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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위등급 장석준 교무 "법위등급은 |
법위등급은 불지에 이르는 안내도임과 동시에 단계적으로 밟아 갈 성불의 사다리이며 공부해야 할 표준이다. 여행의 목적지가 아무리 아름답다한들 또한 거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한들 그 목적지에 이르는 길과 방법을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원상의 진리와 공부의 요도, 인생의 요도에 대하여는 잘 알고 있다 하여도 자세한 안내도와 단계적인 공부 표준을 모른다면 아마도 본의 아니게 엉뚱한 길로 들거나 허황된 방법에 매달리기 십상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서편에서 개교의 동기와 교법의 총설을, 교의편에서 교리의 원리와 그 자세한 내용을, 수행편에서 구체적인 훈련법을 밝혀주시며 정전의 마지막 장으로 법위등급을 밝혀주셨지 않았을까.
보통급은 불지출발(佛地出發)이다. 등정해야 할 산을 찾았으며, 산에 오르기 위하여 등산대열에 함께 참여한 단계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으며, 학식이 풍부하고 적고, 지위와 명예의 높고 낮음에도 관계없다. 모두가 출발선상에 섰을 뿐이다. 다만 등산대의 규칙으로 보통급 10계와 교도의 기본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특신급은 정법정신(正法正信)이다. 정상에 오르는 길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곁눈질하지 않는다. 모든 사업이나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흐르지 않는 사람이다.
진리와 법과 회상과 스승님이 이외에 따로 없으니 기쁨과 서원이 충만하며, 정상의 등정에 대한 열의와 기대로 힘차게 올라가는 사람이다. 보통급에 이어 특신급 10계를 지키며, 인도정의의 대도인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를 대강 이해하고 있으며, 오직 이 공부 이 사업에 재미를 붙인 단계이다. 법마상전급은 속 깊은 마음공부로 고전(苦戰)하는 단계이다. 정상을 향해 출발하여 중턱에 이르렀으니 숨이 차고 땀이 흐르며 지치고 힘들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오르는 재미를 느끼고 무관사(無關事)에 동하지 않는다.
교리를 철저히 공부하여 그 해석에 과히 착오가 없으며, 비록 지행이 일치하여 백퍼센트 실행은 못한다 할지라도 법과 마를 일일이 분석하여 자신에 집착하거나 시비이해와 원근친소 등에 끌린다거나 하여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지는 않아야 한다. 때로 공부에 대한 권태증이나 모든 것이 괴롭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등 중근병에 걸리는 수도 있으니 이 때는 법 있는 스승과 동지와 마음을 연하며 이를 벗어나야 한다.
법강항마위는 이제 중턱을 넘어 정상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그동안 심신이 단련되어 전문 산악인이 되었다. 매사에 옳고(法) 그름(魔)을 정확히 판단하여 법이 백전백승하며, 우리 경전의 뜻을 일일이 해석하고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으며,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진리를 철저히 깨달아 생·노·병·사에 해탈을 얻은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수도와 안일에 빠져 소승에 흐르거나 부귀향락에 빠져 본원을 매각하거나 신통이 나타남에 주의하여야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공부한다면 산의 정상에 올라 한 눈에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가 다시 세상에 내려가니 산과 세상이 따로 나뉘지 않는 하나의 세상이 된다. 시방오가 사생일신의 출가위, 만능만덕을 갖추어 자유 자재 하는 대각여래위에 오를 때까지 쉬지 않고 정진하고 정진하자.
어디까지 가십니까?
고원국 교무·원광대 대학교당
콜럼버스는 이탈리아 탐험가로서 아메리카대륙의 발견자입니다. 그가 서인도항로를 발견함으로써 아메리카대륙이 유럽 사람들의 활동무대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스페인에 의한 신대륙 식민지 경영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상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최단거리로 아시아에 도달하려면 대서양을 서쪽으로 항해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일화로 널리 알려진 ‘콜럼버스의 달걀'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항해는 세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처음 출항할 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둘째,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셋째,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말할 수 없었습니다.
콜럼버스는 세계를 실제보다 훨씬 작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또 다른 거대한 대륙이 있고 또 하나의 거대한 대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심지어 1506년에 죽을 때 까지도 그는 자기가 발견한 토지를 인도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과연 어디까지 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콜럼버스의 항해와 같이 방향이 분명하지 못한 인생길을 정처 없이 떠돌고만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목적지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원불교 교도들의 목적지는 ‘불지(佛地)’입니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중생은 공부길을 모르고 헤매기 일쑵니다. 목적지를 가르쳐주어도 경로를 하나하나 상세히 알려주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고 주저앉아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평지에 태산을 쌓을 것같이 어렵게 느껴지던 방언공사를 마친 제자들은 “앞으로 도(道) 이룰 일은 얼마나 어려울까?”하고 걱정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소태산 대종사님은 “알고 보면 밥 먹기보다 쉬운 것이니 공부길을 깨친 뒤에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공부인의 수행 정도를 따라 여섯 가지 등급의 법위를 밝혀주셨습니다. ‘보통급·특신급·법마상전급·법강항마위·출가위·대각여래위’입니다.
유무식·남녀노소·선악귀천을 막론하고 처음으로 불문에 귀의하여 보통급 십계를 받은 사람들이 불지를 향해 힘차게 출발합니다. 법신불 사은님, 이 몸이 보살되고 부처되도록 나아갈 뿐 물러서지 말게 하소서!
처음 마음 그대로
시험성적이 예상보다 나쁘다고 눈물짓거나 추진하던 일이 실패했다며 한숨짓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누구나 평탄대로만을 걷고 싶어 하지만 늘 예상치 못하는 굴곡과 험난한 장애가 있는 것이 바로 인생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당장은 어둠과 고통 속에 잠겨 있는 심정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어둠과 고통의 시간조차 인생의 길을 걸으면서 학습해야 할 필수코스이자 값진 배움의 시간이라는 것을. 다만 걷고 있는 길이 어디쯤이며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 것인지 방향을 잃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마음공부를 하는 데 올바른 방향을 점검하고 인생길에 대한 진리세계의 실시간 중간성적을 대조할 수 있도록 제시된 것이 법위등급이다.
법위등급은 일원상의 진리부터 사은사요, 삼학팔조의 구체적인 가르침들을 신앙하고 실천해가는 방향을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동시에 향해서 가야할 목표를 제시해준다.
보통급, 특신급, 법마상전급이라는 세 단계를 밟아 올라가 다시 법강항마위, 출가위, 최종적으로 대각여래위라는 구경처를 향하여 공부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보통급은 누구를 막론하고 처음 불문에 귀의하여 보통급 십계를 받은 사람의 급이다. 공부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진리를 모르고 살던 어둡고 괴로운 삶에서 진리를 향한 새로운 삶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특신급은 말 그대로 특별한 신심을 가진 사람의 급이다. 특신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 법신불 사은님께 온통 귀의하면서 새로운 용기와 힘으로 충만하게 된다. 진리를 향한 공부길에 확실한 믿음을 가져서 모든 사업이나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흐르지 않는 사람의 급인 것이다.
법마상전급은 법마상전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 법(法)과 마(魔)를 분석하여 때로 법과 마가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세밀한 일이라도 반수 이상 법이 승리하는 급이다. 법이 진리를 닮은 마음이라면 마란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이자 방해하는 경계이다. 법마상전급은 실천과 체험을 통한 속 깊은 공부를 하는 가운데 고뇌의 함정에 들어갈 수 있지만 진지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정진해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란 멈추어 있지 않아서 하루에도 희비의 파도가 일렁이듯이 공부를 하는 데에도 파도는 쉼 없이 계속된다. 공부에 진전이 있는 것처럼 우쭐하다가 뒤돌아보면 다시 한없는 나락에 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꾸만 되돌아보게 될 때 처음 출발했던 그 자리, 처음 발원했던 그 마음을 보아야 한다. 설렘과 기대로 내디뎠던 첫 걸음의 그 마음을 다시 챙기면서, 정상의 대자유를 향하여 다시 출발하자.
원불교신문 [1454호] 2008년 12월 19일 박혜훈교무
계문의 의의
원광대 김성택교무
정전에는 보통급 10계문, 특신급 10계문, 법마상전급 10계문 등 30계문이 제시되어 있다. 계문은 우리가 마음공부를 해 나갈 때 방해가 될 수 있는 함정의 최소한을 제시하여 마음공부의 단계별로 필히 지켜 나가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불교 수행인은 이 계문을 마음공부를 향상해 나가기 위해서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률로 알아야 한다.
이러한 유형의 계문은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불교에는 사미 5계, 보살 10계, 비구 250계, 비구니 500계가 있으며 기독교에는 10계명이 있음도 같은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종경 <교의품> 25장에 의하면 이렇게 계를 주고 지키게 하는 의의가 잘 말씀되어 있다. 대종사께 목사 한사람이 찾아와 “예로부터 어느 교단을 막론하고 대개 계율을 말하였으나 저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도리어 사람의 순진한 천성을 억압하고 자유의 정신을 속박하여 사람을 교화하는 데 적지 않은 지장이 되는 가 하나이다”라고 하는 등 몇가지 의문을 제기하니,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귀하는 다만 그러한 사람들이 제도의 범위에 들지 못하는 것만 애석히 알고 다른 곳에 큰 영향이 미칠 것은 생각지 아니 하는 가. 우리에게도 서른가지 계문이 있으나 한가지도 삭제할 만한 것이 없으므로 그대로 지키게 하노라.”하셨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계율을 주는 방법에 있어서는 사람의 정도에 따라 계단적으로 주나니 누구나 처음 입교하면 저 세상에서 젖은 습관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그들에게 능히 지킬만한 정도로 먼저 십계를 주고 또 계단을 밟는 데로 십계씩을 주며 삼십계를 다 마친 후에는 계율을 더 주지 아니하고 자유에 맡기나니 그 정도에 이른 사람은 부당한 일과 당연한 일을 미리 알아 행하는 까닭이니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혹 삼십계문을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원불교의 문에 들어와 수행하려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삼십계문을 다 마친 후에는 직접적으로 다른 계는 더 주지 아니하고 자유에 맡긴다 하였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법위는 법강항마위, 출가위, 대각여래위이다.
이때에는 심계(心戒)가 있는데 그 표준은, 첫째 자신의 수도와 안일만 취하여 소승에 흐를까 조심함이요, 둘째 부귀향락에 빠져서 본원이 매각될까 조심함이며, 셋째는 혹 신통이 나타나 함부로 중생의 눈에 띄어 정법에 방해될까 조심함이다.
이 밖에도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을 공부하여 위로 불지를 더 갖추고 아래로 자비를 더 길러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으로 공을 쌓아야 한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하여 원불교에서 제시한 삼십계문의 의의와 성격, 그리고 심계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상전급
법마상전급은 법위등급 여섯 단계 중 세번째 단계로서 교리해석에 별 착오가 없고, 무관사에 가볍게 움직이지 않으며, 천만경계 속에서도 사심 잡념과 번뇌 망상을 제거해 가는 공부에 큰 재미와 보람을 갖게 된다.
상전급의 경지를 뛰어 넘으면 불보살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중생 세계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상전급에서는 주로 속 깊은 마음공부와 중근기의 위기를 극복해가는 공부를 하게 된다.
부처와 중생의 차이도 마음을 찾고 찾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요, 극락과 지옥도 마음을 깨치고 깨치지 못한 차이인 것이다. 마음이 곧 조물주요,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마음의 조화인 것이다. 마음을 찾는 공부는 학식이나 재물이나 권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직 스스로 수행 정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남모르게 숨어서 속 깊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마음이라고 하지만, 보리심도 마음이요 번뇌심도 마음이다. 법도 마음이요, 마(魔)도 마음이다. 정(正)도 마음이요 사(邪)도 마음이다. 그래서 고전(苦戰)이다.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근본이치는 하나이며, 곧 우주의 본래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을 깨치면 대소유무의 이치를 가져다가 시비이해의 일을 건설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리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본래 마음을 찾을 수도 없고, 큰 도인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성리공부를 통해서 참 마음을 찾고 보면 이치에도 걸림이 없고 일에도 걸림이 없는 큰 힘을 얻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경계에도 마음이 끌려 다니지 않고, 천만경계를 내 마음대로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일체의 자기 주견과 고집을 버리고 오직 스승의 지도에 따라서 공부해야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조그마한 재주나 명예에 자만하지 않고 백척간두 진일보의 정신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수행인은 크고 작은 중근기의 고비가 수없이 오는 가운데 상전급에서 맞는 중근기야 말로 부처와 중생의 갈림길이 되는 것이다. 상전급의 경지가 되면 마음공부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고, 재주나 능력도 어느 정도 생겨서 자칫 스스로 만족하고 자만하기 쉬우며 공부하는 가운데 역경을 만나면 권태증이 일어나거나 사량계교심이 생기기 쉽고, 순경을 만나면 공부를 빨리 이루려는 욕속심도 생기기 쉬운 것이다.
교법대로 정성을 다하고 스승님의 지도에 따라 정성을 다 하여야 법마상전의 고개를 넘고 항마위에 오를 수 있다. 법강항마위에서 법이 백전백승을 하는 것은 견성이라는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신문 [1504호] 2009년 12월 25일 김원종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