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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 ‘아동문학’ 속으로의 귀환
염희경
1. 탐정소설, 통속 대중문학이라는 인식
탐정(추리·모험)소설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탐정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소 도식적인 선악의 대비 속에서 마침내 선이 승리하며 명쾌한 해결을 제시하는 이 장르의 문학은 어린 독자는 물론 성인 독자들을 쉽게 흡수해버리는 매력이 있다.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을 맞춰갈 수 있게 촘촘히 짜인 구성과 세계를 무대로 장대하게 펼쳐지는 모험과 스릴 넘치는 탐정의 대활약, 독자를 허방에 빠뜨리기도 하는 속임수와 반전의 묘미 등은 흥미진진하다. 한창 지적 호기심이 강하고 혈기왕성한 아동청소년 독자들에게 이 장르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한편 아동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이 장르는 기성세대의 눈에 그리 곱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탐정·추리물이 다루는 세계가 ‘범죄’인 만큼 부정적 세계상 앞에 노출되는 독자들이 그 세계를 모방하고 탈선할지도 모른다는 지나친 교육적 관점이 대중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대중의 흥미에 영합하는 상업성 강한 통속문학, 즉 ‘싸구려’ 오락물이라는 탐정소설에 대한 인식은 이 장르가 탄생했던 당시부터 최근까지 일반에게 유포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정전(고전) 중심의 문학을 제도적으로 확립하고 재생산해내는 엘리트 문학주의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도 하다.
한국 아동 탐정소설은 그리 오랜 역사를 갖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순수 창작물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은 한국 아동문학 연구의 열악함을 반영하는 동시에 아동문학 내에서도 다양한 장르가 균형 있게 분화· 발달하지 못한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엔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동심주의 또는 현실주의 아동문학의 강한 자장 안에서 아동 탐정소설이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던 것을 그 한 이유로 들 수 있겠다. 그 때문에 이 장르는 저질의 문학을 양산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왔다.
이 글에서는 거칠게나마 한국 아동 탐정소설의 흐름을 살피고 아동 탐정소설의 유산이 빈약한 것인지, 아니면 비록 풍요롭다 할 수는 없지만 있는 유산조차도 제대로 돌아볼 줄 모르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배제해왔던 편협한 아동문학관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아동문학이 독자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문학인만큼 아동 독자들이 즐겨 읽는 탐정소설을 언제까지 번역 탐정소설이나 저급한 짜깁기식 창작물에 내주는 것은 작가나 연구자들의 직무유기는 아닌지 반성의 자리에서 살피고자 한다.
2. 한국 아동 탐정소설의 흐름
1) 아동 탐정소설의 개척자 방정환1)
방정환은 아동 탐정소설을 창작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 문학청년 시절에 외국의 탐정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보성문예부장으로 있을 때 문예친목회에서 모리스 루블랑의 탐정소설 팔일삼을 구연했는데 당시 번역되지 않았던 팔일삼을 청중 앞에서 구연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서 번역된 이 계열의 작품을 평소에도 즐겨 읽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정환은 영화계의 인기작들과 탐정소설을 영화잡지 녹성에 번역 소개할 정도로 대중문예에 상당히 관심이 높았다.2)
탐정소설과 관련하여 녹성에서 주목할 작품은 「아루다쓰」(일명 모루간)이다. 「편집을 마치고」에는 “아루다쓰는 특별한 뜻으로 기재하였으니 잘 읽어주시기”(89면)바란다는 당부의 말이 있다. 「아루다쓰」는 ‘장절쾌절 통쾌무비(壯絶快絶, 痛快無比)’라는 타이틀로 ‘대복수 대활극(大復讎 大活劇) 아루다쓰’로 소개되었다.3) 탐정소설에 전형적으로 나오는 음모와 살인, 복수, 두뇌싸움 등이 박진감 있게 잘 나타난 작품이다. 특히 1918년 우미관에서 「모루간」 6권이 상영되어 대인기를 끌었다는 소개로 보아 당시 청년층 사이에 대인기를 얻은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녹성에서 ‘특별한 뜻’으로 이 작품을 번역 소개한 이유가 무엇일까. 여기엔 여러 추측이 가능한데 먼저 친구와의 우정을 배신하고 죽음으로까지 몰아넣었던 배신자를 처단하는 것은 ‘정의와 인도’를 실현하는 일이라는 뜻을 번역자는 강하게 밝히고 있다. 이 ‘정의와 인도’는 당시 세계사조였던 ‘개조주의’와 천도교의 ‘개벽주의’가 표방한 모토였다. 또한 작품 내에서 주인공을 배신한 부하가 스코틀랜드 국왕의 비밀문서를 간직한 시종장을 죽였다는 또 다른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단순히 모르간과 친구, 그리고 부하 사이의 사적인 원한 관계를 넘어서 세계의 역동적인 구조와 역사 속에 개인의 삶을 배치한다.
이 작품의 전모를 알 수 없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방정환이 구연했던 팔일삼이 세계 각국의 식민지 쟁탈을 둘러싸고 음모와 배신이 일어났던 세계상을 반영한 작품이었던 것처럼 「아루다쓰」도 이런 맥락에서 조명되기를 바랐다고 볼 수 있다. 방정환이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던 1910년대, 1920년대는 세계의 열강들이 식민지 쟁탈을 둘러싸고 각축전을 벌인 시대였다. 한편 주인공을 악한으로 치부하며 진짜 악한을 돕는 명탐정과 경관들의 존재는 기득권층을 옹호하며 지배체제를 공고화하는 권력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식민권력의 억압 아래 놓여있던 당시의 조선 청년들에게는 그런 불의에 대항해 정의와 인도를 위해 싸우는 ‘아루다쓰’의 세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읽혔을 것이다.
녹성에는 그밖에도 ‘백원현상(懸賞)’을 걸고 탐정소설 「의문의 사(疑問의 死)」가 실린다. 번역자는 ‘복면귀(覆面鬼)’이다. ‘복면귀’는 말 그대로 ‘얼굴을 가린 귀신(또는 교활한 자)’인데 다른 지면에서 동일 필명은 발견되지 않지만, ‘복면’을 살린 ‘복면자(覆面子)’ ‘복면관(覆面冠)’ ‘복면객(覆面客)’ ‘복면여사(覆面女士)’ ‘복면시은(覆面市隱)’ ‘복면시음(覆面市陰)’ ‘복면기자(覆面記者)’ ‘복면생(覆面生)’ ‘복면아(覆面兒)’ 등 유사 필명이 다수 발견된다.4) 이 모두가 한 인물의 필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방정환의 필명 가운데 하나인 ‘일기자(一記者)’의 경우 잡지나 신문의 기자들이 익명으로 글을 쓸 때 흔히 썼던 필명인 것처럼 이 역시 ‘탐정’이나 ‘미행’ 등의 성격을 지닌 글이나 부정적 사안을 폭로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은밀히 가리고자 할 때 여러 필자들이 일반적으로 썼던 필명으로 추정된다.5)
발표 지면과 글의 성격을 볼 때 방정환의 필명일 가능성이 높은 글을 보면6), 녹성에 발표된 탐정소설 「아루다쓰」와 「의문의 사」는 방정환의 글이 거의 확실하다. 또한 학생에 발표된 ‘복면아’의 「석중선(石中船)」(학생, 1930.10, 영국 아사리스 원작)과 「괴살인사건(怪殺人事件)」(학생 1930.11, 미국 알란 포우 원작, 학생 종간으로 2회분 미수록)은 방정환의 번역으로 추정된다.
한편 방정환은 ‘북극성’이라는 필명으로 탐정소설 「누구의 죄?」를 번안하여 별건곤(1926.12)에 발표하기도 했다.7) 원작은 영국인 ‘로바드 마길’(로버트 마길)로 되어 있는데,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이성적 영웅인 탐정이 불가해한 범죄나 미궁에 빠진 사건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대중소설”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8) 살인을 당한 사람은 “별별 협잡군과 별별 사기사건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엄청나게 욕심을 부리는 빚쟁이”(116면) 즉, 고리대를 하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노인이다. 흥미롭게도 이 살인 사건의 범인은 바로 그 자신으로, 그의 인색이 자신을 죽음의 길로 이끌었다. 결말 부분에서 탐정은 “위대한 신령(神靈)의 정의의 칼이 그를 찌른 것이라고 할까요.”(122면)라고 말하며 “돌아간 노인의 가장 뛰어난 특질은 다만 인색한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래 결국 그 인색 때문에 찔려죽은 것”(122면)이라고 하면서 사건의 경위를 밝힌다. 원작이나 중역본이 미확인 상태라 확인할 수 없지만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탐정이 과연 ‘신령의 정의’ 운운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방정환이 번역을 하면서 덧붙인 부분으로 보이는데, 방정환이 이 작품을 선정하여 번역한 의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방정환은 1920년대 초에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빈부의 갈등과 계급적 적대감을 드러내는 발언을 했을 때처럼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독자의 흥미를 끄는 괴 살인사건을 다룬 탐정소설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물질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을 경고하는 의미에서 이 작품을 번역했던 것이다.
이처럼 방정환은 대중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소재를 다룬 탐정소설을 즐겨 번역하였다. 그런데 ‘흥미 본위’라는 그 표면의 기저에는 계급적 경향성이나 민족주의적 시각이 강렬히 내장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방정환은 어린이 창간호(1923.3)의 <남은 잉크>에서 “교훈담이나 수양담은 학교에서 많이 듣는 고로 여기서는 그냥 재미있게 놀자. 그러는 동안에, 모르는 동안에 저절로 깨끗하고 착한 마음이 자라가게 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이 책을 꾸몄습니다.”(12면)라고 어린이 편집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방정환의 이러한 생각은 어린이 창간 당시의 생각만이 아니라 방정환 문학의 핵심이며 아동문학에 대한 그의 일관된 태도였다. 동화의 생명을 아동에게 기쁨과 유쾌한 흥을 주는 것으로 보고 교육적 의미만을 지닌 채 흥미가 없다면 그것은 동화가 아닌 이언(俚諺)이라고 단언하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9)
이러한 생각은 다소 부정적인 대중문예로 여겨지던 활동사진이나 탐정소설을 방정환이 새롭게 조명하는 데로 이어지고 있다. 방정환은 탐정소설이 재미있고 좋은 것이지만 자칫 나쁜 활동사진이 그러하듯 어린이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음을 지적하면서 ‘재미’와 ‘유익’을 줄 수 있는 탐정소설을 쓰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10)
방정환이 아동문학의 제 장르 가운데에서도 탐정소설을 방정환이 적극적으로 개척한 데에는 탐정소설이 지닌 대중성과 장르적 특성을 정확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탐정소설을 비롯한 대중문예의 매력을 직접 경험했으며, 자기 문학의 한 자산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또한 방정환이 일본에서 유학할 당시 예술동화를 대표하는 아카이도리의 위력보다도 일본의 절대다수의 아동들이 대중아동잡지의 독자였다는 사실과 그들을 사로잡았던 대표적 장르가 바로 모험․탐정소설, 입신성공소설이었음을 직접 경험했던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11)
그렇다면 방정환이 대중문예의 통속성이나 저급성을 경계하면서도 대중문예에서의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왜일까. 그것은 바로 대중문예가 지닌 대중과의 친밀성 때문이며 대중문예가 대중에게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인식했기 때문이다.12) 방정환은 「민중오락 활동사진 이야기」에서 대중오락이 대중의 생각을 지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음을 간파하면서 조선 총독부의 문화 통치 방식을 은근히 비판한다. 그는 대중문예를 통해, 특히 어린이에게 주는 문학을 통해 어린이에게 친밀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그 무엇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유익’의 내용은 방정환이 추구했던 ‘계몽성’으로, 그가 아동문화운동을 펼치면서 아동의 인격과 감성, 민족의 해방이라는 차원에서의 운동성이다.
하지만 방정환이 추구한 ‘유익’을 내용 편중의 계몽성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대중문예의 ‘재미’와 ‘유익’을 살펴볼 때, 방정환이 생각한 ‘유익’은 내용의 계몽성보다 더 큰 차원인 예술의 효용성이다. 방정환은 도회 사람, 특히 ‘뇌신경 노동자’들이 희극사진을 주로 찾는 것을 “심신 피곤의 훌륭한 세탁”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스크린을 찾는 관객 중에는 저마다 온갖 다른 설움과 불평과 분노를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음을 주목한다.13) 이는 방정환이 대중문예가 지닌 유익을 내용의 계몽성만이 아닌 현실의 삶을 대리 체험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하는 예술 고유의 효용성을 염두에 두었음을 의미한다. 즉 독자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예술은 그 자체로 유익한 것이다. 이것은 대중문예를 통속성이라는 이름으로 저급하게 치부하며 대중이 실제로 즐기는 예술을 방치하고 고급한 전문적 문학예술을 추구한 엘리트 작가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14)
이처럼 방정환은 아동문학의 독자인 아동과의 관련 속에서 대중성과 계몽성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재미’와 ‘유익’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의 문학이 ‘민중=대중’ 지향이었음을 의미한다.
방정환이 아동 탐정소설을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이전에 외국의 탐정소설을 번역했던 점, 그 작품의 내용이 계급적· 민족적 저항의 색채가 강했던 점, 그리고 방정환의 문학관이 강력한 ‘민중문학=대중문예’의 성격이 강했던 점들은 방정환의 아동 탐정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길잡이이다.
소년소설 가운데에서도 방정환이 주력한 장르는 탐정소설이다. 방정환의 아동 탐정소설은 중편 「동생을 찾으러」(어린이 1925.1~10)와 장편 칠칠단의 비밀 (어린이 1926.4~12), 그리고 미완에 그친 「소년 삼태성」(어린이 1929.1)과 「소년 사천왕」(어린이 1929.9~1930.12) 등 모두 네 편이다.15)
방정환은 「소년 사천왕」의 첫회분에 「소년 삼태성」과는 “아주 생판 다른 것”(35면)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소년 삼태성」에 등장하는 민족주의자인 교사상을 잇고 있는 강 선생이 등장하고 그 교사를 따르는 의협심 강하고 용기 있는 네 명의 소년소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소년 삼태성」을 의식적으로 잇고 창작한 작품이다. 그 넷 가운데 한 소년이 실종되어 세 동무와 친구 누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찾아 조선에서 중국으로 모험을 감행한다. 이 작품 역시 아쉽게도 중단되고 만다. 특히 이전의 「동생을 찾으러」와 「칠칠단의 비밀」에서 여자 아이는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약한 존재로, 남자 아이는 그런 여동생을 구해주는 인물로 설정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주체를 소년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소년 사천왕」에서는 침착한 성격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인물로 여자 아이 혜숙을 등장시키고, 두 소년이 악당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도록 자극하며 도와주는 인물로 “여자인 만큼 차근차근하고 꾀가 많으면서도 남자 이상으로 활달한”(1930.9, 41면) 동석의 누님을 설정하여 소년 중심의 탐정소설에 소녀를 등장시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탐정․모험소설은 흔히 남성적 장르로 국한되기 쉬운데 여기에 소녀들을 등장시켜 적극적으로 활약하게 함으로써 어린이지의 소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방법으로도 이용하려 했다고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다수 독자의 확보라는 점을 넘어서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로 부각된다.
방정환의 탐정소설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대한 이해 부분이다. 「동생을 찾으러」와 「칠칠단의 비밀」에는 유독 조선인이 겪는 부당한 현실에 무감각한 경찰들의 태도를 부각하여 비판적으로 읽도록 유도한다.
「동생을 찾으러」에서는 실종된 여동생을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펼치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간간히 서술하다가16) 다음의 대목에서는 이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
(창호는 학교도 그만 두고 그 길로 편지를 쥐고 경찰서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나 경찰서에서도 그 편지뿐만으로는 찾기가 어렵다는 섭섭한 대답이었습니다.)
밤을 새인 당직 순사가 두세 사람 모자도 안 쓰고 둘러앉아서 담배만 피우고 있었습니다.
창호는 들어서자마자 모자를 벗어들고 숨찬 소리로 급급하게 온 뜻을 말하고 지금도 내누의 동생이 갇혀있으니 나하고 같이 그 집으로 가자고 졸랐습니다. 그러나 순사들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은 것같이
“무어..... 네 동생이 청국사람에게 잡혀서 어쨌단 말이냐”하고 몹시 태평입니다.
청호는 그만 급한 마음에 ‘귀가 먹었느냐’고 욕을 하고 싶었으나 꿀덕꿀덕 참으면서 다시 한번 처음부터 자세자세 이이기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순사들은 큰일 났다고 놀래줄 줄로 창호는 생각하였더니 순사들은 ‘강아지가 자동차에 치었다’는 일보다도 신기치 않게 듣는 모양이었습니다.
옛날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흥! 청국놈에게 잡혀갔으면 찾는 수가 있나 아주 잃어버렸지...... 왜 요새 그런 일이 신문에도 자주 나는데 집에서 아이 감독을 잘하지 않았어!” (어린이 1929.6, 28~29면)
경찰 당국에 대한 비판이 창호의 눈에 비친 경찰의 태평한 모습으로, 또한 오히려 실종 당사자의 부주의와 그 가족의 감독 소홀로 돌리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의 무책임한 수사 태도로 일이 더욱 꼬여 동생을 더욱 찾기 힘든 상황으로 악화된다. 결국 사건은 주인공과 그를 도와주는 조선인 선생님과 그 제자들, 그리고 타 지역 소년회의 연대를 통해 해결된다. “뜻도 하지 아니한 최 선생님이 머리 굵은 학생 십여 명을 데리고 경관이나 군대의 일대(一隊)처럼”(어린이 1925.7, 41면) 주인공을 돕기 위해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경관이나 군대’가 식민지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식민 통치의 도구로만 존재했던 당시 현실에서 조선 민족의 자치와 단결만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방정환은 탐정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민족주의 사상을 심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소년회는 나아가 “구원병인 소년대”(어린이 1925.10, 45면)로 표현된다. 당시의 소년운동과 소년회는 단순히 계몽운동 차원에서가 아니라 식민지 현실에서 미래의 민족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기초 단위, 즉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 기구의 기초 단위와 다를 바 없다. 서구에서 보통학교의 확립 과정이 일반적으로 산업노동자형 인간 만들기와 밀접히 관련되었다면 식민지 보통교육에서는 그 강화와 함께 병사형 인간을 만들어 내려는 지향을 가졌다.17) 이와는 대척의 자리에서 민족교육을 주창했던 사람들에게는 반식민적 지향에서 또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근대적 주체’가 요청되었다. 식민교육뿐 아니라 당시의 민족교육에서 무엇보다도 강조했던 ‘체육’ 교육이 건강한 신체의 단련을 통해 조직적 통제와 훈육을 내면화하고 미래의 ‘병사’ 또는 ‘국민’의 양성이라는 취지에서 그 기초 단위인 어린이들을 기르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던 것이다.18) 다만 일제가 식민지 규율을 내면화하고 ‘신민’으로 육성하고자 한 어린이들을 방정환을 비롯한 민족운동의 주체들은 적극적․소극적 저항으로서의 반식민적 관점에서 또 다른 이데올로기로 어린이를 양성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 사상은 방정환의 「칠칠단의 비밀」에서 더욱 강화된다.
「칠칠단의 비밀」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곡마단에 어릴 때 끌려가 부모도 조국도 알지 못하는 두 어린 남매가 학대받으며 곡마단의 광대로 지내다 조선에서의 첫 공연을 계기로 외삼촌을 만나 그 진실을 알게 된다. 어린 두 남매와 그를 도와주는 조선 학생, 그리고 소년회원들과 중국 봉천의 한입협회의 도움으로 납치와 감금, 탈출 등의 모험을 펼치면서 일본 곡마단이 실은 아편 밀매상이며 조선인 소녀들을 인신매매하여 중국에 팔아먹는 조직단임을 밝히고 그 부모를 찾게 된다는 줄거리의 탐정소설이다.
방정환은 「칠칠단의 비밀」의 첫 회부터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고 고향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린이, 1926.4, 30면)는 어린 두 남매가 어릴 때부터 “하루도 몇 번씩 피가 흐르게 두들겨”(30면) 맞는 등 온갖 학대를 받으며 돈벌이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비참한 신세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소년운동이 이중의 억압 아래 놓여있는 조선 어린이들의 해방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이 설정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즉 일본인에게 강제로 잡혀가 사육되며 학대당하는 어린 두 남매는 민족적 억압뿐 아니라 어른에게 학대 받는 당대 어린이의 현실을 잘 드러내주는 것이다.
소년 상호가 “자기의 근본을 알고, 본국을 찾고 부모를 찾고......그것이 우리들 평생의 소원이 아니었는가! 오늘 죽는다하여도 한탄이 없으니 내 부모 내 본국을 알아지이다 한 것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소원이 아니었는가!”(어린이, 1926.5, 43면) 하고 비창하게 울부짖는 대목이라든가 어린 남매를 잃어버린 뒤 화병으로 죽은 어머니와 죽은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중국으로 갔는지, 미국으로 갔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원수를 갚아야 한다! 원수를 갚아야 한다! 너의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그러고 너의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어린이, 1926. 10, 35면)라고 외삼촌이 부르짖는 대목은 식민 상태에 놓여있는 민족의 현실과 이로부터 해방되어야 함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생을 찾으러」에서 조선인 어린이 실종 사건을 수수방관한 경찰은 「칠칠단의 비밀」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악한의 편에 선다.19) 일본 경찰은 곡마단 단장을 도와 일사분란하게 도망간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악마의 소굴에서 힘겹게 탈출한 어린 두 남매는 결국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서 형사들에게 붙들리는 신세가 되고 곡마단 단장의 마누라와 부하는 “잃어버린 물건이나 찾으러 오듯이”(어린이 1926.11, 21면) 소녀를 다시 데려가고 외삼촌은 “남의 식구를 꾀어냈다는 유인죄로 감옥”(22면)에 갇히는 전도된 현실을 보여 준다.
“근처가 온통 형사천지”(어린이 1926.12, 27면)로 소년을 “잡으려고 발끈 뒤집”(27면)혀 있는 형사들과 곡마단 조직패의 추적을 따돌리며 중국으로 끌려간 동생을 찾기 위해 중국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간 주인공과 조선인 학생은 “중국놈의 경찰서도 믿을 수가 없”(어린이 1927.11․12, 49면)어 그곳에 있는 “조선 사람들의 회(모임)” 즉 “한인협회”를 찾아 도움을 청한다.
이처럼 「칠칠단의 비밀」의 결말에서 강조되는 것은 조선인 학생들이 서로 도우며 용기 있게 난관을 극복하는데, 해외에서 민족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인협회의 도움으로 조선의 현실 문제를 풀어가고자 했던 것이다.20) 결국 이들의 맹활약으로 두 남매는 다시 만나고 그곳 한인협회의 회장으로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어린 남매의 아버지여서 아버지도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결말 부분은 작위적인 설정이지만 가정적 불행을 극복하고 민족운동에 나선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민족주의 사상을 더욱 강조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방정환은 「칠칠단의 비밀」에서도 조선인 스스로, 조선인들만의 단결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의 해방 역시 서구 열강이나 주변국들의 도움이 아닌 우리 민족 자체의 역량으로 이루어나가야 함을 어린이들에게 심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독자들이 “탐정소설 속에 나오는 소년들과 같이 씩씩하고도 날쌔고 믿을 만한 일꾼”(어린이 1929.9, 35면)이 되기를 거듭 강조하였다. 그 일꾼은 다름 아닌 민족의 미래를 책임지고 개척해 나가는 미래의 주역이다.
방정환이 일련의 탐정소설을 창작할 당시의 신문에는 부녀 인신매매 사건들이 자주 실렸다.21) 특히 소녀 밀매와 관련하여 이 당시 중국인이 개입된 사건들이 적지 않게 보도되고 있다. 부모가 아편에 중독 되어 중국인에게 직접 판 경우도 있고 조선인 또는 중국인이 유괴․유인하여 매매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방정환은 탐정소설 특유의 긴박감 넘치는 사건 서술의 재미를 이용해 이러한 현실의 모순을 주목하고 소년들에게 지혜와 용기, 단결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길러주고 있는 것이다.22)
방정환의 아동 탐정소설은 모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자 하는 소년 특유의 심리적 특성인 생명력, 에너지, 열망 등을 작품을 통해 적극적으로 펼치도록 한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소 우연적인 사건 전개 등 미흡한 점이 발견되지만 아동 탐정소설을 개척했다는 점과 흥미 위주로 대중의 취미에 영합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강한 현실성을 내장한 문학이었던 점들이 주목될 필요가 있다. 또한 방정환의 탐정소설이 내포한 이데올로기와 그것이 현실에서 작동되는 논리 등에 대해서도 충분히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23)
2) 방정환 이후 아동 탐정소설의 흐름
1920년대의 아동 독자들은 탐정소설을 즐겨 읽었지만 이 분야를 힘써 일군 작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린이에는 방정환의 탐정소설 외에는 단 한 편의 탐정소설만이 발표되었다. 연성흠의 「용길의 기공」(어린이 1931.9)이 그것인데, ‘소년탐정소설’이라는 표제를 달고 발표된 단편이다.24) 신문사의 급사인 용길은 “영리하고 똑똑하기로 이름난 소년”으로 “탐정소설 같은 것을 재미있게 읽을 뿐 아니라 거기에 연구도 하는 것같이 보여서 어느 때든지 위험한 일에나 모험스런 일에 용감히 내달”(48면)으는 소년이다. 신문사에서 숙직을 하는 날 용길은 사장 별장에 도둑이 들었다는 전화를 받고 “훌륭히 활동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곳에 간다. 사장 부인이 외출한 사이 들어온 도둑은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부인을 피해 집안의 커다란 벽난로에 숨었다. 용길은 책상 밑에 두었던 과자가 없어진 것과 난로 주위에 과자부스러기가 떨어진 것을 보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난로에 불을 피우라고 해서 그 속에 숨어있던 도둑을 잡는 슬기를 발휘한다. 방정환의 탐정소설은 과학과 이성에 근거한 탐정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형태라기보다는 ‘몸’을 통한 활약으로 범인을 잡는 모험소설적 요소가 강하다. 반면 연성흠의 이 작품은 방정환 작품만큼의 긴장감이나 대활약이 펼쳐지지는 않지만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몇 가지 단서를 중심으로 범인을 잡는 ‘추리’ 중심의 탐정소설에 근접해있다. 하지만 추리 과정이나 사건 해결 과정이 교묘한 트릭이나 반전 없이 작가의 머리에서 구상된 것을 용길이라는 주인공으로 대체하여 순차적으로 풀어가는 방식이어서 구성의 탄탄함을 바탕으로 한 ‘놀라움’과 기발함을 획득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해 훨씬 재미가 떨어진다.
1920년대와 30년대 초 어린이에 방정환과 연성흠의 탐정소설이 발표되었다면 1930년대 후반 창작 아동 탐정소설은 소년지를 중심으로 발표되었다. 특히 본격 추리탐정소설을 창작하면서 문단에 등단한 김내성의 「백가면」(1937.6~1938.5(?))은 주목을 요한다.25) 연재 당시의 대중성을 기반으로 김내성의 백가면은 1938년 단행본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백가면의 내용을 살피면, 세계적 도적으로 유명한 ‘백가면’은 조선의 유명한 발명가 강박사를 납치하고 강박사가 개발한 신무기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은 비밀수첩을 빼앗기 위해 계략을 꾸미고 강박사의 아들과 그의 친구, 그리고 탐정소설가 유불란과 경찰 당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변장에 능하고 신출귀몰하는 백가면의 대활약과 그에 맞서 어린 소년들이 꾀를 내어 비밀수첩을 빼돌리는 과정이라든지 유불란의 활약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작품의 후반에 이르면 악당으로 알았던 ‘백가면’은 실은 세계적인 활동을 하며 강박사를 돕는 인물이자 오래 전 집을 나간 친구의 아버지임이 밝혀진다. 그는 강박사의 신무기 개발을 빼돌리려는 세계 열강의 스파이들로부터 강박사를 보호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백가면의 정체는 탐정소설가 유불란에 의해 파헤쳐지는데 범인 추적의 단서와 복선, 수수께끼 풀이식의 ‘지적 게임’과도 같은 전개가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사실은 유불란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명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당대 독자들을 사로잡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백가면」이 내포한 이데올로기와 그것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는 아세아의 일각을 흘겨보며 공포에 떨고 있는 사실을 시민제군은 아느냐(중략) 시민제군이어 이 비상시국에 처하는 제군은 베개를 높이하고 코를 골면서 안락의 꿈에 도취할 때가 아니라 우리의 적은 단지 한 사람의 백가면만이 아니라, 지금 호시를 부릅뜨고 강박사의 발명을 방해하려는,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기계에 관한 비밀서류를 빼앗고자 하는 야수와도 같은 전세계의 눈동자다.(중략) 장안은 지금 각국에서 파견된 스파이(군사탐정)들로 말미암아 일대 수라장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서로 백가면으로부터 비밀수첩을 빼앗아다가 자기네가 세계의 제왕이 되려고 쌈 싸우고 있는 것이다. (소년 1938.1, 85~86면, 강조는 인용자)
인용문은 백가면의 출현으로 서울 시내에 뿌려진 ‘호외’의 문구이다. 언뜻 조선인이 발명한 무기를 침략적 야욕을 불태우던 당시 서구 제국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 시각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실은 대공아 공영권을 주창하며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항해 비상시국을 선포하고 전쟁을 도발했던 일본 제국주의 논리에 일말의 비판도 없이 동원되는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작품의 결말부에 이르러 ‘백가면’으로 위장하고 비밀서류를 빼앗으려 한 인물들을 ‘중국사람’ ‘영국사람’ ‘러시아 사람’으로 설정하고 있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이 작품에서 유불란과 소년들은 경찰 당국에 협조를 구하고 경찰은 이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이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볼 때, 이는 위험한 발상이다. 김내성의 「백가면」에 이르러 한국 아동 탐정소설이 체제를 유지하는 논리로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은 과연 무리일까.
김내성의 「백가면」 이후 소년에 연재된 탐정소설은 박태원의 「소년 탐정단」(소년, 1938.6~1939.12)이다. 박태원은 어른 대상의 탐정소설 「금은탑」을 창작하기도 했는데, 「소년 탐정단」은 소년에 7회 연재되는데 마지막 회분이 소년지의 유실로 결말을 알 수 없다. 대략적인 내용은 동네에 도둑이 들고 소년들이 범인을 잡고자 수상한 사람들을 추적하며 모험을 벌이고 이에 주인공 소년의 외삼촌과 주변인물들이 가세하여 범인을 잡는 이야기이다. 소년들이 도둑 소굴에 가서 상황 파악을 하고자 할 때 유명한 사립탐정이 등장하여 도둑이 훔친 물건(물증)을 빼돌리려고 하는데, 실은 그동안 소년들이 의심했던 인물들과 외삼촌이 가짜 사립탐정의 정체를 파악하고 이를 저지하는 반전이 이루어진다. 마지막 회가 누락되어 가장 흥미진진한 반전 부분을 확인할 수 없는데, 소년들은 오히려 범죄에 이용당할 뻔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 소년들은 도둑 소굴을 찾아가기 전 순사에게 알려 도움을 받을까 하다가 일개 부하조직이라면 두목을 놓치게 될 것을 걱정하여 모험을 감행한다. 소년들의 모험을 강조하려다보니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를 보인 것이다. 또한 소년들을 둘러싼 어른들은 소년들의 보호자이자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결말부분이 낙질이어서 외삼촌이 가짜 탐정의 계략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었는지를 풀어가는 부분을 알 수는 없다. 독자들은 느닷없는 반전으로 긴장감과 흥미를 느낄 수 있지만 작가가 흩뿌려놓은 여러 단서들을 독자들이 추리를 해가면서 범인이 누구일지를 해결해가는 방식의 능란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박태원의 소년 탐정단(글벗집, 1950)은 잡지 연재 당시의 인기를 기반으로 이후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한편, 영인본 소년지에도 김내성과 박태원의 탐정소설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탐정소설이 연재되지 않는다.
이재철은 한국현대아동문학사에서 1950년대의 아동문단을 상업적 대중 잡지와 단행본들이 범람했던 시기로, 이 시기의 몰현실적 경향 속에서 명랑소설, 모험탐정소설, 공상과학소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는 명랑소설과 모험탐정 및 공상과학소설이 나름의 가치를 지니지만26), 전자는 불행한 현실에서의 비겁한 도피로, 후자는 “저속한 외국 탐정소설의 왜곡 도용이거나 모조 날조한 작품들”27)로 그것의 본래 목적은 이미 무위로 돌아갔다고 평가한다. 더욱이 이와 같은 명랑, 모험 탐정, 공상과학소설 등은 비현실성을 드러낼 뿐 아니라 아동의 흥미 충족만을 위한 단순한 오락물이었을 뿐이라고 평가한다. 나아가 교훈성마저도 외면한 용기만이 과잉 상태였다고 평가하고 있다.28)
이 시기의 대표적 모험탐정소설은 방인근의 소영웅(문성당, 1953), 김내성의 비밀 가면(1953)과 똘똘이의 모험(문성당, 1958), 조남사의 「수돌이의 모험」(새벗 5권 6호부터 연재), 박익보의 「녹색 태극기의 비밀」(소년세계 5권 1호~5권 4호 연재, 중단) 등이다. 29)이러한 평가를 통해 1950년대의 탐정모험소설의 대략적 경향을 엿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작품 분석을 바탕으로 한 평가가 치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해방 이후 탐정소설을 다수 창작했던 방인근은 「탐정소설론」에서 한국이 좁은 지역에다가 생활도 단순해서 탐정소설의 배경이 될 만한 것이 적고 무대가 좁아 순수 창작이 나오기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그 때문에 무대를 외국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자연스럽고 실감이 적으며 우리 현실과 직접 부딪치는 것이 약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배경과 무대가 좁더라도 우리 것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전쟁과 공산당의 지하공작, 6·25때 대한청년들이 잠복하던 것, 학살사건 등 좋은 재료가 많다”며 “지리산, 한라산 등 공비토벌과 그들을 잡는 피맺히는 사실 등은 보통소설보다는 탐정소설로서 훌륭한 것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30) 이러한 발언은 1950년대 이래 60·70년대를 거쳐 ‘범인=간첩’이라는 등식으로 간첩 잡기에 몰려다니는 소년들을 주인공으로 한 탐정소설들이 적지 않게 양산되었던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러한 아동 탐정소설은 반공동화의 변질된 또 다른 형태로 독자들에게 강한 체제 재생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강력한 도구였다.
유일한 본격아동문학사 저술이라 할 이재철의 한국현대아동문학사가 다루는 시기는 1960년대까지인데다 현재 아동문학 연구는 여전히 근대아동문학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아동문학 잡지와 작가 연구, 작품론 등은 여전히 자료 정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1950년대 이후의 탐정소설의 흐름을 살피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더욱이 이 당시의 만화, 단행본이나 출판사의 기획 출판(편집부 기획), 외국 명작들의 무더기 번역 출판 상황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이 시기 탐정소설의 흐름과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1970년대에 계림문고나 클로버문고 등에서 외국의 명작 등을 소개하고 탐정만화류 등도 출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연구가 진척되어야 할 것이다. 그 당시 셜록 홈즈나 괴도 루팡 등 외국의 유명한 탐정소설들이 아동용으로 출판되어 다수의 독자들을 확보했던 사실들도 중요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클로버문고 가운데 김현각의 창작 탐정소설인 깨어진 백자(어문각, 1975)가 단행본으로 출판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작품들을 쉽게 구할 수 없기에 연구의 어려움이 따른다. 작품 목록을 마련하고 작품 분석을 토대로 근현대 아동 탐정소설의 계보를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일이 요구된다.
3. 새로운 도전, 플루토 비밀 결사대와 화학탐정, 사라진 수재를 찾아라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문학계에서 대중문학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연애소설’ ‘과학소설’ ‘신문소설’ ‘추리소설’ 등 이른바 각 장르소설들이 본격적으로 연구의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논의와 관련해서 ‘추리소설’ 부분의 연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체로 외국의 추리소설에 대한 이론의 소개나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동 탐정소설에 대한 논의는 전무한 상태이다. 번역·창작 추리·탐정소설 목록을 보더라도 아동물은 제대로 된 자료 정리조차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여전히 출판계에서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무협과 공상과학, 추리소설 등이 적지 않게 쏟아지지만 국내 작가들에 의한 창작물이 아동문단 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탐정추리물’을 표방하고 등장한 한기정의 플루토 비밀결사대(비룡소, 1부 2005; 2부 2006)와 ‘과학동화’를 표방하고 기획 출판된 화학탐정, 사라진 수재를 찾아라(주니어김영사, 2007)는 주목을 끈다.
먼저, 플루토 비밀결사대의 경우 어린이 독자들의 관심은 각별한 듯하다. 탐정·추리소설은 그동안 아동문학계에서는 주변부의 통속물로 치부되면서 권장되지 않았던 특정 장르의 문학이었다. 하지만 플루토 비밀결사대는 ‘아동문학’ 밖에서 이미 적지 않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던 이 장르의 대중성과 유명 출판사의 수상작이라는 점이 가세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출판사는 플루토 비밀결사대를 연속 시리즈물로 기획 출판하고자 하며, 작가 또한 추리소설가 김성종과의 만남을 계기로 아동문학계의 불모지와도 같은 추리동화를 본격적으로 창작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작가는 2005년 플루토비밀결사대 1부를, 2006년에는 그 후속작인 2부를, 그리고 현재 3부를 창작 중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 ‘단절 아닌 단절’을 겪고 있던 이 장르에 대한 시도가 반가운 게 사실이다. 또한 집과 학교를 떠나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들의 소동도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를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이 주도적인 입장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고 신나게 뛰어노는 데서 카타르시스”31)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도 탐정소설의 장르적 특성과 어린이의 심리적 특성을 정확히 읽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추리물인데도 범인 맞추기가 너무 쉽고, 더욱이 ‘비밀 결사대’의 캐릭터들이 특별한 개성 없이 비슷비슷하게 처리되었다는 문제는 모처럼의 도전을 아쉽게 하는 대목이다.
플루토 비밀결사대 두 번째 이야기인 <팔색조의 비밀>은 거제도에서 열리는 여름추리학교에 참석한 플루토원들이 그곳에서 서식하는 희귀종 천연기념물 팔색조를 외국에 팔아넘기려는 범죄 현장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이 실제로 우리나라 추리작가와 일반인이 참여하는 ‘여름추리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몇몇 모델도 실제 만난 인물에서 빌어온 것이라는 점들은 훨씬 작품을 실감나게 한다. 1편보다 추리적 요소가 좀더 보완되어 있고 대원 가운데 한 명이 범인에게 감금되어 있기에 훨씬 긴장감이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이전 작품에서보다 밀수업을 하는 인물에게 어쩔 수 없이 협조하는 할아버지의 현실 상황이라든가 아이들뿐 아니라 추리학교에 참여한 어른들이 모두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구성을 통해 좀더 개연성을 획득하였다. 하지만 첫 장에서 이미 거제도 학동 마을을 배경으로 범죄가 일어난다는 사실과 여자 아이, 그리고 어떤 사나이(범인)가 제시되고 있어 단서가 아닌 ‘답’을 제시한다. 게다가 표지의 삽화에서 이미 범인을 알려준 데다 6장의 ‘사무실 관리인’이 여자 아이와 연결되고 그 관리인이 범인임을 삽화(60면)를 통해 미리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범인에 대해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게임을 시작하는 독자로서는 이야기에 대한 흥미가 반감된다. 또한 감금된 서진이를 찾아나서는 아이들이 쉽게 범죄현장을 알아내는 부분이라든가 추리학교에 참여한 무역업자가 관리인과 내통하고 팔색조를 빼돌리려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금숙이가 쉽게 알아내는 것도 독자를 너무 쉽게 보는 것은 아닌가 싶다. 부산의 기장에서 거제도로 무대를 넓혀가며 주인공들이 펼치는 모험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무대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할 것이다. 좀더 치밀한 구성과 반전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 범인으로 오해할 만한 인물들이 몇 명 배치된다면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한편, 화학탐정, 사라진 수재를 찾아라는 일상 생활 속에 스며있는 과학의 원리들을 동화로 쉽게 풀어내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된 ‘과학동화’이다. 이른바 본격 아동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유괴된 소년을 탐정 가족의 과학 수사로 범인을 잡는 이야기로 ‘과학’과 ‘추리’의 방식을 최대한 끌어들이며 이야기를 전개해가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과학의 원리를 쉽게 설명하려는 기획 의도 때문에 속도감 있는 전개를 방해하리만치 과학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책의 절반 이상에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 부분들을 최대한 걷어냈을 때 아동독자들이 흥미를 갖고 이야기에 빨려들 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비밀리에 수사를 담당한 탐정 가족이 범인으로 추정하고 추적했던 수상한 인물들이 유괴범이 아닌 좀도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반전 부분이나 과학의 원리를 이용해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은 한국 아동 탐정소설에 결여되어 있거나 미숙한 ‘과학’과 ‘이성’을 동원한 지적 게임의 논리를 어느 정도 보완하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을 본격 아동탐정소설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면서 인물들의 사건 해결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동 탐정소설의 창작에 있어서 눈여겨 볼만하다. 작가와 출판사의 의도 자체가 ‘과학동화’를 표방한 기획이었던 만큼 독자로 하여금 인간과 세계를 폭넓게 이해하게 하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문학인가 하는 평가 기준을 갖고 이를 논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외국의 잘 짜여진 탐정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어설프게 읽힐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아동 탐정소설이 그리 튼실한 기반을 갖고 있지 않은 현재로서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4. 일상에 갇힌 아이들을 더 넓은 세계로
한국 아동 탐정소설의 역사는 사실 그리 짧지 않다. 그것은 한국 아동문학의 탄생과 함께 방정환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척된 장르였다. 그러나 탐정소설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부정적 시각이 강한 데다 그간의 아동 탐정소설이 보여주었던 폐해들은 아동 탐정소설의 진전을 가로막아왔다.
전형적인 장르문학으로서의 탐정소설이 아니더라도 추리 기법들을 끌어와 작품의 주제를 실현하고 있는 작품들, 그것이 판타지이든 현실주의 작품이든 아동기의 지적 호기심과 정의감을 자극하면서 아동들을 가족과 학교를 떠나 좀더 넓은 세계, 모험이 충만한 세계로 흥미롭게 이끌 작품들이 활기를 띠고 창작되기를 바란다. 아동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자잘한 일상의 이야기를 넘어 미지의 세계, 경험하고 싶지만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세계를 자기 또래의 주인공이 자기 대신 살아주기를 바란다. 문학이 일상을 넘어 새로운 현실을 경험하게 하면서 일상에 지친 아이들을 위로하고 자기 안에 존재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찾게 해주고 또 다른 넒은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 무엇보다도 그 모험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 등이 아동 탐정소설이 어린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첫댓글 방정환 선생님의 동화를 비롯해서 <플루토 비밀 결사대>와 <화학탐정, 사라진 수재를 찾아라>를 읽어와주시면 좋겠습니다. 1월호에 글이 실려있지만, 혹시 없으신 분은 이 글을 인쇄해오시면 됩니다^^