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30.금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출 10:1~11
*제목; 출애굽기강해(14) 메뚜기재앙과 흑암재앙
1. 지난 수요일의 이야기
우리는 “여호와의 손”이 함께 하는 자들, 하나님의 “내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들을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들을 귀”가 없어진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늘 “차선책”을 따라 다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 분의 해결책“만”을 경험하는 자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2. 메뚜기 재앙, 이제는 애굽이 황폐화 되다!
이제 ‘일곱 번째 재앙, 우박재앙’까지 당하게 된 애굽은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7절’입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출 10:7)
그런데도 바로왕은 아직까지 “들을 귀”(하나님을 고백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귀)가 생기지 못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성”입니다.
다 듣고도, 그리고 경험하고도, 바른 길로 돌이키기를 싫어하는 것. 바로왕은 어쩌면 우리의 죄성을 상징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길을 다 듣고, 다 알면서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이제 여러분의 인생이 다 망해버린 후에 후회하지 말고, 이제 돌이키십니다.
오늘 본문의 처음으로 돌아가 차분히 살펴보겠습니다. ‘1~2절’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출 10:1~2)
하나님께서 왜 이 일을 행하시는 지가 다시 분명히 드러납니다.
먼저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함이시고, 다음을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기 위함이십니다.
우리 믿음의 자녀들의 삶이 이래야 합니다. 구원을 완성하는 삶이어야 하고, 또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3~6절’을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6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출 10:3~6)
우박재앙으로 거의 사라진 애굽의 식물들의 남은 것을 이제는 메뚜기들을 통해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매번 경고를 먼저 하실까?
그것은 하나님의 본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먼저 경고를 하셔서 심판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는 사랑인 것입니다.
바로왕은 그 사랑을 늘 내팽개쳤습니다. 여러분들도 권면드립니다. “돌이킬 수 있을 때 돌이키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바로왕은 이를 듣지 않습니다. “들을 귀”가 아직도 생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신하들을 그 “들을 귀”가 드디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읽었던 대로, 바로왕을 책망하며 이스라엘 보내자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출 10:7)
신하들의 책망을 들은 바로는 어쩔 수 없어, 이들을 보내려 합니다. 그런데 바로가 누구입니까? ‘타협의 왕’입니다. 사탄에 사로잡힌 자요, 죄성의 상징입니다. ‘8~11절’입니다.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출 10:8~11)
장정만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인간적인 계산이 든 것입니다. 인간적인 계산이 스스로 생각해보면 아주 지혜로운 것 같아보여도, 결국 모든 것을 무너지게 하는 원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엄청난 파국이 임하게 됩니다. ‘12~15절’입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14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피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라
15 메뚜기가 온 땅을 덮어 땅이 어둡게 되었으며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온 땅에서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 (출 10:12~15)
그런데 이 파국이 지나고 바로의 태도를 살펴봅시다. ‘20절’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출 10:20)
정말 가장 소중한 것(장자)을 빼앗겨봐야 아는 것일까요?
3. 흑암의 재앙이 임하다.
이제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의 재앙’이 임합니다.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출 10:21)
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예수님 돌아가시기 전에도 이런 흑암이 임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은 찢어지신 것입니다. 아무리 애굽이라도 이런 재앙(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주시고 싶으시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둘째는 태양의 제국인 애굽과 그들의 신들(태양의 신 “라”)에 대한 마지막 심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더듬을 만한 흑암”이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영적 어두움”을 의미합니다.
애굽의 완전한 심판의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기회 있을 때 돌이켜야 합니다.
타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십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이해합시다. 영적 어두움을 인식하고 장차 다가올 어려움을 물리칩시다.
첫댓글 기회 있을 때 돌이켜야 합니다. 타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십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이해합시다. 영적 어두움을 인식하고 장차 다가올 어려움을 물리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