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산골짝 어귀 버들개지는 물이 올라 껍질째로 파래졌다. 바라보이는 먼 산 활엽수는 엷은 엽록소가 번지고 있다. 맨 몸으로 겨울을 난 가로수들도 기지개를 켜는 봄이다. 목련은 철 앞당겨 피어나다가 꽃샘추위에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잘 정비된 공원엔 울타리 넝쿨처럼 드리운 개나리가 노랗게 수를 놓아 출렁거린다. 이어 화사한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남녘의 꽃소식은 하루에 백리 이상 북녘으로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명성이 대단한 진해 벚꽃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봄을 완상하고 있다. 그곳에 버금해 창원 벚꽃도 만만찮다. 공단대로와 교육단지는 물론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에도 벚꽃이 활활 피어나고 있다. 삭막한 콘크리트의 도시생활이지만 이맘때는 마음에 든다. 한 열흘 꽃 대궐에 푹 파묻혀 사는 기분이다. 내가 이곳 아파트로 이사와 산지도 세월이 제법 흐른다. 큰 녀석이 중학교 배정을 이곳 근처로 받아 옮겨와 살게 되었다.
그 녀석이 지난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멀리 떠났고, 작은 녀석도 올 봄 제 갈 길 찾아 부산서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따라 내가 많이 허전하고 외로움을 탄다. 두 녀석을 떠나보내고는 든 정은 몰라도 난 정은 안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래도 아비로써 푯대를 못 내고 덤덤히 지낼 수밖에 없다. 퇴근해 집사람보고 오늘은 무슨 소식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는 정도다. 두 녀석들이 아비한테 먼저 소식 줄 리 없다.
나는 이른 새벽인 세 시 무렵 잠에서 깬다. 일찍 일어난다 해서 남보다 잠을 적게 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체로 밤 열 시 무렵 잠들어 남들은 한잠 잘 시간 일어난다. 아홉 시 뉴스 후반 일기예보를 못 보고 잠드는 수도 있다. 집사람은 주방이나 거실에서 꼬물거리다 열두 시나 한 시가 되어 잠드는 것으로 안다. 어떨 때는 나는 일어나고 집사람은 잠들기에 거실 전등을 밤새도록 끄지 않고 아침이 오는 수 있다.
대체로 그 무렵 잠에서 깨면 책을 한 쪽 보든지 메일 검색이나 한 줄 글을 쓰기도 한다. 이 시간대는 고요와 적막뿐으로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 좋다. 우리 집은 아파트 맨 꼭대기 15층이다. 새벽 네 시가 되면 아파트 승강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 바닥에 아침신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현관을 열고 나가 주워와 활자를 살핀다. 그러고도 남은 시간 주체 못해 YTN 뉴스를 켜보기도 하다가 날이 샌다.
삼월 마지막 날이었다. 어제 그제 아침에도 분명하게 들은 소리였다. “지지배배…….” 동녘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즈음 베란다 밖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싶어하면서도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거실 문이 열리면서난 인기척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들리는 자연음이었다. 나는 베란다 창문의 햇빛가리개를 들추고 밖을 살펴도 새는 보이지 않았다. 방충망이 있어 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볼 수는 없었다.
아침 식탁에서 집사람보고 날이 밝아올 때 베란다에서 새소리가 들리더라고 했다. 집사람도 베란다 쪽 바깥유리에 새똥을 본 적 있다고 했다. 마침 토요일이라 퇴근하면서 한낮에 지상 주차장에서 15층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아파트 지붕이고 우리 집 베란다 곁인 모서리에 벌집 같은 희미한 물체가 붙어 있었다. 글쎄, 콘크리트 벽에 붙어 있는 물체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서랍 속 망원경을 찾아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렌즈에 잡힌 물체는 아파트 꼭대기 처마 밑에 정말 새집이 있었다.
그것은 제빗과 새의 한 종인 ‘귀제비’집이었다. 내가 십대 후반까지 고향에서 본 제비는 흙을 물어와 지푸라기와 섞어 반달 모양의 집을 처마 밑에다 지었다. 흥부네 초가지붕 처마 밑에 지었다는 제비집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 귀제비는 시골에서 재실이나 기와집의 추녀에다 진흙을 물어다 첨성대모양의 토굴 같은 집을 지었다. 강남에서 온 제비 중에 귀제비는 드물었다. 귀제비는 외양도 몸통에 갈색이 섞여 있어 보통 제비 약간 차이가 났다.
십대 후반 고향을 떠난 지도 삼십 년이 흘렀다. 어쩌면 내가 둥지를 떠나온 새였는지도 모른다. 그 새가 다시 새끼를 까 끼워 둥지를 떠나보내는 즈음이다. 도농을 가리지 않고 환경보존이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까지 생태계보존을 화두로 던져놓고 살고 있다. 내가 고향을 떠나올 즈음 함께 사라졌던 그 제비를 도심 속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서 볼 수 있다니. 예전의 그 제비소리를 아침마다 듣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두 아들 녀석을 떠나보내고 외로움을 타고 있을 때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보기 드문 제비다. 잠시 길을 잃은 나그네 제비든, 봄마다 찾아올 강남제비든 상관 않겠네. 반갑고 또 반가운지고. 박씨까지야 물고오지 않아도 좋다네. 내가 베푼 선행이 없기에 그것까지 기대할 형편이 아님은 잘 안다오. 아침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지지배배 들려주는 청아한 소리만도 어딘데. 추녀 밑 자네 둥지에서 새끼 잘 키워 가을에 훠이훠이 떠나가게나.
첫댓글 빨랫줄에 앉은 지지배배, 유심히 올려다 보던 옛 생각이 납니다.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 집을 짓는 명석한 두뇌를 닮고 싶기도 해요. 제비과 맹랭이(?) 특이했던 집이 생각나네요. 떠난 빈 자리는 늘 허전함을 채울 뿐이지요. 앞서 걷던 새침때기 어깨 톡 건드리며 <지지배> 하고는 도망치듯 뛰어가는 어린 모습까지 보입니다.^^*
지지배배----^^*선생님---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귀가 깨끗해지는 소리---즐감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