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후의 사랑 / 데렉 월컷]
그때가 올 것이다.
너의 집 문 앞에
너의 거울 속에 도착한 너 자신을
기쁨으로 맞이할 때가
미소 지으며 서로를 맞이하게 될 때가.
그에게 말하라, 이곳에 앉으라고.
그리고 먹을 것을 차려 주라.
한때 너 자신이던 그 낯선 이를 너는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포도주를 주고,
빵을 주라.
너의 가슴을 그에게 돌려주라.
일생 동안 너를 사랑한 그 낯선 이에게
다른 누군가를 찾느라
네가 외면했던 너 자신에게.
온 마음으로 너를 아는 그에게.
책꽂이에 있는 사랑의 편지들을 치우라
사진과 절망적인 글들도
거울에 보이는 너의 이미지를 벗겨 내라.
앉으라,
그리고 너의 삶을 살라
사랑이 끝난 후에 당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그것이 '사랑 이후의 사랑'이다. 누군가를 껴안던 두 팔로 이제 자신을 껴안아야 할 시간 타인에게 주었던 가슴을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고, 외면했던 자신과 재회해야 할 시간.
좋은 시는 마음에 와 내려앉는다. 사랑이 끝난 후에 자신을 버려둬선 안 된다고 시인은 말한다. 자신을 일으켜 세울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문을 열고 미소로 그를 받아들이고, 의자를 권하고, 따뜻한 밥을 차려 주어야 한다. 조금은 낯설어진 그를 다시 반겨야 한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당신을 가장 잘 알고, 변함없이 당신을 이해해 온 그를 그동안 다른 사람을 찾느라 잠시 외면했을 뿐이다.
자기애는 연민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화장을 지우듯 내가 아닌 이미지를 벗고 진정한 나와 마주 보는 일이다. 더이상 과거의 사진과 편지들에 매달리느라 자신의 삶을 쓰러뜨려선 안 된다. 이제 당신이 최고의 접대를 하고 만찬을 함께 즐겨야 할 사람은 타인이 아닌 당신 자신이다.
데렉 월컷(1930~2017)은 무려 열세 번이나 주인이 바뀐 끝에 영국 식민지가 된 서인도제도의 보석 같은 섬 세인트루시아에서 영국계 아버지와 아프리카 노예 혈통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병으로 사망했으며, 집에서 시 낭송을 즐겨 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3행시로 된 한 권의 장편 시집 『오메로스Omeros』로 199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서 인도제도의 문학이 최초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문학적 성공과 달리 월컷의 사랑은 매번 실패로 끝났으며, 결혼생활도 세 번의 이혼으로 끝이 났다. 대표시 중 하나인 이 시 속에 그 사랑과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월컷은 또 다른 시에서 쓰고 있다.
가슴아, 넌 새가 날듯 내 가슴속에 있으니
가슴아, 넌 태양이 잠자듯 내 가슴속에 있으니
가슴아, 넌 이슬인 듯 고요히 내 안에 있으니
넌 내 안에서 우는구나, 내리는 비가 울 듯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