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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눈바람 산행기(2006.2.18)
어제 몰려왔던 추위가 설설 풀리는지 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새벽녘, 배낭을 넣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만원을 이룬 버스는 오전7시가 5분정도 지난 시각에 먼 여행길에 나선다. 왕복 6백㎞에 육박하는 장도를 당일(1일) 산행으로 결정하기까지에는 회장님과 임원들의 ‘고뇌에 찬 결단’(?)이 있었다. 매년 겨울 눈 산의 맏형격인 소백산으로의 1박2일에 걸친 행보는 거의 관례화 될 정도로 소백산은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눈이 많이 쌓이면서도 그렇게 험하지 않고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게 소백을 찾는 산악인들의 가장 큰 이유이다.
소백산은 산괴(山塊)가 한 덩어리로 뭉친 육산(肉山)으로, 소잔등같이 부드러운 능선에서 비롯된 여성적인 풍모를 지니는 산으로 풍수지리(風水地理)의 길지(吉地)인 양백지간(兩白之間) 경상도 풍기가 남쪽에, 강원도 영월이 북쪽에, 충청도 단양이 서쪽에 있는 삼도(三道)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산행은 자주 다니는 희방사나 비로사 길이 아닌 단양의 어의실 새밭에서 시작하여 비로봉을 오르는 최단코스를 택했다.
신대구-부산 고속도로의 위용을 실감하고 중앙고속도로를 힘차게 내뺀 관광버스는 단양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한창 공사 중인 5번국도를 따라 상진대교를 지나 단양읍내로 들어선다. 원래 충청북도 단양은 충주호 댐을 건설하면서 수몰(水沒)되고 지금의 신단양이 고지(高地)로 옮겨 건설 되었는데 영월 동강이 소백산 물줄기들과 마주쳐 만들어낸 남한강이 충주호로 흘러 들어가는 곳으로 마치 섬을 연상할 정도로 사방이 넓은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단양일대는 카르스트 지형으로 석회석이 많이 매장되어 고수동굴과 같은 석회석동굴이 많이 있고 연간 1560만톤의 석회석을 생산하고 한일, 성신, 현대시멘트 등의 공장에서 나오는 시멘트는 연간 1000만톤이 넘어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3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한다.
차는 소백산 구봉팔문의 맨 남쪽에 있는 새밭문안에 들어선다. 비로봉으로 향하는 제일 가까운 길이 열린 이곳은 59번 국도에서 국망천을 따라 10㎞ 정도 들어와야 되는 곳에 있으며 길은 비로봉식당이 있는 곳에서 끝이 난다.
MBC 라고 적힌 노란색버스가 시동을 켠 채 대어진 곳을 지나, 눈이 얼어붙은 식당 주차장에서 아이젠(크렘폰)을 차느라고 회원들은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20분도 넘게 시간이 흘러 당초 예정했던 10시 산행출발시각을 훨씬 넘긴 11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회원들은 점호를 받을 수 있었다.
앞에 산행대장, 중간에 최남기씨, 맨 뒤에 차경찬씨와 김동찬씨, 이영진씨가 회원을 맡기로 한다. 눈이 녹아 다시 얼어붙고 그 위에 새 눈이 쌓이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바람에 등산로는 최악의 상태에 가까운 빙판길이다. 44명이라는 대부대가 일렬로 늘어서서 출발하는 과정은 참으로 장관이다. 형형색색의 옷차림에 코마스크까지 등장하여 레저스포츠 의상의 전시장 같은 분위기다. 머리는 후드나 빵모자 털모자 벙거지 귀 가림 모자를 쓰고 이마는 수건으로 질끈 묶었는가 하면 얼굴은 마스크로 눈은 갈색선글라스로, 목도리나 엑스카프 수건으로 감싼 목에 바람막이재킷이나 두꺼운 다운파커와 검은색바지가 주종을 이룬다. 대부대가 이동하는 소리는 아이젠의 마찰음으로 군화를 신은 군인들의 행진 소리 이상으로 요란하다. 하얀 눈길이 점점 짙어지는 등산로가 나타나고 이어서 움푹 숨어있는 어의곡매표소에 닫자 다시 정렬을 하고 인원을 점고한다. 동그라미산악회와 수도권산악회의 인원들이 뒤섞여 대혼란을 이루는 가운데 부산광역시청산악회 스티커를 붙인 회원들이 속속 열을 지어 제자리에 머물다가 다시 출발한다.
500m 간격으로 세운 흰색의 구조표지목과 새카만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비로봉까지는 통신 불능지역이라는 안내가 뒤따른다. 경운기가 다닐 정도로 넓은 길은 나무다리와 통나무계단을 번갈아 오르는 사이에 어느덧 700m의 고도를 넘어선다. 얼어붙은 눈길에 아이젠을 팍팍 찍어가며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푹 숙인 채 비로봉을 향한 오름짓을 계속한다. 하얀 눈 숲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부시게 만드는 이 계곡의 꼭대기에 비로봉이 있는 것이다. 팀이 서로 엉기면서 휴식할 장소가 마땅히 없어 길가에 두 번, 1200m 능선과 1300m 능선에 선채로 쉬면서 뒤에 오르는 조를 기다려 보조를 맞춘다.
쉴 때 마다 회원들은 배가 고픈지 서로 나눠주는 떡과 과자, 과일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먹는다. 권리금 없이 차지한 1300m 능선의 쉼자리에서는 바람막이 옷과 얼굴보호 채비를 단단히 하라고 일러준다. 내려오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을 날려 보낼 정도의 거센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오후 1시쯤 되어서 국망봉과 갈리는 백두대간 주능선에 이르자 바람이 휘몰아친다. 왼쪽으로 가면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국망봉, 상월봉을 거쳐 늦은맥이재에 닿게 되고 이곳에서 구인사 가는 길과 형제봉, 고치령 가는 길로 나누어진다.
구인사는 우리나라 천태종의 본산(本山)으로 천태종 중흥조(中興祖)인 상월원각대조사가 1966년 중창한 절로 단양군 영춘면 백자동학, 구봉팔문의 연화지(蓮花地)에 자리 잡고 있다. 산봉우리마다 연꽃으로 벙글고 골짜기 그대로가 청정도량인 곳이라 했던가.(인용했습니다) 국망봉과 신선봉의 북쪽 산기슭에 있는 구봉팔문(九峯八門)은 희귀 지형을 형성한 암봉지대이다. 9개의 봉우리가 거의 같은 높이로 솟아 있는데 이들 암봉(岩峯)이 한 능선에 있는 연봉(連峰)이 아니라 각각 다른 능선의 봉우리라는 것이며, 봉우리사이에는 역시 높이가 비슷한 협곡(峽谷)이 형성되어 있고 그중에는 마치 산문(山門)처럼 그 사이로 길이 나 있기도 하다. 8문중 하나인 여생이(여의생) 문안은 신선봉을 거쳐 구인사로 내려가는 길인데 암봉 사이의 험준한 바윗길과 암봉의 장엄한 풍모는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고 한다. 구봉팔문은 남서에서 북동방향으로 순서대로 새밭문봉, 새밭문안, 귀기문봉, 귀기문안, 배골문봉, 배골문안, 곰절문봉, 곰절문안, 덕평문봉, 덕평문안, 뒤시랭이문봉, 여의생문안, 여의생문봉, 밤실문안, 밤실문봉, 아곡문안, 아곡문봉. 대개는 그곳 마을이름을 따서 지은 봉우리이름인데 골짜기를 문안이라고 하는 것이 이채롭다.
갈림길 통과 지점부터 불던 골바람이 나무회랑에 올라서자 엄청나게 심하게 분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이 바람으로 사람들은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고개를 못 드는 것은 물론이고 힘을 빼면 나뒹구는 정도가 아니라 저 아래 월전계곡이나 달밭재에 날아가 처박혀버릴 것 같은 아찔함을 느낀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몸을 비스듬하게 기울여 안 날려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 우습기도하고 똑같은 입장이라 괴롭기도 한데 표를 낼 수 없어 그냥 버둥거리면서 걸어간다. 비로봉 쪽에서 내려오던 남녀 한 쌍이 바람에 충격을 받아 정신없이 옷 채비를 고치다가 벙어리장갑을 떨어뜨렸는데 날아가기 직전에 옆을 지나던 본인이 스틱으로 찍어 무사히 구출(?)해 주었다.
겨울 소백산 골바람을 경험한 사람들은 열에 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거나 치를 뜬다. 그 정도로 유명하고 악독한 칼바람인 셈이다. 바람은 체감온도를 엄청나게 낮춘다. 체감온도에 관한 공식을 하나 인용하여 계산해 본바 영하21.9도가 되었다. 이날 바닥인 단양영월충주지방의 낮 최고기온이 영상5도로 고도에 따른 기온감률을 계산하면 비로봉 근처(해발 1400m)의 기온은 영하2.7도 정도 되는 데 풍속의 세기를 찾아보니 보퍼트 표의 풍력계급 7등급 센바람(걷기가 곤란할 정도)으로 초속 14m~17m 에 해당되어 대입한 결과이다.
바람이 이렇게 세게 불 때 기온이 좀더 낮을 경우 체감온도는 영하30도내지 40도는 너끈하게 될 것이고, 조금 오래 노출될 경우 체온저하(하이포서미아, hypothermia)로 위험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으니 소백산에 오를 때에는 미리 옷 채비를 단단히 하여야겠다. 그럼 오늘 옷을 제일 잘 입은 회원은 누구일까 하고 천동계곡으로 내리면서 살펴본 바, 정완식계장님이 가장 완벽하였다. 속옷은 잘 모르겠는데 겉옷은 후드가 달린 기능성섬유로 된 하늘색 윈드재킷에 오버트라우저를 입어 한점의 노출도 없는 훌륭한 복장이었다. 장본인에게 이 이야기를 흘렸더니 아주 만족하는 웃음을 흘린다. ‘돈을 좀 들이더라도’라는 추가 문구를 삽입하면서.
모래가 바람에 날려 쌓인 곳을 사구(砂丘)라 하는데 태안반도에 있는 신두리 사구가 유명하다. 태안반도에 사구가 있다면 이곳 비로봉에는 설구(雪丘)가 산등의 동쪽에 형성되어 있다. 바람이 실어다 나른 가루눈이 쌓여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설장(雪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후 2시30분, 우리 회원 일행은 끝없이 불어오는 세찬 바람결에 떠밀리듯 날리듯 비로봉 표석 앞에 닿는다. 소리를 질러도 꽁꽁 싸맨 귀가 의사 전달을 가로막아 추위와 바람에 떨며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는 데다 표석 주변에는 사진 찍는 팀이 많아 수없이 정상주변을 방황하다 여남은 사람이 모여 근근이 단체 증명사진을 박는다. 그 와중에 오수진 총무는 배낭에서 무엇을 꺼낸다고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바람에 채근을 해도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어 사진 찍는 일이 자꾸 늦어진다.
엉겁결에 비로사로 가는 나무계단으로 내리는 사람이 있어 고함을 질러 손가락으로 산장대피소 쪽으로 가리키며 방향을 고쳐주고, 거센 맞바람을 가르며 주목군락 쪽의 나무계단을 펄쩍펄쩍 뛰어내린다. 완전히 난리 통이고 전쟁 통이다. 바람이 체온만 뺏어가는 것이 아니고 혼까지도 뺏어 가는지 어쩔 줄 모르고 설쳐대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피소만 믿고 와들와들 떨며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새카맣게 몰려 서 있는 사람들의 틈에 불쑥 안기는 꼴이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 찬 사람들 뒤로 널찍하게 앉아 맛있는 점심을 즐기는 자리부자가 무척이나 부러워 보이는 순간이다. 조영서계장님도 일찌감치 터를 잡아 자리부자 반열에 올라 라면을 끓이면서 떡국까지 넣어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한 시간 쯤 뒤에 들었다. 여유 있고 맛있는 점심은 이 순간에 바람 따라 날아가 버렸다. 선두 대장을 따르던 일행은 망연자실, 할 말을 잊고 되돌아 나왔다.
대피소 앞에는 1천여 그루의 주목이 자생하는 주목군락 보호구역으로 1973년6월20일 천연기념물 244호로 지정된 곳으로 위치는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 면적은 14876㎡ 라고 되어있다. 주목(朱木)은 상록침엽교목으로 고산지대에 사는 데 여기는 주로 줄기가 잘 굽고 가지의 굴곡이 기이한 200년에서 500년 된 나무가 대부분이란다. 이렇게 길게 주목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거센 바람과 눈과 추위를 견디며 수백년 산다는 것이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는 우리네 인간에 비해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 존경심의 발로에서 주목을 들먹거렸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정말 위대하다. 태어나 그 자리에서 뿌리내려 천년을 서있는 나무...
죽령갈림길에 10분을 넘게 기다려도 더 이상 오는 사람은 없어 이정표에서 사진 한번 찍고 오른쪽 천동계곡으로 하산한다. 처음 계획은 비로봉에서 산장대피소로 와서 점심을 먹고 죽령으로 백두대간 능선을 타고 가고자 했으나 출발이 늦어 한 시간이 훨씬 더 걸리는 연화봉-죽령 길을 포기하고 천동으로 내리게 된 것이다. 산허리를 돌아 순한 내림 길을 내려서니 바람은 간곳없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널찍한 터에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팀이 있어 얼른 자리를 잡는다. 여기서도 자릿세 권리금 타령을 하니 휴대폰으로 연락하겠으니 그때 부치란다.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엄태실씨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안절부절 전화하기에 바쁘고 하재화계장님과 최남기씨 부부, 최의영씨, 김동렬씨 그리고 성명불상의 식구 몇 사람이 어울려 밥을 먹는다. 보온도시락에 사온 밥이라 온기가 배어있고 게다가 된장국에 병 소주까지 가져와 나눠먹는 바람에 추위와 배고픔은 씻은 듯 사라진다. 입가심으로 뜨거운 숭늉을 먹고 자리를 털려고 하는 데 마침 대피소에서 식사를 마친 선두 일행이 지나간다. 대장이 혼자 맛있는 거 먹으려고 사람을 몇몇 사람 꼬드겨서 여기서 밥을 먹는다고 비아냥거린다. 상대의 격장지계에 말리지 않으려고 해명도 변명도, 그냥저냥 말 나오는 대로 둘러댄다.
옹달샘을 지나 빠른 속도로 눈으로 다져진 탄탄한 길을 내려오니 어느새 천동야영장, 눈이 녹다 얼다하여 새파랗게 얼어붙은 청빙(靑氷)에 엉덩이를 붙이고 미끄럼을 탄다. 야영장 바로 밑에는 대피소와 구조대연락소를 겸한 천동쉼터가 있고 여기서부터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 훌쩍 나선다. 요소비료 포대를 깔고 엉덩썰매를 타는 이가 있어 한번 빌려 타보니 내리막에 얼음 박힌 길이라 어마어마한 속도가 난다. 사고 날까 무서울 정도로 썰매 발 받는다. 비료포대를 내려놓으니 혼자 줄줄거리고 내려간다. 커다란 조약돌 위로 하얀 눈이 소복소복 덮인 계곡에는 봄을 재촉하는 눈석임물이 졸졸거리며 합창을 한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내리는 산길에는 구수하고 정다운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가장 돋보이는 이는 역시 이남조계장님이다. 이상용계장님, 김판섭계장님, 박종국씨와 나란히 서서 걷는 대화는 거의 일방통행성이고 적당한 높낮이가 있어 옆에 지나치는 이들의 귀에 또렷하게 박힌다. 주로 산에 관한 훈시(?) 발언이다.
소백산북부관리소 건물이 나오는 지점부터는 눈을 치운 터라, 마침내 멍에처럼 차고 다니던 스패츠와 아이젠을 벗고 회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휴식한다. 다리안폭포의 S자로 구불구불하게 만든 다리, 소백산교에 이르니 산악인 허영호대장의 7대륙최고봉과 3극점 등행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서있고 어의곡 새밭-비로봉-천동 다리안의 11.9㎞ 구간을 ‘소백산 허영호 등산로’라고 명명해 놓은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다리안[橋內]이라는 말은 이 계곡 입구에 있는 폭포가 위치한 곳에 오려면 그때 만들어 놓았던 구름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다리 안에 있는 곳’이라는 뜻이며, 다리안폭포는 용이 승천할 때 남긴 발자국이 크게 찍혀있다는 뜻으로 용담폭(龍潭瀑)이라고도 한단다.
오늘 산행 중 뛰어난 운행실력을 보인 하재화계장님은 불의의 교통사고를 입어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면서 다리에 철심을 박은 상태인데도 멋진 산행을 마무리 지었고, 편도가 심하게 부어 고열(高熱)로 마지막에는 119구급차에 실려 내려온 차경찬씨는 마지막까지 후미를 책임지고 안전하게 산행을 완수하게끔 한 무섭도록 책임감이 강한 대원이다. 안전한 산행은 이러한 정열을 가진 사람들의 뭉친 마음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오늘 소백산의 강풍은 내일의 안전산행과 겨울 설산에 대한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서 우리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다. 끝.
글쓴이 이 원 복
거센 바람과 추위를 뚫고 오른 시청 산악회원들의 면모, 소백산 비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