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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44 - 은하
S#1. 기숙사 전경
아침풍경. 아침조깅을 하거나 하품하며 걸어가는 학생들...
S#2. 지원/ 경진 방
지원, 피곤한 기색으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모니터에서는 논문에 필요한 프로그램 화면이 돌아가고있고.
지원, 프로그램이 잘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목이랑 어깨를 돌려본다. 밤샘후의 피곤을 푸는 중이다.
경진쪽 돌아보면 아직 자고있는 중.
지원, 일어나 수건을 들고 나간다.
S#3. 세면실
자현이 푸파푸파 세수를 하고 있다.
들어와 옆자리에 서서 머리를 묶는 지원.
자현 : 잘 잤냐. (보더니) 잘 잔 얼굴이 아닌데? 또 밤새웠냐?
지원 : 어... 논문 결과 뽑느라구.
자현 : 논문은 너만 쓰냐. 나도 쓰고 경진이도 쓰고 4학년이면 다 쓰는건데 그렇게 심각하게 할거 없어.
대충 대충 하면서 살아라. 어?
지원 : (웃으며 세수하는데)
자현 : (얼굴 닦으며) 경진이는 아직 자?
지원 : 어제 뭐한거야? 새벽에 들어오든데.
자현 : 또 어디 들러붙어서 먹고 마시고 놀았겠지. 그러구두 랩일하고 논문쓰고 숙제 다 하는거 보믄 신기해.
S#4. 지원 / 경진 방
경진, 막 일어난 얼굴로 정신없이 외출준비를 하고 있다.
일단 컴퓨터 전원을 켜고 스웨터를 꿰입으며 가방 끌어당겨 챙기고 사이사이 컴퓨터를 보면 아직도 검은 화면.
급해서 책상아래로 들어가려다가 보면 지원의 컴퓨터에 화면보호기가 돌아가고 있는게 보인다.
미련없이 지원의 컴퓨터쪽에 앉아 작업하기 시작하는 경진. 하다가 빨리 안 되는지 컴퓨터를 탕탕 쳐보기도 하고.
지원이 세면도구를 들고 들어온다.
지원 : 뭐하는거야?
경진 : (돌아볼 겨를도 없이) 어, 좋은 아침.
지원 : (보다가) 내 컴퓨터로 뭐하는거냐구.
경진 : 미안. 내가 좀 급하거든. 자료 찾아갈게 있는데 잊구 있었네.
지원 : 나 프로그램 돌리고 있던 중이었어. 확인한거야?
경진 : 그래? 급해서 그러니까 니가 좀 이해해주라.
지원 : 너 그 프로그램 한번 돌리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하는 얘기니?
경진 : 나? 잘 모르지.
지원 : ...나 지금 심각하게 얘기하는거야. 너 이런적 한두번이 아니잖아.
경진 : (일어서 디스켓 뽑으며) 한 서너번쯤 되나? 야, 너답지 않게 뭐 그런거 갖구 화내구 그러냐? 다 됐다, 다 됐어. 고마워어.
경진, 웃으며 지원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후다닥 나가버린다.
안좋은 기분으로 그런 경진을 쳐다보는 지원.
S#5. 박교수 랩
남희, 지원, 진수, 마이클 모여앉아있다.
박교수, 자리에서 일어서며.
박교수 : 금요일이잖아.
남희 : 예? 뭐가요?
박교수 : 아, 그 오토노모스 에이전트의 자율학습에 관한 프로젝트 물어본거 아니었나? 그거 이번주 금요일,
첨단정보연구센터에서 중간발표회를 하기로 했다니까.
아이들 : (놀란 표정들이고)
마이클 : 금요일? 금요일이면 며칠 안남았잖아.
박교수 : (반응들 둘러보더니) 어... 내가 저번주에 얘기 안했나?
남희 : (한숨 휴우..) 그동안 준비해온게 있으니까 할수있을거에요.
박교수 : 그래그래. 우리가 그동안 돈 받아서 논것도 아니고 열심히 연구한걸 보여주는건데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있나?
하던대로 하자구, 하던대로.
박교수 나가버린다.
남희 : 지원아, 소스 프로그램 짜는 일 니가 맡았지? 좀 급하게 해줘야겠다.
지원 : 해볼께요.
S#6. 건물 앞
진수와 지원 걸어나오며.
진수 : 졸업논문 제출기한이 언제까지에요?
지원 : 다음주 월요일.
진수 : 겹치네요. 할수 있겠어요? 이번 프로젝트 준비 때문에 많이 늦어졌다고 그랬잖아요.
지원 : 논문 써야하니까 빼달라고 할순 없잖아. 논문은 이제 대충 마무리만 하면 되니까 괜찮을거야.
진수 : 힘들면 얘기해요. 도와줄수 있어요.
지원 : 너도 할 일 있잖아. 먼저 갈께.
지원, 돌아서는데 건물입구쪽에 서너명의 아이들과 서있는 경진을 발견한다. 웃고 떠들며 인사하는 중.
지원, 그냥 지나가려는데 달려와 붙잡는 경진.
경진 : 지원아. 너 도서관에 가는거 맞지?
지원 : 그런데?
경진 : 아이구, 잘 됐네. 그럼 가는길에 이 책 있나 좀 봐줄래? 내가 지금 누굴 급히 만나러 가야되는 길이라서 말이지.
그게 뭐냐면... (부시럭거리며 주머니 뒤지고) 내 논문을 쓰는데 꼭 필요한 책이거든 어디 적어뒀는데... (펼쳐주면)
지원 : 꼭 필요한 책이라면 니가 가서 찾어. 난 그럴 시간은 없을거 같다. 미안해.
경진 : 그래? 그래 알았어.
지원, 쌀쌀하게 돌아서 가다가 뒤돌아보면 경진, 아까 그 아이들과 다시 얘기중인 모습이 보인다.
S#7. 캠퍼스
백곰, 캠폴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한곳을 유심히 바라본다.
백곰이 보는곳, 은하 (10살, 여)가 고무공을 탁탁 바닥에 튀기며 걸어오고 있다. 공이 도로로 튀어서 위험해보이는.
백곰, 내려서 다가가.
백곰 : (부드러운 목소리로) 꼬마야? 여기서 뭐하니?
은하 : (고개 들어본다)
백곰 : 이런거 가지고 놀면 위험하겠지? 누구 찾아온건가? 이 아저씨한테 말해보세요.
은하 : ...그걸 꼭 알아야되나요?
백곰 : (완장 턱 짚어보이며) 너 캠폴이 뭔지 모르는구나?
은하 : (보기만)
백곰 : 그렇지, 알 리가 없지. 캠폴이란 것은... 캠퍼스 폴리스. 그러니까 캠퍼스라는 것은... 영언데, 학교를 말하는것이지?
폴리스, 이것도 영어야. 경찰.
은하 : (귀찮은 기색 비치며 주위를 둘러본다)
백곰 : 뭐 자세한것까진 몰라도 되고,..... 가는데가 어디야? 아저씨가 데려다줄께.
은하 : 전자과 이희정 교수님 찾아왔어요. 전자동 305호. 혼자 찾아갈수 있으니까 아저씬 아저씨 일보세요.
백곰 : 이희정 교수님?
S#8. 이교수 랩
명환과 만수, 테이블에 앉아있고
이교수, 책상앞에 서서 가방에 자료등을 넣고 있다.
명환 : (집 드라이브 디스켓 건네주며) 이미지 파일이라 용량이 많아서 집 드라이브에 저장했습니다.
이교수 : 그래. (받아넣고) 많이 늦진 않을거야.
만수 : 늦으셔도 괜찮습니다.
이교수 : 너 때문에 그렇게 못해. 저녁때까진 데이터 분석자료 볼수있게 준비해줄수있겠지?
명환 : 예. 다녀오십쇼.
이교수 : 정만수. 알겠지?
만수 : (입 삐죽 나와있다가) 네에.
아이들 일어서고 이교수 나서려는데 문 벌컥 열리고 들어오는 은하.
이교수 : (놀라서) 은하야. 너 여기 어떻게 온거야?
S#9. 이교수 연구실
이교수 전화중이다.
은하, 이교수 의자에 앉아 빙빙 돌면서 장난치고 있고.
이교수 : 은하가 여기 와 있다니까. .... 뭐? 언니두 모르고 있었어?
이교수, 전화기 든채 은하쪽 노려본다. 은하, 모른척 딴청하고.
이교수 : ... 아니아니.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그래. 딴데 안가고 여기 왔으니까 됐잖아. 내려올거 없어. 내가 데려다줄게.
어...당장... 아니 그건 안되고,.....난 뭐 노는 사람이야? 당장은 세미나 가야된단 말야..... 알았어. 내가 얘기해볼게.
이교수 전화끊고 은하 쳐다본다.
은하 : (딴청하며) 이 의자 되게 좋아. 이모.
이교수 : (의자 끌어다 앉으며)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마. 어떻게 된거야?
은하 : 뭐가?
이교수 : 왜 학교 안가고 여기 앉아있는 거냐고.
은하 : 학교 가기 싫어.
이교수 : 학교 가기 싫다고 여기 오면 어떡해?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줄 알어?
은하 : (삐죽)
이교수 : 학교는 왜 가기 싫은거야? 이유가 있을거 아냐. (톤 바꿔 부드럽게) 무슨 문제 있니? 혹시 누가 너 괴롭혀?
그럼 말해. 이모가 혼내줄게.
은하 : 누가 날 괴롭혀. 다 시시한 애들 뿐인데.
이교수 : 시시해?
은하 : 어. 유치하고 재미없어. 나랑 얘기 통하는 애도 없단 말야. 이모는 그런 때 없었어?
이교수 : ....
은하 : 엄마는 맨날 잔소리만 하구 아빠는 공부 잘하란 소리만 하구 그래도 이모는 나랑 말이 좀 통하잖어.
이교수 : (할말없음)
은하 : (분위기 바꿔 활기차게) 오늘 세미나는 뭐에요? 무슨 주젠데? 나 따라가두 돼?
이교수 : (급히 시계를 본다) 어머머머....
급히 옷이며 가방 챙기고 혼자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 은하손을 붙잡고 끌고 나간다.
S#10. 이교수 랩
은하, 정태 민재가 쓰는 책상에 앉아 책들을 뒤적이고 있다.
이교수, 명환, 만수, 정태 모여서 얘기중이다.
이교수 : (아이들에게) 중희도 출장가고 없어서 일이 많을텐데. 미안하다. 좀 부탁해.
만수 : 하이구, 제가 있잖습니까. 어린애 하나쯤 문제 없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재미있고 유익하게, 놀아주고 있겠습니다.
명환 :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늦었습니다.
이교수 : (마음이 안 놓이지만) 그래... 갔다올게. (은하에게 다가오며) 오빠들이랑 있을수 있지? 이몬 저녁에 들어올거야.
은하 : (고개 끄덕)
이교수 나간다. 만수 신나서 은하쪽으로 붙으며.
만수 : 이 오빠가 말이지. 오늘 은하를 책임져줄게.
은하 : (살피듯 빤히본다)
만수 : 음... (정태쪽 향해) 이 나이때 뭐하고 놀지?
정태 : 뭐 인형놀이나.. 고무줄 놀이, 이런거 아닌가?
은하 : 그런건 시시해서 안해요.
만수 : 얘는.. 시시하대잖아.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야야, 니가 이교수님 조카면, 니네 엄마랑 이교수님이랑 자매란 얘긴데,
혹시 엄마랑 이모랑 찍은 옛날사진같은거 본적없냐? 어렸을때 사진 있잖아. 돌사진, 백일사진, 넘어져서 징징 울고 있는거,
또 뭐냐, 바다에서 수영복 입고 찍은거... 뭐 그런 거 말야. 있지. 있지? (명환쪽 보고) 그런거 하나 비비에스에 올리면
이건 정말 특종인데, 그쵸?
은하 : (명환보고) 아저씨가 반장이에요?
명환 : 반장? 어... 그렇지. 이 랩에선 내가 반장이라고 할수있지.
은하 : 그럼 학생들이 아저씨 말 잘 들어요?
명환 : 어? 글세... 근데 왜?
은하 : (만수 가리키며) 이 아저씨한테 조용히 좀 하라고 얘기해주실래요? 시끄러워서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요.
만수, 뭐라고 대꾸도 못하고 은하와 명환을 번갈아 쳐다본다
은하, 새침한 표정으로 책으로 눈길 떨군다. (정태의 팡세)
정태, 은하쪽으로 다가와.
정태 : 이건 니가 봐두 재미가 없을텐데?
은하 : (책 탁 덮으며) 별거 아니네. 다 봤어요.
정태 : 다 봤다구?
정태, 새삼스레 은하를 쳐다본다.
S#11. 동아리방
은하, 책 구절을 외우고 있다.
은하 :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비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사고하게 하라.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상실된 존재로 느끼게 하라. 그리고 그로 하여금 자신이 갇혀있는 작은 감옥으로부터
지구와 그 위에 있는 여러 나라와 도시, 집들, 자기 자신의 참된 진가를 깨닫게 하라.
은하 주위에 둘러앉은 정태, 민재, 대욱, 경진, 자현, 만수 다들 놀란 표정으로 은하만 쳐다보고있다.
만수 : 봤지, 봤지? 내 말이 맞지?
민재 : 나는 그냥 듣기만 해도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그런걸 어떻게 한번 쓱 보고 외우냐?
대욱 : 그 텔레비전에 나와서 줄줄 외우고 미분적분 풀고 그런 애들 있잖아요. 신동. 딱 그거네. 그거.
자현 : 아... 나도 어렸을땐 동네에서 신동소리 들었었는데. 지금은 왜 이러지?
민재 : 동감이다.
경진 : (놀리듯) 너두 그런 소리 들었냐?
민재 : 너 지금 나 무시하는거지.
경진 : (웃으며) 어.
들어오는 지원.
지원 : 자료 놔둔 것 좀 찾으러 왔어. (은하보고) 얜 누구야?
만수 : 이교수님 조카. 내가 잠깐 맡았거든. 너두 일루 앉아서 좀 봐.
정태 : 그래, 지원이 너두 앉아봐.
자현 : 은하야, 하나만 더해봐. 어... (책 들춰보다가) 133번.
은하 : (시큰둥하게) 실물에는 여간해서 감탄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그림이면 실물과 매우 비슷한데 감탄한다.
그림이란 매우 공허한 것인데도 말이다.
대욱 : (자현에게) 맞어? 맞어?
자현 : (책 보다가 탁 놓고) 한자도 안 틀렸어. 한자도.
지원 : (서서 자료 챙기며) 책 외우는게 그렇게 대단한거니?
은하 : (지원을 쳐다본다)
경진 : 니가 제대로 못봐서 그래. 이건 척 읽으면 좔좔 외운다니까.
지원 : 책을 읽고 외우는 거잖아. 그게 뭐?
지원, 나가버린다.
은하, 가시돋친 눈길로 지원이 나간쪽 본다.
은하 : 저 사람 누구에요?
민재 : 어... 친구.
은하 : 공부 잘해요?
민재 : 우리 중에서 젤 낫지, 아마?
정태 : 누가 구지원일 당하겠냐?
은하 : ... (기억해두듯 지원이 나간쪽 보며) 그래요?
만수 : 또, 또 뭐해볼까? 이번엔 다른거 해.
만수, 책상위의 책들을 뒤적이는데 뾰루퉁해져서 일어나는 은하.
은하 : 나 갈래요. (만수보고) 아직 이모 올 시간 안됐어요?
S#12. 건물 로비
만수 스텝 밟으며 걸어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오는 은하.
만수 : (지나가는 학생 보고) 어, 형. (은하보고) 너 잠깐만 여기 있어. 알았지?
은하, 끄덕이고 만수, 선배에게로 뛰어간다.
만수, 선배와 이야기 주고받는 모습 보는 은하. 그 뒤로 지원이 지나가고 있다.
은하, 고개를 갸웃하며 유심히 지원을 본다.
S#13. 도서관 서가
지원, 서가에 서서 책을 보고 있다.
뒤쪽 서가에서 빼꼼히 머리를 내미는 은하. 지원을 보고 있다.
지원, 책을 꽂아두고 문득 그쪽을 보면 은하는 얼른 머리를 감추고.
지원이 다른 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은하, 지원이 섰던 자리에 와서 책을 죽 훑어본다.
돌아보던 지원과 눈이 마주친 은하. 잠시 당황하지만 그대로 지원을 지나쳐 걸어가버린다.
지원, 좀 이상해서 쳐다보면 은하, 지원을 모르는것처럼 머리를 찰랑거리며 계속 걸어가고 있다.
S#14. 도서관 일각
지원, 자리를 잡고 책을 보며 공부중이다.
은하, 새침한 얼굴로 옆자리에 슬그머니 앉는다. 지원이 보면.
지원 : (보면)
은하 : 주인 있는 자리 아니죠?
지원 : 그래.
은하, 지원이 옆에 놓인 책을 슬그머니 가져오더니 한 곳을 열심히 읽는다.
지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공부를 하는데.
은하 : 언니 공부 잘해요?
지원 : ... 그건 왜?
은하 : 잘한다면 뭐 물어볼려구요.
지원 : (피식 웃고) 뭔데?
은하 : 이거.
은하, 펼쳐진 책을 지원앞에 밀어놓는다. 좀 전에 보던 고급 수학책이다.
지원 : 이걸 니가 푼다구?
은하 : 못 풀겠어요?
지원 : 금방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닌데?
은하,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지원의 노트를 끌어당겨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일사천리로 달리는 펜.
감추려하지만 자랑스러움이 배어나오는 표정으로 노트를 돌려 지원앞으로 죽 밀어낸다.
은하 : 맞아요?
지원, 노트를 보다가 잠시 은하를 쳐다보더니 펜을 들어 노트를 한 장 넘기더니 뭔가 적기 시작한다.
은하, 뭔가 보는데 지원, 역시 노트를 돌려 은하앞으로 죽 밀어주며.
지원 : 이걸 풀수있으면 니가 원하는만큼 놀라줄께.
은하, 심각한 얼굴로 노트를 본다. 펜을 만지작거리지만 손을 못대고 노려보고만 있다.
지원 : 해답을 보고 외우는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야. 넌 그 시간이 좀 짧다는 것 뿐이잖아.
은하 : (골나서) 해답 본거 아냐.
지원 : (일어서며) 아까 그 문제 정말 니가 풀었다면 이 문제도 풀수있어. 원리는 똑같은 거니까.
지원, 책을 챙겨 가버린다.
은하, 반박도 못하고 입술을 깨물며 지원쪽을 노려보고 있다.
S#15. 복도
만수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급하게 달려오다가 지지직 브레이크를 밟으며 선다.
강의실 문을 한번 쓱 열어보고 나오다가 학생몇명이 모여있는 곳 중앙에 파고들어 얼굴을 확인해보는 만수.
학생들 뭐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다 가버리고.
만수 : 도대체 어디 간거야? 난 이제 죽었다. 몸집이 작아서 찾기도 어려워요.
만수, 옆에 있는 쓰레기통도 괜히 한번 쓱 열어보고 탁 닫는다.
다시 달려가는 만수.
S#16. 캠퍼스
자현과 병석, 길가에 나란히 앉아 무릎에 김밥을 놓고 먹으며.
자현 : (먹으며) 솔직히 대답해봐. 넌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병석 : 또 무슨 소릴 할려구 그래?
자현 : 심각하게 물어보는거니까 심각하게 대답해달라구. 나 머리 좋은거 같냐?
병석 : 아니. 전혀.
자현 : 어휴. 이게...
하다가 앞에 지나가는 은하를 발견하는 자현.
자현 : 어이, 정은하. (손 흔들며) 너 재 모르지. 보는 즉시 머리속에 좍 카피가 되는 애다 쟤가. 천재, 천재.
병석 : 그렇게 안보이는데?
자현 : 천재는 뭐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냐? 내가 보여줄게.
은하, 자현을 보더니 무시하고 그냥 가버린다.
자현 : 야, 너 일루 안와?
잡으려 일어서다가 김밥이 떨어질까봐 엉거주춤 도로 앉는데.
병석 : 야, 이제 들어가자. 수업시간 다 됐어.
자현 : (계속 집어먹으며) 먹던건 먹구 들어가야지. 몇분 지각하는거보다 수업시간에 김밥먹는게 더 큰 죄다. 너.
S#17. 식당 앞
경진, 식당앞에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경진 : 아니, 어떻게 된게 아는 사람이 하나도 안 지나갈수가 있지. 이러다 점심 굶는거 아냐?
(시계보더니) 앞으로 딱 5분만 기다리고, 그래도 안오면 내 돈으로 사먹는다.
고개드는 경진의 눈에 잡히는 은하. 두리번거리며 지나가고 있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난 듯 흐흐흐 웃으며 벌떡 일어나는 경진.
S#18. 석학의 집
미순, 경진과 은하가 밥먹는 모습을 의심스런 눈으로 보고 있다.
경진 : (먹다말고)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내가 지금 너무 맛있게 먹구 있나?
미순 : 아니, 이해가 안되서 그러는데 이거 니 돈으로 사는거냐?
경진 : 아유, 그럴 리가 있나요. 이렇게 비싼걸.
미순 :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난 어디서 돈을 받냐? 설마 요 코흘리개 어린애한테 내라 그럴건 아니지?
경진 : 얘두 돈 없어요.
은하 : (정색하고) 전 코흘리개도 아니고 어린애도 아닌데요.
미순 : 시끄러. 얘들이 지금 뭔 소리 하는겨. 다 늦게 밥내놓으란것두 참아줬드니.
경진 : 이교수님한테 받으세요. 얘가 이교수님 조카잖아요. 조카랑 밥 먹었다는데 설마 그걸 안 주시겠어요?
미순 : 이교수님? 너 확실하지. 이교수님은 외상장부 없는데. 그럼 이참에 새로 하나 만들어야 되나? 가만 있어봐.
카운터쪽.
진영이 컵 닦고 있고 미순, 다가와 안쪽에서 장부를 찾기 시작한다.
진영 : 언니는 저런 애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미순 : (찾으며) 헛소리 하지 말고 장부나 좀 찾아봐. 어디 간거야?
진영 : 나는요, 애들 볼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애를 잘 키울수 있을까.
미순 : 잘한다. 시집도 안간애가 무슨 애 타령이여.
진영 : 미리미리 생각을 해둬야죠. 언닌 아예 결혼 포기하신거에요? 그러지 마세요. 희망을 버리기엔 아직 젊잖아요.
미순 : (손바닥으로 바닥 탕 치며) 이게... 그만하구 얼른 장부나 내놔,
진영 : (쓱 보더니 얼른 장부 꺼내준다)
미순 : (받고) 연말이라 그런지 싱숭생숭 죽겠구만. (가게 둘러보며) 확 분위기나 바꿔버릴까.
진영 : 여기 수리하시게요?
미순 : (장부 들추며) 이 인간들한테 외상값을 받아야 수리를 들어가든가 말든가 하지.
경진, 은하쪽.
경진 : 지원이? 나랑 같은 방 쓰지. 근데, 지원이는 왜?
은하 : 그냥 좀 알고 싶어서요..... 지원언니, 어떤 사람이에요?
경진 : 지원이? (먹던걸 멈추고 생각해보더니) 그냥 구지원이지. 더 말이 필요 없어. 아니다. 그냥 구지원이 아니라
천하의 구지원이라고들 하지. (은하에게) 너 지금까지 지원이같은 사람 본 적 있어? 없지?
은하 : 너무 잘난 척 해요. 그쵸? 그래서 언니는 지원이 언니가 싫죠?
경진 : (허허 웃더니) 어이 어린 친구. 잘난척하기로 따지면 그대가 한 수 위잖아. 안 그래.
은하 : (삐지는데)
경진 : 그리고 지원이는 잘난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잘난거야. 그건 다른 거라구.
은하 : ... 나 오늘 언니방에서 자두 돼요?
경진 : 나야 뭐 상관없지만 교수님이 허락하실까?
S#19. 이교수 연구실
이교수와 처장, 서교수 앉아서.
서교수 : 그럼 오늘은 그 조카분과 함께 보내셔야 되겠네요.
이교수 : 죄송해요. 저도 꼭 참석하려고 한건데....
처장 : 아닙니다.
이교수 : 얘길 좀 해봐야될거 같아서요. 천재라고 주위에서 다 추켜세우기만 해서 버릇이 없거든요.
남들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구요. 사실 암기력이 좋다고 천재는 아니잖아요.
처장 : 천재와 영재는 다른건데 사람들이 잘 구별을 못하죠. 내가 음악은 잘 모르지만 말이죠. 잘 아는 친구가 그럽디다.
베토벤은 영재고 모짜르트는 천재다.
이교수 : 왜요?
처장 : 베토벤은 아주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음악을 만들었답니다. 물론 멋진 음악이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그다지 새로울것이
없다는거지요. 반면에 모짜르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아, 저런 표현방법도 있었구나, 정말 기발하다..이런생각이 든다구요.
이교수 : 예...
서교수 : 제 생각엔 그래요. 천재는 타고나는 거지만 영재는 만들 수 있다. 내가 듣기엔 조카분도 영재성이 있는거 같은데,
잘 만들어보세요. 영재성이 있다고 누구나 베토밴이 되는거 아니지 않습니까.
처장 : 맞습니다. 교육이 중요한거지요.
이교수 : 예.
S#20. 이교수 랩
만수, 탁자에 걸터 앉아 울상을 짓고 있다. 명환, 보다가.
명환 : 그러게, 잘 데리구 다녀야지. 이 넓은 학교안에서 어떻게 찾어.
만수 : 잠깐, 정말 아주 자암깐 눈을 뗀거 뿐이라구요. 이건 길을 잃은게 아니라 고의적으로 도망갔다고밖에 할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 책임은 반쯤으로 줄어들지 않을까요?
명환 : (자리에 앉으며) 글쎄 ... 교수님한테 그렇게 말씀드려봐.
만수, 한숨 포옥 쉬고있는데 들어오는 이교수.
명환, 인사하고 만수, 슬그머니 자리 피하려는데.
이교수 : 은하는?
만수 : (돌아서며) 예, 그게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교수님께서 들어오셨군요. 아깝습니다.
이교수 : 무슨 말이야? 어디 갔는데?
만수 : 예,,, 저 학교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정태, 정태한테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금방 올겁니다. 금방. 예.
이교수 : 그래?
울리는 전화벨.
만수 : (달려가 받으며) 하하 전화가 왔네요. 네, 지능제어랩입니다. ....야, 정은하! 너 어디갔던거야?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어?
당장 일루 안와?
하다가 얼른 입막고 이교수의 눈치를 본다.
S#21. 지원 / 경진 방
경진, 자현, 지민 과자정도 앞에 놓고 모여앉아 있고 은하, 전화중이다.
은하 : 이모..(귀아픈 듯 얼굴 찡그리고 듣고 있다가) 싫어. 여기서 자구 갈거야....이모 바쁘잖아. 집에 가도 책만 보고
있을거면서 뭐.... 정말 언니들도 괜찮댔단 말야. (듣고있다가 경진에게 수화기 건네준다) 바꾸래요.
경진 : 나? (받아들고) 예, 교수님. 저 민경진입니다.... 그럼요, 괜찮습니다. 제가 내일 오전에 데리고 가면 되겠습니까?
예. 걱정마십쇼. 안녕히 주무세요. (끊고)
자현 : (은하보고) 너 애기해봐. 어떻게 하는거야? 어?
은하 : (어깨만 으쓱)
지민 : 그냥 보기만 하면 머리속에 좌르르 복사가 되나?
자현 : 내가 알겠냐. 니가 알겠냐.
지민 : 너무 부럽다. 시험공부고 뭐고 할 필요가 없잖아. 그냥 보기만 하면 주르르 나오는데.
지원, 들어와 은하를 본다.
경진 : 아, 지원아.
지원 : (은하에게) 너 여긴 어떻게 들어온거야?
은하 : (모른척)
경진 : 내가 데리구 들어왔지. 사감언니 눈 피하느라구 혼났다.
은하 : (지원 무시하고 경진에게) 계속해요.
지원 : 뭘 계속해?
지민 : 딱 10분 봤는데 한번보고 별이름이랑 거리, 등급까지 다 외워요. 신기하죠.
경진 : 별보고 산지 20년이 넘은 나보다 더 잘안다. 얘가. (기습적으로 은하쪽으로) 조랑말?
은하 : 키탈파. 4.1등급, 300광년.
경진 : 물병.
은하 : 사달멜리크. 사달수드. 사다크비아. 스카트. 알발리. 등급까지 외워봐요?
은하, 겉옷을 벗고있는 지원의 눈치를 본다. 그러다가 지원과 눈이 마주친다.
지원 : 너 그 별들 중 하나라도 본적은 있어?
은하 : 뭐라구요? (질문을 이해 못하는)
지원 : (책상에 앉으며) 이름이나 거리를 안다고 그 별을 아는건 아니지.
은하 : (입술을 깨무는데)
경진 : (은하의 기분나쁜 기색을 눈치보며) 야야. 어쨌거나 대단하잖아. 내가 쟤 나이때, 별은 푸른하늘 은하수밖에 몰랐다구.
지원, 자리에 앉았다가 굳은 얼굴로 다시 일어난다.
지원 : (경진에게) 나하고 잠깐 얘기 좀 할래?
경진 : 애기 좋지. 해.
지원 : (은하보고) 여기서 할 얘긴 아닌거 같아서.
아이들, 무슨 일인가 경진과 지원을 쳐다본다.
S#22. 기숙사 복도
지원과 경진 걸어나오고.
경진 : 무슨 얘긴데? 여기 춥잖아. 빨리 끝내고 들어가자.
지원 : 쟤 오늘 여기서 자구 갈거니?
경진 : 어.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 우리 방값 받을까?
지원 : 잘데도 없잖아. 그리구 나 오늘밤 작업해야되는데.
경진 : 해. 방해 안할께.
지원 : 어떻게 방해가 안돼. 이 방은 너 혼자 쓰는 방이 아니라 나도 반은 권리가 있어. 이런건 나한테 물어보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 아니니?
경진 : 야. 이왕 이렇게 됐는데 좀 봐주면 안되겠냐? 어린애 앞에서 내 체면도 있잖아.
지원 : 넌 항상 이런식이었어. 멋대로 결정해놓고 내말대로 따라와라. 정말 이런 얘기까지 하고싶지 않았는데 나 한달동안
밤새워가면서 논문작업 매달렸어. 랩 프로젝트 발표회도 겹쳐있고. 너랑 이런 얘기하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라구.
경진 : 알았어, 알았어, 그럼 정식으로 물어볼게. (애절한 눈빛으로) 오늘밤 은하를 우리방에 함께 재워도 될까. 지원아?
지원 : 나 지금 심각하게 얘기하는거야. 내가 지금 우습게 보이니 ?
경진 : (좀 굳어서) 좋아, 그럼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니 속이 풀리겠냐? 재 가라구 쫓아내? 그래야 니 속이 편해져?
그렇다면 그렇게 할게.
지원, 말없이 보다가 방쪽으로 들어가버린다.
S#23. 기숙사 전경 (밤)
S#24. 지원 / 경진 방
지원은 등 돌리고 앉아 컴퓨터 작업중.
은하, 탁자에 앉아 책들을 뒤적이고 있다가 졸린지 눈을 비벼댄다.
경진, 그런 은하를 보고 일어나 웃옷을 걸쳐입는다.
은하 : 어디 가요?
경진 : 어. 이래뵈두 날 찾는데가 많거든. 랩에서 내가없으면 일이 진행이 안돼요. 나 아주아주 늦게 들어올거니까 내 침대에서 자.
저 언니 방해하면 절대 안돼. 화나면 무섭다. 너. 알았지?
은하 : (끄덕)
지원 : (잠시 멈추지만 돌아보지는 않고)
경진 : 좋아. (나가며) 지원아. 그럼 수고해라. 둘다 잘자아...
경진 나간다,
지원 : 난 좀 더 있어야되니까 졸리면 먼저 자.
은하 : 안 졸려요. (지원쪽으로 오며)... 뭐 읽을만한거 없어요?
지원, 보다가 책꽂이에서 얇은 책 한권을 꺼내준다. 어린왕자.
은하 : (제목을 보고) 이거 다 아는거야. 다른거 없어요?
지원 : 읽은게 아니구 아는거라구?
은하 : 읽었어. (읽듯이) 어린시절에 어른의 몰이해 때문에 괴로워하던 주인공이 어린왕자를 만남으로서 잊고있던 어린시절의
순수함을 되새기는 얘기잖아. 가장 중요한 테마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것의 대비라고 할수있어.
지원 : ... 넌 그런게 재밌니?
은하 : 어떤거?
지원 : 아무 소용도 없는걸 외우는거. 사람들이 널 보고 신기해하고 떠받들어주는거.
은하 : 왜 아무 소용이 없어요? 나 우리 학교에서 제일 공부도 잘하고 상도 많이 탔어요.
지원 : 근데 왜 학교 안가고 여기 있는거야?
은하 : ....
지원 : (다시 모니터보며) 내가 널 몰라주는거 같아서 화가 난 모양인데 그정도 공부 잘하는 사람은 많어.
날 놀라게 하고 싶으면 그 책을 다시 읽어봐.
은하 : (보다가) 언니는 왜 날 미워해요?
지원 : (돌아본다)
은하 : ... 진짜 알고 싶어서 그래요. 왜 날 미워해요?
지원 : ... 널 미워하는게 아니라 그냥... 화가 나는거야.
은하 : 왜 화가 나요?
지원 : 머리 좋은것만 믿고 아무것도 제대로 하려고 하질 않잖아..... 어떤 사람들은 그런게 화가 나.
(시간경과)
지원,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문득 은하쪽을 뒤돌아본다.
은하, 경진의 침대에 엎드려 자고 있다. 어린왕자 책은 시위하듯 방바닥에 떨어져 있고.
지원, 은하가 발로 차낸 이불을 제대로 덮어준다.
S#25. 기숙사 앞 /아침
기숙사 건물. 어깨를 움츠리고 지나가는 몇 명의 학생들.
잠시 후 지원이 나온다. 추운 듯 옷깃을 여미며 창쪽을 올려다보는 지원.
S#26. 지원 / 경진 방
경진은 침대에 곯아 떨어져있고 지원자리는 비어있다.
은하, 고무공을 가지고 벽에 던졌다 받으며 놀고 있다. 고무공, 튀어서 지원의 책상뒤로 넘어가버린다.
은하, 책상쪽으로 가 고개를 빼고 빼보려 하지만 안되는. 아예 책상위로 올라가서 공을 빼내려한다.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가다가 지원의 컴퓨터 하드를 넘어뜨린다.쿵 소리가 나고 그 소리에 뒤척이는 경진.
은하, 잠시 정지해서 보다가 결국 공을 집어내고 내려온다.
낑낑대며 하드를 올려세워 놓는 은하. (사태의 심각성 모름)
다시 공을 튀기는데 들어오는 지원. (씻고 들어오는 중) 경진쪽 한번 쳐다보고.
지원 : 내가 데려다줄게. 준비해.
S#27. 이교수 연구실
지원,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교수와 만수, 명환, 정태 같이 앉아있다가 지원을 돌아본다.
지원 인사 꾸벅하고 비켜서면 은하가 들어온다.
S28. 휴게실
이교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다가 보는쪽.
은하가 좀 떨어진 복도에서 벽에 붙여진 게시물들을 보고 있다.
이교수, 음료수를 들고 의자쪽으로 와 하나를 지원에게 건네준다.
앉아있던 지원, 일어서 받고.
이교수 : 재가 사람을 잘 따르는 애가 아니거든. 어떻게 한거니?
지원 : 어떻게 한거 없는데요.
이교수 : 저... 혹시 왜 학교에 안갈려고 하는지 너한테 얘기안하든?
지원 : 그런 얘긴 없었는데요.
이교수 : 어,.
은하쪽 보면 은하가 이쪽을 기웃거리고있다가 눈 마주치자 얼른 다시 벽을 바라본다.
지원 : 학교를 안가겠대요?
이교수 : 그래. 무슨 일이 있나 물어봐도 속시원히 대답도 안하고...(지원보고 웃더니) 내가 쟤한테 좀 약하거든.
혹시 은하가 너한테 그런 얘길하거든..
지원 : 저, 요즘 해야할 일이 겹쳐서 그럴 시간은 없을거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이교수 : 그래. 알았어. 어쨌든 어제일은 고맙다.
지원 :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지원, 일어나 인사하고 나간다.
이교수, 생각에 잠겨 음료수캔을 뱅글뱅글 돌리고 앉아있고
은하쪽
나오던 지원앞에 얼른 나서는 은하 지원앞에 어린왕자 책을 내민다.
은하 : 다 읽었어요.
지원 : (받고) 그래?
은하 : 이 부분이 젤 맘에 들어요. (외운다) 참을성이 있어야해.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볼거야. 넌 아무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수 있게 될거야.
은하, 도전하듯 빤히 지원을 쳐다본다.
지원 : (보다가) 어때?
은하 : 무슨 얘기에요?
지원 : 느낌이 있을거 아냐. 뭐가 느껴지냐고.
은하 : (가만 보다가 눈길 피하며) 난 그런 질문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
지원 : 너 읽은거 아냐. 내가 보기엔 아직 외우고 있는거 같은데.
은하 : 읽지도 않고 어떻게 외워? 말이 안되잖아.
지원 : (책 돌려주며) 다 읽은 다음에 돌려줘.
지원, 가버린다.
S#29. 지원 / 경진 방
경진, 책상에서 책등을 챙기다가 보면
지원의 컴퓨터 하드가 삐딱하게 자기 책상쪽으로 넘어온채 놓여있어 자꾸 팔에 걸리적거린다.
경진, 보다가 하드 뒷편의 선을 뽑고, 들어서 반대편 지원책상쪽으로 옮겨버린다.
경진 : 진작 이럴걸. 시원하구 좋네.
다시 선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보는 경진.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선을 다시 꼽아보지만 마찬가지.
경진 : 어? 이거 왜 이래?
툭툭 쳐보는데 들어오던 지원 그것을 본다.
경진 : 어, 지원아. 이거 좀 이상하네. 왜 아무것도 안 뜨냐?
지원 : (급히 다가와 본다)
경진 : 난 이게 걸리적거려서 이쪽으로 옮겨놓은거 뿐인데. 언제부터 이런거야?
지원, 이리저리 마우스도 움직여보고 전원도 만져보는데.
경진 : (별거 아니라는 듯) 고치면 되겠지 뭐. 수리점 소개시켜줘?
지원 : 고치면 돼? 지금 그런 말이 나오니?
경진 : 그럼, 안 고칠거야? 고쳐야될거 아냐.
지원 : 너한테는 모든게 어쩜 그렇게 간단하니?
경진 : 뭐... 간단명료한게 좋은거 아닌가?
지원 : 너한텐 그럴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중요한 문제야. 졸업논문이 여기 들어있단 말야. 또 뭘 어떡했길래 이러는거야?
경진 : 나는 그냥 여기서, 저기로, 옮겨놓은거뿐이라니까. 어디 다시 한번 보자. (컴퓨터 보려는데)
지원 : (경진의 손을 탁 뿌리치며) 됐어.
경진 : (약간 기분나쁘다) 너 지금 날 의심하는거야? 고장내놓고 오리발 내민다구?
지원 : 의심하는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잖아. 지금 내 컴퓨터가 고장나있고 이 컴퓨터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은
나 아니면 너밖에 없잖아. 그리고 내가 들어왔을 때 니가 이 컴퓨터를 만지고 있었어.
경진 : 그게 그 말이잖아.
지원 : 그럼 지금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되는거니? 오늘아침까지 잘 돌아가던 컴퓨터가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고장났다구? 너 같으면 그렇게 생각할수 있겠어?
지원, 더 얘기할 필요도 없다는 듯 급히 나가버린다.
혼자 남아 어이없어하는 경진.
S#30. 복도
지원, 급히 가다가 공중전화를 발견하고 들어간다.
지원 : (전화기에) 저, 컴퓨터가 고장나서요. 네, 될 수 있는 한 빨리 와주셨음 하는데..오후에요? 급해서 그래요. 지금은 안될까요?
명환, 이쪽으로 걸어오고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원,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기를 내려놓고 명환쪽으로 달려간다.
지원 : 저, 잠깐만요.
명환 : 어. 그래.
지원 : 컴퓨터에 대해서 잘 아시죠?
S#31. 지원 / 경진 방
방문앞엔 사감이 서 있고 (여자기숙사엔 남학생 출입안되므로) 방안엔 지원과 명환이 컴퓨터 하드를 보고 있다.
명환, 하드 덮개를 다시 덮는다.
지원 : (불안한 표정으로) 안되겠어요?
명환 : 무슨 충격받은일 있니?
지원 : ...
명환 : 이 정도로 손상됐다면 복구하기 어려워. 파일이 그냥 몇 개 깨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통째로 갈아야된다구.
지원 : 어렵겠어요?
명환 : 포기하는게 좋겠다. 이런 경우엔 수리점에 맡겨도 마찬가질거야. 뭐 중요한거 들어있었어?
S#32. 박교수 랩
지원, 급히 컴퓨터를 뒤져 파일을 찾아보고있다. 옆에서 진수가 보고있고.
찾는게 없는지 디스켓들을 뒤져 이것저것 꼽았다 빼보는 지원.
보던 진수와 남희, 다가와.
진수 : 무슨 일이에요?
남희 : 뭐야? 왜 그래?
S#33. 동아리방
정태, 길게 누워 책을 보다가 고개를 든다.
경진, 뭔가 생각에 잠겨 서성대고 있고 그 옆에 민재 앉아서 경진을 쳐다보고 있다.
민재 : 좀 앉어봐, 어지럽잖아.
경진 : 이민재. 누군가 너를 의심한다. 그럼 넌 어떻게 하겠냐?
민재 : 누가 너를 의심하는데?
경진 : 나를 의심하는게 아니고 너를 의심한다니까.
민재 : 니가 뭔가 의심 받을만한 짓을 했겠지.
경진 : 얘기가 안통하네. 얘 언제부터 이렇게 먹통이 됐냐?
민재 : 너랑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이다.
경진 : 그래, 너 많이 발전했다. 김정태 니 생각은 어때? 누군가 너를 의심한다.
정태 : 경진이 니가 그 일을 안했다면 문제될거 없잖아. 언젠가 풀리갰지.
경진 : 이게 쉽게 풀릴일이 아닌거 같단 말야...
정태 : 그 일이 뭔진 모르겠지만, 경진이 니가 안한건 확실한거야?
경진 : 그렇지.... (정신 차리고) 뭐야? 얘들이 증말..
진수 들어온다.
경진 : 너 랩에서 오는 길이지? 지원이 뭐하구 있든?
진수 : 지원선배 컴퓨터 고장났어요?
경진 : 어, 그럴거야.
민재 : 어떻게 고장난건데?
진수 : 하드가 다 나갔대요. 논문을 다시 써야 한다고 그러던데요.
정태 : (일어나 앉고)
경진 : (놀라) 논문을 다시 써? 왜? 다른 컴퓨터에는 없대? 뽑아놓은건?
진수 : 없나봐요.
민재 : 논문 마감 며칠 안남았잖아. 큰일이네.
진수 : 프로젝트 발표회도 걸려있는데... 지원 선배도 정말....너무 독해요. 지금 논문을 처음부터 다시 쓰겠다고 그동안 봤던 책들
목록을 작성하고 있는거 있죠.
정태 : 랩의 프로젝트면 니들이 좀 나눠서 도와주면 되잖아.
진수 : 물론 그러겠다고 했죠. 근데 자기가 맡은 일은 자기가 할 수 있단 말만 해요.
정태 : 어이그. (답답한 듯 머리를 긁는)
민재 : (경진을 유심히 보며) 니가 의심받고 있는 일이 혹시 이거냐?
경진, 애들을 둘러보면 정태와 진수, 민재 모두 경진을 쳐다보고 있다.
경진, 아무말없이 벌떡 일어나 나간다.
S#34. 박교수 랩
아무도 없는 방. 책상위에 지원의 것임을 알 수 있는 가방과 옷이 놓여있고 여러 가지 책과 자료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경진,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둘러본다. 찾는 지원은 없다.
나가려던 경진, 책상쪽으로 와서 책들을 들춰본다.
노트에 끼워져있는 메모지 한 장을 발견하는 경진. 대출받아야 할 책들의 목록이 적혀있다.
(인공지능, 퍼지이론, 유전자 알고리즘 등에 관한...)
S#35. 박교수 연구실
박교수와 마주앉아있는 경진/ 옆에 남희도 앉아있다.
경진 : 지원이가 노느라고 해야할 일을 미루거나 아예 안 할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엔 피치못할 사정으로 졸업논문을
마감시간까지 낼수없을지도 모르는 아주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이 선처를 해주시지 않는다면
졸업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지원이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서....
박교수 : 잠깐 질문.
경진 : 예.
박교수 : 그러니까 날더러 마감날자를 좀 늦춰달라는건가?
경진 : 예, 맞았습니다.
박교수 : 남희양. 내가 내 맘대로 그래도 되는거야?
남희 : 교수님이 심사교수님들께 사정을 설명드리면 되겠지만...직접 여쭤보시는게 좋을거 같은데요.
박교수 : 그럼 다음 질문.
경진 : 예.
박교수 : 그 피치못할 사정이란게 뭐지?
경진 : 논문작업을 방에 있는 컴퓨터에서 했는데 말입니다. 그게 어떤 원인모를 충격으로 인해서 몽땅 날아가 버렸습니다.
분명히 논문은 마무리가 되가던 중이었다는건 제가 봤기 때문에 보증할 수 있습니다.
박교수 : 음... 나도 전에 그런적 있지. 그거 정말 아깝지 아까워...근데 말이지. 논문이야 다 머리속에 들어있는거 아닌가?
그냥 머리속에서 꺼내쓰면 되잖아.
남희 : 지원이 논문 주제가 퍼지이론과 유전자 알고리즘을 이용한 통합최적화였잖아요. 지원이가 한달간이나 매일밤 새다시피 한
프로그램이 날아갔나봐요.
박교수 : 오오...근데 왜 경진양이 와서 이런 얘길 하지?
경진 : 에... 그게 그 원인모를 충격의 원인이 저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가
그랬을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교수님. 전날까지 쌩쌩 돌아가던게 몇번 툭툭 쳤다고 그렇게 먹통이 되버릴수 있는겁니까?
그것두 그전날 받은 충격 때문에요?
박교수 : 음..... 나한테 질문하는건가?
경진 : 하하, 뭐 꼭 대답을 원하는건 아닙니다, 질문 계속하세요.
박교수 : (생각해보다가) 없어.
경진, 일어나며 박교수를 향해 꾸벅 절을 해보인다.
경진 : 그럼 교수님만 믿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S#36. 이교수 랩
은하, 책상에 앉아서 골난 표정으로 어린왕자를 뒤적거리고있다.
신경질적으로 이리저리 뒤지던 은하. 책을 탁 덮는다.
주위를 살펴보면 이교수와 명환, 컴퓨터 앞에 앉아 얘기중이고 만수, 그 뒤에 서서 보고 있다.
돌아보는 만수, 은하를 보고 우스꽝스펀 표정을 지어보인다.
은하 : 이모.
만수, 찔끔해서 얼른 표정 푸는데 이교수에게 오는 은하.
은하 : 나 만나봐야할 사람이 있는데 잠깐 나갔다 와두 돼요?
이교수 : 만나볼 사람... 누구?
은하 : 지원언니요. 물어볼게 있어요.
이교수 : (잠시 보다가) 어디 있는지는 알어?
S#37. 캠퍼스
은하, 걸어오다 보면 경진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고 있다. (뒤에는 책들을 실은 상태)
앞으로 달려나가는 은하. 두손을 들어 막는다.
경진, 어어 하다가 서고.
경진 : 너 아직도 안갔어?
은하 : 지원언니 못 봤어요?
경진 : 너, 지금 지원이 옆에 얼씬도 하지 마. 다쳐.
은하 : 왜요?
경진 : 그럴일이 있어.
은하 : 그래도 데려다 줘.
S#38. 랩 앞 복도
지원, 급히 뛰어오다가 헛발질을 해 넘어질뻔 한다. 일어나려다가 그냥 벽에 기대앉는 지원. 막막하다.
잠시 그러고있다 보면, 랩에서 은하와 경진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얼른 털고 일어나는 지원. 경진과 은하가 지원을 발견한다.
경진 : 지원아.
지원, 모른척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은하 : 지원언니 왜 그래요?
경진 : ....
은하 : 언니.
경진 : (나쁜 기분을 떨쳐내듯) 내가 뭐랬어, 지원이 화나면 무섭다고 그랬잖아. 맞지?
은하 : ... 싸웠어요?
경진 : (일부러 과장되게) 아아니, 우릴 너의 수준으로 취급하다니. 싸운 친구한테 책은 왜 빌려다 주나. 안그래?
...사람이 너무 급한 상황이 되면 좀 이상해지는게 당연한거야. 가지. 어린친구.
씩씩하게 앞서가는 경진의 뒷모습을 보는 은하.
S#39. 박교수 랩
책상위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책들이 눈에 띈다. (경진이 빌렸던) 그 위에 책이름들이 적힌 메모지.
지원, 문쪽을 한번 돌아본다. 누구 짓인지 알겠다.
들어오는 박교수와 남희.
남희 : 아, 지원아. 니가 맡은 소스 프로그램, 진수한테 부탁하는게 낫겠다.
지원 : 갑자기 왜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인데요.
박교수 : 무리할거 없어. 아, 그리고, 논문은 며칠까지 되겠어? 담당교수님께 무조건 기다려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지원 : 무슨 말씀인지...
남희 : 모르는구나? 경진이가 찾아왔더라. 논문마감일 미뤄달라구. 그런 일 있었으면 직접 얘기하지 그랬니.
지원 : .... (표정 굳어지며) 죄송합니다.
남희 : (집 드라이브 들어보이며) 프로그램 작업해놓은거 여기 들어있니? 진수한테 전해 줘야하는데.
지원 : 제가 할수 있어요.... 일정에 차질없게 하겠습니다. 해볼께요
S#40. 복도
지원, 굳은 표정으로 바쁘게 걷고 있다가 멈춰선다.
정태와 대욱이 지원의 컴퓨터 하드를 들고 오고 있다.
정태 : 어, 지원아.
대욱 : 선배 걱정 마십쇼. 우리 선에서 안되면 최고의 전문가를 불러서 이거 확실하게 고쳐놓겠습니다.
지원 : (컴퓨터를 유심히 보다가) 그거 혹시 내꺼니?
정태 : 일단 우리가 먼저 들여다보고.. 그리고..
지원 : 그 컴퓨터 어떻게 꺼냈어?
대욱 : 경진 선배가 내줬는데요.
정태 : 니가 경진이한테 부탁한거 아니야?
지원 : ... 경진이 지금 어딨어?
정태 : 어, 기숙사에 있을걸? 방금 헤어졌는데.
지원 : 미안한데, 봐두 소용없을거야. 그냥 동아리방에 놔줘. 내가 나중에 찾으러 갈게.
그리고.. 정태 너두 논문 안 끝났잖아. 이런 데 시간 쓸 필요없어.
지원, 가던길을 총총히 가버린다.
대욱 : 지원 선배 화난거 같은데요?
정태 : 원래 고마우면 화를 내는 녀석이야. 아직 몰랐냐?
씩씩하게 가는 정태.
대욱, 할수없이 따라간다.
S#41. 지원/경진 방
경진이 지원의 컴퓨터가 놓여있던 자리를 치우고 있다. 걸레질을 하고 선을 정리하는 정도.
은하,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경진을 보고있고
은하 : 지원언니 컴퓨터는 어디 갔어요?
경진 : 고칠려구 잠시 내보냈지. 고장났거든.
은하 : (놀라서) 고장... 났어요? 왜요?
경진 : 나도 모르지.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내가 이해할수없는 일도 가끔 일어나는거거든. 그럴때마다 이게 뭐야? 화를 내는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봐. (걸레질하던 자리 보며 흐뭇하게) 아이구, 깨끗하다.
들어오는 지원.
경진 : 어. 웬일이야, 이 시간에?
지원 : (컴퓨터가 놓여있던 자리를 본다)
경진 : 어, 이거? 너 급하다며. 그래서 급하게 애들을 불렀지. 고쳐야 쓸수있는지 없는지 알거 아냐.
지원 : ... 이러면 내가 고마워할거라고 생각했니?
경진 : 아니, 그런 생각은 안해봤는데.
지원 : 그럼 일부러 나 곤란하게 만들자고 작정한거야?
경진 : (하하 웃으려 애쓰며) 니가 곤란할게 뭐 있어?
지원 : 니 방식대로 일 벌여놓고 수습은 나더러 하라는 식이잖아 지금. 박교수님 찾아가 논문 미뤄달라고
내가 너한테 부탁한적있니?
경진 : 어... 없지. 니가 그런거 부탁할 사람이냐?
지원 : 그런 얘긴, 하더라도 내가 직접 해야될 말이야. 상대방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그럴수는 없어.
컴퓨터도 그래. 고장냈으니까 이제 고쳐놓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거야?
은하, 겁먹고 아무말 못하고 있다.
경진 : 잠깐, 너 정말 이걸 내가 고장냈다고 생각하는거야?
지원 : 아니라면 니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경진 : 하! 꼭 그렇게 원인과 결과를 따져야되나?
경진, 뭔가 더 말하려다가 문득 은하를 돌아본다.
지원도 그제서야 은하를 보면 은하,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다.
경진 : 은하야. 너 좀 나가있을래? 언니들이 할 얘기가 있거든.
S#42. 기숙사 복도
은하, 문을 닫고 나온다.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다가 도망치듯 복도를 걸어나간다.
S#43. 지원/ 경진 방
지원과 경진 팽팽하게 긴장돼 마주보고 서있다.
지원 : 랩에 갖다놓은 책들, 니가 빌려온거지?
경진 : 그런데?
지원 : 가져가.
경진 : 그럴 필요까진 없잖아.
지원 : 이미 봤던 책들이야. 아무 메모나 가져가서 일 벌여놓은건 너잖아. 나, 이런식으로 니가 벌여놓은 일들 뒤치닥거리 할
시간 없어. 이건 날 생각해서 도와주려는게 아니라 니 맘 편하자고 한 일이잖아. 너한텐 세상일이 다 그렇게 쉽니?
경진 : 그럼 넌 꼭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고 다녀야 맘이 편하니? 너 그렇게 아둥바둥 사는거 보기 안타까와서 그런다.
내가 보기 싫으면 다른 애들한테 도와달라 부탁하면 되잖아. 너 친구없어? 다른 애들은 너한테 그럼 뭐야?
지원 : 도움같은거 필요없어. 방해나 하지 말아줘.
경진 : (이제 지쳤다) 좋아, 컴퓨터 고장난거, 내가 그랬어. 미안하다..... 나한테 더 할 얘기 있어?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은하가 들어온다. 지원쪽으로 곧장 가더니 지원 앞에 서서.
은하 : 경진언니한테 그러지 마. 내가 그런거야.
지원 : 무슨 소리야?
은하 : (울먹거리며) 저 컴퓨터 내가 망가뜨린거라구. 내가 컴퓨터 켜보다가 넘어뜨려서 그렇게 된거니까 언니들 싸우지 마.
내가 잘못한거야. 경진언니가 그런게 아니란 말야. (울음 터뜨린다) 친구들이 지원언니 미워하면 어떡할려구 그래에...
(엉엉 우는)
지원도 경진도 할말을 잃고 그런 은하를 쳐다보고만 있다.
S#44. 캠퍼스
지원과 은하 걸어오고 있다.
은하, 아직 훌쩍거리며 지원뒤를 따라온다.
지원 : (멈춰서) 잠깐 앉을래? 그런 얼굴로 들어가면 내가 야단맞을거 같은데.
은하 : (끄덕이고)
지원과 은하, 근처 벤치에 앉는다.
지원, 손수건을 꺼내 건네주고 잠시 보다가.
지원 : 좀 일찍 말해주지 그랬니? 니가 건드렸다구. 그럼..
은하 : 그럼 언니도 날 미워할 거잖아.
지원 : ... 왜 내가 널 미워해. 넌 그냥 실수를 한건데.
은하 : 내 친구들은 다 날 미워한단 말야. 누구나 다 날 미워해. 싫어한다구.
지원 : ....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은하 : 날 질투하는거야. 뭘 하든 내가 훨씬 더 잘하고 칭찬받으니까. 그래서 아무도 나하고 얘기하기도 싫어해.
점심때 아무도 나하고 도시락도 같이 안먹을려고 그런다고. 영선이도 딴 자리 가서 먹는단 말야.
지원 : 영선이가 누군데.
은하 : 내 짝.
지원 : 상관하지 마.
은하 : (보는)
지원 : 누가 널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신경쓰지 않고 살면 되잖아. 그런 거 때문에 학교까지 안가면 너만 손해잖아.
은하 : 체 언니는 친구가 많으니까 그런 소릴 하지.
지원 : 내가.. 친구가 많다구?
은하 : 다 언니를 좋아하잖아. 경진이 언니도 아침 내내 언니 책을 찾아주고 컴퓨터도 고쳐줄려고 그러고.
지원 : ....
은하 : 내가 힘들 땐 아무도 날 안도와준다구.
지원 : (물끄러미 은하를 보다가) 넌 어떤 때 힘든데.
은하 : .... 체육시간. 난 달리기가 싫어.
지원 : 그리고.
은하 : 미술시간. 난 색칠하는 게 싫어. 점심시간도. 도시락 혼자 먹는 게 싫어.
지원 : (혼자 미소짓더니 생각하다가) 그럼 우리 이렇게 해볼까. 이번에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 도와달라고 해보는거야.
은하 : 뭘.
지원 : 달리기 잘 하는 친구 붙잡고 달리기 잘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는거지. 그리고 영선이한테 도시락을 같이 좀 먹어달라고.
(말이 점점 느려지면서) 혼자 먹는 게 싫다고. 도와달라고.
은하 : ... 그럼 날 우습게 보면 어떡해.
지원 : 가끔은 우습게 보여도 좋잖아. 친구끼린데.
은하 : (생각해보는)
지원 : ... 정말이야. 니가 하나도 안 우스우니까 친구들이 널 무서워하는지도 몰라.
가끔은 우습고 한심하고 바보같이 보여봐. 그게 진짜 너잖아.
은하 : (말똥말똥 지원을 보는)
S#45. 지원/ 경진 방
지원, 캄캄한 방에 들어온다. 아무도 없이 텅빈.
불을 켜고 의자에 앉는 지원 책을 들추다가 경진의 자리 쪽을 돌아본다.
S#46. 박교수 랩
진수, 혼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 앞으로 내밀어지는 집드라이브. 보면, 지원이다.
지원 : 부탁이 있는데... 이거 이번에 발표할 거 좀 도와줄래?
진수 : (의외라서 보다가 받아든다) 도와달라고 했어요 지금?
지원 : 응 나 혼자는 못하겠어.
진수 : (피식 웃더니) 영광입니다.
S#47. 이교수 랩 앞
지원 서있고 민재와 정태 나온다.
지원 : 며칠밤 새워서 프로그램을 다 만들긴 했는데 시뮬레이션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데....
정태 : (좋아서) 민재랑 나랑 또... 쓸 수 있는 컴퓨터에 다 나눠서 하면 되지 않나? (민재보고) 할수있지?
마주보고 웃는 정태와 지원.
S#47-1. 동아리방
정태, 민재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중이다. 화면에는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있고...
정태, 뒤로 손 내밀면 뒤에서 자료를 뒤적이고 있던 지원, 다음 입력할 자료를 넘겨주면서 화면 들여다본다.
S#48. 첨단정보연구센터 전경
S#49. 연구센터 복도
문앞에 <오토노모스 에이전트의 자율학습 프로젝트 발표회> 종이가 붙은 발표회장 앞,
발표회가 끝난듯 몇몇 사람들과 함께 박교수가 웃으며 나오고 있다.
뒤이어 자료등을 안고 나오는 남희, 진수, 마이클의 모습도 보이고 지친 기색의 지원이 있다.
남희 : 다들 수고했어.
마이클 : 우리 오늘 저녁에 회식 안해요?
진수 : 발표회 하나 할 때마다 회식할 수는 없잖아. 이런게 한두번 있는것도 아니고.
마이클 : 그래도 너무해. 이럴 때 밥이라도 같이 먹고 헤어져야지 섭섭하잖아.
남희 : 좋아. 그럼 오늘 저녁은 내가 산다. 다들 괜찮지?
마이클 : 남희누나 최고야. 세상에서 제일 예뻐.
남희 : (웃고) 지원아, 너두 가자.
지원 : 미안해요. 나 빼구 다녀오세요. 가볼데가 있어서요.
남희 : 그래. 할수없지. 그럼 우리끼리 가자. 마이클, 뭐 먹을래?
아이들 왁자하게 떠들며 나가고 지원 걸음을 옮긴다.
S#50. 지원/경진 방
방바닥에 비질을 하고있는 지원 탁자위에는 경진이 어질러놓은 책이며 과자봉지, 자료들이 수북하다.
경진 들어온다.
경진 : (약간은 어색해하며) 어. 미안, 내가 이건 금방 치울거니까 조금만 참아줘. 자료 구하러 다니느라 내가 요즘 좀 바빴거든.
그놈의 논문은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도대체 나올 생각을 안하네.
경진, 책상위로 책들을 치우다가 보면 책상위에 곱게 놓여있는 논문. 경진이 찾고있던 논문이다.
경진, 놀라서 이리저리 넘겨보다가 아직 청소중인 지원을 본다.
경진 : 누가 갖다놓은거야?
지원 : (모른척)
경진 : 정리를 하자면 이렇게 되네. 지금 이 논문이 내 책상에 있어. 이 방에 들어온 사람은 나 아니면 너밖에 없어.
널 의심하는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단 얘기지.
지원 : (웃으며) 그만해. 그게 맞니?
경진 : 어떻게 찾았어?
지원 : 시간이 좀 남아서.
경진 : 하이구.. 구지원이 시간이 남어?
지원 : 니가 이해해. 사과하려고 했는데 이런 방법밖에 생각이 안나네.
경진 : (아깝다는 듯) 야, 그런거면 나한테 물어보지 그랬어. 내가 200가지는 넘게 가르쳐줄수있는데.
첫째, 아침을 사준다. 둘째 점심을 사준다. 셋째 저녁을 사준다. 넷째, 야식을 사준다...
웃어버리는 지원, 따라서 흐흐흐 웃는 경진.
S#51. 건물 앞 주차장
올때처럼 배낭을 맨 은하, 이교수와 함께 차쪽으로 온다.
이교수, 차문을 열려다보면 은하가 안고있는 책 한권이 눈에띈다.
이교수 : 그 책은 뭐야?
은하 : 빌린거에요.
이교수 : 그럼 돌려주고 가야지.
은하 : 다 읽으면 돌려주기로 했어요.
이교수 : 아직 다 못 읽었어?
은하 : 이건 좀 오래 걸릴거 같어. 아주 아주 오래.
은하와 이교수 차를 탄다.
은하, 책을 펴들고 읽으려는데.
이교수 : (벨트매며) 차안에서 책 읽으면 눈 버려. 집에 가서 봐.
은하 : 괜찮은데.
이교수 : 안돼. 얼른 집어넣어.
아쉽게 책을 덮고 앞을 바라보는 은하의 표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