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구려 공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후에 조선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할 것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은 고구려 공부가 급해서 고조선 공부를 조금 소홀히 했으며,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발굴 보고서를 읽는 일에도 소홀히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청동기 문화에 대해서는 쉽사리 이야기할 처지가 못됩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유물이란 발굴된 것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유물의 발굴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금의 고고학자들은 너무 성급하게도 자신들이 발굴한 자료에 국한시켜서 옛 시대를 마음껏 재단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유물이 나오면 기존의 학설은 과감히 바꿔야 합니다. 그것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고고학자의 기본기도 안된 자라고 비난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고고학에서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잘못된 학설이 우리나라 청동기의 개시연대입니다. 나는 왜 우리학자들이 우리 역사의 청동기 개설 시점은 한반도에 국한하여 보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청동기 시대면 고조선시대이고, 부여초기 시대입니다. 고조선과 부여는 한반도보다는 만주에 위치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청동기를 이야기하자면 만주의 청동기를 언급해야 하고, 요서의 청동기를 언급해야 합니다. 이미 요서지역의 청동기 개시연대가 중국학자들의 언급처럼 기원전 20세기를 상회하는 시점에서 우리 겨례의 청동기 문화진입시점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도무지 알다가다 모를일이 우리나라 청동기 개시시점을 굳이 기원전 10-12세기로 잡능 이유가 한반도 지역에서 청동기는 이때가 최초이기 때문이라니, 도대체 과거에도 우리 조상들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자, 이제 우리는 한반도 역사를 쓴다. 압록강을 넘어 만주에서는 우리는 만주 역사를 창조한다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나는 고고학자들이 지금의 영토적 개념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역사의 범위를 고려하여 만주와 요서, 한반도 전역의 청동기문화 시점을 다시 다루어주기를 바랍니다. 물론 내가 고조선사를 공부하는 시점에서는 이렇게 바뀌리라고 기대합니다.
자, 문제의 핵심은 아니지만 다시 돌려말하자면 한반도에서의 청동기문화도 10-20년전의 학설은 이제 고쳐야 합니다.
나는 먼저 "세계최고의 우리문화유산" - 이종호 지음. 이 책속에 나온
'2. 중국보다 앞선 우리의 청동기문화를 밝히는 열쇠 - 비파형 동검' 부분을 여러분이 읽었으면 합니다.
지금 구체적으로 북한 지역이 아닌 남한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의 탄소연대가 기원전 20세기를 넘어선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를 상징하는 고인돌이나 주거지 유적에서는 기원전 20세기를 넘는 것도 나오고, 일부 청동기 유물은 연대가 기원전 12세기를 넘는 것도 간혹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자료는 아직 부족합니다.
다만, 주거지나 고인돌 유적이 이렇게 오래된 것을 보면 앞으로 남한 지역에서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시대보다 더 오랜 유물이 나올 가능성은 많습니다.
회원 한분이 국사편찬회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 내용을 들어보면 국사편찬회에서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다만 우리가 청동기를 보는 관점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분입니다. 지금 남한내에서 유물이 더 발견되면 편견없이 유물의 절대연대를 밝혀야 합니다. 우리나라 청동기는 북방이나 중원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그 보다 빠를 수 없다는 편견이 사라지고, 더 유물이 나온다면 남한 지역의 청동기 연대편년도 더 올라 갈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 지역의 것은 물론 남한보다 오래된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그 연대가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나도 공부가 짧아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요녕과 북한 지역의 연대가 우리가 알고 있는 12세기 보다는 더 오래된 것은 분명합니다. 내가 청동기에 대해서 한동안 관심을 갖지 않아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못하는 것은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정도 밖에 알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