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 일본 와인의 세계
그 안을 들여다본다
글 | 최훈(보르도와인아카데미 원장)
우리는 정말 일본 와인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한다. 이웃 나라이면서도 다른 경우처럼 와인의 세계도 한참 멀기만 했다. 일본이 세계적 와인 소비시장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 오래전의 일이다. 지난해만 해도 일본은 해외로부터 무려 155,000kℓ(155만 hℓ)의 와인을 들여왔다. 엄청난 물량임에 틀림없다. 세계의 와인 산국들이 유독 일본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연유를 알만하다.
그러나 일본을 단지 와인 소비국으로만 여기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이 되지 못한다. 이 나라는 분명 와인산국(産國)으로서 입지를 다져온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일본의 국산와인 생산량은 81,000kℓ(81만hℓ)에 이른다. 전체 와인 소비량에 34%를 차지하는 셈이다. 물론 이 속에는 외국으로부터 원료를 들여와 국산으로 이름 붙여 유통시킨 것이 포함되어 있어 진정한 의미의 국산 와인(local wine)으로 보기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분명 일본은 오래전부터 자국의 와인, 이른바 ‘일본 와인’을 내고 있다. 1912년 근대적 와인의 첫 빈티지를 보였다 하니 무려 100여 년 전의 일이다. 한마디로 일본은 와인의 수입 소비국이면서도 이제 산국으로서의 입지를 함께 굳힌 셈이다.
일본 와인시장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소비시장으로서 일본 와인의 모습을, 다른 하나는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산국으로서의 또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굳이 우리들이 일본 와인 시장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들 시장의 내면, 특히 소비시장의 모습을 제대로 읽고 들여다보면 곧장 우리들 시장의 앞날 트렌드를 얼마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 두 나라는 여러 부문에서 10여년의 시차(時差)를 두고서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진전해 왔다. 물론 때로는 정체와 후퇴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의 와인시장은 우리들에게 반면교사(半面敎師)의 일면을 띠고 있다 하겠다.
와인의 소비시장
일본 와인의 소비시장은 그들 와인의 수입 패턴과 직결되어 있다. 1965년을 기점으로 해서 일본 와인의 수입 패턴은 매년 지속적으로 신장 추세를 이어왔다. 그러다가 1998년, 이 추세는 정점을 이루게 되고 그 이후부터는 약간의 하강 안정세를 지속하게 된다. 지난 기간(1965∼2006), 우리들은 몇 가지 중요한 현상을 볼 수 있다. 기점 연도인 1965년 와인 수입을 100으로 지수화(指數化) 했을 때 1975년이 3,500, 1998년은 무려 111,500을 보여 일본 와인 시장의 엄청난 신장세를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큰 폭으로 신장해 왔는가를 짐작케 해주고 있다. 1998년 이후부터는 매해 신장 지수가 800 수준을 보이고 있어 어느 면에서는 침체 내지 안정 국면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패턴에 대해 동경 중앙구 일본교(日本橋)에 자리 잡고 있는 ‘일본 와이너리 협회’의 오사다 사무국장과 시모무라 전무의 설명을 들은 바 있다.
“일본 와인의 소비는 수입패턴과 궤(軌)를 같이 하고 있다. 1965년을 기점으로 10년 후인 1975년, 일본 와인의 소비 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는 고도의 경제 성장, 이에 따른 식생활의 개선, 여가의 확대 등이 진행되면서 와인 소비에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와인 수입도 이러한 소비와 같은 패턴을 보였다. 1998년 와인 수입이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는 레드 와인이 몸에 좋다는 이른바 프렌치 파라독스가 전해지면서 와인 소비는 정점으로 향하고 수입 패턴도 뒤를 잇게 된 것이다. 그러나 1999년에는 수입이 무려 30%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그 이후부터 거의 8년간을 같은 수준으로 지속되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간 일본 경제의 버블현상으로 소비에 별다른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와인의 생산
일본은 이른바 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국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 국산 와인에는 2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외국으로부터 원료(벌크)를 수입해 국내에서 병입하는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제 땅에서 나는 포도를 원료로 해서 와인을 빚는 경우이다. 물론 앞의 것은 순수한 일본 와인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뒤의 경우는 분명 자국의 와인, 즉 local wine임에 틀림없다.
지금, 일본은 자국의 포도로 빚은 와인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명칭도 단지 국산(國産) 와인에서 떼어내 ‘일본 와인’으로 호칭하면서 다른 외국산 와인과 동렬에 올려놓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국산 와인(외국산 원료와인+자국 원료와인)의 생산 추세를 확인해본다. 소비패턴과 마찬가지로 일본 와인의 생산(소비)은 1965년을 기점, 100으로 지수화 할 때 1975년에는 지수가 775를, 1998년 소비의 피크일 때 일본 국산 와인도 9,250의 지수를 보여 무려 925배의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후 2006년까지 매해 약 250의 지수를 보이면서 안정, 정체국면을 보이고 있다. 마치 외국 수입 와인과 거의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일본 국산 와인의 소비층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아울러 시사한다고 하겠다.
일본 와인 산업의 규모
일본 와인 시장의 크기는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와인과 국내에서 병입한 와인과의 합이다. 1997년, 수입 와인이 148,777kℓ, 국산 와인이 119,263kℓ로서 총 규모는 268,040kℓ이다. 1998년, 일본 와인의 소비가 최고조에 달했던 해에는 국산 와인이 146,386kℓ, 수입와인이 223,493kℓ, 도합 369,879kℓ였다. 무려 370만 hℓ에 달하는 수치이다.
일본 와인은 다른 주류에 비해 비교적 튼실하게 아직도 성장 추세를 지속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관련 통계에 의할 때 일본 내 여러 종류의 주류 가운데 청주(淸酒), 맥주, 위스키, 브랜디, 기타 잡주(雜酒) 등은 지난 10년간(1996∼2006) 크든 적든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데 비해 와인은 꾸준히 플러스(+) 성장을 보여 왔다. 이러한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예단키 어려우나 일본 소비의 인프라가 튼실하기 때문에 안팎으로부터 치명적인 충격이 없는 한 일본 와인 시장은 세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일본 와인의 역사
일본 와인의 역사는 일본 근대화의 궤적(軌跡)과 맞물려있다. 근대화의 첫 단추는 페리 제독의 내일(來日), 이른바 ‘흑선(黑船)’의 내항이다. 에도시대(江戶時代)의 막을 내리고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사적 계기이기도 했다. 1854년 막부(幕府)의 관리들이 페리 제독의 선박에 승선, 와인과 샴페인의 대접을 받고 몹시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파리 만국박람회(1855년)에 참가했던 사절단의 일원 다나베(田邊太一)가 귀국해 요꼬하마에서 와인 수입상을 차리고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처음 들여 왔다한다. 바로 일본인과 와인과의 만남이 시작된 셈이다.
국산 와인 양조사에 몇몇 훌륭한 선각자(先覺者)가 있었음을 지나칠 수 없을 듯하다. 1877년 일본에서 처음 관영(官營) ‘대일본 야마나시 포도주 주식회사’가 설립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의 선진 와인 양조 기술을 습득키 위해 2사람의 젊은이, 즉 쓰지야(土屋龍憲)와 다카노(高野正誠)가 프랑스의 샹빠뉴 지방에 유학한 일이 있었다. 이곳에서 포도나무의 재배를 비롯해 와인 양조의 전반을 습득한 후 귀국해, 1879년부터 와인을 빚어냈다. 그러나 당시 와인 수요가 여의치 않아 회사는 문을 닫게 된다. 이때 가스누마의 부호 아들이던 미야자끼(宮崎光太郞)가 ‘대일본 포도주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들 양조 전문인을 받아들여 와인 양조를 지속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인의 구미에 알맞은 단맛이 깃든 와인 ‘大黑포도주’를 생산해 크게 히트를 치면서 사업은 번창했다. 미야자끼는 1892년 자기의 저택에 미야자끼 제1양조장을, 1904년 저택 이웃에 제2양조장을 건립했다. 오늘날 메르시앙 와이너리의 자료관(資料館)으로 쓰이는 건물이기도 하다.
이들과는 달리 일본 와인사에서 선각자(先覺者)의 지위를 누리는 또 한사람이 있다. 바로 가와카미 젠빼이(川上善兵衛)이다. 원래 이는 일본 열도의 뒤쪽에 자리 잡은 니이가다 출신이다. 눈이 많은 고장의 사람으로서 포도와는 전혀 인연이 없을 성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와인 양조에 대한 열정이 끝내 그로 하여금 일본 와인 양조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하고 있다.
1890년 조상대대로 내려온 저택을 허물고 ‘岩の原 葡萄園’을 설립, 와인을 빚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 포도종의 개발에도 헌신해 마침내 ‘마스캇트 베일리 A(Muscat Baiely A)’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형편은 여전히 어려웠다. 1899년 와인을 빚고자 ‘고도부끼야(壽屋;현 산토리의 전신)’를 창립한 도리(島井信治郞)가 가와카미를 만나 공동투자를 하고 폐허에 가깝던 야마나시 코슈에 있는 ‘토미노오카(登美の 丘)’를 매입, 그의 사위에게 경영을 맡긴 일이 있다. 이곳은 오늘날 산토리 와이너리의 주된 포도원의 하나로 돼 있다.
가와카미의 열정은 이에서 그치지 않고 사재를 투입, 포도종의 교배에 관한 논문을 실은 3권의 ‘포도전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와인업계는 그를 가리켜 ‘일본 와인의 아버지’라 부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의 어려움을 겪고 난 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 1970년 Expo 등의 국가적 이벤트 등을 치루고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 새로이 에너지가 충만한 국가로 신장했다. 이에 걸맞게 일본와인 산업도 그들의 소비시장과 더불어 자국 와인의 생산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새로운 입지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첫댓글 이눔들 장인정신은 정말 대단해.. 뻘짓만 안하면 이쁘게 봐주겠는데말야... 암튼 와인시장 엄청나네..신의 물방울이 나올만하다.
마저요....일본 애들 기본적으로 와인에 대한 지식이 있는게.....와인역사가 우리랑은 틀리기 때문이겠죠....
헛, 몇일 전에 일본 여행 가서 맥주랑 사케만 마시다 와버렸는데... 일본 와인 역사가 이렇다는 걸 알았으면 맛이라도 보고올껄 그랬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