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삶 : 어머님이 5일장에 감을 팔려고 무거운 감을 머리에 이고 험한 고개를 넘고 넘어 30리길을 걸어 가셨다. |
시골에서 살았던 우리 집의 뜰 안에는 백여 년 정도 되는 수령의 아름드리 고목 감나무가 5그루와 그 외 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가을이 되어 감이 익기 시작 하면 어머님은 감을 조금씩 땨서 시골의 5일 장날에 감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장터까지 약 30리(12km)의 험한 길을 걸어서 가셨다. 우리 집에는 일용에 쓸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재원이 감이었다. 초가을이 접어들면 감이 익어가기 시작한다. 감꼭지 부분이 붉어지고 푸른빛이 많은 설익는 감은 떫다. 장날이 다가오면 3일전에 설익은 감을 한 접 정도(100개)를 따서 옹기 단지에 감을 넣고 약간 뜨거운 물로 가득 붓는다. 떫은맛의 감을 삭히기 위해 따뜻한 물을 붓고 온기를 3일정도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불을 덮어 놓는다. 그렇게 해서 3일정도 지나면 감이 삭게 되고 떫은맛이 단맛으로 변한다. 어머니는 장날 새벽에 일찍 일어 나시어 감을 팔러 가셨다. 당시에는 버스가 운행되지 않았으며, 아스팔트 도로는 상상도 못했던 시대였다. 걸어 걸어서 가는 도중에 험한 '한티재'라고 하는 큰 고개도 넘어가야하는 고행 길을 무거운 감을 머리에 이고 장터에 가셨다, 장터에 도착해 감 장사꾼들이 오면, 가격을 흥정해서 매매가 이루어진다. 어머니는 감을 팔아 마련된 돈으로 일용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시어 또 삼 십리 길을 걸어서 집에 도착하면 저녁때가 되었다. 이것은 한가지 예를 든 것이며 힘든 삶을 살다 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어릴 때의 기억으로 상상의 이미지로 약간의 기법을 달리하여 몇 점을 그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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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작품은 제10회 현대미술 작은 그림 축전에 출품한 작품임(2022. 3.16-3.20. 인사동 한국미술관 3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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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작품은 제1회 대한민국생활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서양화 금상을 수상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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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20여채의 집이 있었으며 감나무 한 두그루가 있는 집이 많았다' 어떤 날은 마을 아주머니들과 같이 갈 경우도 있었다. 우리집은 집터가 넓어 감나무가 많아서 곶감을 만들기도 하고, 감이 완전히 익으면 감장사들이 와서 많이 열린 감나무룰 대략 20-30접(1접 100개)으로 계산해서 팔릴 때도 있었다. |
첫댓글 ◆향원화백님, 추억이 담긴 좋은 작품들을 올려주셨습니다.
▶1930년‒50년대 우리네 삶은 참으로 힘든 삶이었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는 때가 허다했고, 용돈 마련하는 방법은 5일 장이 서면, 부모님께서는 땔나무나 감을 짊어지거나 머리에 이고 먼 길(차가 없어 30 리 길 걸어가는 것은 예사였음)가서 팔아, 필요한 물건을 사고, 조금 남는 돈은 자녀들 용돈으로 주곤 했지요.
▶참으로 힘들고 불쌍하게 살다 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