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 복음의 중심을 향하여
/이 재현 (Ph.D.)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 복음의 중심을 향하여 -
롬 1:16-8:39에 대한 강화분석 (discourse analysis) -
I. 들어가면서
1. 롬 1:16-8:39에 나오는 바울 복음의 중심 규명을 위한 적절한 본문 읽기 방법을 향해 기독교 역사를 통해 로마서는 각각의 시대의 필요에 따라서 다양한 신학적 모티프틀 제공해 왔다.
그레이든 스나이더(Graydon F. Snyder)에 의하면 기독교 역사는 적어도 열 여섯 개의 신학적 모티브를 로마서에서 찾아왔다고 한다: 믿음과 행위, 기독론, 교회와 국가, 은혜와 하나님의 공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의지(어거스틴), 교회의 권력, 이신칭의(루터), 로마서의 역사적 의도, 종말론, 틀어진(thwarted) 하나님의 약속, 보편적 관용, 하나님의 말씀 (바르트), 종말론적 실존(불트만), 아가페(나이그렌), 새 관점.2)
이런 주제들은 몇가지 신학적 범주로 묶을 수 있는데 죠셉 피츠마이어 (JAFitzmyer)는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1) 하나님에 대한 신학; (2) 기독론; (3) 성령론; (4) 인간론; 그리고 (5) 신자의 생활.3) 이런 종류의 신학적 모티프와 범주들은 기독교 교회의 독자들에게 중요한 것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로마서 저자인 바울의 관점에서 본다면 몇 가지 제기할 만한 의문들이 있다. 바울은 앞서 말한 모든 신학적 주제들이 자신의 독자들에게 발견되기를 의도하고 로마서를 썼던 것일까? 또는 바울은 위에서 말한 주제들이 모두 똑같은 증요도틀 가지고 읽혀지기를 기대했을까? 물론 아니다(mh;gevnoito). 왜냐하면, 바울은 조직신학에 대한 교과서를 쓴 것도 아니고, 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신학적 내용을 열거하고 싶은 의도로 로마서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학 백과사전의 자료를 얻기 위해 로마서를 읽는 것은 바울의 원래의 의도를 심각하게 곡해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4) 뿐만아니라, 바울이 로마서틀 쓰면서 모든 신학적 내용들을 동일한 증요도로 서술했다고 믿는 것은 상당히 순진한 발상이다. 비록 위에서 언급한 신학적 주제들이 모두 다 중요한 것들이지만, 바울은 자신이 편지를 받는 독자의 상황에 따라 어떤 신학적 주제를 다른 것보다 상당히 강조했을 것을 분명하다.5)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위에 바울이 언급한 신학적인 주제들에서 강조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분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중심되는 신학적 주제와 그렇지 않은 것들 사이의 상호관계는 어떻게 규명하는가? 이것은 바울 서신과 관련된 두가지의 학적인 논의와도 연결되어 있다. 한가지는 해묵은 논쟁
----------------------------
:1) 이 글은 필자의 학위 논문을 출간한 Paul's gospel in Romans: A Discourse Analysis of Rom 1:16-8:39 (linguistic Biblical Studies. 3: Leiden: Brill. 2010)의 서론과 결론을 요약하 것 임을 밝혀두다.2) Grayd on F. Snyder, "Major Motifs in the Interpretation of Paul's Letter to the Romans/' in Sheila E. McGinn(ed.) Celebratina Romans: Template for Pauline Theology (Grand Rapids: Eerdmaps,. 2004), 42-63.3) J.A. Fitzmver, Rom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B: New York: Doubleday, 1993).103-72.4) 톰 슈레이너(T.R. Schreiner)는 이런 식의 성경 읽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 한다: “바울 서신을 조직신학적 는문들로 읽는 것은 한 편지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는 시도이다”(J.R. Schreiner. Interpreting Pauline Epistles [GrandRapids: Baker book. 1990], 42).5) J.C. Beker, Paul, the Apostle: The Triumph of God in Life and Thought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0VI1-15.
거리인 바울 신학의 중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6)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로마서의 목적이 무엇인가와 연결되어 있다.7) 바울 신학의 중심과 로마서의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텍스트에 나오는 저자의 의도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은 또한 어떤 부분이 중심 부분이고 어떤 부분이 보조 부분인지를 구분하는 것과 각각의 부분의 내용과 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야기시킨다. 이런 세 가지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여러 신학적인 주제들에서 본문그 자체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시킨다.
2. 다양한 로마서 본문 읽기들
로마서를 접근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두 명의 저명한 성서학자들이 1990년대 초에 열린 성서학회모임에서 각각 자기의 접근 방법을 소개했다. 그 중의 한 명인 톰 라이트 (N.T. W right)은 바울 서신을 1세기 유대교의 세계관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라이트에 의하면 바울의 신학적 과제들은 그의 상징적 세계 (symbolic world)' 또는 ‘서사적인 틀 (narr ative framework)' 의 반영이기에 그 상징적 세계를 우선 규명하고 거기에서 바울 서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바울 신학의 바탕은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의 마지막에 이스라엘 위해 이루려는 한 것이 예수를 통해 실현되었다는 사상이다.8) 라이트의 이런 접근 방법은 ‘외부에서 내부로'의 성경읽기, 즉 성경 본문 밖에 있는 전제를 통해 본문을 접근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저명한 성서학자인 리엔더 켁(Lean der E. Keck)은 로마서를 ‘내적 논리 (innerlogic)’틀 따라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러 역사비평 방법들이 다양한 주제와 관심의 발로인 것을 지적하고, 때때로 그런 다양한 관심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바울 역시 자기들과 똑같은 관심으로로마서를 썼다고 착각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주장한다.9) 그래서 그는 로마서를 읽을 때, 본문 내에 흐르는 논리의 통일성을 따라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입장은 ‘본문 내에서(within the text)'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두 접근 방법은 본문읽기의 스펙트럼에서 양극에 해당되는 위치에 있다고 평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는 본문이 아닌 외적인 상황을 더 중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인 것 자체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대부분의 성경읽기는 이 둘의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할 것이다. 이런 두 극점들을 고려하면 최근에 제기된 로마서 읽기는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6) 바울 신학의 중심에 대한 논쟁에 대해서는 R.P. Martin, "Center of Paul's Theology," in G.F. Hawthorne, R.P.Martin and D.G. Reid (eds.)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Dovv 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93), 92-95; T.R.Schreiner, Paul: Apostle of God's Glory i n Christ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이), 16-19; L.M. McDonald andS.E. Porte r, Early Christianity and Its Sacred Literature (Peabody: Hendrickson, 2000), 352-65를 보라.
7) 로마서의 목적에 대한 개괄에 대해서는 LA. Jervis, The Purpose of Romans: A Com parative Letter Structurelnvestigation (JSNTSup 55;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1), 11-28; Fitzmyer, Romans, 80-84; AJ. Guerra,Romans and the Apologetic Tradition: The Purpose, Genre and Audience of Paul's Letter(SNTSMS 81; Cambridge:Cambridg e University Press, 1995), 22-42; James C. Miller, "The Romans Debate: 1991-2001," Cur BS 9 (2001), 306-49를보라.
8) N.T. Wright "Romans and the Theology of Paul," in D.M. Hay and E.E. Johnson (eds.) Pauline Theology:Vo!ume III: Romans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32-34. 그가 이 해하는 1 세기 유대교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N.T.Wright,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 pie of God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2), 3장과 5장을 보라.9) L.E. Keck, "What Ma kes Romans Tick?/' in D.M. Hay and E.E. Johnson (eds.) Pauline Theology Volume lll:Ro mans (Minneapolis: Fortress, 1995), 29.
1) 사회학적 성경읽기 (social scientific reading)
먼저 살펴볼 것은 사회학적 성경읽기이다. 이것은 본문 이면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사회, 문화적배경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성경읽기이다.10) 이 방법은 로마서는 당시의 사회적, 종교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전제 하에 다양한 현대 사회학적 이론들을 적용해서 바울의 의도와 신학을 규명하는 시도이다. 이에 대한 좋은 예는 최근에 나온 필립 에슬러 (P.F. Elser)의 Conflict and Identity in Romans (로마서에 나오는 갈등과 정체성)라는 책이다.11) 그의 기본적 전제는 1세기 지중해 연안에는 다양한 종족들(ethnic groups)이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보편적으로 갈등의 구조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 하에 로마서는 로마 기독교 공동체안의 있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바울의 시도라고 주장한다.12) 에슬러와 같은 이런 사회학적 성경읽기는 로마서를 단순한 조직신학적 논문 모음으로 보지 않고,당시의 상황적인 요소와 그에 따른 문제들의 해결이라는 관점으로 본문을 접근하기에 상당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바울 서신의 중심을 찾아가는 문제에 있어 일차적인 본문 접근 방법이 되기에는 몇 가지 치명적 약점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약점은 사회학적 성경읽기는 그 출발점이 분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방법은 현대의 사회학적 이론들에 의해 가정된 상황을 전제로 본문에 접근해서 어떤 결론들을 도출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기에 본문과 관련된 사회학적 상황들을 어떻게 가정할 것인가에 따라 본문읽기의 방법과 결론들이 아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같은 사회학적 성경읽기 방법을 사용하는 프란시스 왓슨 (Francis Watson)은 1세기 로마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와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여기는 반면13) 에슬러는 바울 당시 로마의유대교와 기독교는 완전한 단절이 아닌 어느 정도 의 연결점이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한다.14) 그렇기에 이 둘의 결과 역시 사뭇 다르다. 왓슨은 주장하기를 바울의 의도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설득해서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율법과 상관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옹호해 주려는 것이라고 말한다.15) 반면 에슬러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 이방인 기독교인과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화해를 모색하는 의도로 바울이 로마서를 썼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보듯이 사회학적 성경읽기는 분문 외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본문 접근 방식이 다르기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있고, 더 심각한 것은 전제된 상황에 따라 본문의 메시지를 조작 내지 통제하여 읽을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가 있다.
-----------------------
10) 사회학적 성경읽기에 대해서는 S.C. Barton, "Social-Scientific Approac hes to Paul," in G.F. Hawthorne, R.P. Martinand D.G. Reid (eds.)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93), 892-900; idem,"Social-Scientific Criticism," in Stanley E. Porter (ed.) A Handbook to the Exegesis of the New Testament (L eiden: Bril 1,1997), 277-89; M.A. Seifrid and R.KJ. Tan, The Pauline Writings: An Annotated Bibliography (IBR9; Grand RapidsiBaker Academic, 2002), 51-57을 참고하라.
11) Conflict and Identity in Roman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3).
12) Elser, Conflict and Identity in Romans, 12, 133. 그에 의하면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은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고 한다. 한 가지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종족적, 인종적인 갈등이고, 다른 한 가지는 가정교회들 간의 경쟁구도로 인한 갈등이라고 말한다. 즉, 가정 교회들의 수장들이 서로 경쟁관계에 있으면 자연히 가정 교회 간에는 묘한 갈등의 양상이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Elser, Conflict and Identity in Romans, 12 4-128).
13) Francis Watson, Paul, Judaism and the Gentiles: A Sociological Approach (SNTSMS 56; Cambridge: CambridgeUniversity Press, 1986), 94-105; idem, 'The Two Roman Con gregations: Romans 14:1-15:13,H in K.P. Donfried (ed.) TheRomans Debate (2nd ed.; Pea body: Hendrickson, 1991), 203-15.
14) 한편 마크 나노스 (Mark Nanos)는 바울 당시 로마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는 여전히 유대교 회당에 속해 있었다고 주장한다 (M.D. Nanos, The Mystery of Romans: The Jewish Context of Paul's Letter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6],41 -84, esp. 68, 84)
15) Watson, Paul, Judaism and the Gentiles, 178.
- 4 -
사회학적 성경읽기의 또다른 치명적 약점은 현대 사회학적 모델을 분문 해석의 전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위의 경우처럼 사회학적 모델의 안정성에 따라 분문 이해의 안정성이 결정되기에 바울 서신 해석을 위한 일차적 성경읽기 방법으로는 불중분한 면이 있다. 더 나아가 안정적인 사회학적 모델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모델과 본문을 연결시키려면 본문 그 자체를 읽고 해석하는 또 다른 읽기 방법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일차적 성경 읽기 방법으로는 부적합하다.
결론적으로 사회학적 방법은 본문을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속에서 보려고 하는 좋은 시도이고 때때로 그 결과는 신선한 통찰력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이 방법은 본문의 주제나 주제의 흐롬을 통해 증심부와 보조부를 이해하기 위한 일차적 성경읽기 방법은 될수 없다. 오히려 이차적인 보조 성경읽기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2) 상호텍스트적 성경읽기 (intertextual reading)
로마서 읽기로 제시된 두 번째 것은 상호텍스트적 성경읽기이다. 많은 부분에서 이 방법은 앞서 언급한 톰 라이트의 접근방법과 관련있다. 이 성경읽기의 기본적 전제는 바울은 구약의 사상에 젖어있는 유대인이기에 서신서에 나오는 의도나 신학은 구약이나 유대문헌간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봄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16) 이런 상호텍스트적 자료들은 서신서에 나오는 직접인용이나 다양한 간접인용, 또는 '메아리들(echoes)'까지 포함된다.17) 신약학 연구에서 상호텍스트적 방법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리차드 헤이즈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해석학에 있어 "상식(common sense)"이라는 것이 있기에 현대의 독자들도 고대의 독자들이 들었던 상호텍스트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18) 그래서 현대의 독자들도 과거 바울의 역사적 상황을 알고, 그가 사용했던 텍스트들을 안다면 2000년전 바울이 들었던 그 메아리틀 동일하게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연구들은 단 순히 바울이 들었던 메아리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이런 메아리들을 통해 바울 신학 전체의 모습을 재구성하는데 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 복음의 중심을 찾는 과정에 있어 상호텍스트적 성경읽기는 불완전한 면이 있다. 그 한 가지는 방법론적인 한계이다. 혜이즈는 바울 서신에서 구약의 메아리틀 구별하는 7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유용성 (availablity), 소리 크기(volume), 반복성(recurrence), 주제의 통일성, 역사적 가능성, 해석사, 그리고 만족도(satisfaction)이다.19) 유용성은 메아리의 자료가 저자나 독자에게 사용가능한 것인가와 관련이 있는데, 기본적 전제는 저자와 독자가 같은 자료를 접근할 수 있으면 동일한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순진하고 단순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자료의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이
------------------
16) 이런 성경읽기의 결과는 아주 많다. 이에 대한 참고 문헌에 대해서는 Craig A. Evans, ,Mlt is Not as though theWord of God had Failed': An Introduction to Paul and the Seri ptures of Israel," in C.A. Evans and J.A. Sanders (eds.)Paul and the Scripture of Israel (JS NTSup 83; Sheffield: JSOT Press, 1992), 13-14 nn. 1, 2; M. Silva, "Old Testament inPaul," in G.F. Hawthorne, R.P. Martin, and D.G. Reid (eds.)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Downers Grove:InterVarsity Press, 1993), 642; M.A. Seifrid and R.KJ. Tan, "Paul and the Old Testament," in The Pauline Writings: An Annotated Bibliography, 105-108.
17) 죤 홀랜드 (John Hollander, The Figure of Echo: A Mode of Allusion in Milton and A fter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1], 64)의 이론을 따라 리차드 해이즈는 *메아리를 의식적인 의도없이 사용되는 상징이나 암시를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R.B. Hays,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9], 29).
18) Hays,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 27-28. 헤이즈에 메아리 개념에 대한 비평적 연구 개괄에 대해서는 Kenneth D. Litwak, "Echoes of Scripture? A Critical Survey of Recent Works on Paul's Use of the Old Testament” CurBS 6 (1998), 260-88를 참조하라.
19) Hays, The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 29-33.
다 예를 들어 자료란 어떤 자료를 의미하는가? 구약 본문인가 아니면 해석된 본문인가?20) 더 나아가 바울이 어떤 자료를 사용했더라도 그의 독자들도 바울과 동일한 자료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상당히 회의적이다. 스탠리가 보여준 것처럼 현재 교회의 상황과 달리 높은 문맹률과 유대교 자료에 대한 제한적 접근성 때문에 바울의 이방인 독자들이 상호텍스트적 자료에 대해 바울과 동일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21)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이방인 독자들이 바울과 같은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만일 들을 수 있었다면, 그것이 바울이 듣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메아리를 구별하는데 있어 유용성의 기준은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22) 소리 크기라는 기준은 상호텍스트와 바울 서신 사이의 단어나 문장 형태에 있어 분명한 유사성과 관련 있다.23) 그러나 해이즈는 상호텍스트 자료의 분명한 반복이라는 것을 어떻게 구분할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들이 동일한 단어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동의어나 동족어를 포함해야 하는가? 메아리의 소리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이 불분명하기에 이것 역시 적적한 기준은 못된다. 세 번째 기준인 반복성은 메아리가 등장하는 횟수와 관련이 있다. 이 기준은 같은 메아리는 적어도 한번 이상 발생될 것을 전제로 하는데, 스탠리 포터 (Stanley E. Porter)가 지적한대로 만일 바울서신에서 한 번만 등장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24) 사실, 헤이즈가 옵 3:16의 메아리라고 말한 빌 1:19의 경우는25) 바울 서신 중 한 번만 언급된 것이기에 반복성에 의하면 이것은 메이라가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마지막 네 개의 기준들은 메아리를 발견하는 것에 해당하기 보다는 가정된 메아리의 해석에 대한 것이다. 특히 헤이즈가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라고 말한 '만족도는 메아리를 통해 읽은 본문이 현대독자의 경험에 좋은 영향력을 미쳤는가에 관한 것인데,26) 한마디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기준이다. 이것은 바울의 원래의 독자가 마치 21세기에 살고 있는 현대 인들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는 울음은 바울이 의도한 바를 1세기 독자들이 잘 들었는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빌 1:19에 나오는 메아리를 언급하면서 헤이즈는 고백하기를 "바울이 여기서 욥을 암
-----------------------
20) 예를 들어 크레이 그 에반스 (Craig A. Evans)는 많은 경우 바울의 자료는 구약 원문이 아닌 해석된 것을 사용했을 것이 라고 주장한다 (Evans, "It is Not as though the Word of God had Failed,H13-17). 한편, 크리스토퍼 스탠리 (C.D.Stanley)는 바울의 자료들은 많은 경우 전해진 전승들 을 재 택한 경우라고 설명 하기도 한다 (C.D. Stanley, "The Redeemerwill Come ejk Siw;rV: Romans 11:26-27 Revisited," in C.A. Evans and J.A. Sanders [eds.] Paul and the Scripture of Israel [JSNTSup 83; Sheffield: JSOT Press, 1992], 118-42)21) CD. Stanley, Arguing with Script ure (New York: T&T Clark, 2004), 38-61. 여기서 그는 전통적인 신약에서의 구약 사용 연구의 전제들을 소개하고 그것들의 맹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전통적 방법들이 제시하고 있는 원리들은 다음과 같다:
(1) 바울의 독자들은 유대교 경전의 권위를 인정하고 기독교 윤리의 근거로서 여긴다; (2) 바울의 독자들은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 (LXX)을 자유롭게 볼 수 있으며 아무 때나 연구할 수 있다: (3) 바울의 독자들은 정기적으로 구약성경을 읽으며 바울이 없을 때에도 그것들을 연구할 것이다: (4) 바울의 독자들은 바울이 사용한 유대교 문헌에 대한 직, 간접 인용들과 심지어 메아리'까지 들을 수 있다: (5) 바울은 편지들 쓸 때 자신의 독자들이 유대교 경전이나 문헌에 대한 배경지식을 다 이해할 수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썼을 것이다; (6) 바울도 자기가 인용하는 부분의 원래 문맥을 다 알고, 그것을 고려하면서 사용했을 것이다; (8) 바울은 자신의 교인들이 자기가 사용한 구약 인용들에 대해 동일한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9) 바울 서신에 나오는 인용들의 의미를 결정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바울이 원 본문을 어떻게 해석했을까를 연구하는 것이다.
22) Stanley E. Porter, "The Use of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Testament: A Brief Co mment on Method andTerminology/' in C.A. Evans and J.A. Sanders (eds.) Early Christia n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 of Israehlnvestigations and Proposals (JSNTSup 148; S 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7), 83.
23) Hays, The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 30.
24) Porter, "The Use of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Testament," 83.
25) Hays, The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 32.
26) Hays, The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 31-32
-6-
시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 암시들은 너무도 미묘해서, 그의 독자들이 인식했을 것 같지 않다"고 한다.27) 만일 바울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1세기 독자들이 들을 수 없었다면, 21세기에 있는 우리는 들을 수 있는가? 그리고 꼭 그것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혹자는 들어야 한다고 한다.28) 하지만, 이것은 바울의 글이 서신이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서신은 이야기와 달리 분명한 독자가 있고, 저자는 그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하고 싶어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울이 1세기 독자들에게 의도하지 않았고, 그 독자들도 몰랐다면, 지금 우리가 굳이 그것을 들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이즈가 제시한 기준은 해석학에 관련된 것이지, 메아리를 찾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분별의 기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울 복음의 중심을 향한 성경읽기와 관련해 상호텍스트적 읽기는 늘 본문을 읽는 다른 방법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은 바울의 의도가 구약 사용이나 암시를 통해서 전달되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바울의 중심의도가 구약사용과 전혀 상관이 없는 부분에서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경우 상호텍스트적 성경읽기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형태의 성경읽기 방법을 차용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상호텍스트적 성경읽기는 일차적이고 주된 성경읽기 방법이라 기보다는 부차적인 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3) 서사적 성경읽기 (narrative reading)
세 번째로 제시된 로마서 본문 읽기 방법은 서사적 접근방법이다. 상당히 최근에 대두된 방법으로, 이 방법의 기본적 전제는 바울이 편지를 쓸 때 커다란 이야기 담론(grand story) 을 염두에 두었고, 그의 편지들은 이런 이야기 담론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성경읽기는 그 커다란 이야기담론이 바울의 신학 뿐만 아니라 그의 윤리나 기독교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 역시 통제한다고 생각한다.29) 이런 성경읽기는 앞서 언급한 상호텍스트적 성경읽기와 관련있는데, 왜냐하면 바울의 서사적 들의 주된 재료는 구약과 중간기 유대문헌들이기 때문이다.
바울 서신에 있어 이런 성경읽기 방법을 처음 주창한 사람은 헤이즈였다. 그의 학위 논문을 출간한 The Faith of Jesus Christ: An Investigation of the Narrative Substructure of G alatians 3:1-4:11 라는 책에서 그는 그레이마스 (AJ. Greimas)의 서사 구조 모델을 사용해서 갈라디아에서 나오는 바울 신학의 서사적 구조를 만들었다.30) 이후 로마서와 관련해 여러 연구들이 행해져 왔다.31)
-----------------
27) “It is not at all improbable that Paul intended an allusion to Job, but it is perhaps rather improbable that his readers at Philippi would have picked up the allusion: it is rather too subtle." Hays, The Echoes of Scripture in theLetters of Paul, 32.
28) S.E. Fowl, Philippians (Grand Rapids: Eerdmans, 2005), 45.
29) 예를 들어 벤 위더링톤 (Ben Witherington)은 말하기를 바울이 언급한 교회의 상황들은 이런 저런 해결책을 야기시키지만, 근본적으로 그 방법들은 바울 사상 깊은 곳에 있는 커다란 서사적 담른 혹은 이야기 구조의 발로라고 한다(Ben Witherington, Paul's Narrativ e Thought World: The Tapestry of Tragedy and Triumph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4), 3; cf. Wright,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405).
30) R.B. Hays, Faith of Jesus Christ (2nd ed.; Grand Rapids: Eerdmans, 2002), 73-117.
31) 예를 들어, Wright, "Romans and the Theology of Paul,” 30-67; idem, "New Exodus, New Inheritance: The Narrative Substructure of Romans 3-8," in Sven K. Soderlund and N.T. Wright (eds.) Romans and the People of God(Grand Rapids: Eerdmans, 1999), 26-3 5; idem, "The Vindication of the Law: Narrative Analysis and Romans 8:1-11," in The Climax of the Covenant, 193-216; R. Penna, "Narrative Aspect of the Letter to the Romans," in Paul the Apost!e:Jew and Greek Alike (Collegeville: Michael Glazier Book, 1996), 90-102; 그리고 B.W. Longenecker, Narrative DynamicsPaul: A Critical Assessment(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2002)에 있는 논문들; A. Katherine Grieb, TheStory of Romans: A Narrative Defense of God's Righteousnes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 ox Press, 2002).
-7-
비록 이런 종류의 성서읽기는 바울 서신에 대한 신선한 통찰력은 주는 듯 하지만, 본문을 읽고 거기에 나오는 바울의 의도와 강조점을 찾는 일차적인 도구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첫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은 방법론적인 불안정성이다. 바울 서신의 서사적 성경읽기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전제 중의 하나는 서사가 상징적 세계 (symbolic world) 혹은 세계관(wordview)를 잘 드러내는 방법이므로 비서사 (non-narrative) 장르인 서신서에서도 서사의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는 확신이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사를 확인하고 분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없다. 예를 들어, 위더링톤이 그의 책 Paul's Narrative Thought World (바울의 서사 세계)에서 여타의 서사적 방법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지만, 정작 어떻게 서신서에서 서사를 구별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다.32) 이런 경향들은 캐더린 그립(A.Katherine Grieb)의 로마서에 대한 서사적 강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심지어 방법론적인 불안정성은 서사적 바울서신 읽기틀 처음 주창했던 헤이즈의 경우에 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갈라디아서를 통해 복음 안에 나오는 하나님의 커다란 구원의 그림을 그리려고 시도했는데, 문제는 몇 절 되지 않는 정보(갈 3:13-14, 21-22; 4:3-6)를 가지고 바울이 가지고 있었다는 커다란 구원의 그림을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의 방법론은 본문에 나오는 언어학적 정보를 무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일관성 없이 적용해서 짜맞추다시피 소위 커다란 구원의 그림을 내놓은 것이다.33)
바울 서신에 대한 서사적 성경읽기를 일차적 방법론으로 사용하기 주저되는 또다른 이유는 서사적 성경읽기가 가지는 바울 서신의 본질에 대한 오해이다. 헤이즈는 이야기(story)가 바울이 전해주고자 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34) 하지만, 바울의 서신은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한 것이 아닌 독자에게 전할 메시지를 편지의 형식을 빌어서 기술하고 있는 장르로 여겨야 한다. 그렇기에 비록 서사의 부분이 있을지라도 기본적인 진행방식은 이야기가 아닌 논리적 논증 내지는 주제 전달의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서사적 성경읽기가 주장하는 바울이 가지고 있었다는 커다란 이야기 담론(grand story)이란 개념 역시 문제를 안고 있다. 위더링톤에 의하면 바울은 그의 신학을 커다란 이야기 담론을 통해서 정립한다고 하는데,35) 도대체 커다란 담론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하나님과 창조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이스라엘과 예수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바울과 그의 교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의미하는가?36) 만일 커다란 이야기 담론이 바울 신학을 통제한다고 하더라도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의 단순한 이야기 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면에서 그들이 말하는 커다란 이야기 담론은 어떤 면에서 단편적인 이야기를 전체의 것으로 보는 침소봉대의 경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에 매트락 (R.B. Matlock)이 제시한 것 처 럼 커다란 이야기 담론은 단순한 선
--------------
32) Witherington, Paul's Narrative Thought World, 7 n. 11.
33)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비 평에 대해서는 필자의 논문인 Jae Hyun Lee, "Against Richard B. Hays's 'Faith of Jesus C hrist'/' JGRChJ 5 (2008) 51-80; idem, "Richard B. Hays and a Narrative Approach to the Pauline Letters," in Stanley E. Porter and Sean A. Adams (eds.) Pillars in the History of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Old and New (출간 예정)를 참조하라.
34) Hays, The Faith of Jesus Christ, 7.
35) Witherington, Paul's Narrative Thought World, 2-5; cf. Hays, The Faith of Jesus Chri st, 6; 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 193-216; idem,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69-80.
36) 커다란 이야기 담론의 개념에 대한 적절한 비평에 대해서는 J.D.G. Dunn, "The Narrati ve Approach to Paul," in B.W. Longenecker (ed.) Narrative Dynamics in Paul: A Critical Assessment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2002), 217-30을 보라.
-8-
적인 어떤 것이기 보다는 여러 이야기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37)
마지막으로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 복음에 중심을 찾는 과정에서 서사적 성경읽기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로마서 본문에 커다란 이야기 담론이 있다손 치더라도 본문에서 실제로 그것을 찾고 확인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성경읽기 방법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바울의 논증들은 서사적 읽기로는 온전한 이해를 얻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서사적 성경읽기는 본문의 주제와 내용을 잘 분석하는 방법을 통해 나온 결과들에 의지해서 만든 서사의 형태를 가지고 다시 본문에 접근하는 부차적인 성경읽기 방법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4) 수사학적 성경읽기(Rhetorical reading)
로마서를 접근하는 네 번째 방법은 수사학적 성경읽기이다. 이 방법이 신약학에 적용된 것은 그리 길지 않지만, 듀안 왓슨의 평가처럼38) 현재 행해지고 있는 바울 서신 접근법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39) 로마서에 관해서도 최근에 출간된 세 편의 주석류를 포함해서 수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40)
기본적으로 수사학적 성경읽기는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본문 안에 내포시킨 전략들을 규명하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그 전략들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41) 마틴 아센시오 (G. Martin-Asensio)의 분류에 의하면 바울서신의 수사학적 성서읽기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질 수 있다.42)
그 첫 번째는 한스 베츠와 죠지 케네디 계열의 수사학적 성서읽기 그룹이다.43) 이 그룹의 특징은 바울은 고대 수사학적 형태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서신을 쓸 때 내용 전달뿐만 아니라 서신의 형식까지 고대 그레코-로만 수사학적 교본들에 나오는 범주를 그대로 적용했다는 가정 하에 바울 서신을 접근한다. 예를 들어, 케네디는 바울이 고대 수사학을 잘 알고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다섯 가지의 수사학적 성경읽기 과정을 소개한다: (1) 수사학적 단위 결정; (2) 수사학적
-------------------
37) R.B. Matlock, "The Arrow and the Web/ in B.W. Lo ngenecker (ed.) Narrative Dynamics in Paul (Louisville:Westminster/John Knox Press, 2002), 53-54.
38) Duane F. Watson, "Rhetorical Criticism of the Pauline Epistles since 1975," CurBS 3 (1995), 219. 그는 1975년에 줄간된 한스 베츠의 논문 (H.D. Betz, "The 니terary Compositi on and Function of Paul's Letter to the Galatians," NTS 21 [1975], 353-79)이 수사학적 신 약성서 연구 방법의 본격적 시작점이라고 본다.
39) 수사학적 해석방법에 대한 개관에 대해서는 G. Hansen, "Rhetorical Criticism," in G.F. Hawthorne, R.P. Martin and D.G. Reid (eds.)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 993), 822-25; Watson, "Rhetorical Criticism of the Pauline Epistles," 219-48; Dennis L. Stamps, "Rhetorical Criti cism of the New Testament: Ancient and Modern Evaluations of Argumentation,in S.E. Porter and D. Tombs (eds.) Approaches to New Testament Study (JSNTSup 120; Sheffield: JSOT Press, 1995), 193-210; idem, “Rhetorical and Narra tological Criticism” in S.E. Porter (ed.) A Handbook to the Exegesis of the New Testament (Leiden: Brill, 1997), 219-39를 보라.
40) Thomas H. Tobin, Pa니I's Rhetoric in Its Contexts: The Argument of Romans (Peabo dy: Hendrickson, 2004) B. Witherington, Paul's Letter to the Romans: A Socio-Rhetᄋrical Commentary(Grand Rapi ds: Eerdmans, 2004); R. Jewett, Romans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2006). 로마서에 대한 보다 상세한 수사학적 성경읽기의 참고문헌은Witherington, Paul’s Letter to the Romans, xix-xxv를 보라.
41) Stamps, "Rhetorical Criticism of the New Testament," 167.
42) G. Martin-Asensio, Transitivity-Based Foregrounding in the Acts of the Apostles (JS NTSup 202;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0), 23-28.
43) H.D. Betz, Galatians: A Commentary on Paul's Letter to the Churches in Galatia (Her meneia; Philadelphia:Fortress, 1979); G.A. Kennedy,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throu gh Rhetorical Criticism (Chapel Hill: University ofNorth Carolina Press, 1984).
-9-
상황 예 사람들 사건들 등등 발견 수사문제(, , ); (3) 파악함 (법정에서 고소하거 나 변호할 때 사용하는 법정적 수사학(judicial rhetoric), 정치적으로 설득하거나 심의를 위해 논의할 때 사용하는 수사학(deliberative rhetoric), 종교의식 때 칭찬이나 비난 등을 포함한 수사학(epideitic rhetoric); ⑷ 고전수사학을 이용한 분석; (5) 수사효과 평가.44)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류는 첫 번째 부류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는 공통적이다. 그들은 고대 수사학적 교본들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하지만, 두 번째 부류와 세 번째 부류는 고대 수사학적 교본에 대한 입장차이가 있다. 두 번째 부류는 비록 첫 번째 부류의 경우를 비판하지만, 바울 서신과 고대 수사학적 교본의 양식적 범주(forma| categories)사이의 연관성의 끈을 놓치 않는 반면,45) 세 번째 부류는 고대 수사학적 교본들의 양식적 범주들을 바울 서신 해석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포터는 첫 번째 부류의 역사적 접근에 대해 비평하면서 고대 수사학적 교본들에 나오는 양식적 범주들이 서신서의 구조 이해에 도입되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실제로 서신의 형태가 수사학적인 양식과 접목된 것은 4세기 무렵이기에 1세기 바울의 서신이 수사학적 양식과 접목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것이다.46) 더 나아가 그는 서신서의 형태는 수사학적 양식과 일치하지 않기에 학자마다 바울 서신의 수사학적 구조에 대해 일치점이 없음과 서신서 형태에 맞는 수사학적 범주를 규정하는 것에도 통일성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47) 그래서 세 번째 부류는 고대 수사학의 양식의 사용을 거부하고 페럴만(C. Perelman)과 올브레히트-티테카(L. Olbrecht-Tyteca)에 의해 주창된 "새 수사학 (new rhetoric)"을 수용한다.48) 고전 수사학에서는 수사학을 대화나 연설의 독특한 전달방법으로 보고 있지만, 현대 수사학은 모든 종류의 강화 혹은 담화(discourse)는 독자를 설득하는 논증의 기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 번째 부류는 바울 서신을 접근함에 있어 형태적 일치보다는 기능적, 설득적 목적에 더 많은 초점을 둘 뿐 아니라, 내용의 여러 부분들이 지니고 있
---------------------------
44) Kennedy,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through Rhetorical Criticism, 33-38.
45) 예를 들어, A.H. Snyman, "Persuasion in Philippians 4:1-2ᄋ/' in Stanley E. Porter and Thomas H. 이bricht (eds.) Rhetoric and the New Testament: Essays from the 1992 Heidelberg Conference (JSNTS up 90;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3), 335; CJ. Classen, "St. Paul's Epistles and Ancient Greek and Ro mans Rhetoric," in Stanley E. Porter and Thomas H. 이bricht (eds.) Rhetoric and the New Testament: Essays from 19 92 Heidelberg Conference (JSNTSup 90;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3), 271-78, 289-90.
46) Stanley E Porter, 'The Theoretical Justification for Application of Rhetorical Categori es to Pauline Epistolary Literature," in Stanley E. Porter and Thomas H. Olbricht (eds.) Rhetoric and the New Te stament: Essays from the 1992 Heidelberg Conference(JSNTSup 90;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3), 109-16. Cf. Porter, “Paul as Epistolographer and Rhetorician?” 232; idem, "Paul of Tarsus and His Letters," in Stanle y E. Porter (ed.) Handbook of Classical Rhetoric in Hellenistic Period (330 B.C-A.D. 400) (Leiden: Brill Academic, 2001), 562-67; J.T. Reed, Using Ancient Rhetorical Categories to Interpret Paul's Letters: A Question of Genre," in S.E. P orter and T.H. Olbricht (eds.) Rhetoric and the New Testament: Essays from the 1992 Heidelberg Conference (JSNTS up 90;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3), 292-324; idem, "Epistle," in Stanley E. Porter (ed.) A Handbook on Classical Rhetoric in the Hellenistic Period (330 BC- AD 400) (Leiden: Brill, 1997), 171-94; AJ. Malherbe, Ancient Epistolary Theorist (SBLSBS 19; Atlanta: Scholars Press, 1988), 2-3.
47) Porter, "Paul as Epist이ᄋgrapher and Rhetorician?," 230-31; idem, "Paul of Tarsus an d His Letters," 539-61.
48) C. Perelman and L. Olbrecht-Tyteca, The New Rhetoric: A Treatise on Argumentatio n (trans. J. Wilkinson and P. Weaver;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69). Cf. C. Perelman, The N ew Rhetoric and the Humanities: Essays on Rhetoric and its Application (Dordrecht: Reidel, 1979); idem, The Realm of Rhetoric (trans. W. Kluback;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2); E. Black, Rhetorical Critici sm: A Study in Method(New York: Macmillan, 1965); WJ. Brandt, The Rhetoric of Argumentation (New York: Bobbs-Merrill, 1970); W. Nash, Rhetoric: The Wit of Persuas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현대 수사학을 도입한 신약성서 연구 문헌들에 대해서는 Porter, "The Theoretical Justification for Application," 106 n. 17을 참조하라.
- 10 -
는 설득적 기능들에도 주목한다. 또한 수사학적 기능들의 연구를 위해 다른 학문(예를 들어, 사회학이나 언어학 등)과의 연결에도 많은 여지를 둔다.49)
결론적으로 수사학적 성서읽기가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 복음의 중심을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는가의 문제는 어떤 종류의 수사학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만일 첫 번째 부류처럼 고대수사학적 교본들을 바울 서신의 양식과 내용 연구의 핵심 도구로 사용한다면 앞서 설명한 고대 수사학의 교본과 서신서 사이의 관련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부류는 상대적으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 중 세 번째 부류는 잠재적 유용성이 더 많이 있다. 왜나하면, 두 번째 그룹의 경우 고대 수사학 교본의 엄격한 적용을 반대한다면 본문의 수사학적 기능들을 분별할 또 다른 방법론과의 접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 번째 부류는 상대적으로 언어학 등의 다른 학문들과의 연계성 등을 통해서 본문 안에 있는 저자의 수사학적 전략들에 집중하기에 본문을 이해하는 일차적인 도구가 될 여지가 더 있다.
5) 언어학적 강화 분석 읽기 (linguistic discourse reading)
마지막으로 소개할 로마서에 대한 성경읽기 방법은 언어학적 강화분석 읽기이다. 비교적 최근에 대두된 본문 접근법으로 이 방법은 앞서 소개한 방법들과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방법들은 저마다 장점들이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약점은 본문 자체가 말하고 있는 언어학적 표현들과 정보들에 상대적으로 등안시하거나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학적 성경읽기는 그 출발점이 현대 사회학적 모델로 재구성된 이론의 틀에서 시작한 다. 상호텍스트적 성경읽기 역시 본문에 나오는 직, 간접적으로 인용된 구약이나 증간기 문헌들에 더 많이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서사적 읽기나 수사학적 읽기 역시 본문이 아닌 이미 사전에 설정된 커다란 이야기 담론이나 고대 수사학적 교본들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류)을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성경읽기들은 본문 그 자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기에 고대 어로 된 텍스트에 역(逆)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 안에 있는 언어학적 특징들을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함을 강조한 포터의 지적은 타당하다.
[바울을 포함한] 고대 헬라어 (Hellenistic Greek)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질문할 수 없는 우리의 한계 때문에 그들의 준거(準據) 체계 (frame of reference)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본문의 증거에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원래의 언어 [고대 헬라에를 사용하는 그들의 인지적 틀과 문서들을 재구성하는 그 어떤 시도도 반드시 본문에 나오는 언어학적 기교에 대한 자세한 연구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보다 높고 추상적인 차원의 분석으로 진행해야 한다.50) 결론적으로 바울 서신의 강조점과 중심부를 찾는 작업은 반드시 본문 자체에 나오는 언어학적 표현들을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학적 강화분석은 본문을 읽는 일차적인
------------------
49) 언어학과 수사학의 연결에 대해서는 Stanley E. Porter, “Ancient Rhetoric Analysis and Discourse Analysis of the Pauline Corpus” in Stanley E. Porter and Thomas Holbricht (eds.) The Rhetorical Anal ysis of Scripture: Essays from the 1995 London Conference (JSNTSup 146;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7), 249-74; idem, "Linguistics and Rhetorical Criticism," in Stanley E. Porter and DA Carson (eds.) Linguistics and the New Testament (JSNTSup 168;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9), 63-92을 보라.
50) Stanley E. Porter and Matthew B. O'Donnell, "Cohesion/' in Discourse Analysis and t he New Testament (출간 예정), 109.
- 11 -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학적 강화분석은 본문 그 자체에서 분석을 시작하며, 본문에 통해 드러난 저자의 강조 방법, 주제와 논지 전달 방법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학적 강화분석은 본문에 나온 바울의 주제와 강조점들을 규명하여 앞서 설명한 성경읽기 방법들에 대한 적절한 본문적 증거들을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위의 여러 성경읽기에 대한 근거있는 평가를 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3. 결론
이 연구의 주된 과제는 롬 1:16-8:39에 나오는 바울 복음의 중심을 찾아가는 것이고, 세 가지의 주제적 질문을 염두에 두고 있다:
중심부의 위치와 내용은 무엇이고,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위해 로마서에 대한 여러 성경읽기들을 검토해 본 결과 그것들이 본문 자체 분석에 대해 진지한 비중을 두지 않기 때문에 본문을 접근하는 일차적인 방법이 될 수 없음을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포터가 신학성서 연구의 본질에 대해 지적한 것을 들을 필요가 있다. 신약성서 연구는 본질적으로 언어를 기초로 한 훈련이다. 즉, 연구틀 위한 일차적인 자료들은 본문(text)이나 혹은 더 나아가 1세기에 있었던 다양한 헬라어 문헌들의 모음들이라는 것이다. 신약 연구에 다른 어떤 것이 포함되더라도, 예를 들어 고고학적 자료들, 문학 비평들, 사회학적 비평들, 혹은 신학 등등, 신약 성서 연구는 항상 본문을 중심으로 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약 성서의 세계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본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51) 따라서 필자의 연구는 본문 그 자체에서 나오는 여러 언어학적 정보들에 특별한 관심을 기을이는 언어학적 강화분석의 방법으로 로마서를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로마서 전체를 보기보다는 롬 1:16-8:39의 내용에 한정지으려고 한다. 이것은 바울의 복음의 중요내용이 롬 1:16-8:39에만 있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롬 8:39과 9:1 사이에는 커다란 단락 구별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 연구의 한계를 롬 8장까지로 한 것이다. 하지만, 롬 1:16-8:39은 롬 9-11 장의 내용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롬 12-16장의 신자와 교회의 삶에 대한 바울의 논지의 신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성을 가벼이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비록 롬 1:16-8:39까지로 제한하지만,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의 복음과 생각을 보다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51) S.E. Porter, "Discourse Analysis and New Testament Studies: An Introductory Surve y," in S.E. Porter and D.A. Carson (eds.) Discourse Analysis and Other Topics in Biblical Greek (JSNTSup 113 Sheffi 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14.
- 12 -
II. 로마서에 나오는 바울 복음의 증심을 향하여52)
1. 롬 1:16-8:39에 나오는 바울 복음의 전체적 개관
자신의 복음을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하는 롬 1:16-17에서. 바울은 복음을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묘사한다. 이 구절을 통해 그는 자신의 복음 이해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 요소들을 소개한다. 그 한 요소는 자신의 복음은 인간들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런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어떤 관계성을 내포하고 있는 점이다. 이어지는 로마서 1:18-8:39에서 바울은 이 두 요소를 아우르는 구원을 설명하는데, 특별히 주목할 것은 그가 사용한 두 가지의 설명적 틀(descriptive framework)이다. 첫 번째 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의 패러다임인데, 롬 1:18-5:11 에서 구원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되어 나온다. 두 번째 설명적 틀은 옛 영역과 새 영역이라는 두 영역의 대조이다. 이것은 롬 5:12-8:39* 통해 구원을 설명하는 증요한 틀로 사용되어 나온다.53)
1) 상호작용의 틀로서 설명되는 구원
이 설명적 틀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에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호작용으로서 구원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 틀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시작-인간의 반응-인간의 반응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서에서 이러한 상호작용의 과정은 주로 동사들을 통해 표현된다. 특별히 행위나 사건들의 과정을 의미하는 동사들, 인지 혹은 감정적인 정신과정을 보여주는 동사들, 그리고 대화과정(Verbal)을 드러내는 단어들을 통해서 표현된다. 실제로 롬 1:18-5:11의 주요 동사들은 대부분 이 부류에 해당되어 나타난다. 바울에 의하면 이런 상호작용의 틀은 두 가지 패러다임이 있다. 한 가지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패러다임이고, 다른 한가지는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패러다임이다.
A) 인간의 죄인 됨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패러다임:
롬 1:18-3:20이 패러다임의 기본적 구조는 하나님이 자신의 신성을 창조물을 통해서 보이심에도 모든 인간이 거절하는 과정,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반응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거절은 행위적인 영역과 인지적인 영역을 포함하고 있는데 (cf. 롬 1:21-23),54) 하나님의
--------------------
52) 이 부분은 필자의 논문의 결론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이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인 60여 쪽의 방법론과 340여 쪽의 로마서 본문 설명, 그리고 118쪽에 해당하는 언어학적 분석 자료들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53) 이 두 가지의 설명적 틀은 개념적인 것으로 본문의 문법적, 의미론적 단락구분과 연관 성이 있지만, 실제적 단락구분과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필자는 이런 상호작용의 틀(롬 5:1-11)과 두 영역의 대조의 틀(롬 5:12-21)이 모인 롬 5장을 하나의 큰 단락 구분인 '섹션 (section)'으로 보고 로마서를 분석했다. 왜냐하면, 롬 5장은 이 두 종류의 설명적 틀을 예수님의 역할이라는 주제가 붙잡아 주어 통일성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자세한 논증과 설명은 Lee, Paul's gospel in Romans, 291-308를 보라.
54) 바울은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인지적, 행위적 거절을 교차대구의 표현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다: A. 인간의 고의적 행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감사지 않음 [예배의 문맥]: 롬 1:21a, b) - B. 인간의 부정적 인지 영역 (생각이 허망해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둡게 됨: 롬 1:21c, d) - B' 인간의 부정적 인지 영역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나 우준하게 됨: 롬 1:22)-A’ 인간의 고의적 행위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우상의 것으로 바꿈: 롬 1:23).
- 13 -
현재적 심판 역시 인간의 행위적인 영역과 인지적인 영역에 각각 반응하는 모습이 있다.55) 이 패러다임은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로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바울은 이 패러다임을 통해서 몇 가지 인간문제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첫 번째 통찰력은 이 패러다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두 가지 차원의 관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한 가지는 법정적인 차원인데, 이것은 주로 의미 영역 34.E (dik-어휘들), 30.G(분별.. 평가, 심판: krivnw), 20.C(파괴), 56.E(소송, 사례: krivma), 등등의 단어 사용에서 나타난다.56) 이 경우 하나님은 심판자로 묘사되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선고받고 심판을 받는 자로 표현된다. 바울에 의하면 인간의 죄인 됨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와 심판은 피할 길이 없으면 심지어 율법도 이런 법정적 차원에 대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차원은 관계적인 것이다.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의 패러다임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하나님과 원수된(ejcqroi;: 롬 5:10)관계에 있다. 그 결과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화평이란 없으며(cf. 롬 5:2), 오직 인간의 불순종 과 하나님의 진노로 묘사할 수 밖에 없는 관계가 전부이다.
인간의 죄인 됨과 하나님의 진노의 패러다임이 주는 두 번째 통찰력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이런 패러다임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하나님을 거절하는 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cf. 롬 1:18-2:5; 3:9),57)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cf. 롬 2: 12; 3:19-20). 흥미롭게도 바울은 인간의 죄인 됨과 하나님의 심판의 패러다임을 다룰 때, 인간편의 모습을 증심으로 설명을 진행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우선 롬 1:18-32에서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의 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현재적 심판을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롬 2:1-5에서 도덕주의자들에 대한 예를 들고, 다시 롬 2:6부터 모든 인류로 그 범위를 확장시킨다. 롬 2:12에서 율법이라는 것을 통해서 유대인의 죄인 됨에 대한 예를 들기 시작한다. 비록 바울이 롬 2:12-3:20에서 유대인의 위선과 죄악에 대해서 다루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단순히 유대인의 죄악 됨을 묘사하거나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주된
---------------------
55) (1) 롬 1:24-27: 인간 행위 영 역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2) 롬 1:28-32: 인간 인지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56) 여기서 나오는 의미 영역 범주들은 J.P. Louw and E.A. Nid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Based on Semantic Domains (2 vols.;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88)에 나오는 범주에 근거한 것이다.
57) 많은 주석가들은 롬 1:18-32의 내용을 이방인의 죄를 묘사하는 것으로, 그리고 롬 2:1-5의 이야기를 유대인에 대한 것으로 이해한다 (예를 들어 W. Sanday and A.C. Headlam,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ICC; Edinburgh: T&T. Clark, 1902], 54; C H. Dodd,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MNTC; London: Hodder 8i Stoughton, 1932], 113; C.E.B. Cranfield,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2 vo I s. ICC Edinburgh: T8dT Clark, 1975], 1:136-40; E. Kasemann, Commentary on Roma ns [Grand Rapids: Eerdmans, 1980], 52-54; J.D.G. Dunn, Romans 1-8 [WBC; Waco: Word, 1988], 78; Fitzmyer, Roman s, 297; D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96], 125-27; John Murray,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English Text with Introduction, Exposition, and Note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82], 5 4-56; T.R. Schreiner, Romans[BECNT; Grand Rapids: Baker, 1998], 103; SJ. Gathercole, Where is Boasting? Early Jewis h Soteriology and Paul's Response in Romans 1-5 [Grand Rapids: Eerdmans, 2002], 198 etc.). 하지 만, 롬 1:18-2:5절의 대상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으로 볼 여러 근거들이 있다. 먼저, 바울 이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처음 언급한 롬 1:18의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ajnqrwvpwn)이 이방인에게만 해당한다고 볼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이것을 모든 인류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리고 계속되는 바울의 는지속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모든 인류에서 이방인으로 변화되 었음을 보여주는 단서는 (예를 들어, 인칭 대명사를 통한 변화 등등) 없다. 또한 롬 2:1-5의 내용이 솔로몬의 지혜서의 내용과 유사하기에 유대인을 지칭한다고 하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예를 들어 더글라스 무 (Douglass J. Moo)는 롬 2:4절과 지혜 서 11:23과의 유사성을 통해서 롬 2;1-5이 유대인의 죄악됨을 말한다고 주장하나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128, 133), 실제 지혜서 11:23은 유대인을 향한 것이 아닌 이방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에 대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통 2:1의 접속사(diov)는 이방인을 다루는 롬 1:18-32과 유대인을 다루는 롬 2:1-5사이의 논리적 연결이 매우 부적절함을 보여준다. 오히려 롬 1:18-2:5은 모두 이방인과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며, 롬 1:18-32은 보다 일반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롬 2:1-5은 바울의 독자를 겨냥한 도덕주의자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를 향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 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보다 자세한 설명에 대해서는 Lee, Paul's gospel in Romans, 130-34를 보라.
- 14 -
초점은 모세 율법이 구원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다. 바울은 또한 유대인 역시인간의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런 두 가지 초점은 다시 롬 3:19-20에서 모든 인류의 죄인 됨을 확정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왜냐하면,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유대인이 그들의 육신적 한계(savrx)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지킬 수없어 심판을 받는다면 율법이 없어 하나님의 뜻조차 모르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것을 바울이 논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롬 1:18-3:20에서 죄인된 인간과 하나님의 진노의 패러다임에 대해 설명 할 때, 인간 편의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가며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죄인 됨-일반적인 도덕주의자의 위선-모든 인간의 죄인 됨-유대인의 위선과 죄인 됨-모든 인간의 죄인 됨.
세 번째 통찰력은 이런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의 과정은 시간적, 공간적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적인 것과 관련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적 연속성을 가진 것으로 설명한다. 즉, 인간들의 과거와 현재의 죄가 하나님의 과거적,현재적 심판을 야기시킨다 (c f. 롬 1:18-32). 더 나아가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의 현재적 모습은 하나님의 미래적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롬 2:3-5). 공간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바울은 인간들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는 단순히 인간 개개인의 차원이 아닌 모든 피조울의 영역까지 미친다고 말한다 (cf. 롬 8:22).
결론적으로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의 상호작용 패러다임은 바울이 인간의 문제를 설명하는 기본적인 틀로서 설명되어지며, 이 패러다임의 핵심적인 과정은 하나님의 주도권에 대한 인간의 거절로 표현되는 죄악 됨이다. 이런 인간의 죄악 됨은 하나님과의 법정적, 관계적 차원에서 영향을 미치는데,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반응을 진노와 심판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시간적으로 과거와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공간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에까지 이른다.
B)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의 패러다임:
롬 3:21-5:11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의 두 번째 패러다임은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이다. 이 패러다임에서 하나님은 구원의 과정에 주도권을 가지신 분으로서 구원을 시작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으로 설명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원 과정의 중심에 두셨으며, 그 예수에 대한 믿음의 반응을 통해서 구원을 주시는 분으로 나타난다(롬 3:21-26). 앞서 설명한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의 패러다임처럼 이 구원의 패러다임 역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작용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공유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특징되는 차이점이 있다.
첫 번째 차이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에 있어 그 결과의 차이이다. 위에서 말한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라는 옛 패러다임과 하나님의 구원의 패러다임은 기본적으로 법정적, 관계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는 같다. 하지만 옛 패러다임에서 법정적 차원은 죄인들에 대한 진노와 심판이 하나님의 반응이지만, 새 패러다임에서는 죄용서와 의롭게 됨이(dikaiosuvnh) 새로이 등장하는 하나님의 반응이다. 한편, 관계적 차원에서는 인간과 하나님의 원수 됨이 옛 패러다임의 기본적 상태였다면, 새 패러다임에서는 하나님과 화목된 자로서 신자와 하나님이 평화의 관계속에 있음을 말한다 (롬 5:1, 10-11). 그러므로 구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결과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라는 옛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결과에 대한 반전 또는 해결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적 차이점은 새 패러다임에서는 구원 과정을 경험하는 대상들이 다르다. 옛 패러다임이든 새 패러다임이든 하나님의 상호작용의 대상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하는 모든 인간이라는 것
- 15 -
은 공통적이다. 하지만 옛 패러다임과는 달리 새 패러다임에서는 .,,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반응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하나님의 구원 과정의 시작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지만, 오직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cf. 통 5:17).
구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보여지는 세 번째 특징은 옛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시간적, 공간적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신자의 믿음은 하나님 구원의 현재적 차원을 (예를 들어,칭의 [cf. 롬 5:1, 9]) 경험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구원의 미래적 상황까지 연장된다(swqhsovmeqa: 롬5:9, 10). 공간적으로 피조물 또한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새 패러다임을 결과를 경험하게 된다 (cf. 롬 8:19-21). 하지만, 이것은 현재적 상황이 아닌 미래적 상황과 연결되며, 두 영역의 설명적 틀과 더욱 밀접한 관 련가운데 등장한다.
네 번째 차이점은 새 패러다임에서 보이는 신적인 주도권과 인간의 믿음에 대한 강한 강조이다. 옛 상호작용 패러다임의 초점은 인간의 죄악 됨과 하나님의 진노의 반응에 있었다. 그 중, 바울은 더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인간의 죄악 됨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그것이 인간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구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바울은 구원에 있어 구원 결과의 그 상세한 모습보다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간의 반응에 대해 더 많이 강조한 인상을 준다. 먼저 인간의 믿음과 관련해서, 바울은 롬 3:21-26에서 하나님의 주도권적인 구원의 시작에 대한 인간의 합당한 반응으로 믿음을 소개하고, 그 믿음으로 인해 의롭게 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롬 3:27-31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다시 언급하고 롬 4장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선행 (先行)에 대한 인간의 믿음의 반응이 구원을경험케 하는 핵심임을 재차 강조한다58).
---------------------
58) 여기서 필자는 바울 신학의 최근 논쟁거리인 pivsti" jlhsou1 Cristouu' •의 이해에 대해 목적적 소격 ("예수틀 믿는 믿음")으로 번역해야 함을 주장한다. 이것에 대해 몇 가지 내적, 외적인 증거들이 있다. 먼저, 사본학적 외적 증거가 목적격적 이해를 방증하고 있다. 롬 3:22은 롬 1:17과 더불어 pivsti"jlhsoiy Cristoi문제의 중요한 구절인데, 이 구절을 담고 있는 현존하는 사본 중 네 번째로 오래된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이 소격 구조틀 대격 구조로 바꾸어 말하고 있다. 즉, 알렉산드리 아 사본은 dia; pivstew" jlhsou' Crist이j' 대신에 dia; pivstew" ejn Cristw'/jlhsou'로 표현하고 있 는데, 이것은 고대 서기관들도 이 구절의 이해에 대한 오해의 여지를 인식했다는 것이고,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의도적 수정을 통해 "예수를 믿는 믿음"이 올바른 이해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Stanley E. Porter, "The Rhetorical Scribe: Textual Variants in Romans and Their Possible Rhetorical Purpose," in S.E. Porter and D丄. Stamps [eds.] Rhetorical Criticism and the Bible [JSNTSup, 195;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2002], 417). 내적인 여러 증거 역시 목적격 이해를 방증한다. 주격적 소격 이해를 (예수의 믿음/신실성") 주장하는 사람들의 기본적 전제는 욷법과 믿음에 관련 된 바울의 구원 논쟁의 핵심은 신적인 주도권과 인간적 주도권 사이의 대조라고 보는 것이다. 즉 바울이 이야기 하는 것은 인간의 믿음과 행위의 대조가 아닌, 인간의 행위와 예수가 행한 어떤 것 사이의 대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가 행한 어떤 것을 pivsti" (믿음 혹은 신실성)라고 표현했다는 것이 다 (예를 들어 R.N. Longenecker, Paul, Apostle of Liberty (New York: Harper & Row, 1964), 149-52; G. Howard, "On the faith of ChrisC HTR 60 [1967], 459-65; idem, "The 'Faith of Christ7 ExpTim 85 [1973-74], 212-15 D.W. Robinson, "Faith of Jesus Christ - A New Testament Debate/' RTR 29 [197 0], 71-81; G..M. Taylor, "The Function of pivsti" Cristou' in Galatians/' JBL 85 [1966], 58-76; S.K. Williams, "Again Pisti s Christou," CBQ 49 [1987], 431-47; Hays, The Faith of Jesus Christ 156-61; idem, TIIZTIZ and Pauline Christology: What Is at Stake?,” in E.E. Johnson and D.M. Hay [eds.], Pauline Theology. Volume IV: Looking Back, Pressing on [Atlanta: Scholars Press, 1997], 35-60; L.E. Keck, “Jesus, in Romans," JBL 108 [1989], 452-57; M.D. Hooker, TIIZTIZ XPII TOY," NTS 35 [1989], 321-42; B.W. Longenecker, "pivsti" in Romans 3:25: Neglected Evidence for the 'Faithful ness of Christ,?," NTS 39 [1993], 478-80 등등). 하지만, 그들의 이해와 달리 롬 3:21-26에서 예수는 문법적, 논리적 주어로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롬 3:21-26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문법적 혹은 논리적 주어로 등장하지만, pivsti”라는 단어 외에는 예 수는 한 번도 어떤 과정이나 행위의 주체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예수가 논리적, 문법적 주어로 표현되는 롬 5장에 서도 바울은 예수의 순종을 pivsti”라는 단어를 써서 설명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계속되는 바울의 설명속에서 pivsti"는 인간의 행위와 예수의 순종사이의 대조가 아닌, 인간의 행위오卜 믿는 것이 대조되는 문맥안에서만 등장한다 (예, 롬 4:2-3). 그러므로 롬 3:22에 나오는 pivsti" jlhsou' Cristou'의 표현은 목적격 소격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목적격 소격에 대한 자세한 변호에 대해서는 Dunn, "Once More, 门IZTII: XPIZTOY," 61-81 Byrne, Romans, 124-25, 130; Schreiner, Romans, 1 81-86; C.E.B. Cranfield, "On the pivsti" Cristou' Question," in On Romans and Other New Testament Essays(Edinbur gh: J8lJ Clark, 1998), 81-97; R.B. Matlock, 'Dethe이ᄋgizing the 门IZTIZ XPIITOY Debate: Cautionary Remarks from a Lexical Semantic Perspective,"
- 16 -
한편 믿음의 반응의 전제가 되는 구원의 신적 선행 작업 역시 새 패러다임의 주된 관심 중의 하나인데 이 신적인 선행 작업의 핵심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희생제물로 세우시는 과정이다. 바울은 이것을 롬 3:21-26과 5:6-10의 두 부분을 통해 설명하는데, 각각의 관심사와 초점이 다르다.
먼저 롬 3:21-26에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구원의 과정을 설명한다. 이것은 구원의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절 (clause)이나 문장(sentence)의 모든 논리적 혹은 문법적 주어가 하나님인 것에서 잘 드러난다.
반면, 롬 5:6-10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비록 하나님은 예수의 죽움과 관련된 구원과정을 주관하는 분으로 묘사되지만, 그 중요성은 상당히 낮게 표현된다. 예를 들어, 롬 5:1-11에서는 롬 5:8절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은 주절(primary clause)의 문법적 주어르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롬 5:8절에서도 하나님은 문장 맨 뒤에 위치함으로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떨어지게 표현되어 있다.59) 이것은 롬 3:21-26의 경우와 상당히 다른 것이다. 더 나아가 롬 5:6-10에서는 예수가 문법적, 논리적 주어로 등장하는 것이 두 번 나온다(롬 5:6, 8). 이는 예수의 죽음과 관련해서 표현되는 것으로 구원의 과정을 설명한 롬 3:21-26에 비해서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 이것은 바울이 예수의 자발적 순종의 희생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으르 보인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원에 있어 예수의 희생적 죽음을 신적인 선행과정(divine initiative in the process of salvation)의 핵심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롬 3:21-26에서는 하나님의 역할에 중점을 두어 설명하고, 같은 과정을 롬 5:6-10에서는 예수 의 역할에 초점을 두어설명한 듯이 보인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틀에 있어 구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예수의 희생을 통한 신적인 선행 작업과 그것에 반응하는 인간의 믿음이 상당히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옛 패러다임의 반응인 심판과 진노를 거두고 예수로 인한 구원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것의 증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편에서는 구원의 신적 선행 과정에 대해 거절과 불순종이 아닌 믿음이라는 새로운 반응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구원의 패러다임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는 법정적 면에서 진노와 심판이 칭의로 바뀌게 되고, 관계적인 면에서 원수된 관계가 화목의 관계로 바뀌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구원에 관한 이 두 가지 차원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적 연장선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간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에게 미치는 것으로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2) 두 영역의 (two-realms) 대조를 통해서 설명되는 구원
A) 상호작용의 틀과 두 영역의 틀 사이의 관계성
상호작용의 틀과 비교해서 두 영역의 틀은 적어도 두 가지의 중요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상호작용과 두 영역은 구원을 설명하는 데 있어 다른 접근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의 틀 안에서 구원이란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반응 혹은 보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두 영역의 틀에서 구원은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한 영역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지배하는 다른 영역으로 옮겨짐을 의미한다. 두 번째 중요한 차이점은 상호작용의 틀과 달리 두 영역의 틀은 각각의영역에 있는 인간의 상태를 설명하는데 많은 초점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상호작용의 틀에서는 '행위(doing)'나 ‘인지 작용’등과 관련된 인간과 하나님의 상호작용 혹은 그 결과에 초점을 기울인다. NovT 42 (2000), 1-23; Lee, "Against Richard B. Hayss 'Faith of Jesus Christ'," 51-80을 보라.
-------------------------
59) Stanley E. Porter, Idioms of the Greek New Testament (BLG 2; Sheffield: Sheffield A cademic Press, 1992), 296.
- 17 -
하지만 두 영역의 틀에서는 옛 영역과 새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상황이나 상태에 묘사에 많이 집중하며, 이것은 여러 의미 영역의 단어들을 통해 표현된다. 특히 의미 영역(se mantid domain), 13(존재, 되어짐, 발생), 37(통제, 다스림), 23.G(삶, 죽음) 등은 두 영역의 상태를 설명하는 주요한 것으로 자주 사용되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상호작용의 틀과 두 영역의 틀은 서로 모순되거나 상충되는것은 아니다. 우선, 이 두 가지 틀 속에서 하나님은 신자에게 구원을 경험케 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두 틀은 공통적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구원의 증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의 의미 영역을 분석해보면, 옛 영역과 상호작용의 옛 패러 다임은 서로 연관성이 있고, 새 영역은 새로운 구원의 패러다임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예를 들어, 옛 영역과 상호작용의 옛 패러다임은 의미 영역 89.I(죄, 범죄, 범죄행위), 56.E(심판, 정죄, 면죄), 39.A(반대, 적대감: cf. 롬 5:10;8:6-7) 등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설명한다. 한편, 새 영역과 상호작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의미영역 34.E(dik-단어들: dikaiosuvnh [righteousness: 의] 혹은 dikaiovw), 88.I(친절, 무자비함: cavri": 롬 3:24; 4:4, 16; 5:15-21; 8:6-7]), 그리고 22.G(호의적인 환경이나 상태: eijrhvnh [롬 2:10; 5:1; 8:6-7]) 등을 사용해서 구원에 대한 것을 설명하고 있다. 특별히 새 영역과 상호작용의 새 패러다임에서 구원은 법정적 측면과(dik-단어들) 관계적인 측면을 (예, eijrhvnh) 함께 아우르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도 공통적이다. 그러므로 상호작용과 두 영역이라는 설명적 틀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구원을 설명하는데 있어 서로 상보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상호작용의 틀은 구원에 있어 인간과 하나님의 상호작용 과정과 결과틀 잘 보여줄 수 있고, 두 영역의 틀은 상호작용의 각각의 패러다임속에 있는 인간들의 상태를 잘 묘사해주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구원의 새 영역은 상호작용의 새 패러다임의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의 상태와 연결되어 있다.
B) 두 영역의 설명적 틀의 몇 가지 특징들
(1) 수사학적 대조들
롬 5:12-8:39에 나오는 두 영역의 설명적 틀은 몇 가지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수사학적 대조나 비교를 중요한 논증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논증 방법의 핵심은 옛 영영과 새 영역의 대조인데, 롬 5:12-8:39에서는 크게 다섯 부분에 걸쳐 이런 수사학적 대조가 나타난다.
첫 번째 수사학적 대조는 롬 5:12-21에 나타는데, 여기서의 초점은 두 영역의 시작점이 되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이다. 옛 영역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시작된다. 그의 반역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인해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다 (롬 5:12). 아담 이후 죄와 사망은 옛 영역을 다스리는 지배 세력이 되었고, 아무도 이 둘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심지어 모세 율법도 이둘의 세력 안에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율법의 주된 기능은 단지 죄를 죄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영역의 모습은 옛 영역과 판이한 차이를 보인다. 새영역의 시작은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시작되며, 그 결과는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미친다(롬5:17). 더 나아가 새 영역의 주된 세력은 죄와 사망이 아닌 은혜이며, 이 은혜가 신자에게 영생을 주는 것으로 묘사된다 (롬 5:21).롬 5:12-21의 수사학적 대조는 바울의 전체적 설명에 있어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는 롬 5:12-21에서 보이는 옛 영역과 새 영역의 대조가 상호작용의 옛 패러다임과 새 패러다임에 참여하고
- 18 -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잘 묘사해 주는 역할을 한다. 두 번째로 롬 5:12-21에서 나오는 수 사학적 대조의 전체적 그림과 그 요소들은60) 바울이 롬 6-8장의 논증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자료들로 사용되어진다. 이런 면에서 롬 5:12-21은 상호작용이라는 설명적 틀을 통해 구원에 대해 보다 입체적 설명을 해줄 뿐만 아니라, 뒤에 나오는 롬 6-8장의 청사진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나오는 옛 영역과 새 영역에 대한 수사학적 대조는 롬 6:1-14절에 있다. 이 부분의 주제는 새 영역에 들어와 있는 신자와 옛 영역의 주된 세력인 죄와의 관계성이다. 바울은 이 부분에서 옛 영역의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어 새 영역으로 옮겨지는 것을 구원으로 설명하며, 이 개념 이해를 위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세례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즉, 신자는 이전에는 옛 영역 안에서 죄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을 통해 구원의 새 영역 안으로 옮겨진 것이 신자의 현재 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는 과거의 지배세력이었던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죄가 자신을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롬 6:12).
세 번째로 나오는 수사학적 대조는 롬 6:15-23에 나오는 두 영역의 대조이다. 이 부분에서 바울은 노예상태 이미지를 통해 누구든지 자신이 주인으로 섬기는 자의 종이 된다는 원리에 따라 수사학적 대조를 시작한다. 이 원리를 통해 신자는 이전 주인이었던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다시 그죄에게 순종하여 종노릇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특히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적 대조는 두 영역 안에서의 신자의 상태를 설명하는 요소로써 사용된다.
네 번째로 보여지는 수사학적 대조는 롬 7:1-6에 있다. 이 부분의 주제는 율법과 두 영역 사이의 관계성이다. 롬 6:15절에서 바울은 문답식 대화법 (diatribe)을 통해 율법 아래 있지 않은 신자의 삶에 대해 다루기 시작하는데, 먼저 롬 6:16-23에서 새 영역 안에 있는 신자의 삶에 대해 논하고, 두 영역과 율법사이의 관계성은 롬 7:1-6에서 다룬다. 이런 면에서 롬 7:1-6은 롬 6:15절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한 두 번째 답변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 다. 통 7:1-6에서 바울은 율법의 위치틀 설명하기 위해서 결혼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그 기본적인 원리는 법 (novmo")은 배우자가 살아있을 때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만일 한 배우자 사망했을 때에는 결혼에 관한 법에서 자유하게 되고, 얼마든지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원리를 적용해서 신자들은 옛 배우자인 죄에서 죽었기에 옛 결혼 관계를 지배하던 법에서 자유케 되었다고 말한다.61) 그리고 이제는 자유의 몸으로 예수와 결혼하게 되었고, 새로운 결혼 관계를 지배하는 세력 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새로운 지배세력이 바로 성령이라고 말한다(롬 7:6).
-------------------------------
60) 예를 들어, 죄와 은혜라는 두 영역의 주된 세력들. 율법, 사망, 예수의 역할, 두 영역 안에서의 상태, 칭의, 생명 등등.
61) 어떤 학자들은 롬 7:1-3에 나오는 결혼과 법에 대한 원리와 7:4절에 나오는 설명 사이의 불일치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롬 7:1-3의 원리에서는 남편이 죽는 경우이지만, 7:4에서는 아내가 죽는 경우로 나온다. 그래서 그들은 롬 7:1-3의 원리를 7:4에 적용하기를 꺼려한다 (Dodd,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s, 119-20; H. Raisanen., Paul and the Law [WUNT, 29; Tubingen: Mohr Siebeck,. 1983], 61-62; L.T. Johnson, Reading Romans: A Literary and T he이。gical Commentary [New York: Crossroad, 1997], 106; Tobin, Paul's Rhetoric in Its Contexts, 220-21; Jewett, Roma ns; 428 등등). 하지만, 롬 7:1-3의 원리와 7:4의 적용은 아주 훌륭한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연결을 이해하는 핵심은 롬 7:4절에 나오는 아내의 전남편이 누구냐 하는 문제이다. 이 전 남편의 정체에 대해서 율법이나 (F.F. Bruce, Romans [TNTC; Grand Rapids: Eerdmans, 1983] 137; I.H. Marshall, New Testament Theology [Downers Grove: InterVar sity Press, 2004], 318.), 옛 자아(Sanday and Headlam,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 ans, 172), 그리스도의 죽음 (J.D.Earnshaw, "Reconsidering Paul's Marriage Analogy in Romans 7:1-4/ NTS 40 [1994], 70 -72.) 등등의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었지만, 만족스러운 설명이 없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롬 7:4의 적용에서 암시되는 이전 남편을 쌉r라고 볼 것을 주장한다.
먼저, 롬 7:1-3의 원리에 의하면 율법은 결혼의 배우자가 아닌 결혼을 지배하는 원리로 나 온다. 그리고 바울의 이전 논증에 의하면.. 신자에게 있어 새 영역으로의 천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cf. 롬 6:3-11). 따라서 이전의 결론 상태틀 지배하던 율법에서의 해방 역시 죄에 대한 신자의 죽 욤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롬 7:1-3의 원리와 7:4의 적용은 아주 적절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Lee, Paul's gospel in Romans, 337-39를 보라.
- 19 -
다섯 번째로 나타나는 옛 영역과 새 영역에 대한 수사학적 대조는 롬 7:7-8:39에 있다. 이 부분의 주된 주제는 두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의 대조되는 상황인데, 특별히 율법과 성령의 위치와 역할과 연관되어 있다. 롬 7:7-25에 나오는 옛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육신적 한계 (savrx) 때문에 죄의 세력을 이길 힘이 없다.62) 율법은 선한 것으로 (롬 7:12) 죄를 지적해 주는 긍정적인 영역이 있지만, 죄를 억제하는 기능이 없다. 도리어 율법은 죄의 세력에 이용당해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도구가 되었고, 그 결과 육신을 가진 인간은 율법을 통한 죄의 지배하에 더욱 신음하게 되었다.
이 옛 영역에서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는 것뿐이다(롬 7:24-25). 하지만, 새 영역 안에서의 상황은 아주 다르다(롬 8:1-39). 신자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문제를 예수의 희생으로 속함을 받을 수 있게 되고(롬 8:3-4), 옛 영역의 지배세력인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새 영역으로 옮김 을 받는다. 또한, 새 영역안에서는 율법이 아닌 성령이 새로운 다스림의 원리와 도우미로 등장하고, 그 성령의 도움으로 인해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롬 8:15-16), 구원의 미래적 상황까지 확실하게 보증받게 된다 (롬 8:18-30).
결론적으로 수사학적 대조는 두 영역의 상태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며, 이 대조는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적 대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수사학적 대조를 사용함에 있어 바울은 독특한 유비들을(세례, 노예제도, 결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유비들은 옛 영역과 새 영역을 대조함에 있어 중요한 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2) 생동감 있는 문답식 대화법 (diatribe)
-------------------
62) 롬 7:7-25에 나오는 '나'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되어오고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논쟁의 화두를 요약할 수있는데, 한 가지는 '나'의 정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나'의 상태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 ‘나’의 정체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어 왔다. 어떤 학자들은 이 ‘나’를 아담을 지칭하는 것으로 주장하기도 하고 (Longenecker, Paul, Apostle of Liberty, 88-95; Kasemann, Commentary on Romans, 196-97; Dunn, Romans 1-8, 378-86; G. Theissen, Psychological Aspect of Pauline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1987], 202-208; J.A. Zi esler, "The Role of the Tenth Commandment in Romans 7," JSNT 33 [1988], 45; Neil Elliot, The Rhetoric of Romans: Argumentative Constraint and Strategy and Paul's Dialogue with Judaism [JSNTSup, 45;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0], 246-50; M.A. Seifrid, Justification by Faith: The Origin and Development of a Central Pauline Theme [NovTSup, 68; Leiden: Brill, 1992], 149; P. Stuhlmacher, Paul's Letter to the Romans [Louisville: Westminster/John K nox Press, 1994], 106-107; Michael J. Gorman, Apostle of the Crucified Lord [Grand Rapids: Eerdmans, 2004], 372; H. Lichtenberger, Das Ich Adams und das Ich der Menschheit [WUNT 164; Tubingen: Morhr Siebeck, 2004], 107-87; Ben Witherington, Paul's Letter to the Roman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2004], 184 등등), 다른 학자들은 이스라엘 (D.J. Moo, "Israel and Paul in Romans 7:1-12," NTS 32 [1986], 124-25; idem, The Epis tie to the Romans, 429-30; J. Lambrecht, The Wretched "\" and Its Liberation: Paul in Romans 7 and 8 [LTPM 14; Lou vain: Peters/ Grand Rapids: Eerdmans, 1992], 63-64; Fitzmyer, Romans, 464; Schreiner, Romans, 361; Gary W. Burne tt, Paul 8l the Salvation of the Individual [BIS, 57; Leiden: Brill, 2ᄋ이], 195-97; Philip F. Esler, Conflict and Identity in Ro mans, 234-36; Jewett, Romans, 442 등등), 혹은 회심 이전의 바울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W.D. Davies, Paul and Rabbinic Judaism [London: SPCK, 1965], 24-27; C.K Barrett, A Commentary on the Epistle to the Romans [HNTC; SanFrancisco: Harper & Row, 1957], 143-44; Bruce, Romans, 147-49 등등)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에 대해 이 ‘나’는 바울의 경험이 반영된 수사학적 예이고, 율법을 알고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험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보다 자세한 논증은 L ee, Pauls gospel in Romans, 346-53을 보라.
그리고 두 번째의 경우인 민K는 회심 이전과 이후인 지에 대해 논란이 되어지고 있다. 이 에 대해 필자는 롬 7:7-25는 회심 이전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논증 방식의 일관성 때문이다. 바울은 롬 6:1-7:6까지 일관성 있게 문답식 대화법을 통해서 자신의 논지를 이끌어가고 있는 데, 이 문답식 대화법의 시작은 바로 앞의 문단의 마지막 문장의 내용을 토대로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롬 7:7은 바로 앞의 부분 에 (롬 7:5-6)에 나오는 옛 영역과 새 영역의 대조의 내용과 연결되는데, 특별히 단어의 연결점이 옛 영역을 말하는 롬 7:5절 과 잇닿아 있다. 그러므로 롬 7:7-25의 내용은 옛 영역에 있는 사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롬 8:1은 롬 7:6의 내용과 연결되는 점에서 롬 7:7-25의 반전으로 새 영역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Lee, Pau Is gospel in Romans,, 364-68).
- 20 -
바울이 보여주는 두 영역이라는 설명적 틀의 또 다른 특징은 생동감있는 문답식 대화법의 사용이다 비록 이 방식은 상호작용의 틀에서도 유용한 논증 전개 방법으로 사용되지만, 두 영역을 설명하는 롬 6-8장에는 거의 모든 논증은 바로 이 문답식 대화법을 통해서 전개되는 모습을 보인다. 더욱이 롬 6-7장에서 보여지는 문답식 대화법의 일관성 있는 패턴은 바울이 펼쳐보이는 논지의 흐롬을 잘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각각의 단락이 말하고 있는 주제를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
바울이 보여주는 문답식 대화법은 인위적으로 만든 대화 상대자의 어리석은 질문으로 시작되는데,63) 이 질문은 바로 앞 단락의 마지막 문장의 내용을 끌어와서 만든 것이다. 바울은 대화 상대자의 어리석은 질문에 mh; gevnoito로 반박하고, 곧이어 독자와 공유하는 일반적 원리를 질문 형식(oujk oi[date...:... 알지 못하느뇨? [롬 6:3, 16; cf. 7:1])으로 확인시키는 형태를 보인다. 이 공유된 원리는 각단락의 주제에 대한 바울 논증의 청사진 같은 역 할을 하는데, 바울은 이 공유된 원리의 내용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롬 5:20의 "...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개역성경)의 내용은 롬 6:1에서 바울의 대화상대자의 질문의 주제가 되고("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개역성경】), 이것은 롬 6:1-14의 주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롬 6:14의 "...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개역성경)의 내용은 롬 6:15에서 어리석은 질문의 주제로 등장한다 “...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개역성경]). 여기서 말해지는 신자가 법아래 있는 않다는것과 죄를 짓는 것의 두 가지 내용을 각각 롬 7:1-6과64) 롬 6:16-23에서 다루 어진다. 마지막으로 롬7:5-6절에서 언급된 옛 영역 (롬 7:5)과 새 영역 (롬 7:6)의 대조는 롬 7:7의 어리석은 질문으로 시작되는 롬 7:7-25 (옛 영역)과 롬 8:1-39 (새 영역)에서 각각 다루어진다. 그러므로 두 영역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왕성한 문답식 대화법은 독자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주어 집중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의 논지를 이끌어가는 주요한 도구로 나타난다.
--------------
63) 때로 문답식 대화법에 나오는 바울의 대화 상대자의 정체는 찾는 일은 크게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대화상대자는 바울이 가상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때로 이 대화 상대자의 정체를 규명하는 작업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별로 신빙성이 없는 것일 수 있다. 오히려 바울의 문답식 대화법을 접근하는 올바른 방법은 대화 상대자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시도가 아닌, 바울 자신이 인위적인 대화 상대자의 목소리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논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바울이 사용한 문답식 대화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에 대해서는 A.J. Malherbe, “ME GENOITO in the Diatribe and Paul” in Paul and the Popular Philosophers (Minneapolis: Fortress, 1989), 25-33; Stowers, The Diatribe and Paul's Letter to the Romans, 19-184; Stanley E. Porter, 'The Argument of Romans 5: Can a Rhetorical Question Make a Difference?/' JBL 110 (1991), 655-77; idem, "Diatrib e," in Craig A. Evans and Stanley E. Porter (eds.), Dictionary of New Testament Background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00), 296-98; Changwon Song, Reading Romans as a Diatribe (StBL 59; New York: Peter Lang, 2004), 94를 보라.
64) 많은 주석가들은 롬 7:1-6을 롬 6:15-23과 구분되는 독립된 단락으로 여긴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롬 7:1-6은 롬 6:15-23과 연결된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는 롬 7:1에 나오는 h[ ajgnoei'te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주제를 제시할 때 사용되지 않고, 자신의 논지를 전개시키기 위해서 독자와 공유하는 원리를 제시할 때 바울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롬 7:1에 나오는 이 표현은 롬 7:1-6이 롬 6:15-23과 독립된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닌, 서로 연관성 있는 주제를 제시하고 있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롬 6:15-23과 롬 7:1-6사이의 단어적 연결 성이다. 이 두 부분은 의미 영역 23.G (삶, 죽음), 13 (존재, 되어짐, 발생), 37 (통제, 다스림), 92 (강화의 대상 [discourse ref erential]: '너희') 등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롬 7:1-6은 롬 6:15절에서 제시된 문제에 대한 두 번째 답변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Don B. Garlington,
Faith, Obedience and Perseverance [WUNT 79; Tubingen: Mohr Siebeck, 1994], 116; Pᄋ rter, Idioms of the Greek New Testament, 299; idem, "A Newer Perspective on Paul: Romans 1-8 through the Eyes of Uterary Analysis/ in M. Daniel Carroll R., David J.A. Clines, and Philip R. Davies [eds.] The Bible in Human Society: Essa ys in Honour of John Rogerson [JSOTSup, 200;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384-85; Witheringt on, Paul's Letter to the Romans, 167-78).
- 21 -
(3) 신적 주체들의 (divine beings) 역할
두 영역들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성령의 역할에 대한 강조들이다. 상호 작용의 틀에서처럼 하나님은 신자를 옛 영역에서 새 영역으로 옮기는 주된 주체로 등장한다 (예, 롬 8:3). 그리고 하나님은 신자가 순종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되어 나온다 (롬 6:13, 22). 한편, 예수는 롬 5:12-21에서 순종으로 새 영역을 연 사람으로 묘사된다. 롬 6:1-14에 서는 신자가 함께 연합해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할 대상으로 설명되어지는데, 오직 이 예 수와의 연합을 통해 옛 영역에서 새 영역으로 옮겨짐이 가능하다고 바울은 말한다 (cf. 롬 7:4, 25; 8:1, 3). 성령은 롬 7:6절에서 새 영역을 주관하는 세력으로 짧게 묘사되고, 롬 8:1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설명되어 나온다. 여기서 성령은 새 영역에 있는 신자들의 새로운 상태와 신분의 보증이 되고, 또한 ‘이미’ ‘아직’의 긴장 속에 고통당하는 신자들의 삶을 돕는 도우미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도 설명되고 있다. 구원의 새 영역과 관련된 이런 새 존재들 중 바울은 성령과 예수의 역할에 상대적으로 집중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별히 새 영역으로 옮겨지는 구원의 과정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영역에 있어 예수와 성령은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중심에 있는 예수에 초점 맞추었던 상호작용의 설명적 틀과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두 영역의 설명적 틀은 상호작용의 틀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중요한 주제들(예, 율법, 죄, 은혜, 옛 패러다임과 새 패러다임 속의 인간의 모습)에 대한 입체적 설명을 부가해주고 있다. 바울은 여러 차례 수사학적 대조를 통해 옛 영역과 새 영역을 대조하고, 왕성한 문답식 대화법을 통해서 구원을 설명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두 영역의 설명적 틀에 의하면 구원이란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옛 영역에서 은혜와 생명이 지배하는 새 영역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옮김의 과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나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신자는 새 영역 안에서 새로운 신분과 삶의 원리를 얻게 될 뿐만 아니라 구원의 새로운 삶을 살아갈수 있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2. 롬 1:16-8:39에 나오는 바울 복음의 중심을 향하여
롬 1:16-8:39에 나오는 복음의 중심을 찾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울 복음의 전체적 개관과 주제를 담고 있는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앞서 보았듯이, 바울은 자신의 복음을 상호작용과 두 영역이라는 설명적 틓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설명적 틀에 의하면, 롬 1:16-8:39의 주제적 흐흠은 모든 인간들의 죄악 됨에서 시작된다. 이 죄악 됨은 인간의 행위적 차원과 인지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으며, 인간들의 이런 죄악 됨에 대한 하나 님의 진노의 반응 역시 행위적 차원과 인지적 차원을 아우르고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롬 1:18-3:20). 이후 바울은 옛 상호작용 패러다임과 대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롬 3:21-5:11 에서 설명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행적 주도권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인간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 결과인 법정적 차원의 칭의와 관계적 차원의 화목에 대해 설명한다. 롬5:12-8:39에서는 두 영역이라는 설명적 틀을 통해 죄와 사망의 옛 영역에서 은혜와 생명의 새 영역으로 옮겨지는 구원을 설명한다. 이러한 전체적 주제의 흐름 속에는 바울 복음의 중심부분을 찾을 만한 단서를 제공하는 두 개의 중요한 논리적 관계가 있다.
그 한 가지는 인간의 상태와 관련된 ‘문제(problem)’와 ‘체결(SOLUTION)’ (예를 들어, 정죄와 소외 vs. 구원)이라는 논리적 연결성이다. 이 논리적 관계는 상호작용의 틀(롬 1:18-3: 20)이나 두 영역의 틀(롬 5:12-8:39)에서 공통적으로 보여는 것으로 일반적으르 문제의 상황보다는 해결의 상황이
- 22 -
논리적으로 더 중요하며 강조를 받는다. 그렇기에 상호작용의 틀에서는 인간의 죄로 인한 진노의 상태를 말하는 '문제' 부분(롬 1:18-3:20)보다 구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롬 3:21-26과 롬 5:1-11이 훨씬 논리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된다. 실제적으로 바울은 롬 3:21-26과 롬 5:1-11을 설명하면서 여러 강조의 요소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불 수 있다.65) 롬 3:21-26은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할을 많이 부각시켜 설명했고, 롬 5:1-11 에서는 예수의 역할에 대해서 많이 강조했다. 이 둘 중.롬 5:1-11이 더 중요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롬 3:21-26은 칭의에 대한 것만을 이야기한 반면, 롬 5:1-11은 칭의와 함께 화목의 내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롬 3:21-26은 구원의 현재적 차원만을 다루는 반면, 롬 5:1-11은 현재적 차원과 함께 미래적 구원의 모습(롬 5:9-10)을 함께 보여주어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인간의 모든 문제 상황을 완전히 해결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롬 5:1-11은 성령의 역할 또한 언급함으로 롬 3:21-26보다 더 넒은 구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롬 1:18-3:20에 나온 인간의 문제는 롬 3:21-26에서 시작된 구원의 모습이 롬 5:1-11에 이르러 법정적, 관계적인 즉면을 포함한 현재적, 미래적 구원의 포괄적인 그림을 통해 온전한 해결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 복음에 대한 전체적인 주제 구조를 통해서 나타나는 두 번째 증요한 논리적 관계는 중심부(HEAD)-설명부(clarification) 혹은 일반적인 것 (GENERIC)-특별한 것(specific)의 논리 구조이다.
이것은 언어학적으로 배열법(taxis)와 관련있는 것으로 그 내용의 중요도에 있어 상하의 서열구조를 지닌 논리 구조이다. 특히 핵심부(NECLEAR)와 주변부 (satellite)의 관계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논리 관계는 특별히 두 영역의 설명적 틀에서 잘 나타난다. 두 영역에 대한 전체적인 묘사 또는 설명은 롬 5:12-21에서 보여지는데, 이 부분은 아담과 예수의 대조를 통해 두 영역을 소개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바울의 문답식 대화법의 특징에 의하면, 롬 6장부터 나오는 주제들은 모두 다 롬 5:12-21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통 5:12-21 의 내용을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심지어 롬 8장도 롬5:12-21의 설명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롬 8장과 대조되는 내용을 지닌 롬 7:7-25이 롬 5:12-21부터 시작된 문답식 대화법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옛 영역을 다루는 롬 7:7-25의 주제 역시 롬 5:12-21에서 파생된 것이기에, 롬 7:7-25의 반전인 롬 8장도 논리적으로 롬 5:12-21에서 파생된 것으로 블 수 있다. 결국 두 영역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주는 롬 5:12-21은 롬 6-8장의 청사진 같은 역할을 하는 중심부(HEAD)에 해당되고, 나머지 롬 6-8장은 롬 5:12-21의 내용을 부연설명해주는 설명부(clarification)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롬 5:12-21은 두 영역의 설명적 틀속에서 논리적 서열구의 윗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중심 부분으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위의 관찰들을 통해서 보면 롬 1:16-8:39에 나오는 바울의 복음은 세 개의 중요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롬 3:21-26, 롬 5장(롬 5:1-11, 12-21), 롬8:1-39. 이 세 부분은 인간의 죄와 그 결과에 대한 '해결 (SOLUTION)'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세 부분에서 신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은 하나님의 선행(先行)적 구원 과정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르, 그리고 그 반응의 결과인 구원을 받는 주체로 등장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요소는 구원의 과정을 이루어 가는 신적인 주체들이다. 바울은 이 세 신적인 주체들과 관련해서 롬 3:21-26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구원을 설명하고, 롬 5: 1-21에서는 예수를 중심으로, 롬 8장은 성령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세 부분 중 중 심되는 부분은 롬 5장이다. 왜냐하면, 롬 5장은 상호작용의 설명적 틀에서 보여지는 구원의 절정에 해당되는 부분 (통 5:1-11)과 두 영역의 설명적 틀로 설명되는 구원의 전체적 그림을 보여주는 부분 (롬 5:12-21)이 예수의 역할과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묶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
-------------
65) 통 3:21-26과 롬 5:1-11 에 나오는 강조의 표현 요소들은 Lee, Paul's gosp el in Romans, 227-28, 87-88을 보라.
- 23 -
므로 롬 1:16-8:39에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된 바울의 복음은 하나의 주된 정점 (peak: 롬 5장)과 두 개의 보조 정점 (sub-peaks: 롬 3:21-26과 롬 8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구원에 있어 예수의 역할과 그 결과가 바울의 복음의 중심 메시지라고 결른내릴 수 있다. 이것은 바울은 롬 1:1-4에서 자신의 복음을 소개하면서 예수를 복음의 핵심으로 소개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롬 1:16-8:39에 나오는 전체적인 주제 구조는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III. 나오면서
지난 이천 여 년 동안 롬 1:18-8:39에 나오는 바울의 복음은 그의 신학의 핵심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 다양한 접근 방법으로 많은 연구들이 행해졌다. 이런 면에서 필자가 행한 언어학적 강화분석을 통한 위의 연구와 결론은 바울의 로마서 연구의 마침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위의 연구는 로마서의 나머지 부분을 다루지 않았으므로 온전한 로마서 연구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새로운 접정점들(peak points) —롬 3:21-26(보조 정점: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믿음), 롬 5장(주정점: 예수의 역할과 그 결과), 롬 8장(보조 정점:성령의 역할)
전체적 구분 롬 1:16-17 롬 1:18-3:20 롬 3:21-4:25 롬 5장 롬 6-8 장
설명적 틀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틀(롬 1:16-5:11)
두 영역의 틀(롬 5:12-8:39)
새로운 상호작용의 패러다임 상호작용의 옛 패러다임 새로운 상호작용의 패러다임
두 영역의 대조
논리적 관계들 문제(problem)해결 (SOLUTION)롬 3:21-26 롬 5:1-11(시작) (정점 [dim ax]) 핵심(HEAD)(롬 5:12-21) 설명(clarification)(롬 6-8장)
구원의 두 측면 법정적 측면 심판 칭의 옛 영역: 정죄 새 영역: 칭의관계적 측면
적대적 관계 화목과 평화의 관계 옛 영역: 하나님을 대적함 (롬 8:7-8) 새 영역: 예수의 신부 (cf. 롬 7:4),양자됨 (롬 8:14-17)
두 차원 시간적 현재와 미래의 심판 구원의 두 측면을 포함한 걸친 현재와 미래의 구원 구원의 두 측면을 포함한 걸친 현재와 미래의 구원 공간적 온 인류 & 피조물 모든 신자 (그리고 피조물) 모든 신자 (그리고 피조물)
- 24 -
근 방법은 때때로 바울이 의도하고 전하려고 했던 복음에 대한 신선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별히 본문 그 자체에 집중하는 언어학적 강화분석을 통한 로마서 연구는 바울 복음의 주제의 흐롬과 중심부분을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며, 계속되는 바울 신학연구에 자극제가 되기틀 희망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