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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할리우드 영화는 의외로 속편이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속편이 전혀 없는 건 또 아니었지요. [분노의 질주] 시리즈 6편인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과 새로운 [스타 트렉] 영화가 초여름 미국 박스오피스와 한국 시장을 휩쓸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엔 네 번째 [트랜스포머] 영화와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의 출격이 알려지기도 했지요. 지금 우리에게 시퀄이든 프리퀄이든 뭐든, '속편'이 없는 극장가란 거의 상상할 수도 없는 세계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과연 영화 역사상 가장 극장용 속편이 많이 만들어진 시리즈는 뭐가 있을까요?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떠오르신다고요? 어림없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에 밝혀질 한 시리즈의 편 수를 미리 살짝 이야기하자면, 무려 217편입니다.
먼저 [스타 트렉]부터 시작해 봅시다. 이 시리즈는 [스타 트렉](1979)을 시작으로 모두 12편의 극장판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윌리엄 샤트너와 레너드 니모이, 조지 타케이 등 오리지널 TV 시리즈 캐스팅으로 모두 6편, 패트릭 스튜디어트와 조나단 프레이크스 같은 [스타 트렉 - 넥스트 제너레이션 TV 시리즈] 캐스팅으로 4편, 그리고 J.J 에이브람스가 연출한 새로운 시리즈가 두 편이지요. [스타 트렉]과 동일하게 12개의 속편을 가진 또 다른 시리즈로는 호러 영화 [13일의 금요일]과 일본 괴수물 [가메라]가 있습니다. 일본 특촬 괴수물의 세계에서 거북이를 닮은 '가메라'는 '고질라'에 맞설 만한 거의 유일한 괴수입니다. 첫 번째 극장판이 나온 것은 1965년 작 흑백 영화 [가메라]였고요, 가장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2006년 작 [가메라 - 작은 용사들]입니다. 모두 14편의 시리즈가 나온 작품은 배질 라스본과 나이젤 브루스가 주연한 흑백 영화 시대의 [셜록 홈즈]입니다. 사실 코난 도일 원작으로 만들어진 모든 홈즈 영화들을 모은다면 이 리스트에서 가장 긴 시리즈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따지자면 이 리스트는 한없이 늘어지게 되니 제외하는 게 낫겠지요. 배질 라스본과 나이젤 브루스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1939년 작 [셜록홈즈 - 바스커빌가의 개]부터 1946년 작 [셜록홈즈 - 살인의 전주곡]까지 모두 같은 스태프, 배우로 총 14편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보다 더 많은 16편의 시리즈가 나온 영화로는 그 유명한 할리우드 초창기의 코미디 듀오 '막스 형제'의 [막스 브라더스]와 미키 루니의 대표작 [앤디 하디] 시리즈가 있습니다. 독일 출신의 막스 형제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과 함께 1930년대 할리우드 슬랩스틱 코미디의 장을 열어젖힌 대가들입니다. 채플린이나 키튼보다는 덜 예술적이지만 보다 왁자지껄하고 대중적인 코미디 영화들을 만들었죠. 그중 대표작을 보고 싶으시다면 [몽키 비지니스](1931)와 [막스 브라더스의 스파이 대소동](1933)을 권해 드립니다. [앤디 하디] 시리즈는 1937년부터 1958년까지 16편이 만들어진 당대의 아역 배우 미키 루니의 대표작입니다. 원래 이 시리즈는 앤디 하디가 아니라 그의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패밀리 어페어](1937)가 시작이었고, 마지막 작품은 [앤디 하디 컴즈 홈](1958)이었습니다. 이것 참 재미있죠. 당대 할리우드 관객들은 하나의 캐릭터가 무려 20여 년 동안 성장해 가는 과정을 영화로 지켜본 셈이니까요. 미키 루니 역시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이 시리즈를 통과하며 성장했고요.
다음은 23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진, 네. 드디어 '제임스 본드' 시리즈입니다. 보통 우리는 이 시리즈를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많은 속편이 나온 영화'라고 하는데요, 엄밀히 말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속편이 나온 영화들이 할리우드에도 몇 편 있습니다. 다만, 그 '속편'의 의미가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이긴 하지만요. 게다가 이 카테고리를 할리우드 바깥으로까지 확장시키면 몇몇 어마어마하게 긴 시리즈들이 튀어나옵니다. 이를테면 26편이 만들어진 일본 영화 [자토이치]처럼 말입니다. 시모자와 칸이 창조한 이 장님 검객 이야기는 1962년 첫 번째 극장판이 나와 1973년까지 매년 두어 편이 개봉했고요, 1989년에도 또 한편이 만들어졌죠. 그리고 이 모든 영화 속에서 자토이치 역은 당시 다이에이 영화사의 스타였던 전설적인 배우 카츠 신타로가 연기했습니다. 카츠 신타로가 1997년 암으로 사망한 이후,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자신을 주연으로 또 한편의 [자토이치]를 만들었는데요, 이걸 포함한다면 [자토이치] 시리즈는 모두 27편이 됩니다.
[자토이치]의 27편을 넘어서는 건 일본의 괴수물 [고질라] 시리즈입니다. 두 편 모두 총 28편의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아, 만약 1998년 개봉한 할리우드 버전의 [고질라]를 포함하면 [고질라] 시리즈는 모두 29편이 됩니다만, 네. 이 시리즈의 열정적인 팬이라면 그 영화는 시리즈의 형제로 포함하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다만 새로운 [고질라] 영화가 내년 할리우드 개봉 예정이니 그걸 한번 기다려 보지요. 그보다 많은 30편의 극장용 영화를 내놓은 시리즈는 1960년대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영국의 B급 코미디 영화 시리즈 [캐리 온]이 있습니다. 그 위 순위를 차지하는 건 또다시 일본 시리즈입니다. 바로 특촬물 [가면 라이더] 시리즈지요.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창조한 이 특촬물은 1971년부터 73년까지 TV 시리즈로 만들어 져 큰 인기를 모았는데요, TV 시리즈 종영 이후 계속해서 속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높자 지속적으로 오늘날까지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첫 번째 극장판은 TV 시리즈의 연장판 성격이었던 1971년 작 [고! 고! 가면 라이더]였고요,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건 도에이 영화사 설립 60주년 기념 및 가면 라이더 시리즈 4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2011년 작 [오즈·전왕·올라이더 렛츠고 가면라이더]입니다. 이 시리즈를 모두 계산하면 현재까지 가면 라이더 시리즈는 모두 42편이 개봉한 셈입니다(2010년 개봉한 [가면라이더x3 더무비 초전왕 트릴로지]를 세 편으로 계산했을 때의 숫자입니다).
과연 [가면 라이더]보다 많은 시리즈를 가진 극장용 영화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것도 꽤 있습니다. 47편이 만들어진 [찰리 챈] 시리즈는 중국계 미국인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초창기 할리우드의 인기 시리즈입니다. 1925년부터 1932년까지 출간된 범죄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1926년부터 1981년까지 무려 47편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보다 딱 한편 더 많은 작품이 만들어진 시리즈는 48편이 만들어진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입니다. 일본의 국민적 감독 야마다 요지의 이 전설적인 코미디 영화는 1969년부터 주인공 토라 역의 아츠미 키요시가 사망한 1995년까지 모두 48편이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감독, 같은 배우가 계속해서 손을 잡고 만든 시리즈로는 유일무이한 기록으로, 그 덕분에 '세계 최장수 시리즈물'로 가장 자주 거론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많은 시리즈가 만들어진 영화들이 있습니다. 서부 코미디극인 [The Three Mesquiteers](영어 철자를 잘 보시면 이건 [삼총사]가 아닙니다. 패러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멍청이 삼총사] 정도로 번역해도 좋겠지요?)는 1936년부터 1943년까지 무려 51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졌고요, 윌리엄 보이드를 당대의 스타로 만들어 준 저예산 서부극 [호팔롱 캐시디]는 1935년부터 1948년까지 무려 66편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TV가 발명되기 전인 30년대와 4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저예산으로 만들어 재빨리 상영하는 일종의 연속극 영화가 인기였으니, 지금과 똑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만, 그래도 기록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딱 두 개의 시리즈가 남았습니다. [호팔롱 캐시디]의 66편이 엄청나다고 생각하셨다면 지금 언급할 두 편의 시리즈 편수에는 입을 딱 벌리게 될 겁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속편을 내놓은 시리즈물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황비홍'입니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이 시리즈에서 황비홍을 연기한 배우로는 성룡, 이연걸 등이 유명한데요, 사실 중국인들의 마음에 가장 깊숙하게 남아 있는 배우는 1949년부터 1981년까지 황비홍을 연기한 관덕흥일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계산을 해봅시다. 만약 이 리스트가 '같은 캐스팅으로 오래 지속된 시리즈물'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는 관덕흥이 황비홍을 연기한 77편의 시리즈만으로 한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캐스팅과 다른 스태프도 상관없다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황비홍 시리즈는 모두 99편이 되는 셈이고요. 이런들 저런들, 이 리스트의 2위가 '황비홍' 시리즈라는 것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그렇다면 '황비홍'의 이 무시무시한 77, 혹은 99편 기록을 넘어서는 시리즈가 있을까요? 만약 '장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어쨌거나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를 모두 대상으로 한다면, 있습니다. 1930년대부터 무려 1970년대까지 지속된 미국의 코미디 단편 영화 시리즈인 [바보 삼총사](Three Stooges)입니다. 세 명의 코미디 배우 모 하워드, 컬리 하워드, 래리 파인이 주인공을 맡은 이 시리즈는 무려 217편(편당 30분 정도)이 만들어져 모두 극장에서 개봉을 했으니까요. 코미디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이 던지기 개그도 이 시리즈가 창조한 거나 마찬가지인, 코미디 영화의 역사에서는 전설적인 시리즈입니다. 지난 2012년에는 패럴리 형제가 장편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지요.
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위의 리스트를 참고하면 됩니다. [바보 삼총사] 시리즈 217편에서 계속해서 주연을 맡은 모 하워드, 컬리 하워드, 래리 파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장편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1위는 역시 77편의 영화에서 황비홍 역할을 맡은 관덕흥이 되겠지요. 뒤를 잇는 것은 [호팔롱 캐시디] 시리즈의 윌리엄 보이드, [The Three Mesquiteers]의 세 배우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건 이미 위의 리스트를 보고 나면 조금 뻔한 리스트가 되지요? 좀 더 재미있는 리스트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년 전 넥스트무비닷컴이라는 곳에서는 '어떤 영화에 출연하건 항상 똑같은 캐릭터만 반복하는 배우' 9명을 꼽은 적이 있습니다. 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이슨 스타뎀, 아담 샌들러, 모건 프리먼, 우디 앨런, 케이트 허드슨, 제니퍼 애니스톤, 빈스 본, 존 웨인, 캐서린 헤이글. 그나마 이 리스트의 남자 배우들은 같은 캐릭터를 반복해도 어떤 아이콘적인 지위를 획득한 데 반해, 세 여배우들은 로맨틱 코미디 속에서 똑같은 성격의 역할만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출연작이 조금 메마른 사람들입니다.
첫댓글 2015년엔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운다네요 ㅋㅋ 드디어 맞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