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엿소리와 사모곡(思母曲)
몇 주 전에 경북지방의 내방가사를 수집하는 장혜완 여사가 청도지역의 내방가사를 찾고 있다기에 내가 청도군지(淸道郡誌, 1991년)에 몇 편 실려있다고 일러주었더니 꼭 보여달라고 부탁해서 군지를 뒤지다가 뜻밖에도 856쪽에 수록된 상엿소리(行喪 노래) 부문을 발견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에 홍 애이애홍/ 꽃 진다고 서름 마라 꽃은 지면 애홍/ 명년 삼월 또 필으니와 인생으는 한 분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에 홍 애이애홍/ 북망산이 머다 해도 문전 앞이 북망산이로다/ 뛰잔디를 옷을 삼고 식토 한 짐 밥을 삼고/ 누버시니 차저오나 어느 친구 날 차젓고/ 사라생전 내 동무들아 언제 다시 만나 보꼬/ 시우청산 구전비에 놀기 조와 못 오든가/ 상백초의 약을 지어 빙든 인생 구하든가/ 어이 칠 년 가물 때에 구 년 홍수 구하든가/ 연지 시새 오래되여 이정불행 하시든가/ 마상에라 봉한식하니 날이 저물어 못 오든가/ 에 홍 애이애이홍” <화양읍 삼신리에서 채록>
이달 초순에 우리 마을 출신의 재경 청도군향우회 이율기 회장의 모친 고
박대순(朴大順, 89세) 여사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 회관 앞에서 선영까지 이르는 행상(行喪)에는 바로 이 상엿소리가 상두꾼에 의해 불렸다.
상엿소리는 선창자가 부르는 메김소리와 이를 받는소리로 나뉘는데 메김소리는 지역이나 장례의 단계마다 다르고, 선창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부른다. 내 고향 김해 지역에서는 행상 때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올 날이나 알려주소”나 “북망산천 가는 길에 노잣돈이나 놓아주소” 등으로 선창을 메기면 다른 상두꾼들은 “에헤 에헤이 너와 넘자 어헤이”로 받는다.
그날 우리 마을 행상도 소리의 전부를 녹취하진 못했으나 노래의 가락과 노랫말은 모두 우리 고향과 대동소이했다. 가락도 구슬프고 내용 또한 애잔하다.
우리 마을에서 효자로 소문난 이 회장은 외아들이기도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혼자된 모친을 서울로 모셔가서 지금까지 섬겼다. 나는 지난달 30일 오전 청도 공설운동에서 거행된 군민체육대회의 최종 성화 봉송 주자로 당당한 그의 모습을 보았는데 오후 상경하면서 모친의 부음을 들었다고 한다. 나흘 만에 다시 보는 상주의 모습은 너무 초췌하고 온 얼굴이 비통에 가득 차 있어 뭐라 위로의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나는 장지를 내려와서 온통 주홍으로 물든 감나무밭 사잇길로 귀가하면서 20여 년 전에 소천(召天)하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내 어머니는 우리 다섯 남매를 낳아 사랑으로 키우신 모태(母胎)부터 나의 신앙적 정신적 지주셨다. 내색하진 않았으나 그때의 내 슬픔이 지금의 이 회장과 같으리라 생각하면 어디선가 상엿소리와 함께 진혼곡(鎭魂曲)이 되었다가 사모곡(思母曲)이 되어 환청으로 들려오는 듯하여 목이 멘다.
찬송가 ‘언제나 바라봐도 늘 보고 싶은 분’(578장)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나 항상 거스려도 다 용서하시고/ 날 웃게 하시려고 어머니 우시네/ 집 떠나 먼 곳에서 나 방황하여도/ 어머니 기도 음성 귓가에 들리네”
“죄인을 구하시려 독생자 보내신/ 그 사랑 알게 하려 어머니 주셨네/ 그 손을 마주 잡고 드리는 예배는/ 천년도 하루 같은 즐거운 때일세”
*청도신문 최현숙 기자께서 상엿소리 동영상 파일을 보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