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 서울 대학로 혜화 연극 쉬어매드니스(Shear Madnes)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연극이 있었다. 바로 관객 참여형 코믹 추리 수사물 <쉬어매드니스>이다. 제목이 외국어라 영어사전 찾아보니, 미친 가위, 어리석은 가위, 열렬한 가위 정도로 직역할 수 있겠더라.
🔎 이 연극은 독일 극작가 폴 피트너가 쓴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1980년 미국 보스턴에서 초연된 이후로 전 세계 22개 도시에서 공연 중이다. 미국 역사상 최장기 공연 기네스 기록을 보유한 작품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초연했고, 지금까지도 그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2015년부터는 극을 새롭게 바꿔, 따로 폐막일을 지정하지 않고 계속되는 ‘오픈런’ 공연으로 서울 대학로의 스테디셀러 연극이 되었다. 🇰🇷
연극 쉬어매드니스
장소: 콘텐츠박스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길 55 대학빌딩 B1
공연 시간: 인터미션 포함 110분(1시간 50분)
* 혜화역 2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이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광장 인근
공연장인 소극장은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계단이 가파른 편이니 조심하자. 👩🦯
덧붙여 화장실은 지하 1층 극장 출입구 근처에 있다.
소극장은 공간이 아담해 좌석 위치에 크게 국한받지 않고 공연을 즐길 수 있지만, 휠체어 이용자 등 장애인 접근성 부분에서는 부득이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 콘텐츠박스는 주차장이 따로 없다.
근처에 방송통신대 공영 주차장이 있지만 워낙 인지도가 있어서 주차하기 녹록지 않다. 차라리 지하철 타거나, 자차 이용 시 개인적인 노하우나 인생 짬밥으로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공연장 내부는 1, 2층으로 나뉘어 있고, 무대는 중앙에 세트를 중심으로 좌우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
세트는 미용실의 샴푸대이기 때문에 무대와 지근거리인 A열에 자리하면 물이 좀 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더 리얼하고 실감나는 공연을 즐길 수 있다.
👩🦯 내가 볼 때 A열이 명당이지 않을까? 물 좀 튀면 어때, 공연에 일부로 적극 참여 가능한데.
🤩 참고로 연극은 기본적으로 촬영 불가이지만, 공연 10분 전 보여주는 워밍업 장면이나 인터미션 때는 촬영이 가능하다.
🎭 연극의 무대는 쉬어매드니스 미용실.
그 미용실이 위치한 건물 위층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유명한 피아니스트 바이엘 하인데, 쉬어매드니스 미용실이 있는 건물의 주인이다. 즉, 조물주보다 위대한 건물주님!
사건이 발생한 그날, 그 시각!
미용실에 손님인 척 잠복 근무 중이던 형사들이 미용실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
용의자는 4명, 각자 완벽한 알리바이로 적극 부인!
✂️ 용의자 1 미용실 원장 조호진(별명 조지): 성정체성을 고민 중인 정열의 오지라퍼. 그러나 정열적인 바이엘 하의 피아노 연주 소리에는 불만이 가득.
“그게 말이 돼요? 그날 그냥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사건 당일에 뮤지컬 동호회 회원들을 맞이하기 위해 집에서 불닭발을 요리했지만, 가스 불을 끄지 못한 채 나온다. 춘향전을 관람한 이야기를 하다가, 바이엘 하가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자 열폭해서 뛰쳐나간다. 😡
그러나 실제 바이엘 하를 찾아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요리한 불닭발이 타는 냄새를 맡고, 집에 돌아가 뒤처리를 하던 중 미용실의 손님이 떠올라 급히 내려온다. 탄내가 나는 앞치마를 벗어 빨래통에 넣은 것은 덤.
📝 층간 소음은 이웃 다툼의 원인이 된다. 또 층간 소음에 오래 시달리면 사람은 간혹 미치기도 한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혹시 원장 조호진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
도구인 가위는 충분히 흉기가 될 수 있으니까. 🕵️
하지만 사건의 다른 부분이 좀 걸리고, 묘하게 원장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듯한 연출이 있단 말이지.
💋 용의자 2 장미숙(별명 수지): 미용사, 열정적으로 호감을 사는 아가씨.
“내가 자기 시체를 발견하게 만든 거야! 내가 자기를 죽인 것처럼 꾸민 거라구요.”
쉬어매드니스 미용실에 취직한 지 1년 반 되었고, 바이엘 하의 자택에서 골동품상 오준수와 만났다. 그와 열정적으로 연애 진행 중. 💟
쓰레기통을 비우기 위해 나갔다가 급히 미용실에 들어와 피아니스트 바이엘 하의 사망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절한다. 피아니스트 바이엘 하의 유언장에 따르면, 그의 사후 유일한 상속인으로 밝혀진다.
📋 사건상 가장 큰 이득을 본 용의자라 이쪽이 좀 수상한데. 원장을 범인으로 위장하고 자신은 쏙 빠져나가려 한 걸까?
아니면 바이엘 하와 모종의 관계, 가령 친척이나 양녀 같은 가족상의 관계가 있어 상속인이 된 걸까?
그러고 보면, 범인이 꼭 한 명일 필요는 없지. 혹시 열정적으로 교제 중인 오준수와 공범 내지 방조 및 종범? 🕵️
💼 용의자 3 골동품상 오준수: 세련된 외모에 젠틀한 말투. 골동품처럼 묘한 이미지.
“우리 중에 범인은 없습니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어차피 늙어 죽을 노인네 목에 가위를 꽂진 않죠.”
사건 당일 바이엘 하를 만나는 약속이 있었다. 바이엘 하와는 고객 관계이다.
바이엘 하가 조선시대 칠기장을 팔겠다는 글을 당근마켓에 올렸고, 오준수는 그 글에 관심을 갖고 접근. 🏺
미용실에서 잡지책 비슷한 거, 그러니까 홍콩 여행책을 읽다가,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퇴장한다. 이어 차량의 주차 상태가 걱정되어 가방을 들고 나갔다가 손가락을 다쳐 미용실로 돌아와 밴드를 찾는다.
📝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의사 소견을 쪽지로 적어 미용사 장미숙에게 건네거나 바이엘 하의 자살을 주장하는 등 뭔가 하는 행동이 좀 미심쩍단 말이야. 몸에 문제가 생겨 급전이 필요했을까?
연인 관계인 미용사 장미숙과 합심해서 일을 벌였을 가능성도 있지. 🕵️
💍 용의자 4 미용실 단골 한보현: 전형적인 부잣집 사모님.
“아냐,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했어!”
좀 허세가 있는 듯한 인물로 보인다. 또 푼수 느낌도 있다. 교양 있고 우아한 모습을 사건에 휘말려도 놓지 않으려 한다.
작중 4시 초반에 백화점 쇼핑백을 바리바리 들고 미용실에 방문한다. 예약 시간보다 늦게 온 건, 백화점에 할인하는 제품이 많았고 차가 막혔기 때문. 🛍️👜
홍콩 여행 이야기를 하며 미용실에 들어온 후, 한 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향수를 슬쩍한다든가, 좀 수상한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어딘가 묘한 스텐스를 취한다.
📋 처음에는 용의선상에서 제외했으나, 홍콩 여행 이야기가 좀 걸린단 말이지. 골동품상 오준수가 본 여행 책자도 주제가 홍콩 아니던가.
게다가 둘은 같은 동네에 사는데, 어쩌면 뭔가 접점이 있을지도. 🕵️
🕵️♂️ 강우진 형사: 딱 봐도 형사.
“누가 됐든… 범인은 잡아야 합니다!”
타고난 직감력과 두뇌로 카리스마 있게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왜인지는 몰라도 택배 유니폼을 입고 미용실에 방문해 면도를 요청한다.
사건 발생 후 1:1 심문 시간에 조호진, 오준수, 장미숙, 한보현 순서로 용의자들을 부른다. 이어 바이엘 하의 집에서 녹음되어 있던 카세트 테이프로 곡이 연주되었으며, 연주된 곡이 앞에 텀을 두고 테이프에 녹음되었음을 알려준다. ⏺️🎧
🔦 연주가 바이엘 하가 한 게 아니란 건데. 그럼 미용실 원장을 범인으로 몰기 위한 조작이었던 건가?
근데, 형사는 왜 미용실에서 잠복한 거지?
👮♂️ 조영민 형사: 얼핏 쓱 보면 형사.
“누가 됐든… 범인을 잡고 싶습니다!”
신참인지 어설픈 구석이 있다. 형사보다는 동네 파출소 신임 초짜 경찰 같다. 하지만 젊고 성실한 에너지로 수사를 돕는다. 사건 브리핑이나 법정 증거 관리, 용의자 감시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담당하는데, 막내라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타입.
쉬어매드니스 미용실의 첫 고객으로서, 머리를 감은 후 오준수를 감시하기 위해 따라 나가지만 놓친다. 😃
선배 형사고 후배 신참 형사고, 딱 봐도 형사, 그냥 슥 봐도 형사이다. 그렇게 다 티나면, 그 시점에서 이미 잠복이고 뭐고 물 건너간 거 아닐까?
🎹 바이엘 하: 과거 잘 나갔던 유명 피아니스트, 사건의 피해자.
극중 등장도 없고, 목소리도 안 나온다. 15년 전 공연 중 있었던 모종의 사건으로 휴식기에 들어갔다. 약물 스캔들에 연루되어 신경 쇠약에 걸렸다.
조선시대 칠기장을 팔기 위해 골동품상 오준수의 고객이 된다. 장미숙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가 칠기장 안에 있었다. ♥️
건물주로서 자택에서 지내다가, 사건 당일 4시쯤 오준수를 만날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약속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용의자에 의해 사망했다. 왼쪽 목이 가위에 찔려 과다 출혈에 따른 쇼크로 즉사. ✂️
사망 시간대는 오후 4시부터 4시 20분 사이로 추정되었는데, 정확한 사망 시각은 오후 4시 10분으로 판명되었다.
바이엘 하가 골동품상 오준수의 협박을 우려해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면, 형사들의 난데없는 미용실 잠복에 개연성이 생기긴 하는데.
어쩌면 이 바이엘 하가 이 연극에서 최대 불쌍한 캐릭터가 아닐까? 등장도 없이 다짜고짜 사망이라니!
🎭 이 시점, 여기서~
우리, 그러니까 관객들은 목격자이자 사건의 배심원이 되고, 형사들이 수사하며 용의자들을 심문할 때 관객 역시 직접 용의자들에게 수상한 행동들,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다.
나도 열심히 연극 듣고 머릿속으로 장면 재구성하며, 기회가 왔을 때 오른손 번쩍 들고 질문했다.
👩🦯 “오준수 선생님! 손은 어디서, 어떻게, 왜, 어쩌다 다친 거죠?” 🕵️♀️
배우님 왈, 화장실 갔다가 주차된 차가 걱정되어 확인하러 나갔단다. 차 트렁크에 가방을 넣고 오는데, 타이어 근처에 웬 유리병 조각이 있어서 그거 줍다가 스윽~샥~ 피를 봤다는데.
👩🦯 추리소설 꾸준히 읽은 독자인 내 의심은 이랬다.
자고로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긴다고, 흉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그걸 휘두를 경우 그 미숙함으로 인해 공격하는 쪽도 상처를 입는다. 일명 ‘공격흔’이다.
골동품상 오준수의 손에 생긴 그 상처가 공격흔 아닐까? 🕵️♀️🕵️
좌우간, 연극 중반에 투표를 하는데, 그때까지의 정황을 토대로 관객들에게 범인인 것 같은 사람을 묻는다. 일명 여론조사. 🙋♀️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그날 그 공연의 범인이 결정되는 거다.
이러니, 매 공연마다 수사 내용이나 범인을 특정한 근거, 그리고 범인까지 연극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그래서 더 재미있고, 몇 번이나 봐도 좋은 연극이 된 게 아닐까 싶다. 👍
🎭 공연 피날레에서 조명 다 끄고 그날 그 공연의 범인인 사람 말고도, 다른 용의자들, 그러니까 미용실 원장 조호진, 미용사 장미숙, 단골 손님 한보현이 의미심장한 대사 날리며, 자신들의 범인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대체 그들은 또 어떤 사연으로 바이엘 하에게 가위를 휘두른 것일까 또 다른 숨은그림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소위 N번차 관람을 부르는 연극, 쉬어매드니스였다. 😁
첫댓글 관객 참여형 연극 관람은 처음.
신세계를 본듯.
집중도가 높은. 작품이였다. 왜냐면 한 동작 한 귀절 대사를 놓치면 참여 기회가 박탈 될까봐.
딸내미 덕에 요즘 컬처 르네상스?
직업적 가치는 평등하지만 열정적 공연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