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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역부족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인야는 그동안 내내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소식을 받았다.
독일을 떠나오면서 거의 막바지에 있었던 일인데, 미국인이 인야의 작품 자료를 뉴욕의 한 미술관에 보여주겠다고 가져갔던 일은, 미술관 측이 썩 관심을 갖지 않아서 중단됐다는 것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이런저런 악재 속에서도 내심 그 하나만큼은 잘 풀리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외부에 알려지면 부정이라도 탈까 봐 혼자서만 애를 태우며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난 것이었다.
온몸에서 힘이 좍 빠져나갔다.
약속을 지키려 애쓴 그 사람의 노력을 생각하면 감사해야 마땅했지만, 결과가 너무 서글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인야는 마음을 접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금 정신을 바짝 차리자고 다짐했다.
그날은 밖에 나가지 않았다.
기운도 없고 의욕도 바닥나 아시안 게임 경기를 본다는 핑계로 누님의 아파트에만 머물렀다.
날씨만큼이나 집안 분위기도 우울했다. 인야에게는 달리 갈 곳도 없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미국에 사는 H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언제나 한결같아서 인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앞으론 어떡할 거야?"라는 H의 물음에,
"글쎄, 이러다가 영 견디기 힘들면... 또 어디론가 떠나야 하지 않을까?" 하고 답했다.
정말 또 떠나야 하는 것일까. 가야 한다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제는 어떤 모습으로 떠나야 하며, 늙으신 어머니를 두고 어딜 간단 말인가. 물론 당장 떠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하늘이 야속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누구를 탓하랴. 다 인야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두려움과 무서움이 엄습했다.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싶었지만, 마주하는 현실마다 그의 기를 꺾어놓을 뿐이었다.
뉴욕 미술관과의 일이 무산된 것은 설상가상으로 큰 낙담을 안겼다.
그런 처지에 스스로를 천재라 부르며 자화자찬을 했다니, 인야는 차라리 낯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니 무슨 힘이 나겠는가. 그럼에도 과거에는,
'그들이 나를 못 알아볼 수도 있어. 고흐 역시 당대에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결국 후세에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았잖아?' 하는 심정으로 붓을 놓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인야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방 안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그림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모든 노력이 다 쓰레기에 불과하단 말인가. 일흔이 다 되도록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 가난에 허덕이는 처지를 보니, 그동안 괜히 헛힘만 쓰고 살아온 것 같아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포기하는 순간 삶 자체가 무너질 테니까. 결국 그는 한동안 멍하니 넋을 잃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촌 작업실에 나와 인야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비록 어두운 지하실이지만 그나마 찾아올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처지였다.
외국에서 돌아올 때마다 이런 무기력한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이 굴레가 싫어서 한국을 떠났었건만, 돌아오면 어김없이 같은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다.
날이 부쩍 차가워졌는데, 겨울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하다못해 흙 작업이라도 해보려고 판을 벌였지만, 흙이 너무 질어서... 그저 펼쳐놓기만 했다.
온종일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으나 마땅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허무하게 하루가 저물었다.
다음 날도 신촌 작업실로 향했다.
전날 꺼내둔 흙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인야는 그 흙을 주물러가며 작품 하나를 거의 완성해 냈다.
마음 같아서는 곧장 석고를 뜨고 싶었지만, 석고를 사는 비용도 부담인 데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이라...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모든 일이 결국 돈과 직결되었다. 매사 돈에 부딪히다 보니 인야는 날로 의기소침해졌다.
사람을 만나든 무엇을 하든 길을 찾아야 했건만, 무의미하게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세상을 원망하며 신세 타령을 하다가도 이내 자책하기를 반복했다.
겨우 마음을 다잡아도 기회들은 늘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아파트에 돌아와 밤을 보내는 동안 전화벨이 몇 번 울렸으나, 인야를 찾는 연락은 단 한 통도 없었다.
그렇게 인야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듯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 허무하고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 날도 인야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니 세상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간신히 연결되어 있던 일들마저 흐지부지 사라지거나 꼬리를 감춰버렸다.
신촌 작업실로 가 전날 하던 작업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작업을 간단히 시작했다.
'이 짓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으면서도 흙을 놓을 수는 없었다. 멍하게 앉아 있어봤자 무기력함만 더해질 뿐이었으니까.
물론 흥이 나서 하는 일은 아니었기에, 그날 역시 가라앉은 기분으로 누님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스스로가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제 군산에 가도 온전히 머물 곳이 없었다. 형님 집에 묵을 수는 있겠지만, 예전처럼 어머니를 간호한다는 뚜렷한 명목이 없으니 형수의 눈치가 보일 게 뻔했다. 그렇다고 지금 지내는 누님 집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사방이 불편한 처지임에도 어쩔 수 없이 얹혀살아야 하는 현실이 딱했다.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처량했다.
그날도 어머니께 전화를 걸려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마땅히 드릴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지만, 지금의 삶은 그런 소식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지난밤에는 꿈속에서 누님과 격렬하게 다투었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깨어나서도 한동안 씩씩거릴 정도였다.
답답한 집구석을 벗어나 어디로든 나가야 했지만, 정작 갈 곳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날은 신촌 작업실에서 흙 작업 하나를 끝 마쳤다.
예전 독일에 있을 때 그렸던 드로잉 '주여,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를 흙으로 옮긴 작품이었다.
'기도를 한들 들어주기나 하겠느냐, 그런 쓸데없는 기도를 왜 하느냐'는 냉소적인 의미를 담아, 어머니가 믿는 천주교의 기도를 비꼬는 의도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형태로 완성해 놓고 보니 제법 마음에 들어 오랜만에 기분이 다소 살아났다.
내내 우울하던 차에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와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래, 나에게는 아직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살아있어. 이건 예술가가 아니라면 누릴 수 없는 귀중한 사치야. 그런 면에서 나는 여전히 특별한 사람일지도 몰라.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내 작업을 이어 나가야 해.'
인야는 그렇게 잠시나마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적 망상에 젖어보았다.
고양된 기분으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수화기 너머로,
"어디 좋은 소식은 없냐?" 하는 물음이 돌아왔다.
순간 인야는 말문이 턱 막혔다. 어물거리다 겨우 전화를 끊고 나니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 우리 어머니께 기쁜 소식을 드리고 싶은데, 오래 사시지 못할 늙으신 어머니를 조금 편하게 모시고 싶은데... 그것은 진정 꿈이란 말인가?'
낙담해 있던 차에, 마침 J 선생님이 작업실에 오셨다.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다 자연스럽게 대학 교수 채용 이야기로 흘러갔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인야가 지원한 대학에는 이미 지방대의 한 교수가 막강한 배경을 등에 업고 서울로 올라오기로 내정되어... 사실상 임용이 확정된 상태라고 했다.
서류를 냈던 노력이 또다시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탈락했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비록 쓰라린 소식이었지만, J 선생님의 인맥 덕분에 일찍이 전말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니... 그분께는 감사를 표해야 했다.
선생님은 위로의 뜻으로 저녁을 사겠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어서 사양했으나, 완강한 권유에 못 이겨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식사하는 동안은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며 자리를 지켰지만, 그분과 헤어진 후... 인야는 자신이 어떻게 산본의 집까지 돌아왔는지 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이틀 뒤, 그날은 J 선생님이 소개해 준 출판사를 방문했다.
그러나 그곳 역시 인야의 작업 방향과는 맞지 않는 듯했다.
출판사 사장은 인야가 보낸 디스켓을 열어보지도 않은 상태였고, 게다가 그림이 많이 들어가는 책 특성상 제작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인야는 또다시 멍해졌다.
자신이 손대는 일마다 한결같이 안 되는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책을 엮는 일마저 접어야 하는 걸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나에게 허락된 구멍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런 절망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하늘에 의지하려는 스스로가 우스웠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주여,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를 만들며 신을 비꼬던 자가 아니었던가.
컴퓨터 조작 미숙으로 파일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최근 며칠간 공들여 쓴 일기가 한순간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복구할 방법이 없었다.
인야의 가장 최근 과거가 기록 속에서 영영 사라진 셈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다시 쓸 수는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종이에 쓰는 글 대신 컴퓨터 맛을 들인 다음부터는 쉽게 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니, 이젠 글씨 쓰기도 낯설고 글씨도 엉망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고, 인야 자신도 거기에 따라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당한 것이었다.
기분이 찝찝하다 못해 마치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기도 했다.
연말이 다가오니 군산의 어머니를 찾아뵈어야 하는데, 무거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잊으려 신촌 작업실에서 밤낮없이 몸을 굴렸다.
석고 뜨는 작업에 매달렸는데, 어찌나 바쁘고 정신이 없던지,
'누가 나 대신 화장실이라도 다녀와 줬으면 좋겠다!'는 황당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간신히 작품 두 개를 석고로 떠냈다. 다음 날 다시 작업실에 가 흙을 긁어내고, 나중에 테라코타로 구워낼 계산이었다.
오랜만에 고된 노동을 마치고 나니, 육체의 피로와 나른함이 몰려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그 과로 탓이었을까. 밤새 속이 심하게 쓰려 몸부림치느라 잠을 설쳤다. 한동안 잠잠하던 위염 증세가 도진 모양이었다.
다시 신촌으로 가 어제 작업한 석고틀을 뒤집고 흙을 벗겨냈다.
작업을 마친 후,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D 여인을 만났다. 독일에서 돌아온 이후 첫 재회였다.
그녀는 여전히 낙천적이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인야의 팍팍한 근황을 듣더니, 자신에게 원고를 넘겨달라고 했다. 자기 아는 사람에게 한 번 보여주고 뭔가 일을 꾸며보자고.
집으로 돌아오니 누님이 동지를 맞아 팥죽을 끓여놓아 그것으로 저녁을 때웠다.
오늘이 동지라는 것이었고, 일년 중 가장 긴 밤인데... 무기력이 온몸을 휩쌌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런 날일수록 인야의 마음이 심란했다. 자신의 처지에 굳이 아름답고 즐거운 일을 찾는 건 아니지만, 주변 분위기가 들뜨다 보니 역으로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봄날 같이 기온이 높아 전혀 크리스마스 기분이 나질 않았다. 거리와 지하철에 사람들의 통행량이 평소보다 많은 것 같았지만, 인야는 신촌 작업실에 가서 그저 멍하고 앉아있었다. 몇 시간을 한 일 없이 그저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해 뭔가를 생각하긴 했지만 모두가 우울한 것들뿐이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런 날일수록 인야의 마음이 심란했다.
자신의 처지에 굳이 아름답고 즐거운 일을 찾는 건 아니지만, 주변 분위기가 들뜨다 보니 역으로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봄날 같이 기온이 높아, 전혀 크리스마스 기분이 나질 않았다.
거리와 지하철에 사람들의 통행량이 평소보다 많은 것 같았지만, 인야는 신촌 작업실에 가서 그저 멍하고 앉아있었다. 몇 시간을 한 일 없이 그저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물론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뭔가를 생각하긴 했지만 모두가 우울한 것들뿐이었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려고 애를 쓰긴 했지만, 그런 의지도 이내 꺾이고 만 듯했다.
집에 돌아오며 아파트 사이로 하늘을 보니 별만 초롱초롱 떠 있었다.
크리스마스였다. 빌어먹을 크리스마스였다.
이윽고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왔다. 세상이 들뜨는 날일수록 인야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심란해졌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대단한 즐거움을 바라는 것도 아니건만, 주변의 화려한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그의 우울을 극대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온이 봄날처럼 높아 성탄절 기분은 전혀 나지 않았다.
거리와 지하철은 연말을 즐기려는 인파로 북적였지만, 인야는 신촌 지하실에 처박혀 멍하니 시간을 죽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울한 생각의 타래만 굴릴 뿐이었다.
억지로 희망을 쥐어짜 보려 해도 불씨는 금세 꺼져버렸다. 귀갓길, 아파트 숲 사이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별들만 야속할 정도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였다. 빌어먹을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날, 인야는 왼종일 집에서 멕시코 벽화 책의 도판 확인 작업을 했다. 원래 신촌에 나갈 생각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는데,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다시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이렇게 덧없이 가는데, 나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결국 어머니를 붙들고 전화로나마 설득을 나섰다.
인야 자신의 삶은 평범한 이들의 궤적과 다르니, 어머니께서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히 가지시는 게 아들을 돕는 길이라고 모질게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그러겠노라 약속하셨다. 하지만 노모는 그 다짐을 온전히 붙들기에는 너무 기력이 쇠한 것인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밤중에 자다 깨어 자식 걱정에 다시금 속을 끓이시는 모양이었다.
인야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군산에 안 내려갈 수도 없으니 진퇴양난이었다.
'어머니를 찾아뵈어야 하는데 가면 역시 그 타령이고, 안 가자니 자식된 도리가 아니고. 어쨌거나 어머니는 눈이 빠져라 나만 기다리고 계시는데......'
누님의 집에서도 이제는 자리를 비워주어야 했다. 조카의 방을 빼앗다시피 차지하고 지낸 지 여러 날이었다.
아무리 혈육이라도 매일 제 방을 두고 겉돌아야 하는 조카의 불만이 쌓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인야에게는 독립할 경제적 능력도, 옮겨 갈 거처도 없었다. 갈 곳 없는 신세였다.
새벽녘, 타는 듯한 속 쓰림에 눈이 떠졌다. 부랴부랴 약을 찾아 먹고 누웠으나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구토 증세까지 밀려왔다. 화장실로 가려다 이내 가라앉아 변기 앞에 멍하니 앉아 새벽을 지새웠다.
신촌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도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수면 부족과 위통으로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더니, 배가 출출해져 구석에 있던 곰팡이 핀 가래떡을 잘라 구워 먹었더니... 신기하게도 속이 조금 가라앉았다.
지하실의 어둠 속에서 다시 멍청히 앉아 있었다. 딱히 할 일도, 갈 곳도 없었다.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한 시간 반이 넘는 지하철 길을 오가는 모습은, 겉보기엔 대단한 용무가 있는 사람 같았지만 실상은 유령과 다름없었다.
몸은 천근만천근 무거운데, 속은 알맹이가 다 빠져나간 듯 허전했다.
오직 시간을 때우기 위해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하루를 낭비했다.
어둠이 짙어진 후에야 신촌 지하를 벗어나 귀가 행 지하철에 올랐다.
아무런 감흥도, 생각도 없이 기계적으로 걷고 졸다 보니 어느새 다시 방 안이었다.
'이렇게 견디기 힘들어지면 결국 나는 또 정처 없이 떠나게 되는 걸까. 하지만 이제는 몸도 늙고 젊음의 패기도 남아있지 않은데...... 어머니를 위해 한국에 기필코 남겠노라 다짐했던 나는, 역설적이게도 다시 탈출을 꿈꾸고 있단 말인가.'
한 해의 마지막 일요일이 힘없이 저물었다.
밤중에 다시 눈이 떠졌다. 쓰라린 통증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일어나서 먹기 역겨운 겔형의 약을 먹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꿈을 수도 없이 꾸었고, 속이 쓰린 꿈도 꾸었다.
올해의 마지막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월요일이라 뭔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희망일까?'
그러고 보면, 인야는 월요일 아침에 뭔가 희망을 노래하는 낙관주의자일 수도 있었다.
'그래,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희망이라도 있어야, 이 지독한 삶을 하루라도 더 버텨낼 수 있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