는 노래가사를 듣고 거의 기절할 지경에 이른다.
“같이 삽시다/살아봅시다/과연 우리 서로 잘 맞는지 어떤지 한번 살아봅시다.../점포맘보”
그러나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사랑은 바람처럼 지나가는 유행일 뿐이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사랑이라는 기본 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특히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부부의 연을 맺어 평생을 같이 하는 과정을 연리지로 승화시킨 옛 사람들의 사랑 방식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잔잔한 감동을 준다.
연리지가 말하는 사랑의 미학
중국 후한 말의 대 학자인 채옹이란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얼마 후 채옹의 방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차츰 두 나무는 맞닿아 연리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여기서는 연리지가 아니라 연리이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지나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 '연리지'란 말이 인용되면서는 남녀간의 변함없는 사랑의 뜻으로 더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서기736년 무혜왕비를 잃고 방황하던 56세의 현종은, 남도 아닌 자신의 열여덟 번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제왕이 하는 일에는 부끄러움은 없다고 생각한 왕조시대의 사람들이 지만 훗날 양귀비가 된 22살짜리 며느리와의 사랑놀음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비극으로 끝난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양귀비가 죽고 50여 년이 지난 서기806년, 유명한 시인 백거이(백낙천)에 의하여 장한가(長恨歌)라는 대서사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칠월칠일 장생전에서/깊은 밤 두 사람은 은밀한 약속을 하는 데/우리가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이승에서 다시 만나면 연리지(連理枝)가 되세...”라고 읊조렸다.
중국의 전설에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는 새라서 암수가 합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신화 속의 새이다. 연리지는 물론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 하나가 되는 현상을 남녀의 애틋하고 영원한 사랑과 비유한 말이다. 이후 수많은 중국인들의 사랑이야기에 연리지는 단골손님이 된다.
우리의 역사 속에도 연리지는 일찌감치 등장하는데, 남녀간 사랑의 뜻만이 아니라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선비들의 우정을 나타내기도 하였으며 여염에서는 이 나무에 빌면 부부사이가 좋아진다고 믿었다. 또 연리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연인이 그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바로 그 연인에게 상사병이 옮겨가기 때문인 것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내물왕 7년(362) 4월에 시조 묘의 나무가 연리 되었으며 고구려 양원왕 2년(546) 2월에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에도 광종 24년(973) 2월에 서울 덕서리에서 연리지가 났으며 성종 6년(987)에 충주에서도 연리지가 생겨났다고 하였다. 이처럼 연리지의 출현을 일일이 역사책에 기록할 만큼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생각한 것이다.
고려중기 이규보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의 고율시(古律詩)에도 “그대 비록 후배라 함께 공부 안 했으나/연리지 나무처럼 한 집안 형제 같네...”, “난새는 짝 잃으면 못 떠나고 방황하네/초목 중엔 연리지가 의좋기로 소문나니/ 꽃 마음은 한가지나 꽃답기는 다르도다/부부가 없다면 짝이 어찌 될 것이며/형제 또한 없다면 기러기가 어이 줄서가랴...”하였다. 친구사이의 우정과 혈육의 정을 비유한 노래이다.
천년만의 모습, 우리 앞에...
사랑의 상징으로서 예부터 희귀하고 기쁜 일로 생각한 연리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정확하게는 자진하여 나타나준 것이 아니라 수 십 년에 걸쳐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는 현장이 들 킨 것이다. 지난해 7월, 경북 청도군 운문면 지촌리라는 운문호 옆의 작은 마을에서는 오랜만에 귀향한 몇 사람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란히 선 소나무 두 그루가 가지를 내밀어 서로 꼭 붙잡고 있는 “이상한 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들여준다. 전설처럼 알려져 오던 신비스런 연리지(連理枝)의 진짜 모습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이가 4-50년쯤으로 추정되는 이 연리지 소나무는 자동차 도로에서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깊은 산 속의 북쪽 비탈에 나란히 서 있다. 땅위 약 2.6m높이의 굵은 가지 하나가 뻗어 아래쪽에 있는 나무를 꼭 잡고 있다. 손을 내민 쪽의 소나무가 지름 한 뼘 정도에 키 10여m정도이며, 한 발짝 떨어져 내민 손을 반갑게 잡고있는 나무는 이보다 조금 작다. 마치 등산에 나선 부부가 비탈길에서 넘어지려는 아내 손을 꼭 잡아주자, 가슴으로 손을 감싸안고 정겹게 남편을 올려다보는 형국이다. 이 연리지 나무는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온 순수 우리 소나무라는 점에서도 더욱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조금 떨어져 보면 H자를 속 빼 닮았다. 그대로 현대그룹의 심벌 마크 같다.
그 외 전국적으로 알려진 연리지는 충남 예산의 공주산업대학 본관 앞에 있는 두 그루의 히말라야시다 중 왼 쪽 나무의 첫 번째 가지와 두 번째 가지가 서로 붙어 있다. 아래가지는 윗가지를 바쳐주고, 윗가지는 아래가지를 보듬어 안고 있는 모양이 아름답다. 이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이어진 것이 아니라, 같은 나무의 가지가 서로 연결된 것이므로 전형적인 연리지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 전북 고창군 해리면 동호해수욕장에 자라는 아름드리 곰솔은 뿌리목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 옛날에는 뿌리가 서로 이어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노출되어 가지처럼 된 것으로 생각된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사무소 앞 마당에는 가지가 이어진 것이 아니라 소나무가 줄기가 비꼬여 가면서 서로 붙어있는 연리목이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다!
연리가 되는 과정은 이렇다. 가까이 심겨진 두 나무의 줄기나 가지는 자라는 동안 지름이 차츰 굵어져 맞닿게 된다. 양쪽 나무에서 각각 해마다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므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서로를 심하게 압박한다. 우선 맞닿은 부분의 껍질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여 파괴되거나 안쪽으로 밀려나고 나면 맨살이 그대로 맞부딪친다. 남남으로 만난 둘 사이에는 사랑의 스킨십이 이루어지면서 물리적이 맞닿음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결합을 준비한다. 먼저 지름생장의 근원인 부름켜가 조금씩 이어지고 나면, 다음은 양분을 공급하는 유세포(柔細胞)가 서로를 섞어버린다. 마지막으로 나머지의 보통 세포들이 공동으로 살아갈 공간을 잡아가면 두 몸이 한 몸이 되는 연리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고욤나무에 감나무 접을 붙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런 나무를 잘라보면 마치 쌍 가마를 보고 있는 듯 두 개의 나이테 두름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두 나무 세포의 이어짐은 적어도 10여 년이 넘게 걸리고 결국은 한 나무와 꼭 같아진다. 양분과 수분을 서로 주고받음은 물론이고 한쪽나무를 잘라버려도 광합성을 하는 다른 나무의 양분 공급을 받아 살아 갈 수 있다.
연리목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4~5년 생 정도의 같은 종류의 어린 나무 두 그루를 구하여 한 걸음 정도 떨어지게 심고 뿌리가 완전히 내리기를 기다린다. 두 나무가 맞닿을 줄기 부분의 껍질을 약간 긁어내고 탄력 있는 튼튼한 비닐 끈으로 묶어두면 연리목이 만들어진다. 나무의 종류는 자귀나무나 음나무가 좋다.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마주 보고 벌려진 잎이 증산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닫아버리는 현상을 두고 의좋은 부부를 상징하며, 음나무는 사랑을 방해하는 귀신을 쫓아낸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나무와 참나무처럼 종류가 다른 나무는 수 십 년이 아니라 수 백 년을 같이 붙어 있어도 그냥 맞대고 있을 따름이지 결코 연리가 되지 않는다. 세포의 종류나 배열이 서로 달라 부름켜가 연결될 수 없으며 양분 교환은 어림없는 일이다. 이런 나무는 엄밀히 말하여 ‘연리’가 아니다. 완전한 연리란 같은 종(種)의 나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같은 나무가 아니면서 서로 의좋게 붙어 있는 나무는 충남 당진군 고대면 당진포 3리의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를 비롯하여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향소1리의 음나무와 느티나무 등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랑으로 승화
옛 사람들은 덕망 있는 군주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신비스런 봉황새가 출현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낙향한 선비들은 벽오동나무 한 그루를 심어두고 봉황새가 내려앉는 날을 기다렸다. 사실은 임금님이 잊지 않고 불러줄 ‘사랑의 메시지’를 고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긴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좀처럼 날라 올 것 같지 않은 상상의 새 봉황을 기다리기보다는 우리 앞에 분명히 모습을 보일 줄 아는 연리지를 기다리는 것이 더 현실적이었다.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 초만 하여도 드물게나마 모습을 보이던 연리지가 이후 천년을 넘긴 긴긴 세월까지 어인 일인지 한번도 그 귀한 자태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동안 아예 연리지는 생기지 않았던지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인지, 우리의 기록에 연리지 ‘현물’이 나타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처럼 사랑의 인연이 천년 뒤에 나타나듯이, 고려 성종 6년(987) 이후 기록상으로는 처음 모습을 보인 연리지의 출현은 21세기의 첨단 과학문명 시대에 들어선 오늘에도 전설로만이 아니라 분명 길조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래서 새롭게 찾아진 연리지가 연인사이, 부모와 자식사이, 통치자와 국민사이, 부자와 빈자사이 모두를 묶어 ‘사랑나무’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