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파노아메리카 소설에 나타난 마술적 사실주의
앙헬 플로레스 / 박병규 옮김
지금까지 중남미 문학 연구는 주제 비평이나 전기 비평이 전부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주제 비평은 작품을 지형학적 특성에 따라 ‘팜파 소설’, ‘산지(山地) 소설’, ‘밀림 소설’ 등으로 분류하는 데 머물렀다. 한편, 전기 비평은 작품을 연대순으로 개괄하고 ―‘식민시대 소설’, ‘독립시기 소설’, ‘멕시코 혁명소설’ 등― 개별 작가의 전기적 사실을 덧붙였다.
문학을 생태학적 패턴이나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 고찰하는 이러한 연구는 흥미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문학 비평에는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 이를테면, 작품 고유의 미학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도 전혀 도움이 안 되었고, 형식, 구성, 문체의 경향과 같은 복잡한 문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이러한 연구에서도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실존주의 같은 분류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피상적이거나 일관성이 없거나 차별성이 없었다. 예컨대, 초기 자연주의 작품인 『도축장』(El matadero)을 완전히 무시하고 에체베리아(Esteban Echeverría)를 낭만주의 시인이라고 말하거나, 『도냐 바르바라』와 『소용돌이』에 나타난 낭만주의적 장광설과 미묘한 심리를 간과하고 이 작품들이 둘도 없는 사실주의의 표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위 논문에서 「가예고스와 리베라 소설의 낭만주의적․사실주의적․자연주의적 요소들」이나 「사실주의자 리베라의 본질적 낭만주의」같은 제목을 자주 보게 된다. 감정적 특성과 문체적 특성을 엄밀하게 고찰하고 분석해보면 적어도 라틴아메리카 소설에서는 이들 문예 사조 사이의 경계를 긋는 작업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사조나 유파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삭스(Jorge Issacs)의 『마리아』(María)는 순수한 낭만주의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사실 이 소설은 살로메의 일화와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담처럼 상세하고 구체적인 사실주의적 기술로 마무리된다. 이 부분(마지막 2장)은 낭만주의적인 만큼 사실주의적이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는 구이랄데스, 린치, 파이로, 키로가의 작품에서도 나란히 나타난다. 한동안 에밀 졸라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눈에 띄는 결과물은 없었다. 예를 들어, 아르헤리치의 『유죄냐 무죄냐』(1884), 로페스의 『커다란 마을』(1884), 캄바세레스의 『표류』(1885), 마르텔의 『주식 시장』(1890)이 그렇다. 『표류』를 잘 읽어보면 캄바세레스는 졸라의 서사시적 기법을 모방하기보다는 졸라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주의 이론에 심취했음을 알 수 있다. 캄바세레스 작품에서 졸라적 요소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캄바세레스 문체는 서정적 스타카토에 가깝다 ―이 점에서 바르가스 빌라 문체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졸라와 관계가 있는 작가를 한 사람 더 든다면 리요이다. 그의 작품 『땅 밑에서』와 졸라의 작품 『제르미날』은 주제가 유사하다. 즉, 탄광 광부의 비참한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분명히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리요가 사용하는 여러 가지 낭만주의적 요소(과도하게 감상적인 뉘앙스, 운명적 우연의 일치 등등)는 끊임없이 자연주의와 배치된다. 이 소설가 저 소설가의 작품을 살펴보아도 결과는 같다. 다시 말해서, 라틴아메리카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는 동일한 작품에서 한꺼번에 나타난다.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에서 지속적으로 꽃피우고 있는 풍속주의(costumbrismo)는 종종 낭만적 요소와 사실적 요소를 혼합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낭만적 요소와 사실적 요소의 혼합― 흔히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소설이라고 하는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의 졸작 『페리키요 사르니엔토』로부터 콜롬비아 소설의 효시인 포사다의 『낫』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포사다는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처럼 거친 마치스모(machismo)와 부드러운 애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 두 작가 모두 낭만적 사실주의 작가나 사실적 낭만주의 작가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성의 근원은 분명히 심리적인 것이며, 스페인의 위대한 전통으로 ―과거의 페르난도 데 로하스, 로페 데 베가, 케베도, 엘그레코, 세르반테스, 고야, 페레스 갈도스 같은 화가나 작가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이중성은 무엇보다도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의 불안정한 경제적․사회적 환경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들은 생활 여건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대충 작품을 마무리한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혼신의 힘을 쏟아야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데, 그럴 만한 여력이 없다. 그 결과 작품에 이질적 요소들이 뒤섞여 있고 엉성한 작품도 종종 눈에 띈다.
최근 피츠는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무기력, 불확실, 모방, 질펀한 감상(感傷)” 때문에 (“이에 덧붙여 지루하므로”) 얼마나 “의기소침”했는지 모른다고 실토했다. 피츠의 기억에 따르면, “존 퍼얼 주교는 몇 개월 동안 라틴아메리카 장편 소설과 단편을 정독하면서 [...] 야릇한 절망감을 느꼈다. 주교는 이들 작품이 형편없는 이류작임을 깨달았고, 스페인어권 천재들, 적어도 라틴아메리카 천재들의 작품 중에서 읽을 만한 것은 시와 에세이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에서 피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와 마예아(Eduardo Mallea)는 예외로 친다. 이들의 작품은 일급이다.” 이러한 견해는 비록 신랄하고 극단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이기 때문에 당혹스럽다. 소설 분야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어떤 거장도 내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피츠가 보르헤스와 마예아를 제외시킨 것을 라틴아메리카 전문가들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피츠는 매우 섬세한 시인이고, 고대와 현대 문학에 모두 정통한 날카로운 평론가이며, 그리스 고전을 매끄럽게 번역한 사람이고, 현대 라틴아메리카 시 선집을 엮은 이다. 피츠가 보르헤스와 마예아를 예외라고 할 때 이들의 작품은 “무기력, 불확실, 모방, 질펀한 감상”이 없다는 말이다. 보르헤스와 마예아는 누가 뭐래도 이류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츠는 보르헤스와 마예아가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수년 전 나는, 피츠와 상관없이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에, 보르헤스와 마예아를 비롯하여 뛰어난 라틴아메리카 소설가와 단편 작가들의 일반적인 경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나는 이 경향을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일컫는다.
대상을 사진 찍듯이 묘사하려고 했던 사실주의가 막다른 골목임을 깨닫게 된 모든 예술 ―특히 미술과 문학― 은 반기를 들었다. 1차 대전 시기의 수많은 유명 작가들은 상징주의와 마술적 사실주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는 프루스트, 카프카, 키리코 ―회화에서 카프카 같은 존재― 같은 걸출한 천재들이 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상당 부분 재발견이었다. 왜냐하면 가령 카프카가 사용한 문체와 표현 가운데에는 19세기 작가들이 즐겨 사용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러시아 작가(특히 고골리의 「코」, 「쉬폰카와 숙모」 등과 그의 단편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도 포함된다), 독일 낭만주의자(호프만, 아르님, 그림 형제), 스트린드베리, 슈티프터,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포우와 멜빌까지 포함된다. 카프카는 초기 작품부터 ―「사형 선고」(1912), 『변신』(1916)― 공들여 다듬은 적확한 문체를 사용하여 단조로운 현실과 악몽의 환상 세계를 혼합하는 어려운 기법에 통달했다. 앙드레 지드는 카프카 작품에서 꿈과 현실의 독특한 혼합을 발견하고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감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환상 세계에 대한 ‘자연주의적’ 기록이지만 정확하고 상세한 묘사 때문에 환상 세계가 우리 눈에 현실로 보인다는 사실인지 아니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대담성으로 기이한 세계를 파고들기 때문인지 확실하게 얘기할 수가 없다. 이 점은 배울 것이 많다.”
따라서 참신성은 사실주의와 환상의 혼합에 있었다. 사실주의와 환상문학은 각기 다른 경로를 통해서 우여곡절 끝에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했다. 사실주의는 식민 시대부터 있었고, 특히 188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마술적인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의 수많은 작가가 사용한 것으로 ―콜럼버스의 편지, 각종 연대기들, 카베사 데 바카(Caveza de Vaca)의 무용담― 모데르니스모 시기에 문학적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국취향과 놀라움 같은 자극적인 요소는 다리오의 단편(대부분은 1889년 칠레 신문에 발표되었다)에서뿐만 아니라 그루삭의 『아르헨티나 이야기』(1886-1921), 루고네스의 『이상한 힘』(1906) 같은 작품집에 실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과 키로가의 여러 작품에서도 넘쳐나게 되었다. 가장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작가는 아무래도 포우였다. 포우는 직접적으로나 아니면 추종자들, 특히 다리오가 ‘기인들’이라고 부른 프랑스 데카당스 작가들―보들레르, 바르베 도르비이, 릴라당 등등―을 통해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상상적 글쓰기는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재능 있는 작가들의 실험적인 산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멕시코의 경우는 보데트의 『안개의 마르가리타』(1927)와 『구출된 프로세르피나』(1931), 비야우루티아의 『마음씨 고운 부인』(1928), 오웬의 『구름 같은 소설』(1928), 노보의 『왕복표』(1928)를 들 수 있고, 페루의 경우는 발델로마르의 소설과 단편집 『신사 카르멜로』(1918), 아단의 『마분지로 만든 집』(1929)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아주 특수한데, 아를트는 『분노한 장난감』(1926), 『일곱 명의 광인』(1929), 『화염방사기』(1931)를 통해 혼란스럽고 무정부적인 악몽을 그려냈다.
그렇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환경과 기질과 감정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종종 프랑스인 지로두와 스페인인 하르네스의 로코코적 경향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글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작품들, 즉 냉정하고 지적이고 현학적인 작품과 다르다. 편의상 나는 1935년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국면, 즉 마술적 사실주의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 해, 보르헤스는 작품집 『불한당들의 세계사』(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판했으며, 2년 뒤에는 카프카 단편 소설의 스페인어 번역을 마무리 지었다.
물론 극도로 복합적인 보르헤스의 천재성을 한 가지 영향에 따른 것으로 한정시키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보르헤스는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가장 박식한 작가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는 매우 다양한 작가들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예컨대 체스터튼, 웰즈, 메이첸, 쉬봅, 엘러리 퀸 같은 작가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박식한 학자들을 ―후에 리다 데 말키엘(María Rosa Lida de Malkiel)의 연구로 소상하게 밝혀졌다―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보르헤스에게 암시적이고 깊은 충격을 준 사람은 카프카였다. 자극적인 개척자 정신을 가진 보르헤스 주변에는 뛰어난 문체를 구사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상이한 개성을 보여주었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업했지만 전반적인 경향은 마술적 사실주의였다. 이 시기 칠레 여류작가 봄발은 보르헤스의 자극을 받아 몽환적인 작품 『마지막 안개』(1935)와 『수의를 입은 여자』(1937)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판했고, 실비나 오캄포는 『잊혀진 여행』을 출판했으며, 알바몬테는 『새벽 총살』을 펴냈다.
이 때부터 마술적 사실주의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간략하게 말해서, 마술적 사실주의가 눈부시게 꽃핀 시기는 1940년에서 50년에 이르는 10년 동안이었다. 이 시기 출판된 라틴아메리카 소설은 동시대 이탈리아나 프랑스나 영국의 최고 작품들과 견줄 수가 있다. 1940년에 출판된 비오이 카사레스(Adolfo Bioy Casares)의 『모렐의 창조』(La invención de Morel)는 진정한 의미에서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환상 소설이다. 비오이 카사레스의 문체는 웰즈의 초기 작품을 생각나게 하며 아울러 딱딱하고 불명료한 카프카 문체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 같은 해에 출판된 책으로는 알바몬테의 야심작 『자상(刺傷) 입은 비둘기』, 베르니케의 단편집 『한스 그리요』와 소설 『A.B.C. 영화관의 공연과 죽음』, 멕시코 작가 에네스트로사의 명작 『어머니의 초상』을 들 수 있다.
또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남긴 작품으로는 보르헤스, 실비나 오캄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공동으로 편찬한 『환상문학 선집』(Antología de la literatura fantástica)이 있다. 다음해 보르헤스는 불후의 단편집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El jardín de senderos que se bifurcan)을 펴냈는데, 이 작품은 라틴아메리카 구석구석까지 마술적 사실주의를 전파했다. 이 해에 비앙코는 헨리 제임스의 문체를 빌려 걸작 『그림자도 가끔 옷을 입는다』로 등단했고, 마예아는 시골 비극을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린 명작 『모든 푸름은 사라지리라』를 출간했다. 얼마 후 피픽은 인상적인 단편집 『XX의 부활』을 펴냈고, 비앙코는 치열한 소설 『쥐』(1943)를 발표했다. 날카롭고 정갈한 비앙코의 문체는 어느 면에서나 지드와 비견된다.
이렇게 보르헤스, 마예아, 비앙코, 실비나 오캄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다. 그 충격이 미친 나라는 쿠바(노바스 칼보, 페레이라, 라브라도르 루이스), 멕시코(아레올라, 타리오, 이달고, 룰포), 에콰도르(베라, 오르티스), 칠레(수베르카소, 첼라 레예스, 마리얀 및 1920년대 극단주의 운동을 폈던 우이도브로), 우루과이(에르난데스, 아모림, 오네티)이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도 수많은 작가가 출현했는데, 히리, 랑헤, 칸토, 페이로우, 안데르손 임베르트, 다보베, 간다라, 란셀로티, 코르타사르가 그들이다. 놀라웠던 것은 그 표현의 다양성, 즉 뛰어난 독창성이었다. 예를 들어, 1948년 아르헨티나에서는 페이로우의 『장미의 함성』과 사바토의 『터널』이 출판됐고, 우루과이의 에르난데스는 『아무도 등불을 밝히지 못했다』를 펴냈으며, 멕시코의 아레올라는 『다양한 창작물』을 내놓았다. 그리고 1952년 이 뛰어난 단편 작가 아레올라의 『우화집』과 동시에 타리오의 『타피오카 여관』과 페레이라의 『상어』가 출간되었다.
이들은 용의주도한 작가로 모두가 한결같이 문체에 관심을 가졌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섬뜩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변형시키는 데 관심을 쏟았다. 모두가 키리코의 다음과 같은 명제를 따랐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예술을 지탱해온 기존의 모든 것으로부터 예술을 해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이념, 사상, 상징을 버려야만 한다. [...] 사고는 인간 굴레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사물은, 마치 이제 금방 생성된 성좌의 빛을 받고 반짝이는 것처럼, 새로운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이는 철저하게 놀라움을 주는 예술이다. 처음으로 독자는 극적 서스펜스에 휩싸여 무시간적 흐름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건 속으로 떠밀려 들어간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오늘 이 섬에 기적이 일어났다. 여름이 일찍 찾아왔다(비오이 카사레스의 『모렐의 창조』).
나는 바빌로니아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총독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처럼 나는 노예였습니다. 나는 또한 전지전능과 치욕 그리고 감옥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보세요, 나의 오른손에는 검지 손가락이 없습니다. 보세요, 이 망토의 찢겨진 틈으로 복부에 새겨진 주홍빛 문신이 보일 겁니다. 이 문신이 베스(Beth)의 두 번째 상징입니다(보르헤스의 「바빌로니아의 복권」).
모두가 한마음이던 그날 밤, 아무도 그가 배에서 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무도 신성한 진흙 수렁 속으로 가라앉는 대나무 배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과묵한 그 사람이 남쪽에서 왔는데, 고향이 강 위쪽의 거친 산기슭에 자리잡은 수많은 마을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마을에서 사용하는 젠드어는 그리스어에 오염되지 않았고, 문둥병 또한 드물었다(보르헤스의 「원형의 폐허들」).
이방인은 숨을 헐떡이며 황량한 역에 도착했다. 큰 가방을 들고 오느라고 ―아무도 옮겨주려고 하지 않았다― 극도로 지쳐있었다(아레올라의 「전철수(轉轍手)」).
내 이름은 후안 파블로 카스텔, 마리아 이리바르네를 살해한 화가라고 말하면 충분할 것이다. 모두들 사건의 경위를 기억하고 있으므로 나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사바토의 『터널』).
11시 40분 급행 열차는 기적을 울리며 전속력으로 어두운 시골 역을 지나갔다(마예아의 『대합실』).
이들 인용문과 카프카의 『심판』과 『변신』 그리고 카뮈의 『이방인』의 첫 문장 사이의 유사성을 살펴보자.
누군가 요셉 K를 밀고했음이 분명하다. 어느 날 아침 전혀 죄를 지은 일이 없는 그가 갑자기 체포되었기 때문이다(카프카의 『심판』).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카뮈의 『이방인』).
어느 날 아침, 그레고리 잠자가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리다가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침대 속에서 거대한 갑충으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카프카의 『변신』).
이 구절들 이후부터 이야기는 부드럽게 전개된다. 이 구절들은 어렴풋하나마 무한하고 무시간적인 전망과 관계가 있다. 무시간적인 까닭은 『변신』과 『심판』에 등장하는 “아침”이라는 명사에도 불구하고 수식어 “어느”(“어느 아침”)가 있기 때문이며, 마찬가지로 『이방인』에서 “오늘”은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다”로 변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일종의 무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존재하고, 비현실적인 것이 현실의 한 부분으로서 등장한다. 그레고리 잠자가 갑충이나 바퀴벌레(카프카는 모호하게 “괴물 같은 벌레”라고 했다)로 변모한 사실은 추측하거나 토론할 문제가 아니다. 그냥 발생한 일이며, 잠자를 제외한 나머지 등장 인물은 정상적인 사건이나 다름없이 받아들인다. 일단 독자들이 이 사건을 기정 사실로 인정하면 나머지 사건은 빈틈없는 논리에 따라 전개된다. 이야기 어느 곳에서도 서정성의 분출이라든가 불필요한 바로크적 기술이라든가 ‘풍속주의적 묘사’는 찾아볼 수가 없는데, 사실 이러한 요소들은 작품의 구성을 흩트려놓는다.
예컨대, 『도냐 바르바라』와 『소용돌이』가 그렇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천착하는 작가들은 현실에 집착한다. 마치 문학이 제 길에서 벗어나거나 동화처럼 초자연적인 영역으로 비상하는 것을 막으려는 듯이 현실에 집착한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전개되며 갈수록 강렬해져 마침내 헤아릴 수 없는 모호함이나 혼돈 속으로 파고든다(문맥은 상이하지만, 오스트리아 소설가 로스가 사용한 용어를 빌리면 “명확성 가운데 자리잡은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의 공통점은 이외에도 19세기 라틴아메리카 소설(『마리아』, 『쿠만다』, 『둥지 없는 새』 등)에 만연한 어설픈 감상주의의 배척이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은 대중의 취향에 순응하기보다는 오히려 까다로운 독자, 즉 미학적 신비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묘함에 정통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은 종종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비인간화’라고 일컬었던 예술과 유사하며, 정확하고 간결한 문체를 추구한다. 이러한 문체는 라틴아메리카 소설 문학의 유명 작가들(라레타, 도미니시, 레일레스)의 공허한 장황스러움을 고려한다면 바람직한 혁신이다. 게다가 마술적 사실주의 작품의 플롯은 논리적이다. 카프카의 「만리장성」이나 키리코의 《거리의 신비와 우수》처럼 치밀한 짜임새를 보이거나 무한한 전망을 투영한다. 이 또한 바람직한 혁신인데, 일반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소설의 플롯은 『세상은 넓고도 낯설다』(El mundo es ancho y ajeno)처럼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연관성이 없거나 혹은 『페리키요 사르니엔토』처럼 답답하고 산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이 빈틈없는 플롯 짜기에 고심한 이유는 아마도 보르헤스, 비오이 카사레스, 페이로우를 비롯한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이 탐정 소설을 창작했거나 번역․편집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탐정 소설의 수학적 정확성과 예리함은 문체상의 느슨함이나 감정적 느슨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라틴아메리카에 재능과 감수성을 갖춘 작가들이 지금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출현한 적이 없었으며, 지금처럼 소설의 기법을 연마하는 데 한마음으로 일한 적이 없었다. 직설적으로 말해, 라틴아메리카는 더 이상 ―엔리케스 우레냐(Pedro Henríquez Ureña)의 적절한 문구를 빌리면― 라틴아메리카적 표현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미 라틴아메리카는 진정한 표현, 독특한 문화의 표현, 호기심을 자극하는 표현을 찾았다. 우리는 이러한 표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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