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쏴보세요" 6년전 경찰청장 굴욕 갚아줄 35억 새 권총
2015년 9월 14일 서울 경찰청사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 감 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이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측으로부터 받은 모형 권총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 중앙포토
“경찰청장. 주머니에 넣으셨다가 조준하고 격발까지 순서대로 한번 진행해보십시오.” 지난 2015년 9월 14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장에서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에게 던져진 질문은 경찰 조직에 치욕적이었다.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모의 권총을 주고 격발 시연을 요구한 것이다. 한달 전 서울 은평경찰서 관내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총기 오발로 박모(21) 상경이 실탄을 맞아 사망한 사건의 경위를 따져 묻는 과정이었다. 반대 진영 의원들은 “13만 경찰관을 무시한 처사”(당시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라고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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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안전성 검사→내년 현장실증→내후년 도입
이듬해 1월 5일. 강 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주력 총기인 ‘38구경 권총’을 대체할 새로운 총기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범인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으면서도 총에 맞은 사람의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화력을 지니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로부터 국산 ‘스마트 리볼버’에 대한 연구 개발이 완료되기까지 5년여가 걸렸다.
경찰청 관계자는 1일 “스마트 대체 총기에 대한 연구개발이 ‘우수평가’로 종료됐다”며 “올해 하반기까지 안전성 검사를 마치고 내년 현장 실증을 거쳐 이르면 내후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10조 5항에 따르면 위해성 경찰장비를 도입하려는 경우 안전성 검사를 실시한 뒤 국회 소관상임위에 그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2015년 9월 1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총기 사용을 시연해 보라고 요구하자 강신명 경찰청장이 머뭇대며 모형 권총을 주머니에 넣었다 빼는 모습을 시연해 보였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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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38구경 리볼버는 강한 화력이 부담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현재 운용 중인 총기는 경찰특공대를 제외하고 38구경 6연발 리볼버 권총이 유일하다. 미국 스미스 앤드 웨슨사에서 전량을 들여온다. 그러나 이 권총은 화력이 세서 인명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이 일선 경찰들 사이에선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인명 피해가 생겼을 때 경찰이 지는 책임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동안 “권총은 쏘는 게 아니라 던져서 범인을 맞추는 용도”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왔던 이유다. 2005년 도입된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은 대체 장구로 각광받고 있지만, 사정거리가 짧다는 문제가 있다.
국내 방산업체 S&T 모티브가 개발한 스마트 권총. 사진 S&T모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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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권총은 플라스틱 비살상탄 사용
새로 개발되는 권총은 리볼버 형식은 똑같지만, 쇠가 아닌 플라스틱 재질의 탄알을 사용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 경우, 화력이 기존 38구경 권총의 10분의 1 수준으로 측정된다고 한다. 경찰청은 새 권총의 약실을 플라스틱 비살상탄만으로 장전할지 또는 공포탄, 비살상탄, 실탄 등 사수가 탄의 종류를 확인하며 사격을 하도록 할 것인지 두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또한 총기 사용 시 시간과 장소, 조준 방향 등을 담은 정보가 실시간 통제 센터나 휴대기기 등으로 자동 전송되도록 센서가 부착된다. 스마트 리볼버로 불리는 이유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금보다 강한 물리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장 경찰들이 쓸 수 있는 옵션을 더 늘려주자는 차원”이라며 “경찰들이 그에 맞춰 치안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것 자체가 국민들에게 치안 만족도를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 스마트 리볼버는 국산 소총 K 시리즈를 생산해온 국내 방산업체 S&T모티브가 주력 개발업체다. 경찰청이 방위사업청·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신청한 비살상 총기 연구개발 과제가 지난 2015년 11월 국방과학연구소 산하 민군협력진흥원 공모에서 당선됐다. 이후 민군협력진흥원 내부 절차를 거쳐 S&T모티브가 민간 사업자로 선정됐다. 2016~2020년까지 정부출연금 25억원에 S&T모티브 측이 10억원을 투자하는 등 총 35억원이 들어갔다.
경찰 권총사격훈련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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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사용 교육 현실화 방안 모색해야
일각에선 새로운 총기개발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총기 사용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경찰은 연 2회 권총 사격 훈련을 한다. 경찰 사격장에 고정된 표적은 약 15m가량 떨어져 있다. 1회 훈련 때 35발을 쏘는데, 영점 사격 5발을 제외하면 사실상 30발(완사 10발, 속사 20발)이다. 지구대·파출소 근무자나 형사 등은 연 4회 훈련을 받는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에 써먹지 못하는 권총 표적 사격 교육”이라며 “대상 자체가 움직이고 조준 사격이 불가능한 상황이 많은데 멀리 있는 표적지를 잘 맞추면 실전에서도 잘 쏜다는 70년대 구닥다리 사고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는 경찰관이 교육 훈련만 잘 받으면 지금 있는 권총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파출소에 근무하는 한 일선 경찰관은 “경찰관들이 다 사격을 잘하진 않는다. 권총은 특히 생명에 바로 영향을 주지 않느냐”며 “실전 교육이 강화되지 않으면 새로 도입되는 권총도 실효성은 크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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