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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베토벤입니다..
말러 9번..
어려운 곡인데 역시 훌륭한 정명훈님의 가르침에 많은 것을 배운 뜻깊은 음악회였습니다.
자리도 좋아서 좋은 감상이 되었습니다..
http://blog.naver.com/mastoy/40047294960
마스터피스 시리즈 - 관현악 1
2008. 2. 2(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권혁주(바이올린)
오늘은 서울시향의 말러 9번이다..
구스타프 말러..
작년 가을에 한참을 말러에 빠져서 말러의 곡들을 즐겨 듣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말러만의 우울함에 다시 접하기가 조금은 어려웠다..
올해 서울시향의 공연일정을 보니 말러곡들이 많았다..
이런.. 마치 어려운 문제를 받아든 학생마냥 조금은 난감한 기분이었다..
태안주민을 위한 특별 콘서트에서는 말러1번.. 그래도 1번은 즐겨 듣기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오늘은 9번이다..
몇일 동안 몇번을 듣고 또 듣고..
번스타인 지휘반으로도 들어보고 카라얀지휘반으로도 들어보고..
하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겠다..
결국은 정명훈님이 내준 문제를 다 풀지 못하고 예술의 전당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제뉴어리님과 심포니에서 일찍 보기로 하여서 6시 조금 넘어서 도착하였다..
예매해둔 표를 받았다.. 제뉴어리님께서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자리는 무척이나 좋았다..
내가 예매했어도 딱 내가 좋아하는 자리를 예매해 주셨다..
항상 수고해주시는 제뉴어리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어머님께서 일찍 도착하셔서 사진 몇장 찍어드리고 음반매장가서 이것 저것 구경 좀 하다가..
사려고 했던 음반이 보이질 않아서 그냥 나왔다..
이웃 블로거이신 다빈치님도 뵈었다..
연세가 많은건 알고 있었는데 어찌나 인상이 좋으신지..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요즘 우리들 용어로 표현하면 훈남 이시다..ㅎ
점잖으시고 무척이나 사람좋으신 분 같았다..
곧 음악회가 시작하기에 많은 이야기는 못 나누었다..
그래도 이제 얼굴을 서로 봤으니 언제 청담동 갈일 있을때 다시 뵙고 한수배워야 겠다..ㅎㅎ
사람들도 많이 왔다..
3층 객석 끝까지 꽉찼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Program
Mozart, Violin Concerto No. 4 in D, K. 218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 D장조, K. 218
Mahler, Symphony No. 9 in D
말러, 교향곡 9번 D장조
1부는 모짜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이다..
워낙에나 많이 들었던 곡이기에.. 익숙하다.
모짜르트의 협주곡은 매우 많다.
1775년.. 모짜르트 나이 19세때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해라고 할 수 있다.
5곡중 4곡이 이시기에 작곡되었다.
바이올린 협주곡 4번..
3번에 이어 10월에 작곡되었다.
보케리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모범으로 삼아 작곡했음을 모짜르트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완전히 소화하여 모짜르트의 독자적인 개성이 물씬 묻어난다.
오늘의 협연은 권혁주군이 맡았다.
정명훈님은 지휘봉 없이 지휘하셨다.
1악장.. 알레그로 4/4박자..
협주풍의 소나타 형식이다.
군대적 리듬감을 가진 경쾌한 악장이다.
오케스트라가 경쾌하게 시작을 알린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어느정도 진행되고 독주바이올린이 나타난다..
빠른 악구가 이어지면서 독주바이올린의 카텐차로 들어간다..
코다는 경쾌하게 격렬하게 마친다..
권혁주군의 바이올린 독주도 좋았다..
워낙에나 많이 알려진 곡이라.. 말러 9번을 듣기 전의 몸풀기 정도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다른 생각없이 그냥 바이올린의 선율에 몸을 맡기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듣기로..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3/4박자..
제1바이올린과 오보에가 온화한 분위기를 만든다..
따뜻한 악장이다..
실은 요즘 내가 스피카토가 맘처럼 잘 안되어서 그런지.. 바이올린연주자들의 스피카토만 보였다..ㅎ
아마 연주내내 그것만 보고 있었던듯하다..
3악장.. 론도, 안단테 그라치오소 2/4박자
2악장에 이어 거의 쉼없이 바로 연주되었다.
독주바이올린이 먼저 나온다.
솔로가 계속 노래하면서 저음현과 서로 주고 받는다.
매우 자유로운 구성을 보이며 카텐차 또한 훌륭했다.
많은 박수가 나왔다..
울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잘스부르크의 대주교 궁정에서 일하는 음악가 요한 게오르크 레오폭트 모차르트와 그의 아내 안나 마리아의 막내아들로서, 1756년 1월 27일에 잘츠부르크에서 태어 났다.
교회 기록부에 의하면, 모차르트의 정식 이름은, 요한 네스 크리소스토무스 볼프갈구스 테오피루스이다.
테오피루수는 그리스식 이름으로 라틴식의 :아마데우스" 독일식의 "고트리 포"와 같은 이름이다.
누나인 안나도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레오폴트는 그녀의 성장에도 남 다른 관심과 열의를 갖고 피아노를 가르쳤다.
얼마후에 피아노 주자로서 그 솜씨가 놀라울 만큼 숙달하여, 초기의 여행에서는 동생과 함께 그 연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나,
이탈리아 여행을 마친 뒤부터는 가정을 지키며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멀리했다.
모차르트는 신동으로서의 음악적 재능은 물론 음악사상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하겠으며, 그의 이러한 천재의 싹은 기록으로나 자료로서도 상당히 자세하게 더듬어 볼 수 있는데 <난넬의 노트>1759 또는 훗날의 <볼프강의 노트>1762 는 그와 같은 귀중한 기록이 있다.
이것도 재빨리 아들의 재능을 발견한 레오폴트의 교육적인 배려의 덕이 크다고 하겠다.
겨우 3세 때 피아노를 연습하는 누나 곁에서 열심히 보고 있다가, 후에 혼자서 3도화음을 맞추어 쳤다고 하니, 그 천재적인 재능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1년가량지나자 레오폴트는 직접 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피아노에 의한 공부가 시작 되었다.
한편 5세가 되자 어린 그는 작곡도 시작했는데, 사실로 미루어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초기의 작품은 지금까지 믿어지고 있는 미뉴에트 G장조가 아니라, 그 이전에도 안단테 C장조 등 4곡이 있음이 발견되었다.
모차르트의 재능의 발전에 있어서 잘츠부르크의 음악작 환경 부친 레오폴트의 교육적 배려,거기에 여행으로 얻어지는 음악적 경험의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결여될 수 없는 결정적 요인 이 되었다고 하겠다.
아버지의 뛰어난 가름침 덕분에, 그리고 성장기의 많은 여행 덕분에 어린 모차르트는 당시 서부 유럽에서 작곡되고 연주되던 모든 종류의 음악을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그의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을 신비스러 우리만큼 능란하게 흡수해 들였다.
다른 사람의 것을 모방 하기는 했지만, 모방 하면서 그 모델 자체를 개선시켰다.
그에게 영향을 준 착상들은 곧 그의 작품에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 자라나서 여러 해 지난 후 비로서 그 성과가 나타날 때도 많았다.
15분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드디어 말러..
단원들이 입장하기 시작한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무대가 꽉 찬다.. 조금의 공간도 없이..
그렇게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곡이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꽉찼다는 놀라움의 소리가 들린다.
말러의 곡이 쉬운곡이 아니기에 단원들의 표정에도 조금의 긴장감과 동시에 결의에 차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 음악회 덕분에 말러에 대해 조금은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작곡은 1909년~1910년..
연주시간이 75분이 걸리는 대작이다.
초연은 말러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12년 6월 26일 브루노 발터의 지휘에 의해 빈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신문과 잡지에서만 17개의 리뷰가 실렸다는 점은 이 연주회에 모린 관심을 잘 이야기한다.
당시의 평가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이 곡이 전달하고 있는 이별에 대한 느낌이다..
말러는 이곡을 작곡하고 있을 무렵 체력적으로 무척 지쳐 있어서 죽음까지도 종종 생각했었다.
또한 1907년 사랑하는 딸 마리아가 사망하고 말러 자신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해지기도 하였다.
말러는 이전부터 그의 제자 브루너 발터에세 자신의 심장병 증세가 나빠진듯하다고 말했다.
1909년의 여름, 그의 아내 알마는 말러를 알트슐더바흐로 데려갔다.
알마는 건강에 약간 문제가 있어 치료를 위해 레비코로 떠났고 말러는 수년만에 처음으로 여름을 홀로 보내게 되었다.
이때 시작된 9번 교향곡의 작업에서는 수년만에 혼자 일을 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8월에 테오도르 슈피링에게 보낸 편지에서 '중요한 작품'을 시작했고 완전히 이 작업에 '파묻혀 있다'라고 한다.
브루노 발터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말러가 새로운 작품에 관해 상당한 의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말러는 이 작품에 대해,
"미친 듯이 빨리 썼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할 것이다.
겨울이나 되어야 알아볼 수 있도록 깨끗하게 정리할 여유가 올 것 같다"
라고 이야기했다.
일반적으로 한 교향곡을 작곡할 때 대개 두 해의 여름을 이용한 말러가 이렇게 까지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 규모의 곡을 작곡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 교향곡은 그야말로 모차르트가 한 교향곡을 작곡하는데 걸린 시간에, 길이는 모차르트의 세 배쯤 되는 작품을 쓴 셈이 된다.
1910년 4월에 이곡을 완성하고 다음해인 1911년 5월 18일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였을까..
이곡은 죽음과 이별의 느낌이 많다.
전통적인 교향곡과는 달리 1악장.. 4악장을 느리게 만들었다.
작품의 배경은 대략적으로 이정도만 쓰기로 한다.
1악장... 안단테 코모도.. 4/4박자..
정명훈님께서 지휘봉을 들고 약 30초간 대기 하셨다..
정적이 콘서트홀을 감싼다..
마음의 준비를 하듯이.. 의식을 치루듯이..
나도 심호흡을 길게 몇번 하며 마음의 준비를 다잡는다.
구조는 말러식 소나타 형식이다.
무척이나 긴 악장이다..
길기도 길지만 처음부터 의미심장하게 이별을 노래한다..
이 악장은 '대지의 노래'가 끝난 바로 그 곳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지의 노래'를 끝맺는 부분..
봄의 아지랑이와도 같은 나른함 , 살랑거림, 우아한 슬픔을 가진 9번 교향곡의 첫 주제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잔잔함이 오히려 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 느낌때문일까.. 대지의 노래를 들어도 마지막의 마무리가 항상 조금은 우울하다..
긴여운이 흐른다..
첼로와 호른의 선율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장례식 같은 분위기가 흐른다.. 가슴이 답답해 오는 괴로움이 있다.
이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6번 1악장 '이별'에서 가져온 것 부분도 있다.
조금씩 빨라지면서 그나마 답답함이 조금은 덜해진다..
다시금 조용하게 가라앉는다..
관악기들도 무척이나 바쁘다.. 약음기를 끼웠다가 뺐다가..
호른이 완만하게 주제를 노래하고 곧 오보에가 받는다..
잠시 정열적인 연주가 이어지다가 곧 다시 속도가 늦춰져서 안정되어간다.
장례 행진 분위기를 잡아가고 이를 배경으로 트럼펫의 기상나팔이 울린다..
이때 무척이나 큰 쇠 관 3개가 있는 악기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종을 두드린다..
댕..댕..댕... 말러 특유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맛볼 수 있다.
바욜린의 솔로와 호른이 애잔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코다를 지나, 말러의 후기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인 점점 여리게로 끝난다.
정명훈님도 무척이나 만족하셨는지 많이 웃으셨다..
고개까지 끄덕거리시면서..
그래도 조금은 힘드셨는지 지휘 중간에 땀닦는 모습도 보였다..
2악장. 느긋한 렌틀러 템포로, 걸음을 걷듯이 조금 서두르고 매우 거칠게 3/4박자
렌틀러.... 오스트리아의 민속춤이다.
'죽음의 무도'라 불리는 악장이다.
이 곡은 크게 세 가지 무곡 주제로 이루어졌는데, 첫 부분의 편안한 렌틀러, 거친 왈츠, 그리고 느린 렌틀러이다.
이 세 무곡은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분위기는 경쾌하다.
경쾌하게 이어지는 분위기는 결국에는 조용하고 침착한 분위기로 마무리 지어진다..
마치 그러한 신나는 잔치도 이젠 끝이라는 듯이..
3악장.. 론도-블를레스케 (알레그로 아사이, 매우 반항적인)
부를레스케는 '어릿광대풍, 빈정거림, 유머, 농담' 등을 일컫는 말이다.
장난스러운 음악을 얘기하지만 말러의 부를레스케는 농담으로 들리기에는 너무 거칠고 그야말로 반항적이며 무시무시하다.
빠르고 큰소리로 시작된다.
다들 바쁘게 연주된다... 바이올린의 스타카토로 딱딱 맺는 부분이 마치 조롱하듯이 느껴진다.
말투가 탁탁 내밷는 듯 빈정거림.. 반항적인 부분이 느껴진다.
또한 괴기스러운 분위기도 조금은 느껴진다.
중반부에서는 조금은 조용해진다..
다시금 행진곡 풍으로 연주되며 코다로 치닫는다..
프레스토로 활기있게 곡을 끝맺는다.
이제 중반부를 넘어서 마지막 악장만 남겨놓았다.
정명훈님도 조금은 힘드신지 웃으시면서 혀를 살짝 내보이셨다..ㅎ
다시금 감정을 잡으시고 4악장을 준비하셨다.
4악장. 아다지오 4/4박자..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과 같이 느린 악장으로 마무리 된다.
이별을 노래한다..
느리고 폭넓은 바이올린의 연주로 시작된다..
현악기들이 순서대로 슬픔을 노래한다..
간간히 관악기들이 끼어들어서 그 슬픔을 더한다.
비올라의 독주.. 바이올린의 독주.. 첼로의 독주..
모두 일품이었다..
어찌나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만드는지..
신비로우면서도 쓸쓸한 느낌이 많다.
결국에는 슬픔에 찬 찬란한 클라이막스로 도달하여 점차 조용해진다.
마지막에는 사라지듯이..
조용하게...
아다지시모로 끝난다.... 이렇게 죽음이 찾아온다..
4악장에서는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네 번째 곡이 담겨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일찍 길을 떠났을 뿐이다..
우리도 곧 그 뒤를 따라 광명가득한 천국으로 올라갈 것이다.."
"저 위에서는 좋은 날이 되겠지."
이렇게 곡은 끝났다.
어찌나 마지막에 슬픔이 몰려오는지.. 박수 칠 힘도 없어졌다..
많은 기립박수가 나왔다..
단원 하나하나를 일으켜 세우시면서 인사하였다.
이번 음악회로서 그렇게 어려워 하던 말러 9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들어갈때는 마치 마저 숙제를 다 못해간 학생마냥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는데..
정명훈님의 뛰어난 가르침덕에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이래서 내가 음악회를 꼭 다니는 것이다.
물론 좋은 음반들도 많고 하지만..
직접 듣는 것 만큼 많이 좋은 것은 없다고 본다.
비록 100%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어찌나 가슴에 와 닿은지 집에 운전하면서 오는 내내도 한켠이 스산해진 느낌을 안고왔다.
말러 [ Mahler, Gustav , 1860.7.7~1911.5.18 ]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지휘자.
국적 : 오스트리아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보헤미아의 칼리슈트
주요작품 : 《대지의 노래 Das Lied von der Erde》(1908) 《한탄의 노래 Kindertoten lieder》(1880) 《젊은 나그네의 노래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1884)
보헤미아의 칼리슈트 출생. 부모는 유대인 상인이었으며, 어린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10세 때 피아노 리사이틀을 처음으로 열었고, 15세 때 빈음악원에 입학하여 3년 후 졸업할 때까지 브루크너 ·월프 등과 교제하여, 그들의 영향도 받았다. 1877년부터 3년간 빈대학 철학과에서 역사와 음악사를 공부하고, 그 사이에 초기 작품인 《피아노 5중주》 《피아노와 바이올린소나타》, 오페라 《슈바벤의 에른스트공》 등을 발표하였으나, 그 후 파기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1880년부터 지휘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883년에는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의 《파르시팔 Parsifal》에 접하여 크게 영향을 받았다. 1888년 부다페스트 왕립오페라극장의 지휘자, 1891∼1897년 함부르크 시립오페라극장의 지휘자를 거치는 동안, 작곡가로서의 명성도 얻었다. 1897년 빈 궁정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어, 1908년까지 재직하였고, 그 후 뉴욕에서 살았으나 1911년 심장병으로 지휘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빈으로 옮겨 거기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미완성인 제10번을 포함하여 모두 10개의 교향곡을 썼으나 본질적으로는 가곡 작곡가의 면이 강했고, 교향곡은 모두 가곡 작곡과 지휘활동의 체험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교향곡 9곡 이외에도, 중국시를 독일어로 번역한 가사로 된 관현악곡 《대지의 노래 Das Lied von der Erde》(1908), 자작의 가사로 된 두 가곡 《한탄의 노래 Kindertoten lieder》(1880) 《젊은 나그네의 노래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1884) 등이 있다. 피아노반주를 좋아하지 않고 관현악반주로 된 가곡을 써서, 후세에 가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의 음악세계는 때로는 절망감이나 염세관(厭世觀)을 강하게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괴기한 해학이나 초연한 탐미(耽美)를 보이기도 하였으며, 만년에는 종교적이라고도 할 만한 고독한 만족감을 표시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 어느 것이나 대편성의 관현악을 사용하고 있으며, 맑은 색채를 풍긴다. 그는 근대음악 발전의 과도기에 속한 인물로 낭만파적인 교향곡의 마지막 작곡가라고도 할 수 있다.
권혁주, 바이올린
2004 칼 닐센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19세의 나이로 한국인 최초 우승과 함께 덴마크 작곡가 작품 특별상, 젊은이 인기상을 두루 석권한 권혁주는 2005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 입상과 더불어 어릴 때부터 뛰어난 기량과 성숙한 음악성을 겸비하여 주목 받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이다.
3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권혁주는 6세 때 음악저널 콩쿠르 1위를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7세 때 김남윤 사사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하였다. 그 후 9세인 1995년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으며 11세에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2위를 차지하였고, 16세에는 독일의 클로서트-쉔탈 콩쿠르 우승, 17세에는 러시아 얌폴스키 콩쿠르 그랑프리 및 멘델스존-얌폴스키 론도 카프리치오소 최고 연주자상을 차지하였다. 또한 2004년 러시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였다.
권혁주는 서울시향, 수원시향, 코리안 심포니와의 협연, 금호아트홀 라이징 스타 리사이틀을 비롯하여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모스크바 챔버 오케스트라, 스페인 무르치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키예프 심포니 오케스트라, 체코 모라피안 필하모닉, 뉘른베르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덴세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 솔리스트로 연주하였으며 러시아, 한국뿐만 아니라 이태리, 오스트리아, 체코, 덴마크, 스페인, 이스라엘, 미국 등에서 다수의 초청 연주를 하고 있다.
권혁주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있으며 J.B.Guadagnini, Turin 1774를 지원 받아 사용하고 있다. 또한 2004년 대한음악협회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2006 제2회 금호음악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에두아르드 그라치를 사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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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부를레스케...후기를 통해 배웠습니다.그래서 거친 음들을 그리 쏟아낸 것이었군요.오늘 아침 4악장을 들으며 어제 시향 음향과 비교하며 스피커 볼륨을 올리니 이해가 되었습니다.서울시향이 어제는 자랑스럽게까지 느껴 지더군요.
어제 서울시향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성실한 연주에 찬사를 보내고 싶더군요...우리나라에서 다시 듣기 힘든 최고의 연주였습니다.단원들 스스로도 대견한듯 서로 포옹으로 끝내더군요.....덕분에 말러9번을 제대로 감상했습니다
말러 9번의 악기편성을 보니 생소한 글로켄슈필(GLOCKENSPIEL) 이란게 등장하는데 똑 같지는 않지만 같은 용도로 사용한거 같습니다.글로겐슈필은 최근의 오케스트라에서 많이 사용된다. 실로폰과는 반대로 20매의 금속판으로 되어 있으며, 금속 막 로폰과는 반대로 20매의 금속판으로 되어 있으며, 금속 막 대나 해머를 사용해 소리의 울림을 맑고 투명하게 나타내기 도 하고 부드러운 채를 이용해 완만한 음형을 얻기도 한다. 실로폰처럼 한 손에 두 개씩 채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대 개는 단선율을 위한 한 개의 채만을 사용한다. 글로켄슈필은 역시 선율 악기로서 투명한 음색을 보충시 키기 위한 악기이지만,
가끔 유명한 곡에서 독주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 ...후기도 쓰고 읽고 이렇게 서로 모르는 부분은 알아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것이 카페 생활하면서 배울 수 있는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금했었는데....자세한 설명으로 또 새로운 배움을 얻었네요~~감사합니다^-^
글로켄슈필 알게해주어 감사합니다.
아.. 그랬군요.. 저는 합창석이라서 바로 밑이 잘 보이질 않았어요.. 생소한 악기도 많았고.. 악기 종류 공부도 조금 더 해야겠어요..^^ 산행 잘 다녀오세요~ 저는 오늘 저녁 차이코프스키 바협, 피협, 로코코를 한번에 다 한다길래.. 보러 갑니다..
베토벤 님..어머님 모시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음악적 스승님이시기에~ 모시고 다녀야죠..ㅎㅎ
그로켄슈필은 책을 찾아보니 "글로켄슈필과 그것의 키보드버전인 첼리스타는 1892년에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호두까기인형"에 등장한 뒤부터 사랑받기 시작했다.. " 고 나와있네요..
어제연주회의 감동으로 다리의 힘이 풀려 귀가를 못한 회원(?)도 있었습니다....4악장이 끝난 후 밀려드는 무기력증으로 한동안 휴유증이 있을듯 합니다...5악장(?)을 엄청난 침묵으로 지켜준 관객에게도 감사를 드리고 싶더군요~~~~
ㅎㅎ 그렇군요.. 저도 후기 쓰고 4시경에 잠이 들었지만 말러 9번의 여파로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두시간 밖에 못잤네요.. 한동안 말러 9번의 여파는 오래 갈 듯합니다..
말러의 강력한 중독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 하여 5악장?까지 청중들을 이끌고 간 시향과 청중들의 교감이 자랑스럽습니다.
곡 시작하기전에 제발.. 안다박수가 안나오게 해주세요~~ 라고 몇번이나 빌었는지..ㅎㅎ 너무 좋은 연주였습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듯 하고 정신은 몽롱?한 와중에도 저 두 손이 내려오기 전에 제발 허튼?소릴랑 나지 말기를 얼마나 바랬었는지...그 무사함에 관객들이 어찌나 이쁘던지요~~@@
저도 어제 저녁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모짤트 바협을 들을때까지만 해도 봄의 기운(2.4,입춘이라네요)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말러 9번 특히 4악장을 들으면서 인생의 처절한 역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1.28(월) 콘서트 미리공부하기에서 진은숙 선생님의 깔끔한 설명을 들어 단단히 준비를 했습니다만 번스타인보다 더 실감나고 무게감과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말러를 알게해준 마에스트로님에게 감사하고 단원들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아름다웠습니다..감동만땅 !!!!
저도 집에와서 다시 번스타인 카라얀등등 여러 지휘자들을 들어봐도 그 감동에는 못미치더군요.. 역시 이래서 음악회를 다녀야 하나 봅니다..
어제 저는 2층에서 봤는데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때 2층 객석이 너무 어수선했고 2층 뿐만이 아니라 1층과 3층의 어수선함까지도 느껴지는 것 같더군요. 그런 분위기가 단단히 한몫했는지 몰라도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은 굉장히 불만족스럽게 보고 쉬는 시간에 과연 이 분위기로 말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말러 9번은 정말 굉장한 연주였습니다. 저는 17일 공연도 가는데 시향의 더 좋은 말러 9번은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오히려 17일 공연가는 것이 두려울정도입니다.
어제 기침소리가 좀 심했죠? 기침이야 생리현상이니 어쩔 도리가 없지만..손수건으로라도 입막음 하면 좋으련만 대놓고 하는건 실례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저도 바욜협주곡은 많이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알려진 만큼 또 그만큼 하기도 힘들었겠죠... 17일 공연 또 가시는 군요.. 또 다른 느낌이 날듯 합니다.. 두번째는 보시고 알려주세요~^^
이번에도 엄청 빠른 후기 올리셨군요.ㅎㅎ 정말 대단하십니다. 공연 보고 돌아오면 저는 온몸이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구요. 말러 때문에 걱정하시더니 역시 잘 소화하셨나봅니다. 후기글에서 어제의 감동이 그대로 묻어나오네요~ 권혁주군 연주도 훌륭했고, 말러는 대감동..저도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답니다^-^
ㅎㅎ 저도 공연보고나면 온몸의 신경을 집중하고 보기에 무척이나 피곤하죠.. 또 나름대로 공연보기전 3시간 전부터는 먹지를 않고 가기에.. 다녀오면 배도 고프고 힘들고.. 그래도 미숙하지만 후기는 당일날 쓰자는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ㅎㅎ
예술의전당에서 처음으로 본 연주회였습니다. 저같은 막되먹은 귀에도 다른 곳과는 정말 소리가 다르더군요.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조차도 감동시킨 연주는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오랜 침묵......정말 다른 관객들 모두를 안아주고 싶을만큼 감사했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도 어제 느낀 감동이 절반은 줄어들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어제의 공연은 값진 수업이라고 생각되더군요.. 어려운 숙제를 한번에 해결한 느낌입니다.. 역시 정명훈님 만세입니다..ㅎ
저도 어제 공연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콩닥콩닥 뛴답니다. :) 말러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려운 곡이었고, 과연 정명훈 선생님께선 어떻게 해석하실까 무척 기대했었는데, 끝나고 같이간 후배와 눈물을 흘리며 정말 감동적인 공연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답니다.-_ㅜ 집에 와서도 밤새 마음이 진정이 안되서 쉬이 잠을 잘 수가 없었더랬지요..2/17에 예당20주년 기념으로 한번 더 공연한다는 팜플렛을 보고 당장 지인에게 강추! 해주었답니다.:) 참, 제뉴어리 님께서 표 주실때 게시판 활동 열심히 하라고 하셨는데요, 제가 아직 많이 모자르고,부끄러워서 이렇게나마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네요.^^; 공부 더 열심히 해야할듯해요ㅎㅎ
말러리안.. 닉네임에서 강한 내공이 느껴집니다..ㅎㅎ 저는 말러는 잘 모르기에.. 그래도 이번 공연에 많이 배웠습니다.. 말러이야기도 자주 해주세요~~^^
글을 써 주신 베토벤 님..그리고 꼬리글을 달아 주시고 현장에서 감동을 함께 나눈 회원 님들이..사이버라고 하여도 서로의 공감된 부분을 이렇게 나누는 모습...너무 고무적이고 클래식 카페의 참 모습을 보는듯 하여 너무나 기쁩니다.누구 말대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공연이 훌륭했던 만큼.. 서로 이야기도 많겠지요.. 다른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느낌을 서로 공유할수 있다는 것이 참 좋은 듯합니다...
아마도 제 바로 옆에 앉았던 분인듯..예전에 말러곡을 두어번 들었는데 그때의 주변환경이 그래서 엿는지 참으로 갈까말까 망설였던 연주회 였는데 정말 즐거운 죽음 이었슴니다...이러다 말러에 꼿힐거 같은....글 아주 잘 읽었슴니다.
스탄겟츠님 바로 옆자리였습니다.
제 옆자리셨군요~^^ 말러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