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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군 백학봉(白鶴峯. 651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10월 23일 새벽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여서 별들의 모습도 하현(下弦)달도 보이지 않는구나! 하루 하루, 한 달 한 달이 어찌나 빠른지... 절기는 벌써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가을엔 잔치나 기타 행사들이 많아서 인지 오늘은 참석 인원이 전 달에 비해 약간은 부진하다.(40명) ‘논공휴게소’에서 회원님들이 조식(朝食)을 하실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언덕빼기 풀섶에는 찬 이슬이 대롱 대롱 맺혀있고, 그 위로 조림됀 청솔(靑松)들은 독야청청(獨也靑靑) 변함없는 절개(節槪)를 뽐냄니다 그려!
모두들 아침식사를 마치고 20여 분 이상을 기다려서 “바보김서방(김종갑)님”을 상봉하여 서로들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그는 수 개월 전에 달성군 유가면으로 이사와서 근~ 1년 여 만에 산행 동참을 하는 셈이다. 듣자니 ‘비슬산(毖瑟山)의 정기를 받아서 옥동자를 생산 하겠단다.’ 유머도 좋을시고! 내일 모래면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춘추에 옥동자를 얻겠다니... 또 그는 취미도 다양하여서 여행이나 사진작가로 열심히 활동 중이시다.
차는 신나게 달려서 지리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는 줄 곧 내달아 백양사 주차장에 당도하니 시계는 10시 반을 조금 지나고 있다. 조금은 이른 가을 단풍에 행락객들은 넘치고 넘쳐나서 차와 사람들로 붐비니 그야말로 인산차해(人山車海)로다!
남산 플래카드를 펼치고 단체 기념촬영을 마친 후 모두들 자유롭게 출발하시니 넓디 넓은 도로가 되려 비좁슴니다. 매표소를 지나 거대한 일주문에는 “백암산고불총림백양사(白巖山古佛叢林白羊寺)”라는 현판이 고금(古今)에 찬란하도다!
몇 걸음을 나아가니 진입로 좌 우로는 아람드리 ‘갈참나무’들이 짙은 녹색의 숲으로 덮여있어 산사(山寺)의 정취로는 보기드문 풍광이다. 갈참나무는 비교적 흔한 나무이기는 하지만 이 곳처럼 크고 우람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은 처음보는 일이며, 대부분 500~700년 동안 백양사 들머리를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남산님들에게 사진촬영도 해 드리면서 쉬엄 쉬엄 진행하니 갈참나무 사이 사이로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비자나무’가 도로가에 상록수(常綠樹)로 청청(靑靑)합니다.
안내장에 이 곳의 비자나무는 고려 고종 때 각진국사가 비자나무 열매로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구충재로 활용하기 위해 심었던 것이 현재 80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원래 따뜻한 남쪽 지방에 자생하는 식물이지만 이곳에 비자나무들은 자생(自生) 북방한계선에 분포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 밖에도 노루귀, 백양꽃, 진노랑상사화, 변산바람꽃, 백양더부살이, 복수초, 엘레지 등 여러 가지 꽃식물들을 사진으로 전시 해 놓아서 백양산 일대의 식물 분포도를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됨니다.
비자림과 갈참나무 향기를 마시며 여유롭게 걷노라니 우측 언덕빼기 산 기슭에는 부도밭이 모셔져 있는데 하산길에 답사하기로 하며 얼마를 더 나아가니, 아름답고 장엄한 백학봉(白鶴峯)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슴니다.
그 아래로 쌍계곡 합수(合水)점에는 그림같은 “쌍계루(雙溪樓)”가 영지(影池)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마치 한폭의 동양화(東洋畵)를 보는 것 같슴니다. 아름다운 풍광들을 디카에 담으면서 쌍계루 마당에 도착하니 “2016 백암산 백양사 애기단풍 축제” (10/21~11/13) 행사가 진행중에 있다.
극락교를 지나 경내(境內) 답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모두들 산행길로 접어들어 돌담을 따라오르니 비자나무숲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어 온 계곡이 녹색향기로 넘쳐나며, 자세히 보니 천연기념물로 지정됀 나무에는 번호표가 달려있다.
아마도 ‘국립산림연구원’에서 특별 관리되고 있는 것 같으며, 잎과 열매는 약용으로 또 목재는 가구용이나 바둑판으로 활용되고 있어 참으로 유용한 나무로다! 연하여 우측 숲속에는 백학봉이 잘 보이는 곳에 “국기단(國祈壇)”이 모셔져 있다.
국기단에서 바라보는 백학봉은 참으로 신령(神靈)스럽고도 장엄하여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드니 마침 국기단에서는 기원제(祈願祭)를 모시고 있어 볼거리에 행운이 겹치는 날입니다 그려!
안내문에 국기단은 조선시대 나라에 재앙이 발생했을 때 조정에서 천신지기(天神地祇)에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곳이다. 또 장성군에서 1983년부터 보존위원회를 구성하여 매년 가을에 국기제(國祈祭)를 봉행하고 있으며, 1986년에 이 곳에 국기단을 새로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10여 분을 더 올라 약사암 오르는 입구에는 전에 없던 조그마한 일주문이 세워져 있어 앙증스럽고 산뜻하다. 몇 몇 남산님들에게 사진촬영을 해 드리고는 여기서 A,B팀으로 나뉘어서 일부는 하산기점으로 역산행하기 위해서 떠나고 대부분의 회원님들은 약사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약사암(藥師庵) 오르는 길은 경사도 심하고 돌너덜이 많아서 여간 힘들지 않다. 산행길 중간 중간 작은 돌탑들이 좌 우에 많이도 쌓아져 있어 등산로 정비(整備)와 영험(靈驗)한 기도처임을 은연(隱然)중에 보여주는 것 같으며, 또 기이한 바위와 나무들이 있어 보는 눈이 즐겁슴니다.
오르다 쉬고 쉬다 오르기를 반복하여 30여 분을 올라 약사암에 당도하니 일시에 천하가 열리고 울긋불긋 물들어 가는 산천의 모습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러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약사암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의 양식이다.
법당은 깍아지른 백학봉의 절벽에 자리하고 있어 언 뜻 제비집(燕巢穴)을 연상케 하고, 청룡(靑龍)은 허(虛)하나 백호(白虎)는 적당한 거리에서 웅장하고 아름답게 휘감아서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참으로 풍광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도다!
일설에 ‘환양 팔원(喚羊 八元)선사’가 이 곳 약사암에 주석(主席)하면서 늘 불경을 외웠는데, 하루는 흰양 한 마리가 백학봉에서 내려와 법화경 외우는 소리를 다 듣고 돌아갔다. 그 뒤로 창건당시 ‘정토사’를 ‘백양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아름다운 전설(傳說)을 상기하면서... 장엄하게 펼쳐지는 대협곡(大峽谷)을 바라 보노라니 만산(滿山)의 홍엽(紅葉)이 흐드러지게 웃슴니다. 그 협곡 중심에 저만큼 백양사(白羊寺)의 전각들이 옹기종기 정겹게 다가오고, 절(寺) 터는 ‘연화반개형(蓮花半開形:연꽃이 반쯤 피어있는 형국)’의 연심(蓮心) 자리에 진좌(鎭坐)하고 있어 보기드문 명당길지(明堂吉地)로다!
이 높고 험한 곳에 어찌 전각(殿閣)을 지엇을꼬?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슴니다 그려! 옛 선현들의 지혜와 정성에 감탄하면서~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영천굴(靈泉窟)로 향합니다.
영천굴로 오르는 길은 경사도 심하고 험로(險路)지만, 관계당국에서 철계단 시설을 잘 해 놓아 안전하게 오를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조심 조심 10여 분을 올라 영천굴에 당도하니 전(2012)에 없던 전각(殿閣)이 복원되어 있다.
2층으로 지어진 전각에는 ‘약사암, 영천굴’이라는 한글 현판을 달아 놓았으며, 2층은 약사불(藥師佛)을 모셔놓은 법당이요, 아랫층은 영천수(靈泉水)가 깊숙한 천연동굴에서 솟아나고 있슴니다.
전에는 깍아지런 절벽에 천연동굴이 완연히 드러나 있어 주위가 밝고 또 석간수(石間水:영천수)에도 햇볕이 들어 음양(陰陽)의 조화가 잘 이루어 졌는데, 지금은 건물로 말미암아 양(陽:햇볕)의 기운이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옛말에 “업어서 난장(亂杖)을 맞힌다.”드니... 잘 하겠다고 지은 건물이 되려 자연을 훼손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선 채로 예를 드리고 계단을 나려오니 처마 윗쪽 절벽에는 벌어진 암벽이 서로 입을 맞추고 있어 보는 눈이 즐겁슴니다.
안내문에 “영천굴 영천수”는 조선 후기 호남지역에 대 유행병이 돌아서 전라감사 홍락인(洪樂仁)이라는 사람이 영조(1724~1776)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니, “영지(靈地)를 찾아 크게 기도를 올리도록 하라.”고 명하자 백양사 바위에 “국제기(國際基)”라 새기고 이 곳 영천수를 제단에 올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약수를 마시게 하니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에 보은의 의미로 영천암(靈泉庵)을 지었는데, 화재로 소실됀 것을 2013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한다.
주위의 풍광들을 디카에 담으면서 다시 백학봉 정상으로 오르니 경사는 더욱 심하고 가팔라서 모두들 헉~헉~ 힘들어 하시는데, 구비 구비마다 철계단이 잘 놓여있고 바닥에는 폐타이어를 잘게 썰어 깔아 놓아서 눈비가 올 때에도 안전한 등산이 되도록 배려 하였다.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40여 분을 힘겹게 올라 백학봉 정상에 오르니, 험준한 암벽과는 달리 그저 평범합니다. 여러 회원님들에게 도착하는데로 거대한 표석(標石)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잠시 주위를 조망(眺望)합니다.
백암산(白巖山) 백학봉(白鶴峯. 651m)은 백두대간의 영취봉 부근에서 서북으로 뻗어나온 호남정맥을 따라 장안산, 팔공산, 진안의 마이산을 거쳐 백암산에 이르러 바로 이웃하여 백학봉이 있으며, 호남정맥의 중간기점에 해당한다.
아울러 백학봉은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것 같이 아름답고 장엄하며, 암벽에는 가끔씩 白羊이 나타나기도 하고 특히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인데... 아직은 조금 일러서 ‘반(半) 단풍(丹楓)이라!’ 쬐끔은 아쉬운 감이듭니다.
시계는 벌써 12시 30분을 지나고 있어 시장끼도 더 하여 정상부근에 적당한 곳에서 모두들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가져온 점심을 드심니다. 식후 얼마를 쉬다가 하산길로 접어드니 배도 든든하여 걷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10여 분 이상을 걸어서 헬기장 부근의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으로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선생의 선조묘(先祖墓)가 있는 곳으로 하산합니다. 잠시 후 인촌의 선조묘가 있는 곳에 이르니 명혈의 기운 탓인지 천지가 고요하고 기운이 성성(盛盛) 합니다.
아래 위로 두 기가 모셔져 있는데, 인촌 김성수 선생의 “12대 선조 묘(원파김공묘갈명圓坡金公墓碣銘)”가 높은 곳에 있고, 그 아래 인촌의 본처 “장흥고씨광석여사지묘(長興高氏光錫女士之墓)”가 자리한다.
백학봉에서 지근한 거리에, 이 높은 곳에 이런 명혈(名穴)이 맺혀 있다는게 예사롭지 않다. 백암산은 무안 승달산, 순창 회문산, 광주 태봉산, 곡성 통명산, 옥구 비안도, 주자봉 등 호남의 8대 명산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명산(名山)에 명혈(名穴)이라.”드니... 과연 허언(虛言)이 아닙니다 그려!
원파공(圓坡公)의 묘는 축좌(丑坐)로 보이며 유혈(乳穴)이다. 주산에서 뻗어내린 지맥이 단단하게 맺혀 전순(前脣) 아래는 암반으로 뭉쳐 있으며, 청룡(靑龍)은 허(虛)하나 백호(白虎)는 백암산 정상 부근에서 연(連)하여 내린 줄기가 적당한 거리에서 사자봉, 도장봉으로 이어져서 웅장하고도 수려하고,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보기드문 명당국세(明堂局勢)라 하겠다.
언덕아래 고광석여사묘는 비교적 넓은 터에 자리하며 간좌(艮坐)로 보여진다. 그 옛날 암자터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며, 그 옆으로 숲속에는 지금도 기와 조각들이 많이도 흩어져 있다.
도선국사의 “유산록(遊山綠)”에 “군신봉조형(君臣奉朝形)은 굽이 굽이 바위로 뭉쳐서 삼봉안(三峰案)이며, 전조(前朝)가 나열하고 혈(穴) 주변에는 대석(大石)이 폈다. 읍(邑)에서는 제일가는 혈이며, 삼태상(三台相)이 나고 문무를 겸비하고 문장과 재사(才士) 및 명무(名武)가 대대로 끊이지 않는다.”고 전해온다.
지기(地氣)와 음덕(陰德)의 산물인가? 원파 김공의 후손들은 울산 김씨의 후손으로 해방후 제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1891~1955)의 일가이다. 호남의 명유(名儒)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가 그의 선조이며, 그는 공자묘(孔子廟)에 모셔져 있는 동방 18현의 한분이다.
또 비문(碑文)에 “하서김선생이천덕왕도수지(河西金先生以天德王道受知)(하서가 왕도를 이어받을만한 자리라고 일컬었음)”라 적고 있다. 아울러 부통령을 지낸 인촌(仁村)은 아들 아홉명을 두었는데 상흠은 국회의원을 지냈고, 장자 상만은 동아일보 사장이었다. 또 인촌의 동생 연수도 일곱 아들을 두었는데 상협이 국무총리를 지냈고, 셋째인 상홍은 삼양사 회장을 역임 하였다.
이 밖에도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전 국회의원을 지낸 김상순, 김동호, 김병수, 김종인, 김녹영 등 정치, 경제, 문화계에 이르기 까지 근현대사의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도 배출되었다. 장서(葬書)에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했는데... 어찌 허언(虛言)이라 하겠는가!
연하여 인촌의 가문에서는 부안의 생가를 비롯하여 고창, 장성 일대에 이름난 명당 여러 곳에 선조님들을 흩어 모셔 놓았다. 또 풍수사(風水師)에게도 그 후대에 까지 은혜를 보답한다고 전해 옵니다.
두기의 묘비(墓碑)를 건성 건성 확인하고 돌아 내려오니 남산님들은 다 내려가시고 나만 홀로 남았구려! 서둘러 종종 걸음으로 30여 분을 내려오니 출발기점 부근에서 박태옥 부회장님과 그 일행들을 상봉합니다.
B코스로 역산행을 하고 나려오는 길이라 하시면서~ 산행 출발 후 몇 시간의 공백에 반가움을 전하며 부지런히 걸어서 백양사 입구에 도착하니 우측으로 “만암대종사고불총림도량(曼菴大宗師古佛叢林道場)”이라 새겨진 석탑(石塔)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 “이뭣고(是甚麽)”라 씌여 있다.
천리를 멀다 않고 달려 온 이 한 물건이 무엇인고(이뭣고)? ‘비인부전(非人不傳)이요, 불립문자(不立文字)’라 드니... 사람이 아니면 전할 수 없고, 언어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어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微笑)로 전해 주셨슴니다!
안내문에 이뭣고(是甚麽)는 1700가지의 화두(話頭)중에 하나이며,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에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참구하여 참나(眞我)를 깨달아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것이라 적혀있다.
송만암선사(宋曼菴禪師. 1875~1957)는 고창읍(高敞邑)에서 출생하여 11세에 백양사 취운 도진(翠雲 道珍)선사에게 수계(受戒)한 후 정진(精進)을 거듭 거듭하여 말년에 조계종 종정(曹溪宗 宗正)으로 있다가 82세에 입적(入寂) 하였으며, 이 탑(塔)은 만암(曼菴)선사의 뜻을 기리는 것이로다!
이어서 천왕문(天王門)은 1900년대 초에 만암 대종사 시절에 지은 건물로서 정면5칸 측면2칸의 익공식 맞배지붕 양식으로 전남 유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돼 있다. 현판(懸板)에 “고불총림백양사(古佛叢林白羊寺)”라는 예서체(隸書體) 글씨는 학정 이돈흥(鶴亭 李敦興)의 글씨다.
전각(殿閣)의 크기에 비해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어찌나 크고 우람한지 잡귀(雜鬼)는 얼씬도 못하 것심더 그려! 그 위엄에 압도되어 배례(拜禮)드리고 경내로 들어서니 축제행사는 무르익어서 왁자지껄 장터를 방불케 합니다.
2층의 범종루(梵鐘樓)를 촬영하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이원우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신다. 백암산을 배경으로 간단히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중정(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서니, 장엄하고 서광(瑞光)이 넘치는 백학봉(白鶴峯)을 등지고 대웅전(大雄殿)이 남향으로 진좌(鎭坐)하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5칸 측면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 다포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고, 송만암 선사가 중창할 때 1917년에 지어졌다고 적혀 있으며, 뒤로는 8층사리석탑과 방장(方丈)스님의 거처가 있다.
이 절은 백제 무왕 33년(632)에 여환선사(如幻禪師)가 창건하고 백암사(白巖寺)라 하였다. 이어 고려 덕종(德宗) 3년(1034)에 중연선사(中延禪師)가 중창하면서 정토사(淨土寺)라 개칭하고, 이 후 여러차례 중수(重修)를 거듭 거듭 해 오다 조선 말엽에 백양사(白羊寺:환양 팔원선사 때)로 불리워 졌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전각의 수는 많아서 극락보전, 명부전, 칠성각, 진영각, 요사와 선방(禪房), 종각을 비롯하여 박물관, 운문암, 약사암, 영천암, 홍련암, 청류암, 금강대 등 다 열거하기 어렵슴니다.
그 중에 극락보전(極樂寶殿:수리중)이 가장 오래된 건물로 선조 7년(1574)에 조성되었다고 하나, 전문가들에 의하면 조선 영조 후기에서 정조대에 걸쳐 지어진 건물이라 하며, 정면3칸 측면2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배흘림 기둥의 양식으로 전남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돼 있다.
법당에 들어 간단한 예를 드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주산(백학봉)은 웅장하고도 서기(瑞氣)가 충만하고 백호와 청룡이 잘 감싸주고 있으며, 안산(案山)도 적당한 거리에서 우뚝 솟아 천하제일의 길지(吉地)입니다. 또 두 계류(溪流)는 쌍계루에서 합수(合水)하여 도량(道場)을 휘~ 돌아 흐르니... 다시 없는 명당이로다!
도량을 한바퀴 돌아 나오니 김서방(김종갑)님과 황까페지기(황재덕)님은 오늘도 사진촬영에 분주하시며, 연이어 남산님들이 많이도 모여 있어 단체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이어서 ‘기와불사’도 한 장 올림니다.
그림같은 쌍계루를 지나 긴 숲터널을 호오이~ 호오이~ 걸어서 부도밭 입구에 이르니, 서옹(西翁)스님(조계종 제5대종정 엮임. 2003년 12월 13일 열반)의 열반송(涅槃頌)이 사진으로 전시돼 있어 잠시 옮겨 봅니다.
운문일영무인지(雲門日永無人之:운문의 해는 긴데 찾아오는 이 아무도 없고)
유유잔춘반낙화(猶有殘春半洛花:아직 남은 봄에 꽃은 반쯤 떨어졌네)
일비백학천년적(一飛白鶴千年寂:백학이 한번 날으니 천년동안 고요하고)
세세송풍송자하(細細松風送紫霞:솔솔부는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내는 구나)
선채로 합장배례(合掌拜禮) 드리고 여러계단을 오르니, 천년의 침묵속에 고승대덕(高僧大德)님들의 부도(浮屠)가 질서정연하게 모셔져 있다. 뒤쪽으로는 부도가 모셔져 있고, 앞쪽 낮은 곳에는 비문이 다양한 모습으로 진좌(鎭坐)하고 있다.
그 가운데 소요대사(逍遙大師) 태능(太能)의 부도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돼 있으며, 또 다른 부도의 모형도 각양각색이다. 왼쪽 축대(築臺)아래 낮은 곳에는 청신남(淸信男) 청신녀(淸信女)들의 부도가 함께 모셔져 있어 승속(僧俗)이 다정하게 어우러지니 더욱 정감이 갑니다.
生은 有의 세계(世界)요
死는 無의 세계(世界)인가
살아 백년(百年)이 어려운데
죽어 만년(萬年)을 가 오리다
오고 가는 삶이여
이 뭣 고 !
부도밭을 한 바퀴 휘~ 돌아 해탈문(解脫門)을 나려오니 극락(極樂)과 사바세계(裟婆世界)가 하나로다! 허허(虛虛)로운 마음으로 포도(鋪道)위를 걸으면서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대지를 보노라면, 죽음(잎 떨어짐)은 새로 태어나기 위함이라!
단기 4349년(2016년) 10월 23일
전남 장성군 백암산 백학봉(651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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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0/23일 남산 산행(장성 백학봉)에 동참하셨던 모든(40명)님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아울러 당일 진행에 수고하신 구회장님을 비롯하여 벽송대장님, 윤갑용총무님, 금복주총무님,
이원우 운영위원장님 등 모든분들의 노고에 감사 감사를 드림니다.
연하여 모든님들 이제 며칠남지 않은 10월을 더욱 보람되게 보내시고,
늘 강녕하시고 한분 한분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고고문님 산행후기 장문쓰시느라 많은 수고 하셨습니다,
황고문님 고고문님 두분이 계셔서 남산이 든든합니다.
묵묵히 남산을 위해 최선을 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후일 남산 산행자료에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벽송님이 다녀 가셨군요.
보잘 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봉사(奉仕)의 아름다움을 실천하시는 벽송님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 만복이 깃드시길 바람니다.
고 고문님잘계시죠
장문의산행후기잘읽어습니다
늘건강하시길바람니다
윤상복님 너무 반갑슴니다.
그간 강녕하신지요?
그렇찮아도 한번 연락을 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11월 산행 때는 꼭 뵙기를 희망합니다.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는데... 뵙지를 못해 많이 그립슴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고고문님 장문의 후기를 집필하시느라 너무애쓰셨네요.이렇게 좋은 산행지를 함께못함이 너무아쉽네요.약사암과 영천굴 쌍계루 등등~두루두루 역사공부까지하게되네요.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항상건강하세요^^..
해바라기님 반갑슴니다.
가내 두루 편안하신지요?
변변찮은 후기를 늘 읽어주시고 또 댓글까지~ 고맙슴니다.
11월 산행 때는 꼭 뵐 수 있기를 바라며,
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소원성취하세요!
산행 후기를 읽다보면 많은 것을 알게되여서 감사 함니다.


그리고 항상 수고 하시고 헌신 하시는 모습이 남산을 이끌고 가는 원동력이라고 생각 함니다
잘 보고 갑니다
황까페지기님 당일 많이 힘드셨죠?
그래도 건강한 모습으로 매월 뵐 수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슴니다.
창설 이후로 변함없는 격려와 협조로 우리 남산이 이만큼이라도 활성화 되지 않았슴니까?
모든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보잘 것 없는 글 늘 읽어주시고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항상 평안하시고 강건하시길 기원합니다.
윤상복님 반갑습니다.뵌지가 꽤 된거같네요.무탈하시겠지요?항상건강하시고 담달남산에서 만나요.등산전에 말벌주한잔은 보약이라네요.기대해도되겠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