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씨. 어디 재미있는데 없어, 하루가 너무 지루해”
보건소와 사회복지협의회 의뢰하여 도움을 청하고 직원과 함께 방문하여,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노치원을 소개했지만, 본인도 돈을 조금 낸다는 말에 거절하고 말았다.
건물이 있어 해당이 안 된다는 말에 세금만 뜯어가고 집지을때 보태준것있냐며 언니는 화가 났다.
며칠 전 달력에 내가 다니는 문화 센터 일정표를 큰 글씨로 적어주며
돈은 한 푼도 안 드니 시간 맞추어 몸만 가면 된다고 했다.
하루에도 수 없이 언제가야 하냐고 묻는 언니의 전화가 은근히 짜증도 났다.
오늘은 노래교실 가는날, 아홉 시 반까지 문 앞에 나와 있으라고 했다.
전과 다르게 얼굴이 퉁퉁 부어 초췌한 모습으로 화자씨가 계단에 앉아 턱을 고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몸에 이상이 있으면 아랫층이 병원이니 진료를 해보라고 권했지만, 잠을 많이 자서 그렇다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면서 어께를 흔들어가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수년 만에 찾아간 음악교실,
낯익은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흥이 나는지 몸도 흔들며 노래도 따라하면서
모처럼 즐거워 하였다. 다음 주에도 꼭 간다며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수요일, 아침부터 전화와 문자를 해도 답이 없다.
무슨 일인가 아파 누워있나 불길한 생각에 수차례 해봤지만...
전화오는 곳도 없고 전화비 아까워 하지도 않으면서 폰은 항상 쥐고 사는 화자씨가 더욱더 궁금해졌다.
시험만 끝나면 가봐야지 하고 있던 중, 깊은 밤 폰이 울린다.
누구야 '이 언니가 시도 때도 없이 또 시작이네'
“영숙아. 김화자 집 팔고 파주 요양원으로 갔데”
친구의 전화였다. 순간 잠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밤은 이런저런 화자씨 생각에 뜬눈으로 세웠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인사도 없이 갈수가 있단 말인가,
한동네에서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서운하고 너무 섭섭했다.
장 구경 나왔다며 저녁 먹고 가라는 화자씨의 손을 뿌리치고 오후
수업 가야하니 시간 있을 때 오겠노라고 매정하게 돌아선 내가 미웠다.
언니와는 이런저런 추억도 많았는데, 따뜻한 밥한끼도 못해주고 헤어지다니
인생이 허무함을 느끼며 마음이 우울해졌다.
내가 처음 화자씨를 만난 건 15살 단발머리 소녀 때,
우리 집 기술자로 있던 총각을 찾아 전라도에서 보따리 하나 들고 찾아온 시골아가씨.
한동안 함께 살면서 독립해 세탁소를 차려 한평생 일만하면서,
아들 삼형제 공부 가르치며 4층 건물 짓고 열심히 살던 생활력이 아주 강한 특별한 언니였다.
잠시지만 합창단에서, 성당에서, 간병 일을 하면서 함께했던 지난날이 주마등같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발 벗고 나서고, 천 원 한 장도 아까워 발발 떠는 한주소금 짠순이 언니.
바라만봐도 흐믓해 하며 미소짓던 4층 건물과,
최고급이라며 자랑하던13자짜리 호마이카 장롱이 아까워 어찌 갔을까,
갑자기 주인을 잃은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얼마나 그리워 하고 있을까.
삼일이면 돌아온다는 말에 옷 보따리 하나 들고 떠났다는 화자언니,
자식들이 집 판 것도 모르고 이제는 오고 싶어도 갈 곳이 없어 졌다.
연락도 안돼고 전화도 못하니 집 생각 친구 생각에 하루하루 얼마나 애를 태우며 지낼까.
먹지못하고 추운 곳에서 지네 퉁퉁 부은건, 영양실조라는 뒷 얘기에 바보같이 그렇게 아끼더니,
뒤처리 못하면 요양원행이라고 하더니 아직은 잘 걷는데도 현대판 고려장이라는요양원으로갔다.
언니가 있는 곳을 물으니 보호자는 나중에 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마트에가서 과일, 고기, 생선등을 양손이 떨어지게 사가지고 낑낑거리며 4층 계단을 오르고 있다.
배 평수가 늘어나거나 말거나 먹고 죽은 놈은 때깔도 좋다더라 하면서...
말없이 떠난 화자씨의 퉁퉁 부은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이렇게 오래도록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아ㅡ 세상의 봄은 해마다 찾아오는데,
화자씨의 봄은 돌아 올줄 모르고 춥고 외로운 긴 겨울속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