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의 작품해설
Virgin of the Rocks, Musée du Louvre, Paris. 100
암굴(暗窟)의 성모 1483년. 나무에 유화 120cm x 189.5cm
레오나르도의 신비로운 예술 세계에 감동케 하는 최대 걸작중의 하나이다. 이 성스러운 인물들은 동굴을 배경으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동굴 밖 멀리 밝은 빛과 푸른하늘 아래 동산 봉우리들이 겹겹이 솟아 있다. 모든 인물은 완벽한 데생으로 그려져 있고, 머리카락 하나에서부터 옷주름의 세부에 이르기까지 레오나르도의 사실주의를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으나, 한편으로 신비스런 아름다움의 탐구도 곁들여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실의 육체 속에 깃들어 있으면서 그 육체를 지탱시키는 불멸의 영혼의 신비를 표현하려 한 것이 레오나르도의 예술의 일관된 집착이었다. 레오나르도의 완성된 최초의 대작인 이 작품은 거의 레오나르도 혼자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제작 연대는 1483년으로서 밀라노의 성당과 계약하고, 작품을 완성한 것은 12월 8일 성모 마리아의 날이었다. 물기를 먹고 있는 암굴 속에서 청록색의 옷을 입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풀 위에 앉아 있는 아기예수 에게 요한을 인사시키고 있다. 빨간 망토를 걸친 천사는 요한을 가리키고 있다. 무성한 식물들에 담겨진 물의 존재는 청정(淸淨)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요한에 의한 세례를 암시하고 있다. 원래 이 그림은 밀라노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있던 것이 1506년 이전에 팔려1842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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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a Madonna, Hermitage, St. Petersburg. 102
리타의 성모 1490-91년. 캔버스 탬페라 33cm x 42cm
구도가 단순, 명쾌해서 보는 사람의 주의가 자연 주제인 모자상에 집중되게되는데, 작가는 이 작품에서 모성의 이상적 형태의 창조에 집착하고 있다. 엄격히 따지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아닌지도 모르지만, 굳이 레오나르도의 작품이라고 그의 목록에 첨가한 것은 이 그림과 같은 레오나르도 자신의 작품의 존재가 다른 데상을 통해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의 주제는 12세기말부터 되풀이하여 그려지고 있다. 주목할것은 아기 예수가 왼손에 갖고 있는 작은 새로서, 그것은 '영원'을 상징하고 있다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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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Gioconda (The Mona Lisa), oil on canvas, 1503-06, Musée du Louvre, Paris. 88
모나리자 1503-1506년. 판에 유채 53cm x 77cm
레오나르도의 대표작일뿐더러 인류 회화상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작품 이다. 작품에서의 감동은 흔히 '모나리자의 미소'로 말해지는 신비롭고 수수께끼인 미소이다. 그것은 이그림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올바른 감상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최상의 완성도를 보인 환상적인 배경의 풍경도 물론 감명의 대상이 된다. 한편 이 모델이 모나리자라는 설도 있으나, 당시의 주변 기록이나 레오나르도가 조콘다 부인과 접촉 했다는 아무런 확증도 없다. 신비로운 이 모델에 의해서 모나리자의 신화가 창조되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퍼지게 된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전후 4년에 걸친 장기 제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미완성으로 작품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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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ois Madonna, Hermitage, St. Petersburg. 119
베느와의 성모 1478년. 캔버스에 유채, 31.5cm X 49.5cm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꽃이나 고양이와 같은 매개물을 그려서 서로간의 애정 교류를 이룩하고, 회화적인 표현으로 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흰 꽃도 그와 같은 애정의 교류물로서 소녀와 같은 성모와, 그의 동생과 같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기 예수의 얼굴은 이상 하리만큼 커서 성모의 얼굴과 별로 다를 바 없을 정도이다. 두사람은 성모자 이기보다는 남매와 같은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 같다. 미완성의 작품이라고 생각되나, 배경의 공허한 느낌이나 색채의 변화가 없는 것이 눈에 띈다. '리타의 성모'처럼 소유자 이름을 붙여 '베누아의 성모'로 불리는 이 그림은 현존하는 레오나르도의 결코 많지 않은 확실한 진품의 하나이다. 성모의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표현된 것은 그만두더라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위대한 화가가 이탈리아 회화에서 처음으로 모자의 시미적 일체감을 표현하고 있는 점이다. 이 작품으로 레오나르도는 15세기 리얼리즘의 성과를 마무리짓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의 새로운 통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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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Supper, 1495-98, fresco Santa Maria dell Grazie, Milan. 174
최후의 만찬 1498년 회반죽위에 템페라 880cm x 460cm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 그라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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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Ginerva de' Benci, 1474, National Gallery at Washington D.C. 99
지네브라 벤치의 초상 1474-1476년. 판에 유채 37cm x 42cm
지네브라 벤치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아메리고 데 벤치의 딸로, 그녀는 미인인데다가 직접 시를 쓸 정도로 지적수준이 풍부하였다. 그래서 피렌체에서 뿐만 아니라 로마 교황청에까지도 그녀의 지성과 미모가 크게 소문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1474년 1월 15일 17세 나이로 결혼하였을 때 그 기념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만년의 여성그림에 나타난 미소가 보이지 않고, 딱딱한 표정으로 있으나, 레오나르도의 젊은 시절의 필치에 의해서 대상 인물에 깊은 감정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구도가 가슴부터 윗부분을 잡았기 때문에 약간 단조로운 느낌을 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그림의 뒤에는 종려와 월계수, 그리고 소나무가 그려져 있고 [아름다움은 덕을 장식한다.]라는 글씨가 작품 뒤쪽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지네브라가 덕을 갖추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이 작품은 리히텐슈타인 공국에 대대로 물려 내려 오던 중 워싱턴 국립회화관이 비밀리에 입수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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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donna of the Carnation, Pinakothek at Munich. 192
카네이션의 성모 1475년경 판에 유채 47cm x 62cm
1475년경 레오나르도가 베로키오의 공방에 있을 때 제작되었던 것이라 추정된다. 그 무렵 보티첼리와 가까이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성모의 얼굴이나, 색채에 그의 영향이 엿보인다. 구도가 장식적이고 만년의 깊이는 느낄 수 없으나, 대상을 레오나르도적인 방법으로 처리한 기술은 이미 싹트고 있다. 성모가 한 송이 빨간 카네이션을 가지고 있고 아기 예수가 이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치고 있다. 오른쪽에는 목이 가는 유리 꽃병이 놓여져 있고 화려한 백합꽃이 꽂혀 있다. 이 카네이션은 그리스도교적인 순애의 상징이라고 생각된다. 하느님, 즉 신이 있는 세계를 나타낸 배경의 산은 나중에 레오나르도의 작품에 나오는 산의 선구(先驅)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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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제롤라모 1478 ~ 80년경 판에 유채 75cm x 103cm
미완성의 상태로서 밑그림의 단계이지만, 그럼에도 현세를 초월한 모습의 늙은 성자 이에로니무스가 실로 위압적인 정신적 경지로 표출되어 있다. 모든 세부에 레오나르도적인 필치가 느껴진다. 왼쪽 상단부의 십자가와 교회의 데상이 있는데 십자가는 단번에 그려졌고 그의 운필(運筆)의 기술이 느껴진다. 이 그림에 관한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연대는 측정키 어려우나, 이 그림이 다음에 이야기 할 <三王來朝>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1478 ~ 80년경의 작품이라 추정된다. 성제롤라모는 4세기에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한 4 대 교부 중의 한 사람으로 여기에서는 사자를 도와준 사막의 은사로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1820년에 어느 추기경이 로마의 한 잡화상과 신발가게에서 얼굴 부분의 화면이 잘려 나간 것을 따로따로 발견하여 원상으로 맞추었다고 전해지고, 그후 지금의 바티칸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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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ration of the Magi, Florence. 119
三王來朝 1481년 판에 유채 243cm x 246cm
레오나르도의 최초의 대작이라 생각되는 이작품은 미완성이지만, 여기에서 보는 것과 같은 단색의 소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레오나르도의 기술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어느 의미에서는, 완성을 의도하지 않고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작품의 제작 연대는 1481년 3월로서 성 도나트 수도원의 제단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받은 것이 확실하다. 초기의 미완성 걸작인 <三王來朝>에는 성모자, 노인, 말 등의 데상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든 선이 오른쪽 중앙을 초점으로 모여 있는 수학적인 완벽한 원근법 속에서, 뛰어 다니는 말의 무리와 사람들이 이중 노출의 이미지처럼 떠 올라 온다. 정(靜)과 동(動)의 신기한 융합이 <三王來朝>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기묘한 투기장인지 폐허 같은 건축은 도나텔로의 어떤 릴리프에서 빌어온 것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당시 고대 유적 발굴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이 작품의 주제는 '三王來朝' 이지만 화가가 전통적인 도상(圖像)을 무시하고 왜 이처럼 많은 사람을 그려 넣었으며, 성 요셉 과 성 요한은 어디에 있고, 문제의 삼왕은 누구인지 또는 배경과 전경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 이제까지의 연구 속에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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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Cecilia Gallarani (Lady with an Ermine), 1485, Czartoryski Museum at Cracow. 93
세실리아 갈레리니의 肖像 1483 ~ 90년경 판에 유채 39cm x 54cm
1483년부터 149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서, 18세기 말 폴란드의 아담 찰르레스키 황태자가 사들여 그의 처 이사벨라의 콜렉션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얼굴의 부분과 껴안고 있는 동물의 상반신과 손의 부분 등의 레오나르도적인 감각이 농후하다. 그 러나 다른 부분은 거의 나중에 덧칠을 하고 배경도 뭉개 버렸다. 그것은 보존 상태가 나빠서 수리하면서 이렇듯 평범한 톤의 작품이 되었다고 한다. 인물의 윤곽이 수정되고, 얼굴의 왼쪽이 다시 그려지고, 두발도 다시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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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a Musician, Pinacoteca Ambrosiana at Milan. 75
음악가의 肖像 1490년경 판에 유채 31cm x 41cm
이 작품은 잘 살펴보면 레오나르도의 수법이라고 생각 되는 것은 오직 얼굴 주변뿐이고, 그 부분도 레오나르도의 억제된 표현은 없다. 작품의 제작 연도는 1490년 전후로서 이 음악가는 레오나르도의 친구인 프랑키노카 프리오라고 생각된다. 그 까닭은 그가1482년 이후 밀라노 대성당의 합창단장을 맡고 그의 저서 '음악의 실 제'(1496년)의 목판 삽화를 레오나르도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증이 없는 이같은 연대 추정보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와서 많은 제자와 유파가 만들어지고 그의 데상을 모방하는 사람이 나온 시대의 것이라고도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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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초상 1490년경 판에 유채 34cm x 51cm
사랑스러운 초상화이지만 그 묘사의 안이함이 날카로운 레오나르도의 맛을 없에고 있다. 1490년경의 작품으로서 일설에는 앙브로지오 디 프래디스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으나, 프래디스의 화풍이 일정하지 않아서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주제가된 여성이 누구인지 오늘날에는 알 길이 없다. 음악가의 초상이 밀라노 공의 초상이라고 생각 되었기 때문에 그의 짝으로서 밀라노 공부인 베아트리체 데스테의 상이라고 오랫동안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이 상들이 짝이 아니라는것이 알려지면서 모델의 문제는 여러가지 억측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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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ing of a Woman's Head,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16
부인의 초상 (라 벨 페로니에르) 1490-95년경 판에 유채 63cm x 45cm
레오나르도가 그리기 시작했던 작품을 제자들이 한 장의 그림으로 팔기 위해서 손쉽게 정리하였던 경향이 있었지만, 이 그림은 그와 같은 경향이 한층 짙다. 얼굴이나 어깨등에 레오나르도적인 감각은 남아 있으나,그곳에 다시 칠한 흔적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포즈, 목걸이, 의상에 어딘가 모르게 딱딱하고 가라앉은 인상을 준다. 이는 당시 밀라노의 궁정 취미를 반영하고 있다. 특히 앞쪽 난간의 부분에는 아름다운 손이 그려졌어야 할텐데 난잡하게 잘리어져 있다. 확실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밀라노 궁정 시대에 공방에서 제작한 초상화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1642년 컨템플로 궁에 작품이 있었다는 기록에 따라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프랑스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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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a (copy- the original does not survive), Galleria Borghesee at Rome. 126
레다 1498-99년경 판에 유채 86cm x 112cm
화고(畵稿)의 형식으로 존재하여 원화는 분실되었다고 생각된다. 제작 연대는 1498년부터 1499년 사이이다. 레오나르도의 <레다>에 라파엘로의 모사 스케치가 있지만, 그것은 1503년 이후에 피렌체에서 그린 것으로서 적어도 그 이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레오나르도의 머리 형태에 대한 추구는 독특한 것이 있어서 밀라노 시대의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이 <레다> 화고를 밀라노 함락 후 피렌체에 가지고 갈 때 죠르죠네에게도 보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 때문에 죠르죠네의 같은 주제의 그림이 제작되었으리라 추측된다. 따라서 이 그림은 '아쎄의 방'을 그렸을 무렵, 밀라노 시대 최후 시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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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n & Child with St. Anne & John the Baptist (The Cartoon with St. Anne), National Gallery, London.
聖안나와 聖母子와 聖요한 1499년경 종이, 목탄.연백 101cm x 139cm
갈색 종이에 목탄과 하얀 유약으로 밝은 부분에 악센트를 줌으로써 명암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유화 작품을 위한 준비라기 보다는 애당초 완성된 작품으로 의도한 것인 듯하다. 드로잉의 세계가 바로 이것이다. 이 화고에서 출발하여 나중에 제작한 <성안나와 성모자와 어린양>의 구도가 이루어졌으리라 추정된다. 제작 연대는 1499년경으로, 17세기의 세바티아노 레다스 신부의 편지가 이를 입증한다. 보통 성 안나와 성모가 그려진 그림은 마사치오의 같은 주제의 그림과 같이 상하 관계가 있으나, 여기서는 그것이 파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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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n & Child with St. Anne, Musée du Louvre, Paris. 118
聖안나와 聖母子의 어린양 1510년 판에 유채 130cm x 168cm
레오나르도의 몇 점 안되는 완성작품의 하나이다. 구석구석까지 여유있는 레오나르도의 필치가 느껴 진다. 1501년부터1591년까지 단속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대작인 이 걸작을 보면 그의 심오한 예술 경지의 절정을 알 수 있다. 작품에는 어머니인 성 안나의 무릎에 앉은 성모가 몸으 굽혀 희생을 상징하는 어린 양과 놀고 있는 아기 예수를 두 손으로 들어올리려는 정면이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중세때부터 그려지고 있지만, 만년의 레오나르도는 이 주제에서 오랫동안 탐구해 온 인간과 자연의 정신성으로부터 우주와 생명의 신비까지를 담은 화면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성 안나와 성모자의 그림은 거의 대부분의 이탈리아 화가들이 그린 주제로서 그의 표현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나는, 마사치오 형과 같이 성 안나가 성모의 뒤 쪽에 앉아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소리의 그림과 같이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이 그림은 전자의 예이지만 제작과 정에서는 여러가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성 안나의 신앙은 15세기에 이루어져 마리아의 어머니로서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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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 John the Baptist, Musée du Louvre, Paris. 71
聖요한 1510-16년경 판에 유채 57cm x 69cm
레오나르도의 만년의 명작품이다. 배경을 암흑으로 설정하고 그 속에서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요한의 웃옷을 벗은 반신상이 마치 환영처럼 떠오르고 있다. 배경이 검게 처리된 것은 무엇인지 어두운 풍경을 그려 넣으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자신의 명령에 따라 제자들이 검게 지워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한의 수수께끼의 미소는 '모나리자' 및 '聖안나와 聖母子의 어린양' 등의 그것과 함께 레오나르도 특유의 것이다. 여기서는 그 전까지의 신비로운 미의 탐구가 집대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제작 연대는 1510년부터 1516년 사이로 이미 레오나르도가 화가로서의 일을 포기하고 해부학이나 지질학 등 과학적인 일에 몰두하였을 때이다. 성요한의 얼굴에는 어느 의미의, 성적(性的) 의미를 내포한 미소를 담고 있다. 반은 남성이고 반은 여성이며, 신적도 아니고 동물적도 아닌 미소가 담겨있는 것은 교묘한 레오나르도 자신의 의도를 잘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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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nunciation,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31
수태고지 1472~75년경 판에 유채 217cm x 98cm
천사상에 비해 마리아는 어딘가 모르게 딱딱하다. 부자연스러운 것은 서안 위에 올린 오른손을 너무 이쪽으로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20세 무렵의 초기 그림이어서 완벽치 못한것일까. 그러나 전경의 화초 묘사는 레오나르도의 일찍부터 독특한 사실 묘사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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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세례 1473년경 판에 유채 177cm x 151cm
1473년에 그린 것이라 추정되는데 작품의 주문자는 성 사르빅 성당이라고 전한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제3장 13절부터 17절까지 기록된 그리스도 세례의 장면이지만, 천사가 곁에 그려져 있고, 더욱이 등을 보이며 머리를 옆으로 묘사하는 수법은 이미 레오나르도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손에들고 있는 그리스도의 옷은 그리스도와 천사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몸의 움직임과 더불어 가운데 세례 장면을 강조하려는 배려가 보인다. 이들은 조형적인 의미이지만 풍경도 요단 강의 연장이고, 물 또한 정화(淨化)의 상징이며, 암벽의 돌은 신의 존재를 지칭하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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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커스 1511-15년경 캔버스 유채 115cm x 177cm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레오나르도의 진품이 아니라고 이야기되어 왔으나, 17세기에 <성요한>상에서 부터 <바커스>상으로 고증이 달라짐에 따라서 레오나르도설은 더욱 희박해졌다. 이 <바커스>상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된 <성요한>상이 있으나, 이것이 <바커스 >상 이전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포도의 관, 범 가죽, 지팡이 등이 변경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데상은 그 바위의 묘사 등에서 레오나르도적인 것이 적고, 또 체구나 얼굴의 표현이 딱딱해서 품격 높은 레오나르도의 필치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프랑소와 1세 의 수집품에서부터 1625년에는 컨템플로 궁으로 입수 되고,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루브르 미술관 소장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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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of a Woman Uffizi, Florence
여성의 두상
에르미타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젖먹이는 성모>의 표정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이 데상이 바탕이 되어서 그 작품이 완성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이 두부는 성모자상을 나타내는 일부로 레오나르도가 밑그림으로서 남겨둔 것을 다른화가가 가필하여 현재 상태에 이르렀으리라 추측한다. 특히 마르코 두치오의 작품이라하는 <젖먹이는 성모>(파리 루브르 미술관)는 이 여성 두부와 가장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레오나르도의 여성상이 당시 화가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 또 그러한 레오나르도에 의해서 창작된 성모의 모습이 르네상스 회화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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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해부도 1512년경 종이 펜 32.8cm x 47cm
1480년대부터 그의 생애동안 열심히 연구한 해부학 연구의 성과의 하나로서 보여지는 것이다. 시체를 해부하는 것을 교회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던 당시로서는 놀랄 정도로 정확한 각 기관과 각 혈관 계통의 자세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는 특히 여성의 임신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임신과 태아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우리들은 이 그림을 투시도로서 뿐만 아니라 형태의 아름다움으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해부도로서의 정확성 보다는 도상학적인 세부의 아름다움이 넘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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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 Portrait, National Gallery at Turin. 163
자화상1512년경 종이에 빨간 초크 21.3cm x 33.3cm
이 초상화가 레오나르도의 제2 피렌체 시대에 그린 것이라 추정되는 까닭은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의 모습이라고 이 초상과 닮은 두부(頭部)를 그렸기 때문이다. 확실히 50대의 모습으로서는 늙어 보이나, 이것 이외에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자화상이 2점 있는데, 그것은 이 작품보다 더욱 늙어 보이고 약해 보인다. 유연하고 철학자 풍의 모습은, 능히 모나리자를 그려서 피렌체 제 1 의 화가로서 명성을 날린 시대의 확실 하고 날카로운 묘선(描線)에 따라 이룩되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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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portions of Man, Academy, Venice. 149
남성의 나체와 신체도 1503년경 종이 빨간 쵸크 16cm x 27cm
레오나르도의 인간 관찰은 자연 과학 자로서의 그의 능력의 소치이지만, 이 그림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그의 관찰은 어디까지나 아름답고 정확한 인간 상을 그리기 위한 기본적인 도상인 것 이다. 따라서 <남성의 나체> 는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습작이지 단순한 해부학도는 아닌 것이다. 이 같은 남성의 습작은 그의 많은 회화 작품에서 나타나는 남성의 모습에 기본이 되는 것으로서, 예컨대 <앙리 가의 會戰>를 위한 습작 인지도 모르 겠다. 이 데상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레오나르도는 인체가 지니고 있는 완전한 좌우 대칭을 강조하고, 인체의 외부를 형성하는 근육의 볼륨을 강조 함 으로써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골격과 근육과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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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블지오 기마상을 위한 습작
해부학보다는 그의 형태의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은 말의 그림이 외부에서의 관찰을 토대로 하고 말의 체구의 아름다움은 임어당도 말했듯이,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여기에 그려진 말의 습작은 조각이나 그림을 위해서 마련한 것이다. 1511년경 트리블지오 장군의 기마상 제작에 있어 명세서가 남아 있는데 그것과 견주어 보아 데상을 알아볼 수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장군 기마상에서도 뛰는 말과 걷는 말이 구상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커다란 태좌(台座)가 8개의 원주에 지탱되고 그 밑에 장군의 석관(石棺)이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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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花草)
레오나르도 회화 연구에 있어서그가 꽃을 얼마만큼이나 자세히 관찰하고 표현하였는가를 말해 주는 좋은 예이다. 물론 레오나르도의 데상은 오늘날 까지 수천 점에 달하는 수가 남아 있고, 그것은 화가 레오나르도가 제작을 위한 준비로서 마련했다기보다는 자연 과학자 레오나르도가 생명의 신비에 대해 탐구하는 실험적인 성과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서 볼 수 있는 꽃의 묘사는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암굴의 성모>를 그리기 위한 준비로서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그림의 세례 요한의 아랫 부분에 위치한 꽃의 묘사가 분명히 여기서 제시하는 꽃의 습작과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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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ration of the Magi, 1481-82,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受胎告知'를 위한 습작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受胎告知>의 제작을 위한 데상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세부적인 관찰을 한다면 이 습작과 원화에 그려진 성모와의 표현상의 차이가 있다고도 보겠으나, 분명히 이 습작은 얼굴의 표정의 유사성 때문에 그것을 위한 준비 데상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눈과 머리의 묘사 방법에 있어 크레디풍의 솜씨가 엿보이므로, 그 당시 레오나르도와 크레디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만큼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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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Isabelle d'Este, black and red chalk with pastel highlights, Musée du Louvre, Paris.
이사벨라 데스테의 초상1499년경. 빨강색 초크와 노랑색 파스텔 46cm x 6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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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ing of the face of the angel from The Virgin of the Rocks. National Library, Tu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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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of the Heads of an Old Man and a Youth,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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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of an Old Man's Profile,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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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wing of an Assault Chariot with Scythes, National Library at Turin.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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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ttle of Anghiari (copy- the original does not survive),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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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 Study for "Adoration of the Magi",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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