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솔숲을 보고 나서 섬진강을 거슬러 박경리 선생이
소설 토지 무대로 삼았던 악양면으로 올라갑니다.
여름의 막바지 더위에 산들 푸나무들이 싱그러운 검녹색입니다.
가로수로 드문드문 심어놓은 배롱나무가
웃음을 띤체 손 흔들며 반겨 주는 듯,
길 아래 강물은 잦은 비로 누른 빛 침묵으로 흐릅니다.
철이 지나선 지. 큰물 때문인지 몇 해전에 왔을 때
보이던 강에서 재첩잡이 그랭이질 하는 사람이
보이질 않아서 좀 서운했습니다.
섬진강, 김용택 시인이 그토록 노래한 남도의 강.
고려 우왕 때 왜구들이 이 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노략질을 일삼자.
일시에 수십만 마리 두꺼비가 소리내어 울어
기겁을 한 왜구를 광양 쪽으로 내몰았다는
전설이 있어 얻어진 강 이름,
섬 자가 두꺼비 섬(蟾)자, 나루 진(津) 섬진강이지요.
총 길이 212.3㎞, 한국에서 아홉 번째로 길며
그 보다도 가장 오염이 낮은 청정수계을 이루는 강입니다.
따라서 참게. 은어. 재첩이 많이 난답니다.
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마을숲은 이 섬진강 동북 쪽
지리산 자락에서 강 쪽으로 삼각주를 이루는 평사리 앞
넓은 들 꼭지점 악양 면소재지에 있습니다.
정서리 마을 앞을 흐르는 악양천 가에 뚝을 따라 심은
버드나무, 느티나무, 고로쇠나무. 윤노리나무가
운치 있게 보이고.
숲 공지 한편에는 씨름판도 있고 체력단련 기구도
즐비합니다.
매미소리 시원한 해묵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부채질을 하는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이 정서리 숲은 200여년 전, 왕버드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란 장소에 마을 주민들이 4ha 규모의 인공식제를 하여
이런 아름답고 울창한 숲을 마련했답니다.
선조들의 배려로 마을 대동행사나 학생의 소풍지
또는 자연학습장은 물론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쉼터로
쓰인답니다.
숲 중간 지점에 팔경루(八景樓)라는 산뜻한 정자 한 채가
선비모습으로 앉아 있는데.
팔경루는 가난했던 어린 날 맨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크게 성공한 이곳 출신 남양 홍씨 갑동 이란 분이
모향(慕鄕)의 징표로 고향에 지어 바쳤답니다.
물소리며 지리산과 섬진강의 바람이 쉴새없이 드나들어
여름 한철 이 고장 사람들이 보물로 명당으로
여기는 숲입니다.
입구 한편에 "우리는 입장료는 받지 않습니다.
다만 편안하게 푹 쉬시고 가실 때는 쓰레기를
되가져 가시기 바랍니다."
라는 안내판이 유별나게 보였습니다.
이 숲에 관한 동네사람들의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아까 들어올 때 본
"최참판 댁"에 잠시 들르기로 했지요.
지리산 한 지맥인 형제봉 아래 고소산정이 있고
턱밑아래에 한산사 라는 절,
그 옆 마을이 평사리(상평마을), 토지의 소설 속 무대이지요.
구한말 4대에 걸친 양반 최참판댁의 가족 사를 그린
대하 소설 토지
( 실제 모델인 조부자 댁은 악양 면소에서 2km위의
상산마를에 있습니다)
그 장소를 하동군에서 관광자원으로 솟을대문과 안채 바깥채
별당 등등을 재현한 곳입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허덕이며 오라 갔습니다.
무남독녀 서희 아씨도 아랫것 길상 이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평사리가 소설의 무대임에도 정작 작가 박경리 선생은
단 한번도 이곳 평사리에 온 적이 없답니다.
다만 차를 타고 먼발치로 하동 구례간 19번 국도를
통해 스쳐갔을 뿐이랍니다.
그것도 밤에 차를 타고 ---
평사리 돌담길을 내려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악양, 고소산성, 한산사.
그리고 들머리에서 봤던 동정호란 저수지,
어디서 읽었던 혹은 들었던 단어들이 아닌가요?
모두 중국에 있는 지명이란 걸 나중에 확인했습니다. 쯤 쯤-.
황혼 깔린 악양 넓은 들판을 빠저 나와 화계 장터를 거처
쌍계사 석문이 있는 곳 사하촌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사하촌 백운식당 절집음식이 너무 맛깔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