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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기의 정당성
이번의 주제는 연기의 정당성이다.
연기를 한다는 것은 등장인물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다. 스타니슬라브스키에 의하여 정의 내려진 등장인물의 목적(objective) 이 바로 극적 행동이다. 지난 호에서 설명한대로 행동은 내면적인 마음의 작용, 또는 사고의 작용이다. 이러한 내면적 마음의 작용으로 인하여 달성하려는 목표를 추구하려는 행위가 외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가 연기라고 부르는 것은 행동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행동은 항상 내면적인 작용이다. 행동은 외면적 동작을 수반할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행동(action)은 그리스 말 아게인(agein)에서 나왔다. 이 말은 "무엇을 하다, 이끌어가다, 추진하다" 뜻을 가지고 있다. <시학> 6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행동은 행동자에 의하여 행해지는 바, 행동자는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에 있어 일정한 성질을 가지게 마련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도 행동의 모방이 연극의 핵심임을 말하고 있다.
연기자는 결코 어느 한 순간도 등장인물이 될 수도 없으려니와 되어서도 곤란하다. 연기자가 무대 위에서 행하는 모든 노력은 등장인물이 되려는 노력이 아니다. 연기자는 어느 한 순간도 연기자 자신 이외의 인물이 될 수가 없다. 연기자는 언제나 연기자이다. 등장인물의 역할을 맡아서, 연기를 하는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연기자들은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한다. 목소리도 바꾸고 몸짓도 바꾸는데 사실은 등장인물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이미지에 자신을 근접시키기 위해서이다. 연기자가 만들어내는 것은 등장인물이라는 일종의 일루전이다. 자신 이외의 어떤 인물도 될 수 없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등장인물, 종이 위에 활자로 묘사되어 있는 인물에다가 연기자 자신의 살과 혼을 입혀 창조하는 등장인물의 이미지일 뿐이다. 그 때 연기자가 창조해내는 것이 바로 등장인물의 행동이다. 즉 작가의 아이디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져서 등장인물의 행동을 수행한다.
연기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의 행동이 무엇인가, 그 인물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성취해야하는 게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수행하여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관객은 연기자가 창조해낸 행동 때문에 연기자를 등장인물로 파악하고 받아들인다. 연기술의 목적은 관객에게 믿음직스런 인물을 창조해 내는 일이다.
커튼 콜에서 과연 관객은 누구에게 박수를 치는지 알아보자. 관객은 등장인물에게 박수를 치는가 아니면 연기자에게 박수를 보내는가? 커튼 콜에서 관객은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지닌, 분장과 의상으로 등장인물의 외형을 간직한, 그러나 역할에서는 빠져 나온 연기자를 보고 박수를 친다. 이를 인형극이나 가면극의 예를 들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인형극의 조정자들은 자진이 조정한 인형을 들고 나와 인형이 관객에게 인사하게끔 조정을 하면서 관객에게 인사를 한다. 가면극의 연희자들은 가면을 머리위로 벗어 올리고 관객의 박수에 화답한다. 즉 등장인물의 행동을 그럴듯하게 수행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등장인물로 믿게끔 만든 연기를 펼친 연기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관객은 등장인물의 일루전을 창출해낸 연기마술의 묘기와 그 묘기를 수행한 연기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연기자가 관객에게 믿음직스러운 등장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등장인물이 되어서가 아니다. 등장인물의 행동을 올바르게 수행할 때 관객을 믿게 만들고 정서적 진실을 만들어내게 된다. 행동을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하여 텍스트(희곡)을 제대로 분석하여 등장인물의 목적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그 목적을 수행할 행동을 정확하게 정의 내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리며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연출가와 의사소통의 고통을 겪는 과정이다. 종종 연출가와 연기자는 등장인물이 무엇을 해야하는가"와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장시간 토론을 벌인다. 연습과정에서 연출가가 연기자의 연습을 보고 "왜 그런 표현을 했느냐"라고 물을 때 연기자는 당황한다. 등장인물이 수행해야 하는 행동에 대한 정확한 규정과 이에 대한 의사소통의 일치가 전제되지 않을 때 연습과정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어둠의 터널에서 헤매는 꼴이 된다.
주어진 텍스트에 의거하는 연습과정은 행동을 찾아내고 행동을 정확한 말로 표현하고 그 행동의 적합한 수행방법을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 다시금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행동을 찾아가는 과정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2. 극적 행동과 행위의 차이
행동과 행위의 차이를 보다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다음의 예문을 든다. 행위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행위, 몸짓,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고 행동은 그러한 행위를 수반하게 만드는 마음의 작용이다. 다음의 표현에서 주인공의 행동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자.
그 남자는 버스에서 내린다.
(이하 "그"는 생략) 발돋움을 하고 길 건너편을 좌우로 살펴본다.
오른손을 이마에 가져간 다음에 목을 오른 쪽으로 길게 빼어 한 곳을 쳐다본다.
오른 손으로 왼쪽 손목의 소매를 조금 올리고 손목의 물체를 들여다본다.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좌우로 몇 차례 흔든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왼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낀다.
아랫입술을 깨문 다음에 심호흡을 한다.
그는 달리기 시작한다.
사람들 사이로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계속 달린다.
방금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뀐 횡단보도 앞에 도달한다.
횡단보도 앞에서 발을 동동 굴린다.
왼손을 하늘로 올린 다음에 손목을 눈앞에 댄다.
눈을 크게 둥그렇게 뜬다.
그는 주위를 살피고 나서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넌다.
자동차 경적 소리에 오른손을 운전자들에게 흔든다.
횡단 보도를 건넌 다음에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계속 뛰어간다.
잠시 후 어느 건물 입구에 도착한다.
그는 고개를 들어 2층의 간판을 본다.
왼손 등으로 이마를 훔친다.
다시 왼손의 소매를 올리고 손목을 쳐다보고 미소를 짓는다.
그는 숨을 크게 쉰다.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었던 가방을 왼손으로 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유리문 앞에서 잠시 옷깃을 가다듬는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큰 숨을 쉬며 표정을 편안하게 짓는다.
창가로 가서 빈자리에 앉는다.
왼손 손목을 눈앞에 대고 들여다본다.
다시 미소를 짓는다.
벽시계에서 종이 여섯 번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자세를 유리문 쪽을 향하여 고쳐 앉는다.
잠시 후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젊은 여자를 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여자에게 손을 흔든다.
위의 표현들은 모두 행위를 표현한 것들이다. 행위, 즉 어떤 남자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약속 장소에 제시간 안에 도착하려고 뛰어가는 움직임을 순서대로 묘사한 글이다. 위의 표현을 행위라고 할 때 그 남자의 행동은 무엇인가.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행동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한 표현을 찾는데 어리둥절할 것이다. 어느 집단에서 그 사람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아쉽게도 다음의 표현들은 행동에 대한 적절한 표현들이 아니다.
그는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두른다.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뛰고 또 뛰어 간신히 그녀를 만난다.
여자와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서두르고 있다.
여자와 약속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그는 최선을 다 한다.
여자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그녀와 약속을 늦지 않기 위해 급하게 뛰어간다.
위의 표현들은 그 사람의 행위를 다시 부연하여 설명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행동을 찾기 전에 다시 행동의 정의를 다시 떠 올려보자. 행동은 1) 목적을 지닌 행위로서 2) 마음의 작용 또는 사고의 작용이고 3) 항상 동사로 표현된다. 행동은 주인공(등장인물)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목표와 관련이 있다. 앞의 표현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길래 그토록 뛰고, 위험하게 횡단보도를 위험하게 건넜을까? 무엇이 그에게 그러한 행위를 하게 만들었을까. 그는 무슨 생각에 몰두하고 있으며, 그때 그의 마음의 작용은 무엇에 사로잡혀 있을까. 그는 뛰는 행위에 몰두해 있다. 무슨 생각을 하며 뛰었을까.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을 떠 올려보자. 포레스트가 처음으로 뛰어 달아나던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포레스트는 학교를 마치고 여자 친구 제니와 집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다. 같은 학교의 악동들이 포레스트를 골려주려고 자전거를 타고 쫓아온다. 제니와 포레스트는 악동들의 기세에 위협을 느낀다. 포레스트는 두 다리에 지지대를 대고 있는 아이다. 포레스트는 겁이 나서 걸음을 옮겨 아이들의 추격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고 쫓아오는 아이들을 벗어날 수는 없다. 제니는 포레스트가 위험에 빠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는다. 소리를 지른다. "포레스트야, 뛰어서 달아나, 그냥 뛰어 가!" 제니의 말에 포레스트는 어디에서 힘이 솟아나는지 달리기 시작한다. 두 다리를 더 빨리 움직이고 온 몸을 움직여서 뛴다. 무슨 조화일까. 두 다리에 붙어있던 지지대는 포레스트의 격한 움직임에 부셔지고 다리에서 떨어져 나간다. 포레스트는 그저 달린다. 뛰고 뛰어서 마침내 자전거를 타고 쫓아오는 아이들의 추적을 물리친다.
이 때 포레스트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포레스트는 아이들에게 잡히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그의 마음속에는 "나쁜 아이들에게 잡히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뿐이었을까. 그런데 포레스트는 아이큐가 두 자리 숫자이기 때문에 그저 제니가 "뛰라고 했으니까 뛰는 것"뿐일까. 포레스트의 마음에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은 생각이 바로 그의 행동이고 그것이 달리고 달리는 행위로 나타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포레스트는 누군가가 "뛰어!"라고만 하면 남들이 도저히 쫓아오지 못할 속도로 달린다. 포레스트의 달리는 행위는 누군가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른다는 행동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도 달린다. 그의 목적은 시간에 늦지 않게 목적지,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것이다. "늦지 말아야지" 약속시간이 여섯 시라면 "여섯 시 전까지는 도착해야지", 혹시 여자가 약속을 아주 잘 지키는 사람이라면 약속시간 전에, 그것도 여자가 도착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 있어야지" 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목표이고 목적이다.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한다면 "약속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한다"가 그의 행동이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는 마음이 작용해서 그는 뛰어가는 행위를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그의 행위는 그저 달리고 뛰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옷깃을 가다듬고 약속장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종합해 볼 때 우리는 그의 행동을 위와 같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3. 표현의 동기와 목적
극적 행동은 희곡에서 구성의 단위로도 중요성을 띈다. 표현 단위인 행동이 원인, 결과로 엮어진 관계를 구성이라고 한다. 하나의 행동은 원인을 제공하고 그 결과 다른 행동이 뒤를 따른다. 결과로 나타난 행동은 또 다른, 다음의 행동의 원인이 된다. 행동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밝혀내는 작업이 작품 분석이며 구성을 파악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구성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렇듯 행동이 연기, 연출, 작품 분석, 심지어 극작에 까지 중요한 표현의 단위의 핵심을 자리잡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러한 행동이 무엇 때문에 발생하고 행동이 지향하려는 방향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를 표현의 동기와 목적으로 구분하여 설명해 보자. 지난 호에서 예를 들었듯이 올림픽의 육상 선수들은 시상대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행동을 하였다. 그러한 표현의 동기는 무엇이며 그들의 (또는 그들의 표현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은 쉽게 나온다. 그들은 시상대에서 언론의 집중을 받으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알리려는 것이 그들의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동기와 목적의 차이를 구분하게 된다. 또한 동기와 목적이라는 용어이외에 의도라는 용어도 자주 사용한다. 이들의 구분을 좀더 명확하게 이해해보자. 다음의 예문에서 주인공의 행동의 독기, 목적, 의도 등을 살펴보자.
장소는 고등학교 3학년 교실. 기말시험을 보고 있다.
용수와 남영이는 아주 가까운 단짝 친구 사이다.
용수가 얼핏 남영을 보니 남영은 컨닝 페이퍼를 준비하여 답을 베끼고 있는 중이다. 용수는 시험 감독관을 살펴보았다. 감독관이 교탁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용수는 감독관이 교실 앞까지 걸어 간 다음에는 방향을 반대쪽으로
틀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도 남영은 부정행위에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다.
용수는 기침을 해서 남영에게 주의를 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감독관이 고개를 돌릴까봐 망설인다. 시험감독관이 이제 몇 걸음만 앞으로
걸어나가면 자연히 그들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어 있다.
용수는 연필을 남영쪽으로 굴러 떨어뜨렸다.
용수가 굴린 연필이 교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남영은 사태를 짐작하고 컨닝 페이퍼를 시험지 아래에 감추었다.
여기에서 용수가 만들어낸 표현은 "연필을 굴려 떨어뜨리는 것" 뿐이다. 그것이 그의 행위이다. 그의 행동은 무엇일까. 그의 마음의 작용을 살펴야 한다. 마음의 작용, 또는 사고의 작용을 알아내는 공식이 있다. 그것은 "왜 그런 행위(표현)을 했을까?"이다. 용수는 왜 연필을 떨어뜨렸을까? 수많은 답이 나온다.
남영이가 시험 감독관에게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남영이에게 시험 감독관이 오고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서
남영이의 주위를 환기시키려고.
남영이가 컨닝 페이퍼를 감추게 하려고.
남영이에게 친구의 의리를 보여주려고.
이 중에서 무엇이 용수의 표현의 동기이고 목적일까, 또 의도는? 이 세 가지 용어를 과연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모든 표현마다 동기, 목적, 의도가 다 들어 있는 것일까? 영어의 모티베이션(motivation), 오브젝티브(objective), 인텐션(intention) 은 곧바로 동기, 목적, 의도라고 번역해도 되는 것일까? 동기와 목적과 의도는 대등한 것인가?.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강력함의 우선순위는 있는 것일까?
연습장에서 연출가와 연기자 사이에 이러한 용어를 가지고 서로 이해했다고 고개를 끄덕이곤 하지만 막상 연습이나 공연에서는 견해를 달리하는 수가 종종 있다. 사실 이러한 용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적용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칠판에 동기와 목적이라는 단어를 적어놓고 학생들에게 열변을 토하며 강의를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너무나 명확하게 이를 설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꿈을 깨었다. 꿈속에서 나는 뜻밖에도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부르는 졸업식 노래를 부르며 두 용어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졸업식 노래는 이렇다. 1절은 "빛나는 졸업장은 타신 언니께, 꽃다발 한아름을 선사합니다...." 2절은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정아....."로 시작한다. 1절은 재학생이 2절은 졸업생들이 부른다. 3절은 다같이 부르는데,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로 시작된다. (사실 그 이상의 가사는 떠오르지 않는다.) 바로 3절의 가사를 가지고 표현의 동기와 목적을 설명하고 있었다.
표현은 현재에 일어난 것이다. 용수가 연필을 굴리는 행위는 현재이다. 그 현재의 표현에는 앞에서 끌어가는 요인이 있고 또는 뒤에서 밀어주는 요인이 있다. 행동이 현재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과거에 일어난 것, 즉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 표현의 동기이고, 미래에 발생할 것, 즉 앞에서 끌어가고 있는 것이 표현의 목적이라고 말이다.
모든 표현은 표현이 발생하기 이전의 마음의 작용이 있으며 그러한 표현이 이루어진 다음에 일어나는 결과에 대한 기대가 있다. 과거의 마음 작용을 표현의 동기라 하고 그 결과 미래에 발생할 것에 대한 기대가 표현의 목적이라고 구분해 보자.
과거 현재 미래
.......................................................
동기 행위(행동) 목적
용수가 연필을 굴리는 현재의 행위 이전에 용수가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 용수의 연필을 굴리는 행위로 말미암아 미래에 발생할 결과에 대한 생각은 무엇일까. 용수의 뜻대로 행위가 순서대로 발생한다면 우선 남영이가 감독관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남영이가 컨닝 페이퍼를 치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영이가 부정행위를 감추어야 한다. 용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감독관에게 눈치채지 않도록 남영이의 주의를 부정행위로부터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용수의 표현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자극은 미래의 결과에서부터 나온다. 부정행위를 걸리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 강하다. 그의 표현에는 동기보다도 목적이 앞선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목적이 먼저 떠올렸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용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영이의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연필을 굴린다. 따라서 현재의 표현 이전에 발생한 것, 즉 남영의 주의를 돌리는 것이 용수의 표현의 동기가 된다. 나는 이렇게 동기와 목적을 설명하고 싶다.
그런데 의도는 좀더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라고 말을 할 때 의도는 항상 미래 지향적이다. 동시에 현재 이전에도 작용하고 있다. 동기와 목적을 행위의 발생 이전과 그 후로 나누는 것은 가능해 보이지만 의도는 과거와 미래의 어느 한 곳에 머무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의도는 과거와 미래를 다 함께 관통하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보고 싶다.
법률의 적용에서는 동기와 의도가 뚜렷하게 구별된다고 한다. 법에 의하면 동기는 어떤 사람의 마음에 전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어떠한 일을 하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은 그러한 동기를 가졌다고 본다. 그러나 의도는 그와 달리, 태도에 의해서만 판단된다고 한다. 태도에 의하여 법의 저촉 여부가 결정된다. 어떠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동기만을 가지고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불법적으로 무기를 소지하였다면 그는 무기를 가지고 그가 원한다면 사용할 의도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무기의 존재여부는 그가 무기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상해할 동기를 가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의 동기는 다른 이유로부터 돌출(표출)되어야만 알 수 있는데 그 동기가 다른 증거나 증언으로 나타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연출가는 연기자의 표현을 보고 의도나 목적을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나 연기자에게는
동기가 더 중요하다. 위의 법률의 적용이 과연 연기의 적용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용어의 차이를 구분하여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어떤 표현은 동기만 강하고 목적은 희박할 수 있다. 또는 목적은 희박하나 동기만 뚜렷할 수도 있다. 의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 하나 만이라도 분명하다면 연기의 정당성은 획득되는 게 아닐까.
이러한 분석의 방법은 대사 하나 하나에도 적용될 수 있다. 체홉의 <벚꽃동산>의 첫 대사는 로빠힌이 두냐샤의 안내로 애기방으로 들어와 "마침내 기차가 도착했군!"으로 시작된다. 과연 로빠힌은 어떻게 기차가 도착했음을 알게 되는가. 연출가가 연기자에게 던지는 첫 질문은 이렇다. "왜 로빠힌을 그런 말을 하는가?" 이다. 대본에 나와 있기 때문에? 결코 아니다. 그러나 로빠힌의 마음의 작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대본에 나와 있으니까, 아니면 연출이 시켜서라고 밖에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두냐샤와 로빠힌이 왜 이 방으로 들어오는지를 밝혀내야 하고 또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두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것은 로빠힌이 왜 이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하고 인물들의 과거 행적을 추적해야 한다. 희곡에서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파악해야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찾을 수 있다. (<벚꽃동산>의 분석에 대해서는 이론과 실천사에서 펴낸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극론>을 참조할 것을 권한다.)
4. 극적 행동의 요약
스타니슬라브스키는 연기자가 항상 품어야할 다섯 가지 질문을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1) 나는 누구인가?
2) 무엇을 하고 있는가?
3) 왜 하는가?
4) 어디서 왔는가?
5) 어디로 가는가?
위의 질문들은 등장인물이 무대에 들어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무대 위에서 수행해야 할 행동이 무엇이며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지침이 된다. 위의 설명에 덧붙여 행동을 다시금 설명한다면 행동은,
1) 동기와 목적을 가진 행위로서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묶어준다.
2)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행위를 뒷받침하는 힘이다.
3) 등장인물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다.
4) 갈등을 유발시키고, 극적 상황을 만들어준다.
5) 다음 행동을 예견하게 한다.
행동은 동사로 표현되어야 하고 내면적 마음의 작용이어야 한다. "때린다"는 행위이다.
때리는 행위의 행동은 "복수하다" "응징하다" 기세를 꺾어 놓는다" 등등의 동사로 표현된다. 행동은 결국 신체적으로 수행될 수 있어야 한다.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신체적 행동의 수행법 (Method of Physical Action) 이란 모든 신체적 행위는 내면의 마음의 작용과 어울리는 상관관계를 가져야 하는 방법론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이어야 하며 모든 다른 사람들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감정과 사고>의 항목에서도 다시 거론하겠지만 행동은 결코 상대방의 신체적 또는 정서적 반응을 미리 짐작할 수 있는 것이면 안 된다.
예를 들어 "화난 친구를 진정시킨다" 와 같은 행동은 있을 수도 없고 그렇게 행동을 파악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상대역은 화가 나 있어야 하고 진정시킬만한 정서적 상태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의 행동은 그 친구를 격려하거나 과거의 아름다운 관계를 떠올리거나 본연의 임무를 주지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결과 친구는 화를 진정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행동에는 위험부담이 따라야 한다. 심부름과 같은 단순한 행위에는 위험부담이 없다. 따라서 행동을 수행하는데 흥미가 있을 수 없다. 행동을 수반하는 데에는 항상 걸림돌이 있어야 한다. 그 걸림돌을 딛고서 행동을 수반했을 때 행동완수의 기쁨과 성취감이 있다. 걸림돌이 위험부담이다. 행동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 다음 기회에 다시 상세하게 다루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