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세례 (1510)
피에트로 페루지노
움브리아에서 태어난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45-1523)는
대표적인 초기 르네상스 대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상업적으로 꽤 성공했다.
페루지노는 두 개의 공방을 운영했는데,
하나는 피렌체에, 다른 하나는 페루자에 있었다.
그의 명성이 라파엘로의 명성에 가려지기 전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그의 작품은 잘 팔려나갔다.
페루지노는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초기의 구성을 타성적으로 반복하여 같은 작품을 그려냈는데,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그의 작품에서 독창성이 부족하다며 비판했다.
그는 안드레아 베로키오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게서 그림을 배웠는데,
그의 공간 구성법과 원근법의 사용, 맑고 깨끗한 색조에서
이 두 대가로부터 영향 받았음이 엿보인다.
페루지노는 피렌체의 우아한 인물 형상들과 움브리아의 풍경을 종종 대칭되게,
그러면서도 항상 균형을 이룬 구도로 배치했다.
그가 1510년경에 그렸고 현재 페루자 움브리아 국립 미술관에 있는
<그리스도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으로
원래 페루자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의 제단화 가운데 한 작품이었고,
피렌체 화풍의 인물 표현 양식과 움브리아 화풍의 공간 구조를 혼합한
독창적 화면 구성법을 보여준다.
작품은 세로 길이가 긴 직사각형 형태로
화면 중앙에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다.
세례로 공생활을 시작한 ‘하느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마르 1,9)
그 옆으로는 천사들이 세례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흰 비둘기 형상으로 날개를 활짝 편 채
예수님 위로 내려오고 있다.
성경은 이 순간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 22)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하느님의 의로움을 행하시고,
사람들을 돌보시다다 묵묵히 고난 받는 하느님의 종이 되셨다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신앙고백이다.
성령을 비둘기 형상으로 표현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성령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다.
즉 예수님 세례 때 성령께서 함께 하셨음을
모두가 보았다는 객관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성령을 비둘기 형상으로 묘사한 것은 유다인들이 전통적으로 비둘기를
이스라엘과 동일시해 이 세상에 내려오는 하느님 사랑을 가리키는 영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비둘기 형상의 성령 주위에는 천사들이 성령을 호위하며
예수님의 세례를 목격하고 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있는 그림의 배경은 요르단 강가의 황량한 사막이 아니라
이탈리아 페루자의 푸르른 산야를 보여준다.
페루지노의 작품 하단에는 이름 모를 한 식물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는 신체의 병을 치료하는 약초를 대비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통해
온 인류가 영적으로 치유되고 구원받았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