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전 세계 영화팬들과 영화산업 관계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행사가 있습니다. 7일(미국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입니다. 1929년 영화인들의 조촐한 파티로 시작한 게 어느덧 82회를 맞았네요. 올해 작품상·감독상 등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아바타’가 뭔가 일을 낼 듯합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1997년 11개 부문을 휩쓸었던 ‘타이타닉’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카데미상의 역사와 각종 기록, 올해 주요 부문 후보작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기선민 기자
1. 올해 9개 부문 후보에 오른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2. 11개 부문을 휩쓴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1997년). 3. 11개 부문에서 수상해 역대 최다수상작 타이 기록을 세운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년).
순금 입힌 오스카, 2차 대전 때는 물자 달려 석고로 만들었답니다
1929년에 영화인 250여 명 참석, 조촐한 첫 회
아카데미상은 1927년 결성된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The 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가 만들었다. 스타 배우 출신의 영화제작자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가 주도했다. 1회 시상식은 29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루스벨트 호텔에서 열렸다. 영화인 250여 명이 회비 10달러를 내고 참석했다. 시상 부문은 15개였다. 지금처럼 전 세계적인 쇼가 아니라 영화인들이 모이는 조촐한 파티에 가까웠다. 수상 결과도 몇 달 전에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상 받는 사람 중 불참자도 많았다. 이듬해 라디오로 중계가 시작됐고, 지금처럼 TV쇼 형식으로 정착된 건 53년부터다. 첫 방송의 사회는 코미디언 밥 호프가 맡았다. 중계는 NBC와 ABC가 번갈아 가며 하다가 76년부터 2014년까지 ABC가 맡기로 됐다.
“트로피가 오스카 삼촌 닮아” … 유력한 ‘오스카’ 유래설
아카데미상의 다른 이름인 ‘오스카’는 트로피에 붙여진 애칭이다. 무게 3.85㎏, 높이 34.3㎝의 이 트로피는 주석·구리·안티몬의 합금인 브리태니엄에 순금을 입혔다. 초기 몇 년간은 청동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물자 부족으로 잠시 석고를 쓰기도 했다. 애칭이 어떻게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건 아카데미에서 비서로 일하던 마거릿 헤릭이 트로피를 보고 “우리 오스카 삼촌을 닮았다”고 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오스카라는 이름이 대중에 널리 알려진 건 캐서린 헵번이 ‘모닝 글로리’(33년)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한 영화칼럼니스트가 기사에 오스카라는 이름을 언급하면서다. 아카데미는 39년 오스카를 공식 이름으로 채택했다.
LA서 1주 넘게 상영한 40분 이상의 영어권 작품이 후보
아카데미는 할리우드 영화산업과 관련된 5800여 명의 회원으로 이뤄져 있다(2007년 현재 5835명). 감독·배우·제작자를 비롯해 편집·음악·미술·의상 등 각 분야 종사자, 홍보·마케팅 담당자 등이다. 가장 비율이 높은 건 배우로, 22%인 1311명이다. 전체 회원 중 해마다 약 80%가 투표에 참가한다고 한다.
투표 절차는 지난 73년간 프라이스워터하우스라는 대행사가 주관했다. 회원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에 한해 후보 선정에 관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예컨대 배우는 연기상 후보에만, 감독은 감독상 후보에만 참여할 수 있는 식이다. 외국어영화상과 다큐멘터리상은 각 분야 회원들로 구성된 특별심사단이 후보를 정한다. 작품상 후보는 모든 회원이 선정에 참여한다. 이렇게 해서 각 분야 후보가 정해지면 최종 선정에는 모든 회원이 참여한다.
아카데미상은 철저히 미국적인 상이다. 외국어영화상을 제외하곤 40분 이상 분량의 영어권 영화만 후보가 될 수 있다. 그것도 전년도에 LA 카운티 내 극장에서 일주일 이상 개봉을 한 작품이어야 한다. 선정 결과도 보수적 성향이 강한 경우가 많다. 메이저 영화사의 상업영화, 특히 대작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심사위원을 따로 두는 게 아니라 회원들의 투표로 정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연기상 후보에, 감독은 감독상 후보에 투표
아카데미상 수상과 작품성이 반드시 비례하는 게 아니라는 지적도 여기서 나온다. 그래도 아카데미상은 80년 넘게 세계적 명성을 누리고 있다. 최근 10년간 시상식 중계방송 시청률이 많이 하락하긴 했지만, 3월 초에 열리는 시상식은 전 세계의 관심사 중 하나다.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시상식이 끝나면 상을 받은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아카데미 효과’나 ‘아카데미 특수’가 대단했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상을 받을 경우 예상되는 추가 흥행수입이 28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지금도 아카데미 수상작이라고 하면 대중성과 작품성을 비교적 골고루 갖췄을 거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해마다 메이저 영화사들은 수백만 달러를 들인 치열한 홍보전을 펼친다. 아카데미 회원들을 대상으로 재시사회를 열고, 시사회를 놓친 회원들을 위해 비디오테이프와 DVD를 보낸다.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 등 영화전문지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는 건 기본이다. 이른바 ‘오스카 캠페인’이다. 상을 받은 후 추가로 거둘 수 있는 흥행 수입은 물론, 명예나 인지도 상승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가 워낙 크기에 오스카 캠페인은 해마다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A ‘벤허’(1959년), ‘타이타닉’(97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년)등 총 3편. 11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Q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은?
A‘이브의 모든 것’(50년)과 ‘타이타닉’. 1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Q 주요 5개 부문(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각본상)을 모두 휩쓴 작품은?
A ‘어느 날 밤에 생긴 일’(34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75년), ‘양들의 침묵’(91년) 등 총 3편.
Q 감독상 부문 최다 수상자는?
A 감독 존 포드. ‘콰이어트 맨’(52년)을 시작으로 4회 받았다.
Q 연기상 부문 최다 수상자는?
A 캐서린 헵번. ‘모닝 글로리’(34년)부터 ‘황금연못’(81년)까지 여우주연상을 4회 탔다. 잉그리드 버그먼·잭 니컬슨·월터 브레넌이 각각 3회 수상해 공동 2위다.
Q 연기상 후보에 가장 많이 오른 배우는?
A 메릴 스트립(사진). 올해(‘줄리 & 줄리아’)까지 16회다. 이 중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79년)로 여우조연상을, ‘소피의 선택’(82년)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어바웃 슈미트’(2002년)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잭 니컬슨이 2위. 12회 후보에 올라 주연상을 3회 받았다.
Q 후보에 지명된 모든 부문에서 상을 받은 작품은?
A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2003년).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11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갔다. 이 영화는 작품상을 받은 첫 판타지 영화이기도 하다.
Q 작품상 후보에 애니메이션이 올랐던 적이 있는지?
A 있다. ‘미녀와 야수’(91년)와 ‘업’(2010년)이다.
Q 최연소 연기상 수상자는?
A 테이텀 오닐. 열 살 때 ‘페이퍼 문’(73년)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남자 중 최연소는 ‘피아니스트’(2002년)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애드리언 브로디다. 당시 29세였다.
Q 최고령 연기상 수상자는?
A‘드라이빙 미스 데이지’(89년)로 여우주연상을 탄 제시카 탠디. 당시 80세였다.
Q 오스카를 안은 최초의 흑인 배우는?
A 해티 맥대니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39년)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첫 흑인 배우는 ‘몬스터볼’(2001년)의 핼리 베리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최초의 흑인배우는 시드니 포이티어. ‘들판 위의 백합’(63년)이 수상작이었다.
Q 외국어로 연기해 연기상을 받은 배우는?
A 소피아 로렌(‘두 여인’), 로버트 드 니로(‘대부2’), 로베르토 베니니(‘인생은 아름다워’), 베네치오 델 토로(‘트래픽’), 마리옹 코티야르(‘장밋빛 인생’), 페넬로페 크루즈(‘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등 6명.
Q 한 영화에서 주연과 연출을 겸하고 상도 받은 사람은?
A 로렌스 올리비에와 로베르토 베니니. 각각 ‘햄릿’(48년)과 ‘인생은 아름다워’(98년)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하지만 감독상 수상에는 둘 다 실패.
Q 죽은 후 상을 받은 배우는?
A‘네트워크’(76년)의 피터 핀치와 ‘다크 나이트’(2008년)로 사후 수상한 히스 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