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만남에서 남과 북 참가자들은 함께 금강산을 올랐다. 온정리에서 올려다 보는 것 만으로도 금강산은 과연 <천하 제일 명산>이라 할만 했다. 커다란 바위산인 금강산은 언뜻 인왕산을 떠올리게도 하였으나, 그에 비할 바 아님은 금강산이 내 뿜는 어떤 정신적 호흡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북측 참가단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흰 티셔츠에 곤색이나 검정색 바지를 입고, <보통강>이나 <락원>이란 상표가 붙은 흰 운동화를 신은 북측 참가자들을 보면서 손님 맞이를 참 잘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는 한편, 돌아 보기는 통일을 향한 걸음에서도 혹 남쪽이 손님처럼 한 발 늦은 것은 아닐까 하는 것 이었다.
산행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전 날 김정숙 휴양소 운동장에서 그리고 함께 점심을 먹었던 솔밭에서 만나 친해진 <동무>를 찾는 남, 북 참가자들의 눈망울이 빛나고 있었다. 나 또한 신 선생님을 찾으려 북측 참가자들을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앞서 오르셨나?... 짝을 찾아 환해진 얼굴로 산을 오르는 이들을 뒤 따랐다. "언니, 우리 이 손 놓지 마!" "아우님, 그러자우..", 장화, 홍련 같이 손을 꼭 잡은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넉넉하게 손 잡고 한 발 한 발 산을 오르는 칠십노인 <동무>들도 있었다.
사람 사귀기에 적극적이지 못한 나의 성격이 아쉬워지는 순간 이었다. 남,북 참가자가 함께 금강산을 오르는데는 산을 오르듯, 우리 민족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는데 함께 나서자는 의미가 담겼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명산의 아름다움만을 감탄하며 혼자 산을 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금강산엔 전에도 와 보셨습니까?" 앞서가는 내 나이쯤 돼 보이는 북측 참가자에게 말을 건넸다. "아닙네다, 이 번이 첫 걸음 입네다." 북녘 동무 또한 나와 같은 심정이었던지 쉽게 말을 받아 줬다. 개성에 산다는 김 선생, 그는 농근맹 선전, 교양지도원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이것 저것 남쪽 농업 사정에 대해 구체적인 것들을 물어왔다. 무슨 농사를 짓느냐, 논은 얼마나 되느냐, 단보 당 수확은 어느 정도며 가격으로는 얼마나 되느냐... 그가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그가 남쪽에 대해 듣는 만치 이해 또한 넓어질 것이란 생각에서.
우리들이 함께 오른 곳은 구룡폭포 가는 길 이었다. 계곡을 오르며 만나는 바위며 폭포수 그리고 남, 북 참가자들, 그 모두가 <만물상>을 이루는 하나 하나의 조각 같이 아름다웠다. 그렇구나! 강산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사람의 모습과 마음이 담겨야 조화로워 지는구나. 구룡폭포에 닿은 남, 북 참가자들은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에서 감탄과 공감의 함박꽃을 피웠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온 곳에 자리잡은 계곡옆 정자 목련각앞에서 남, 북 참가자들은 다시 한 번 점심 식사를 갖이했다. 이 번 점심 도시락은 남측에서 준비했다. 북측 참가자 중엔 따로 양배추 김치를 가지고 오신 노인분이 계셨는데 우리 일행에게 자꾸 권했다. 김치 맛이 어떠냐고 여러 번 묻는 마음 또한 정겨웠다. 이번에 많이 느낀 것이지만, 그들의 <주체>란 바로 근거 있는 자존심이 아닐까 싶었다.
신 선생님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서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아니, 최 선생 그동안 어디 있드랬소?!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저도 줄곳 신 선생님을 찾았습니다...죄송 합니다."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 갈 시간이 다 되어서야 만난 신 선생님과 나는 나누지 못한 정분을 못내 안타까워 하며 각각 폐막식 장소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이박 삼일, 북녘땅에 머물렀던 시간 속에서 일박 이일, 북녘 농민들과 하나 됐던 통일에 대한 불꽃 마음. 폐막식 마당을 나오면서, 길게 늘어선 북측 참가자들의 환송을 받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마주 잡으며, 그들로부터 "또 만납시다." "다시 만납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변이 없어 입 밖에 내놓지는 못했지만, 나 또한 맞잡은 손을 통해 그들에게 같은 말을 건네고 또 건넸다.
환송 대열이 거의 끝나가는 즈음에서 다시 만난 신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고 "최 선생! 우리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이야기 했다. " 그래야지요...꼭 그래야지요." 나도 모르게 울컥 치미는 뜨거운 것을 느끼며 그를 껴 안았다.
통일 된 조국! 그것을 이루려는 마음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살아 있는 한, 그것은 영원히 낮달로만 떠 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